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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원소(袁紹)의 영웅기개: "모두 어딜 갔는가?"

by 중은우시 2014. 4. 4.

글: 동호소주(東湖少主)

 

원소의 가족은 사세삼공(四世三公)으로 명성이 혁혁했다.

원소에 이르러, 마찬가지로 삼공의 지위에 이르렀다. 그는 조상의 음덕으로 명성과 지위를 잃은 적이 없다. 단지, 한나라황실이 쇠약해지고, 정치가 부패하였으며, 원소의 지위는 대장군 하진(何進)의 뒤에 머물러 있었다. 비록 그렇기는 해도 문벌을 아주 중시하던 그 시대에 원소는 여전히 일호백응(一呼百應)의 아주 강력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다.

 

원소의 실패는 아주 안타깝다. 그리고 어느 정도 불가사의하다. 왜냐하면 초기의 원소는 영웅기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우뮤부단하고 강퍅자용하지 않았다. 당시를 생각하면, 대장군 하진이 계속 심상시(十常侍)로부터 모함을 받으며 여러번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생사존망이 걸린 관건적인 순간에, 원소가 앞장서서 일어나, "정병 5천을 빌려, 관문을 뚫고 들어가서 새로운 황제를 세우고, 환관들을 주살하여 조정을 깨끗이 청소하여 천하를 안정시켰다."

 

사람이 바로 그렇다. 아무런 부담이 없으면 일을 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원소는 비록 명성이 적지 않았지만, 자신의 병마는 없었다. 십상시를 주살할 때도 하진에게 병력을 빌린다. 손에 가진 것은 없어도 마음은 풍성했다. 원소는 이때 의기풍발(意氣風發), 영웅개세의 풍모로 과감하게 말하고 과감하게 행동했다. 조그만치도 이후의 "색려내임(色勵內荏, 겉으로 보기에는 강인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겁이 많고 나약하다)"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하진은 백정출신이고 가슴속에 무슨 자신의 뜻을 품고 있지는 않았다. 여러번 전전하다가 결국은 십상시에게 속아서 죽임을 당한다. 하진이 죽자, 권력은 모조리 십상시에게 돌아간다. 원소는 위축되지 않았을 뿐아니라, 오히려 들고 일어나 조조와 함께, 궁중으로 쇄도해 들어가, 장양을 우두머리로 하는 십상시를 모조리 죽여버린다.

 

불행스러운 점은 한 무리의 이리를 죽이고 나자,  다시 한 마리의 호랑이가 나타난다. 동탁은 근왕을 핑계로 순조롭게 조당에 진입하고, 금방 권력을 장악한다.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동탁은 한소제를 폐위시키고, 진류왕을 황제로 옹립한다. 그 결과 정원(丁原)이 여포의 용맹함에 의지하여 격렬히 반대하게 된다. 나중에 동탁은 계책을 써서, 여포의 배반을 책동하여 정원을 죽이고 이때부터는 더 이상 거리끼는 것이 없게 된다.

 

이치대로라면 이제 동탁의 권세는 중천에 뜬 태양과 같았고, 더더구나 그는 공포수단을 쓸 수 있는 한 모두 썼다. 조정에서 그 누구도 그에 반대할 수 없었다. 다만 원소는 원소이다. 한번도 영웅의 본색을 잃은 적이 없었다. 동탁이 다시 한번 황제폐위의 일을 꺼내자, 다른 사람들은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는데, 유독 원소가 들고 일어선다: "너는 적자를 폐하고 서자를 올리려 하는데, 반란을 일으키겠다는 뜻인가?" 아직도 반대하는 자가 있자, 동탁은 대노하여 소리친다: "너는 내 검이 날카로운 것이 보이지 않느냐?" 그래도 원소는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검을 뽑아들고는 말한다: "너의 검도 날카롭겠지만, 내 검은 날카롭지 않을 것같으냐?" 정세가 위급할 때, 다행히 채옹(蔡邕)이 나서서 양쪽을 권하여 쌍방은 손을 거두게 된다. 원소는 이번 다툼을 통하여, 막아내는데 실패하자, 필마를 타고 기주로 도망치게 된다.

