중국과 경제/중국의 기업

싼이(三一) - 중롄(中聯)의 은원록

중은우시 2013. 11. 10. 02:19

글: 강소어(姜小魚) 

 

 2006년은 싼이중공(三一重工)과 중롄중커(中聯重科)간의 전투가 개시된 원년인 것같다. 이 해에, 중롄중커의 콘크리트펌프차량이 우시(無錫)에서 시공을 하던 중 사다리가 부러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중롄중커의 공식웹사이트에서는 모 경쟁상대방이 이에 대하여 제품고객들에게 메세지를 이용하여 고의로 부정적인 내용을 과장하여 알리고 있다고 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는 싼이중공을 직접 겨냥한 것이었다.

 

진정 격렬하게 대항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이다. 중국이 4조위안의 재정부양정책을 내놓으면서 중국내 공정기계산업은 초고속 발전의 서막을 열었다.

 

쌍방의 제1전은 2008년 이탈리아의 콘크리트기계회사 CIFA의 인수전이었다. CIFA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콘크리트기계브랜드이다. 누구든지 인수하면 이 분야에서 우세를 확보할 수 있었다. 싼이중공에서는 정부에서 나서서 간섭하는 바람에 산이는 최종적으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롄의 버전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싼이가 중간에 끼어들어서 전체 인수가격을 올려버렸다는 것이다.

 

2009년 전 중롄중커콘크리트기계분공사 재무관리부 직원인 장모가 싼이중공 상무부직원 문모의 돈을 받고, 문모에게 중롄중커의 상업비밀을 제공한다. 싼이는 이 사건이 중롄중커가 만들어서 대거 선전한 것이라고 말한다. 만일 2009년에 발생한 '간첩사건'이 무간도(無間道)라면, 2010년의 '납치사건'은 나생문(羅生門)이다.

 

2010년 7월, 싼이의 동사장 량원건(梁穩根)의 아들 량즈중(梁治中)이 닝향(寧鄕)으로 가는 도중에 경찰로 위장한 납치범들이 도중에 길을 가로막는다. 최종적으로 운전기사가 잘 협조하여 다행히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비록 사건에 관련된 3명의 납치범들이 2차로 다른 로버차량을 납치하려다가 체포되었지만, 중롄중커가 '혐의'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들이 막후의 검은 손이라고 지목을 받았다.

 

2011년이래, 거시경제가 불경기임에 따라, 공정기계업종도 불경기에 빠진다. 업종이 불경기에 빠지자 싼이중공과 중롄중커의 두 거두간의 경쟁, 쌍방의 갈등은 전면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한다.

 

"뇌물사건'은 직접적으로 싼이중공 H주상장실패를 몰고 온다. 그 영향은 3개월이나 비쳤고, 싼이중공이 다시 IPO를 준비할 때, 전세계 및 홍콩의 주식시장은 3개월동안 계속 하락했다. 시장가치가 주식가치에 훨씬 못미치게 되어 부득이 IPO를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2011년 8월, 후난(湖南)성정부는 중롄과  싼이간의 악성경쟁관계를 중재하기 위하여, 일찌기 업계자율공약을 서명하는 좌담회때, 후난성성장인 쉬셔우셩(徐守盛)이 보는 앞에서 싼이중공의 동사장 량원건과 중롄중커의 동사장 잔춘신(詹純新)이 서명하고 악수했다.

 

자율공약의 내용에는 서명에 참여한 당사자들간에 부정경쟁행위를 하지 않고, 경쟁상대방의 상업신용과 제품명성을 해치는 여론을 산포하지 않으며, 제3자기구, 개인을 지시하거나 교사하거나 암시하여 경쟁상대방을 악의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은 바라는대로 되지 않았다.

 

2012년말, 각종 기기괴괴한 사건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2011년 6월, '간첩사건'이 다시 발효된다; 2011년 10월 싼이중공은 마케팅모델이 지나치게 '급진'적이어서 자금고갈현상이 나타났다고 폭로된다. '자금사건'이다; 2012년 3월, 량원건의 아들이 '세관사건'에 연루된다; 2012년말, 싼이의 감원풍파가 촛점이 된다. 이것은 '감원사건'이다; 2012년말, '간첩사건'이 세번째도 발효된다....

