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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동탁(董卓)의 사후 왕윤(王允)이 1인자가 되지 못한 이유는?

by 중은우시 2013. 6. 11.

글: 이치아(李治亞) 

 

 

 

동탁은 서량(西凉)의 1인자이다. 중앙조정을 여러해동안 장악하고 있었다. 당시 어린 황제는 겁이 많았고, 동탁이 다시 폐위시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었다. 동탁은 아주 대단했다. 한소제도 죽이려고 하면 죽였다. 하황후도 독주를 먹고 죽었다. 이때의 동탁은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는 정도였고, 세계를 주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왕윤이 왔다. 그는 어두운 곳에서 교묘하게 관찰하며 어떻게 동탁에 손을 쓸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동탁의 약점을 발견한다. 동탁은 비록 권력은 잘 알았지만, 정치는 잘 몰랐다. 백성을 아낄 줄을 몰랐다; 동탁은 비록 어떤 때는 사병들로 하여금 물건을 강탈하고 능묘를 도굴하도록 허용하여 군기가 엄하지 못했다; 동탁은 자신의 장수를 대함에 있어서, 어떤 때는 그다지 손이 크지 못했다. 그리고 하나의 중요한 정보는 동탁의 병력이 비록 아주 강하지만, 많은 장수들의 마음은 하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정보가 있었는데, 동탁의 애장 여포와 동탁은 일찌기 여인 하나를 두고 하마터면 목숨이 왔다갔다 할 뻔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왕윤은 담장을 파기 시작한다. 그리고 담장파기에 성공한다. 얼마후 왕윤의 안배하에 여포는 동탁을 죽인다. 여포가 동탁을 죽이자, 왕윤이 대단한 인물로 떠오른다. 왕윤은 자신이 이때 천하제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왕윤은 이때 일련의 인사를 한다. 예를 들어,  전국의 병권을 그 자신이 넘겨받아 모두 책임지고, 여포는 자신의 부하로 삼는다. 왕윤은 여포를 멸시했다. 여포는 그저 자신의 노리개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였다. 자신의 상사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가볍게 국가대사를 맡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왕윤은 제1인자가 되고 싶었다. 동탁의 아래에 있을 때 왕윤은 계속 우울했으나, 이제 대권을 손아귀에 잡았으니 독단전횡할 수 있게 되었다. 동한의 전성기를 창조하고 싶었다.

 

왕윤이 이후에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일을 한다

 

첫째, 공개적으로 동탁의 죄악을 선포하고, 동탁을 따르든 장수를 모조리 죽여버린다. 원래 동탁의 부하인 이각, 곽사, 번조, 장제의 4명은 일찌감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반성문도 썼다. 그리고 정부에 투항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왕윤은 그들의 죄가 극악하다고 보고 사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이들 장수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일을 벌이게 된다. 이로 인하여 그는 원한을 쌓는다.

 

둘째, 채옹의 변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동탁이 죽고, 채옹은 이전에 동탁이 자신에게 은덕이 약간 있는 것을 생각하여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왕윤은 이것이 노선을 분명히 하지 못한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국가기기를 동원하여 채옹을 죽여버린다. 당연히 앞으로 나서서 채옹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아주 많았다. 그러나 왕윤은 채옹에 대하여 사람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런 자는 반드시 죽여서 일벌백계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셋째, 왕윤은 동관을 개방하도록 명령한다. 그리하여 관동 제후들과 국시를 같이 상의할 수있도록 했다. 어떤 사람은 반대한다. 그러나 왕윤은 말한다: 관동의군은 나의 동지이다. 그들을 충분히 신임하여야 한다.

 

이 세 가지를 하나하나 보면 모두 이유가 있다. 그리고 왕윤이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3가지 일을 하나로 묶어서 보면, 그것은 큰 일이다. 왕윤에 대한 영향은 치명적이다.

 

첫째, 4명의 장수가 반란을 일으키도록 핍박했다. 이각, 곽사, 번조, 장제는 비록 일류장수는 아니지만, 3명의 취피장은 1명의 제갈량을 상대할 수 있다. 군중의 역량은 무궁하다. 게다가 천하제일의 모사인 가후가 가입한다. 자연히 아각등의 반란은 가능성의 문제일 뿐아니라, 아주 기세가 대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포를 이기고, 바로 밀고 들어온다.

 

둘째, 채옹을 죽이므로서, 천하의 독서인들의 마음이 떠난다. 채옹은 당시 지식계의 자랑이었다. 그리고 당시 아주 뼈대있는 유생이었다. 왕윤을 보니 별로 였다. 그래서 지식인들은 왕윤에 대하여 실망을 한다.

 

셋째, 왕윤이 동관을 개방하도록 명령했지만, 그는 기실 관동제후들이 각자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표면적으로는 충의를 행하지만, 내심으로는 개인들이 자신의 잔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얼마후, 왕윤은 이각, 곽사등의 핍박하에, 내외로 곤경에 빠져, 자신의 세월을 끝장내게 된다. 그는 정권을 잡았지만, 지나치게 따지고 고르는 바람에, 국가를 더 좋은 방향으로 끌고가지 못했다. 오히려 이각, 곽사등과 같은 무리들이 날뛰게 만들었고, 어린 황제는 더욱 절망적인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를 보면 정치를 하려면 기도가 있어야 한다. 함양이 있어야 한다. 견인불발의 의력이 있어야 한다. 왕윤과 같이, 사사건건 보복하려고 하면 반드시 만겁불복의 밑바닥까지 빠져들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