 

이때의 원소를 생각해보면, 비록 '사세삼공'의 명성은 있었지만, 실력이 너무 약했다. 이에 반하여 동탁은 조정을 장악하고 여포등이 조주위학(助紂爲虐)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정 서로 실력으로 겨룬다면, 원소는 분명 전혀 우위를 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바로 이렇게 위험한 지경에 강개격앙하였다는 점을 보면, 원소의 용감함과 두려움이 없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환관을 주살하고, 동탁과 싸우는 것은 모두 아무나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는 달랐다. 지방으로 돌아온 후, 조상이 유명하기 때문에 사방에서 그를 추앙해서 오는 사람들이 많아 대오는 금방 커지게 된다. 십팔로제후가 동탁을 토벌하기 전에, 원소의 수하에는 이미 전풍(田豊), 저수(沮授), 허유(許攸), 심배(審配), 곽도(郭圖), 안량(顔良), 문추(文醜)등 문신,무장들이 있었다. 병마와 전량(錢糧)은 더더구나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진세가 거대하고, 영향이 큰 데는 천하에서 독보적이었다.

 

사업이 커진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이로 인하여 따라오는 부담도 더욱 커졌다. 이 집단이 계속 강성해지면서, 내부의 균형은 점점 더 이루기 어려워진다. 내부투쟁이 개시된 것이다. 날로 두드러진 내부갈등을 두고 원소의 내심은 미묘한 변화가 발생한다. 십팔로제후가 낙양에서 모일 때, 모두 '원본초(원소)는 사세삼공으로 문다고리(門多故吏)'하다고 하여 당연히 맹주로 추천된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매매하는 것은 잘 해도, 사업파트너가 되는 것은 어렵다. 원소는 제후를 호령하므로 그 기회는 천재일우이다. 운이 좋으면, 동탁을 소멸시킬 수 있을 뿐아니라, 대우를 거두어 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가지고 천하를 종횡하고 조정의 주인이 되어 조정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 그 때가 되면, '천자를 끼고 제후들에게 명령하는' 것은 조조가 아니라 원소였을 것이다. 다만 원소는 천하의 정예군대를 앞에 두고 어찌할 바를 몰랐고,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십팔로제후는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리하여 원소는 마음이 많이 상하게 된다. 결국 대오는 해산되고 각자 따로 흩어져서 자기 갈 길을 간다.

 

하북으로 돌아와, 원소는 계속 제후왕으로 지낸다. 그러자 내부갈등은 더욱 두드러진다. 원소는 당연히 몰랐다.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도 많은 법이다. 군웅들이 굴기하는 순간에 이렇게 큰 땅을 점거하고 있다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탐을 낼 수밖에 없다. 다만 이때의 원소는 이미 옛날의 그 의기풍발, 위무웅장하던 원소가 아니다. 내부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하는 바람에 투쟁은 날로 가열되었다. 수하에 인재는 적지 않앗으나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하나로 뭉쳐지지가 않은 것이다. 특히 생사결전의 순간에 왕왕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았는데, 이때도 원소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수하들이 하고 싶은대로 하도록 놔두었다. 해결방법을 전혀 내놓지 못했다. 내부가 단결되지 않으니, 인재가 많으면 많을수록 골치가 아팠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원소가 양존처우(養尊處優)하여 편안하게 살아오다보니, 늙기도 전에 먼저 쇠약해 져버렸다. 원소는 조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조조는 가는 곳마다 위기로 충만했고, 친히 병력을 이끌고 동분서주해야할 뿐아니라, 수시로 조정에서 날아오는 암전을 막아내야 했다. 원소는 유비와는 더욱 비교될 수 없었다. 유비는 사방을 돌아다니며 남의 밑에서 살아야 했고, 강호를 오랫동안 돌아다니면서 내심은 이미 단련되어 아주 단단하고 매끄럽게 되어 있었다.

 

아마도 장기간 평화로운 환경에 처해 있던 연유때문인지 원소는 장년이지만 이미 늙은 기운이 가득했다.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단순히 가장 사랑하는 막내아들이 병에 걸렸다고 하여 스스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모습이 초췌하고, 의관이 흐트러졌다'. 심지어 죽느니 사느니 하게 된다. 전풍이 허창이 비어있는 틈을 타서 조조를 공격하자고 할 때, 원소는 아들에게 병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한다. 이때부터 천하를 노릴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이런 전형적인 '노인심리'는 원소집단을 내리막길로 몰아갔다.

 

나중의 관도지전에서 원소는 원래 다시 일어서고자 했지만, 양존처우로 형성된 사고방식은 "열사모년(烈士暮年), 장심불이(壯心不已)"의 조조의 앞에 결국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원소로 하여금 계속 번뇌하게 만든 것은 이전에 세력이 커지기 전에는 그 위세가 사해를 집어삼킬만 했는데, 이제 세력이 커지게 되자 오히려 당초만 못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