 

싼이의 '본사이전'은 갈등을 더욱 격화시킨다. 쌍방은 '성명전'을 대거 벌인다. 2012년 11월 21일, 싼이중공의 동사장 량원건은 내부 조찬회에서 돌연 싼이가 베이징으로 본사를 이전하기로 결정했다고 선언한다. 싼이중공의 직능본부와 각 핵심사업부는 모조리 베이징시 창핑구로 이전하며, 창사(長沙) 기지는 콘크리트펌프차량사업부만 남길 것이라고 하였다.

 

그후, 2012년 11월 29일 출판된 <환구기업가>에는 <창사를 한을 품고 떠나는 싼이 량원건의 내심독백>이라는 글이 실린다. 중롄중커와의 '싸움'과정에서 싼이중공은 상대방의 감청을 당하여 정상적으로 일을 진행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고위층회의도 부득이 멀리 쿤산(昆山)으로 가서 열었으며, 전화가 있는 곳에서는 누설이 두려워 회사기밀을 얘기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싼이중공측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것이 이미 량원건의 가족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량원건의 아들의 납치사건, 세관이 돌연 조사하는 것은 모두 경쟁상대방인 중롄중커가 막후에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2012년 11월 30일, 중롄중커는 <산이가 한을 품고 창사를 떠나다>라는 글에 대한 성명을 발표한다. "이 글의 중롄중커에 대한 묘사는 엄중하게 사실에 위배된다." "글에서 말하는 것은 무중생유(無中生有)이거나, 악의적인 중상모략이다."

 

2013년 6월, 중롄중커는 다시 장문의 성명을 발표하여 이에 대해 부인한다. 동사회가 주도하여 조사한 <사외이사의 매체보도 관련상황에 관한 독립조사의 성명>에서는 '감첩사건' '세관사건' '납치사건'을 일일이 언급하여 하나하나 해명했고, 법률무기를 가지고 '막후검은손'을 기소할 것이라고 했다.

 

싼이는 여러 사건들이 발생한 후 여론공격을 시작한다. <중국기업가>의 보도에 따르면, 매체를 이용하여 중롄중커의 여러가지 기본선이 없는 경쟁수법을 폭로하는 외에, 싼이는 중롄의 두 가지 약점을 잡았다. 하나는 중롄의 원죄이다. 즉, MBO과정에서 잔춘신이 국유자산을 사유화한 것이다. 산이는 말했다. 중롄은 MBO과정에서 명목이 복잡한 회사를 설립하여, 자산이전을 실현했고, 정상적인 상황하에서라면 이런 구조조정은 통과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두번째 약점은 중롄이 구조조정을 전후하여 대량의 관료자제를 받아드려서 이익파트너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공권력으로 시장경쟁에 간여한 것이다. 샹원보(向文波)의 주장에 따르면, 이것은 국유기업과 민영기업의 경쟁이 아니었다. 불량기업이 공권력을 이용하여 한마음으로 산업보국하고자 하는 기업을 탄압하고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명예를 훼손한 다툼이다.

 

사실상, 국내공정기계의 양대거두인 싼이중공과 중롄중커는 모두 창사에 위치하고 있다. 상강(湘江)을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으면서 근 20년간 각축을 벌여왔고, 중국공정기계업종의 상정사와 변혁사를 목격했다. 싼이중공과 중롄중커는 비슷한 점이 아주 많다. 두 기업의 탄생은 2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두 회사의 최고경영자의 연령은 1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같은 도시, 같은 업종, 같은 시초(翹楚, 뛰어난 인재). 제품이 겹치는 것이 아주 많고, 중요한 경제수치까지도 아주 근접한다.

 

그러나 그들의 기질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외향적이고 후자는 내성적이다. 전자는 풀뿌리이고 후자는 명문출신이다.

 

과거 20년간, 작은 공장에서 시작한 두 기업은 군웅할거과정에서 발군의 모습을 보인다. 비록 발전모델이 달랐지만, 서로 단련하며,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고, 업계내의 양대거두로 성장한다. 주유,제갈량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양자가 모이니 더더욱 시너지효과를 발휘하여 후난성의 전후방산업체인이 형성되고, 농업대성인 창사가 감히 '세계공정기계도시'라는 미명을 얻을 수 있게 해주었다. 여러해동안의 발전과 경쟁을 거쳐 싼이중공과 중롄중커는 콘크리트펌프차랑시장의 약 90%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게 된다.

