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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유비)

유비야말로 삼국시대의 대간웅이다

by 중은우시 2014. 4. 4.

글: 문재봉(文栽縫)

 

<삼국연의>의 유비를 얘기하자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먼저 충후(忠厚)라는 단어가 떠오를 것이다. 어느 TV드라마에서도 유비의 모습은 척 보면 충후하고 착실하고 인덕을 갖추었다. 조조가 신야(新野)를 패배할 때, 유비는 백성을 데리고 도망친다. 조조의 병사에 추격을 당할지언정 백성들을 버리지는 않았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유비의 재능은 그다지 크지 않아 보인다. 호뢰관에서 삼영전여포를 보라. 겉으로 보기에는 의형제 3명이 1명과 싸운 거이지만, 실제로는 관우, 장비가 여포와 싸운 것이다. 유비는 그 두 의형제가 나서서 싸우는 것을 보고 그는 뒤에서 쌍고검(雙股劍)을 들고서 '나도 데려가라'고 말한다. 기실 그는 그다지 큰 역할을 못한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한다. 유비는 싸움실력이 별로였던 것같다고. 제갈량이 없었다면, 그는 절대로 삼분천하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기실, 역사상 진실한 유비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멍청하지도 않았고, 성격이 좋지도 않았고, 충후하지도 않았으며, 군사재능이 없지도 않았다. 전혀 상반되게 그는 조조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간웅(奸雄)이었다.

 

왜 어떤 사람은 유비의 성격이 좋다고 말하는가? 무슨 일만 있으면 바로 화부터 내는 것은 장비이다. 삼고초려의 장면에서 제갈량이 집안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장비는 화가 나서 바로 집을 불질러서 제갈량을 끌어내려고 한다. 모두 주의해서 보라. 무릇 이런 류의 일이 있으면 반드시 장비와 같이 막무가내인 무리가 앞장을 선다. 유비는 기실 장비가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는 중간에서 다독거린다. 유비가 장비에게 하는 가장 많은 세 마디 말은 이것이다: "셋째동생 함부로 날뛰지 말게." "세째동생 사건을 일으키지 말게." "셋째동생 물러서게." 바로 이 세 마디 말이다. 기실 그는 장비가 그렇게 하도록 바랐고, 악역을 맡으면, 그 후에 그가 나서서 착한 역할을 맡는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사람들은 유비의 성격이 좋고, 장비의 성격은 나쁘다고 한다. 기실 그런 것이 아니다. 유비의 성격은 더욱 급하다. <삼국연의>의 첫 장면에 이런 것이 있다. "편타독우(鞭打督郵), 기충우투(氣沖牛鬪), 호뢰관전전온후(虎牢關前戰溫侯)". 이것은 <감로사>의 가사중 일부분이다. 말로는 장익덕(장비)가 독우를 채찍으로 때렸다고 하지만, 기실, 장익덕이 채찍으로 독우를 때린 것이 아니라 유비가 손을 쓴 것이다. 십팔로제후가 동탁을 토벌할 때, 유비는 중산부 안희현 현위라는 하급관리였다. 현위(縣尉)가 무슨 직위인가. 현의 군대대장이다. 전란시대에 군대대장은 현장보다 힘이 있다. 그가 재임한 기간은 길지 않았고, 조정이 기율을 정돈하려 했다. 전쟁에서 공을 세워 관직을 얻은 자들 중에서 관료로서 자질이 없는 자들을 걸러냈다. 하급관리들이 싸움만 할 줄 알고, 지방을 다스릴 줄 모르다보니 오히려 지방에 해독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하여 상급관리를 내려보내 감찰을 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바로 감찰원이 지방을 다니면서 순시하여, 일을 잘하면 남겨두고, 그렇지 않으면 직위를 내놓게 하고 돈을 주어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다른 관리를 내려보낸다. 이 독우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바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가 와서 감찰을 하고 안희현의 현위가 제대로 일을 하는지 살펴보려는 것이다.

