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명)

가정제(嘉靖帝)와 그의 황후들

중은우시 2014. 4. 4. 01:52

글: 두문자(杜文子)

 

가정제(명세종 주후총)는 명나라의 16번째 황제이고, 재위기간이 두번째로 길다(가장 재위기간이 긴 황제는 그의 손자인 만력제이다). 가정제는 전후로 3명의 황후를 두었는데, 이 세 명의 황후는 최후가 모두 비참했다. 세번째 황후인 방황후(方皇后)는 일찌기 가정제의 목숨을 구해준 바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몸에 불이 붙었을 때, 가정제는 두 둔을 멀거니 뜨고 아무런 감정없이 방황후가 불애 타서 죽어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첫번째 황후는 북직예(北直隸) 원성(元城) 사람인 진만언(陳萬言)의 딸이었다. 진씨의 명성이나 기질은 아주 뛰어났다. 그러나 가정제의 엄격하고 괴이한 성격을 견디지 못했다. 어느 해의 가을날, 가정제와 식사를 할 때,진황후가 찻잔을 제대로 놓아두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가정제가 버럭 화를 내고, 계속하여 소리를 질렀다. 진황후는 놀란 나머지 유산하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사망하고 만다. 진황후가 죽은 후에도, 가정제는 진황후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녀를 제대로 안장해주지 않았을 뿐아니라(그저 산골짜기 한 곳에 매장한다), 현관소복(玄冠素服)으로 애도를 표해주지도 않았다.

 

진씨를 폐한 후, 가정제의 모친과 백모 장황태후(張皇太后, 정덕제의 모친)는 모두 새로 황후를 물색하도록 재촉했다. 이때 금의위 장즙(張楫)의 딸이 가정제의 일상생활을 돌봐온지 오래 되었다. 그녀는 성격이 온화하고, 각수예도(恪守禮道)하여 황후로 뽑히게 된다. 장황후는 장황태후와 사이가 아주 좋아서 가까지 지냈다. 그러나, 가정제는 장황태후의 친정친척들을 싫어했고, 이로 인하여 그 화가 나이젊은 장황후에 미쳤다. 그래서 얼마 후 장황후도 폐위되어 별궁으로 옮겨진다. 장씨는 우울하게 지내다가 2년후에 사망한다. 장례식도 폐위된 황후의 예로 처리한다.

 

장황후가 폐위된 후, 가정제는 덕빈(德嬪) 방씨를 황후로 삼고자 한다. 그래서 대학사 하언(夏言)의 생각을 물어본다. 시문에 뛰어난 하언은 가정제가 아주 잘 선택했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말한다:"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납니다(天圜而地方)" 그 뜻은 가정제는 하늘처럼 둥글고 미래의 황후인 방씨는 네모나다는 뜻이다. 구일이 지난 후 가정제는 방씨를 세번째 황후로 삼는다. 얼마후 하언의 예언은 맞아떨어진다: 방황후가 가정제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그 사건은 궁중의 궁녀 양금영(楊金英)등이 가정제를 시해하려고 계획하는데서 시작한다. 이것은 당연히 가정제의 포학으로 궁녀들이 가정제의 음위를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때문이다. 비록 조단비(曹端妃)는 직접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장좌(張佐)의 보고에 따르면, 그녀는 먼저 이 음모를 알고도 보고하지 않았다. 방황후는 가정제가 몸이 좋지 않아 여전히 말을 할 수 없는 틈을 타서, 성지를 대신 전하여 조단비, 왕녕빈(王寧嬪) 및 양금영의 일당 합계 16명을 모조리 붙잡아 능지처참한다. 그리고 그들의 친족 십여명도 주살한다. 사건이 지나간 후 가정제는 나중에야 기실 조단비(이미 가정제와의 사이에 딸을 낳았다)는 이 황제모살음모를 몰랐는데도, 이미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록 위기는 넘겼지만, 가정제는 방황후가 조단비를 처결한 사건에 대하여 마음 속으로 의혹과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같다. 명나라때의 진사인 하교원(何喬遠)이 쓴 <십삼조유사>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방황후는 1548년 납월의 서궁 대화재때 죽는다. 엉청난 불꽃이 황후의 침실을 뒤덮을 때, 가마솥 속의 개미처럼 조급해진 태감은 가정제에게 사람을 건물안으로 보내어 방황후를 구하도록 하라고 진언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가정제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방황후가 그대로 불에 타 죽도록 내버려둔다. 가정제는 단지 이렇게 중얼거렸다: "황후는 나를 구했지만, 나는 황후를 구할 수 없다."

 

방황후는 비록 가정제의 목숨을 한번 구해주었지만, 불에 타서 죽고 만다. 가정이 그녀를 구하지 않은 것은 방황후가 그의 목숨을 구한 후, 자신이 임의로 처리한 조치와 큰 관계가 있다.

 

비록 황후의 귀한 몸이었지만, 비참한 결말을 피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