 

업계의 분석가에 따르면, 단기적으로 봐서, 콘크리트기계업종의 선두기업은 브랜드, 채널, 애프터서비스등의 우세를 장악하고 있어서, 경쟁국면이 바뀌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중국공정기계는 미래에 안정적인 성장기로 접어들 것이고, 경기와의 관계가 더욱 긴밀해질 것이다. 공정기계업종은 상대적으로 낮은 성장을 보이는 기간에 접어들 것이다. 업계경기파동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주로 국내투자성장예측의 변동폭이다.

 

그외에 경영이념 방면에서, 싼이중공과 중롄중커는 차이가 있다. 싼이는 "품질이 세계를 바꾼다"는 경영이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제품업그레이드를 통하여 세계일류수준이 되고자 노력한다. 그 핵심가치관은 "먼저 사람이 되고 다음에 일을 한다. 품질이 세계를 바꾼다"이다. 그러나 중롄중커의 기업문화의 핵심이념은 "지성무식(至誠無息), 박후유원(博厚悠遠)"이다.

 

발전모델에서 중롄은 국영이고 싼이는 민영이다. 중롄은 인수를 통하여 핵분열식으로 발전했고, 싼이는 내생적으로 발전하여 점차 제품영역을 넓혀갔다.

 

의미심장한 것은 후난에서 중롄중커의 인맥관계가 깊다는 것은 이미 공개된 비밀이다. 싼이는 오랫동안 급진적인 일처리 방식으로 적지 않은 하급정부관리의 불만을 초래했다. 싼이의 이직한 경영진은 이렇게 말한다. 정부가 나서야 할 때, 싼이는 왕왕 손해를 본다.

 

싼이의 관련책임자는 이렇게 말한다. 정부측면에서 후난성의 어떤 고위층은 싼이를 아주 중시한다. 그러나, 하급정부부서에서는 중롄중커의 인맥을 산이가 따라갈 수 없다. 잔춘신은 원래 후난성 고급인민법원 원장을 지냈던 잔순추(詹順初)의 아들이다. 그의 처는 전 후난성 제2서기 완다(萬達)의 딸인 완샤오리(萬小麗)이다.

 

그렇기는 해도, 후난 현지에서 공정기계업무에 종사하는 회사관리층의 소개에 따르면, 후난의 싼이중공에 대한 지지도 만만찮은 편이다. 이것은 보조금액에서도 알 수가 있다. 회사연간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중롄중커는 정부보조금을 1.89억위안 획득했다. 그러나 싼이중공은 9억위안을 받았다. 전자의 5배이다.

 

량원건은 심지어 이런 말도 했다. 전기 당대회에서 어떤 미국기자가 이런 말을 한다. "당신은 언젠가 미국으로 이민할 것인가?" 그때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하늘아래에 어떤 일도 다 벌어지는 법이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천번을 태어나도 모두 중국에서 태어나기를 원하고, 천번을 죽어도 중국에서 죽기를 원한다.

 

후난의 정부부서 및 업계주무부서에 있어서, 이것은 아주 민감한 이슈이다. 어떤 매체는 일찌기 창샤로 가서, 후난성 국자위, 발개위, 경신위등을 취재하였는데, 모두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정부관리들은 사적으로 기자들과 얘기를 나누기를 원했고, 정부주관부서의 '행위'를 털어놓으면서, 개인견해를 얘기했다.

 

후난성 공정기계업종관리판공실의 한 인사는 이렇게 말한다: "싼이와 중롄의 이런 경쟁은 피할 수가 없다. 시장이 축소되고 파이가 줄어드는 상황하에서 공정기계기업의 규모는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비교적 격렬한 경쟁이 있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일부 부당한 수단이 쓰이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필자가 보기에, 시장에 경쟁은 필요하다. 다만 경쟁에도 한도와 금도가 있다. 기분내키는대로 다 하거나 법률이나 도덕적 기본선에 저촉되거나 벗어나서는 안된다.

 

랑센핑 교수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시장경제체제를 건립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각종 시장주체들에게 공정경쟁의 환경를 조성해주어야 하고, 공정경쟁질서를 유지해주어야 한다. '심판' 역할을 잘 해야지 '선수'역할을 하려 해서는 안된다. 시장의 경제법칙에 따라 일처리 하고 특정기업을 위하여 일을 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