 

유비는 이때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자신은 기본이 없다. 즉 짚신을 만들던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그가 황족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중산정왕 유승은 평생동안 딴 일은 한 게 없고, 오로지 자식만 낳았다. 120여명의 아들이 있다. 왜 유비는 다른 사람의 아들이아고 하지 않았을까? 그가 한무제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한무제는 아들이 몇몇 되지 않아서, 한번 조사해보면 금방 드러난다. 중산정왕 유승은 120여명의 아들이 있다. 그래서 네가 중산정왕이 후손이라고 한 것이다. 유비는 뿌리가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이때 마음 속으로 걱정을 했다. 독우가 와서 자신의 직위를 박탈해버리면 어떻게 될까? 그는 스스로 생각을 한다. 자신은 짚신을 만들다가 어렵사리 관우,장비라는 두 의형제를 끙러들였고, 그리고 힘을 많이 들여서 겨우 이 현위라는 관직을 얻어냈다. 그런데 네가 그만 두라면 그만두어야 한단 말인가. 나는 공연히 지금까지 고생한 것이 아닌가. 유비는 마음 속으로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운명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주도적으로 헤쳐나가겠다. 그는 이 때 과거의 고생을 떠올렸을 것이고, 마음 속에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을 것이다.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한다. 네가 나를 쫓아내려고 한다면 나도 그냥 앉아서 당하지는 않겠다.  유비는 화를 참지 못하고, 몇몇 가솔들을 부른다. "가자 내가 앞장설테니 쳐들어가자." 그는 안으로 쳐들어가서 독우를 침상에서 끌어낸 다음 나무에 꽁꽁 묶는다. 유비는 마음 속으로 그가 자신을 관직에서 몰아내려한다고 생각하고, "됐다. 나도 좋게 끝내지는 않겠다. 아예 화나 풀자." 그래서 채찍을 꺼내서 독우를 한바탕 때려, 하마터먼 죽일 뻔한다.

 

