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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명)

주대전(朱大典): 탐관오리에서 애국순국으로

by 중은우시 2014. 4. 4.

글: 한정우기(閑情偶記)

 

주대전(1581-1646)은 자가 연지(延之), 호는 미해(未孩)이며, 금화(金華) 사람이다. 명나라 만력44년(1616년) 진사로 완대성(阮大鋮)의 동학(같은 해 진사합격한 사람)이다.

 

항전의 깃발을 내든 애국자 주대전의 명성은 기실 그냥 나쁜 수준이 아니었다. 그는 탐관오리였다. 숭정14년 그는 총독강북하남호광군무로 있을 때, '청렴하지 못하여' 삭탈관직된다. 장대는 그를 '절망 유호창응(乳虎蒼鷹)같다"고 말했다. 봉양에 있을 때는, "재물과 뇌물을 긁어모아서, 막료와 수하들까지 주머니가 가득했고, 사람들은 그의 부유함이 국가와 맞먹을 정도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더러운 돈이 애국에 쓰였다. 주대전은 집안재산을 모조리 풀어서, 병사를 모집하여 군대를 이끌고 무성(금화)를 지킨다. 이때 주대전의 애국적인 행동은 좀 폄하해서 본다면 그가 보토안민, 보전가재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천하형세가 날로 불리해지는 과정에서도 주대전의 애국본성은 전혀 꺽이지 않았다. 옛날에 사람들에게 욕을 얻어먹던 탐관오리인 그는 애국에 집착했고 또한 비장했다.

 

융무2년(1646년) 삼월, 청나라병사들이 절강동부를 함락시키고 절강서부지역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러나, 완대성은 이때 이미 애국의 깃발을 내던지고, 시류를 따라 청나라군영으로 간다. 그는 옛 동학인 주대전을 설득하여 청나라에 투항하게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대전은 분노했고, 완대성이 보낸 서신을 찢어버리고, 사자로 온 사람은 죽여버린다. 그리고 부하들과 금화를 굳게 지킨다. 청나라병사들은 근 3개월이나 공격하였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결국 성안에 양초(糧草)가 남지 않고, 성밖에 원군은 오지 않았으며, 또한 성벽도 포탄에 이미 무너져 버렸다. 청나라병사들이 대거 성안으로 진입해 올 때도, 주대전은 여전히 완강하게 저항했다. 장병들 대부분이 전사하자, 주대전은 담담하게 가족과 막료 32명을 소집한 다음 화약고의 곁에 둘러 앉아서, 모든 폭약에 불을 붙여, 집단자살하여, 순국한다.

 

주대전과 함께 순국한 사람은 그의 다섯명의 아들과 한 명의 손자가 있다. 그가 죽기 전에, 그의 큰손자인 주옥(朱鈺)은 포위망을 뚫고 원군을 요청하러 가는 도중에 살해당한다. 주대전의 큰며느리 장씨는 긍화성이 함락되기 하루 전날 가족과 이별한 후 먼저 목을 매어 자결한다. 주대전의 처첩 하씨, 둘째며느리 진씨, 셋째며느리 강씨, 넷째며느리 내씨, 다섯째 며느리 왕씨는 금화성이 함락될 때 손에 손을 잡고 자손들과 우물에 몸을 던져 자결한다. 주대전의 이미 출가한 딸도 금화성에서 짙은 연기가 올라오고, 부친의 순국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목을 매어 자결한다. 주대전의 조손3대 22명이 이렇게 나라를 위하여 금화를 지키는 전투과정에서 목숨을 마친다. 만문충열(滿門忠烈)로 단 한명도 살아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