진실한 역사는 이렇다. 장익덕 장비는 독우를 때리지 않았다. 유비가 독우를 때렸다. 이것은 무엇을 설명하는가? 유비는 불같은 성격이다. 그는 아주 성깔있는 사람이다. 네가 나를 건드리려면 참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삼국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는데, <삼국연의>에는 그렇게 고쳐놓았을까? 바로 유비의 성격이 좋고, 인덕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장비가 독우를 때렸고, 유비는 때리지 말라고 말렸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그의 이미지를 두드러지게 하고자 했다. 역사가 급변하는 시기에 그가 만일 성격이 좋은 사람이었다면, 왕왕 관건적인 순간에 과감하게 핻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충분한 인간적 매력으로 부하들을 데리고 함께 천하를 얻기 위해 싸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유비는 <삼국연의>에 쓴 것처럼 그렇게 온화하지 않았고, 그는 성깔이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삼국연의>를 보고나면, 모두 제갈량이 하산하여 한 첫번째 전투인 화소박망파(火燒博望坡)이다. 그런데 역사상 이 불은 제갈량이 놓은 것이 아니다. 화소박망파때, 제갈량은 아직 하산하지 않았다. 이 불은 유비가 놓은 것이다. 그리고 태운 것은 조조의 병사가 아니라, 자신의 병사였다. 유비는 당시 조조의 병사들이 와서 그곳에 군영을 차리기도 전에, 직접 업현에서 하후돈을 친다. 그때 조운은 이미 그를 따르고 있었다. 그는 조운에게 고의로 패전하게 시킨다. 조조의 병력은 유비가 쳐들어와서 건들이고, 다시 패해서 도망가자,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추격한다. 박망파라는 곳까지 추격해 간다. 유비는 불을 붙여 자신의 군영을 불태운다. 마치 갑옷과 투구를 모두 버리고 도망치는 것처럼. 이것은 조조의 병사들이 계속 추격하도록 만들기 위함이었다. 신야의 남쪽에 이르렀다. 이곳은 토지가 편평했지만 풀은 아주 깊었다. 조조의 병사들은 지형에 익숙치 않았고, 유비는 이때 다시 불을 지른다. 그 결과 전승을 거두게 된다.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유비가 충후, 착실하고 친구에게 잘 대해준다고 여긴다. 기실 그의 몸에는 허위적인 점이 있었다. 아주 악독한 일면도 있었다. 그와 여포의 관계에 대하여 말하자면, 여포는 반복무상의 소인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유비가 여러번 위험할 때, 여포가 그를 도와주었다. 유비는 결국 여포에게 빚이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원술이 대장 기령(紀靈)에게 십만대군을 이끌고 유비를 치도록 보냈다. 유비는 병력으로 원술에 훨씬 못비쳤다. 이때 여포가 나서서 도와준다. 그는 한 손으로 유비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기령을 잡아서 두 사람이 싸우지 않도록 해준다. 내가 나의 방천화극을 원문 밖에 세워두고 내가 150보를 물러서서 활을 쏘겠다. 만일 방천화극의 끝부분을 맞추면 너희 둘은 무기를 내려놓고 싸우지 말라; 내가 만일 맞추지 못하면, 너희가 박터지게 싸우더라도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그날 아주 큰 바람이 불었다고 한다. 날씨도 아주 좋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포의 화살은 바로 150보 바깥에 있는 방천화극의 끝에 명중한다. 기령은 여포의 궁술이 그렇게 뛰어난 줄 몰랐다. 할 수 없이 병력을 퇴각시킨다. 이것은 여포가 유비의 목숨을 한번 구해준 셈이다. 즉, 그들 둘의 교분역사를 보면, 여포는 비록 덕행은 별로였지만, 여포가 유비에게 빚지지는 않았고, 오히려 유비가 여포에게 빚졌다. 여포는 자신의 수하들을 학대하여 대장 송헌, 위속이 여포의 방천화극을 훔쳐내고, 여포가 잠을 자는 틈을 타서, 그를 붙잡아 조조에게 넘긴다. 이때 여포는 살려달라고 애걸한다. 공께서 나를 살려주시면 나는 공을 위해서 견마지로를 다하겠다고 말한다. 조조는 망설인다. 왜냐하면 이런 맹장은 어느 주군이든 모두 좋아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조는 망설이다가 잠시 화장살을 간다. 조조가 나간 틈을 타서 여포가 사방을 둘러보니 방안에는 그와 유비 뿐이었다. 여포는 방안에 다른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는 유비에게 말한다: 현덕, 나를 한번 살려주시오. 한 마디 거들어 주시오. 유비는 그 말을 듣고는 '알겠다'고 말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여포는 마음 속으로 자신이 있었다: 너는 나에게 빛진 것이 있으니 분명 나를 거들어서 말해줄 것이다. 얼마후 조조가 돌아와서 앉자, 여포가 다시 애걸한다: 살려주시오, 살려주면 당신을 위해서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이때 조조는 몸을 돌려 유비를 본다. "현덕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것은 부담을 유비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그런데, 유비는 좋은 말을 해주지 않을 뿐아니라, 오히려 이렇게 한 마디 한다: "공은 정원(丁原), 동탁의 일을 보지 못했습니까." 무슨 뜻인가? 조조는 원래 망설이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는 결심을 굳히고, '끌어내서 목을 베라"고 명령하게 담든다. 여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유비를 가리키며 욕을 해댄다: "대이적(大耳賊)!, 대이적, 옛날의 원문극사(轅門戟射)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던가?" 이렇게 유비는 충후하지 않았다. 그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여 그를 사지로 몰아넣는다. 그는 왜 이렇게 했던가? 하나의 원인은 그의 마음 속에 여포는 옛날에 그의 서주를 빼앗아갔는데, 그 일에 원한을 깊이 품고 있었고, 또 하나의 원인은 만일 여포를 평정하면 유비가 다시 서주목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비는 충후하지 않을 뿐아니라, 악독하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익에 관련될 때는 사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비라는 사람은 충성스러운 사람이 아니고, 주군을 자주 바꾸었다. 십팔로제후가 동탁을 처음 토벌할 때 유비는 참가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원소는 아예 그를 데리고 가주지 않았다. 조조가 말한다: "내가 보기에 이 형제 3인은 용호지상으로 아주 위무하니,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조조는 유비에게는 지우지은(知遇之恩)이 있다. 그러나, 십팔로제후가 동탁을 토벌한 후, 유비는 신속히 조조를 배반하고 다른 사람과 손을 잡는다. 그리고 직접 조조와 여러번 충돌한다. 나중에 조조는 옛날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 다시 유비를 받아들인다. 청매자주논영웅(靑梅煮酒論英雄)때, 조조는 처음에 유비를 경계한다. 그러나 경계는 경계이고, 대우는 아주 잘해 주었다. 이때 조조는 '천하의 영웅은 오직 두 명인데 그대와 나 조조이다.'라고 말한다. 보라. 그는 유비에게 얼마나 높은 평가를 해주었는가? 조조의 말은 나는 너를 중용하지 않겠고, 너를 경계하겠다. 그러나 나는 너를 인재로 보고 있다는 말이다. 다만 유비는 야심이 이었고, 그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온갖 방법을 써서 조조의 속박을 벗어난다. 그가 도망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서주자사 차주(車胄)를 죽여버린다. 이렇게 조조의 대장 한 명을 없앴다. 유비가 이렇게 두번이나 주군을 바꾼 것과 나중에 원소에게서 떠난 것을 보면 그는 아예 충성을 모르는 사람이다.

 

다시 한 가지, 그는 심성이 악독하고 수단이 독랄했다. 그의 친척동생인 익주의 유장을 죽인다. 유장은 황친이다. 따지자면 유비의 동생뻘이 된다. 유장의 모사인 장송은 이렇게 말한다: 장로는 북쪽에서 당신을 노리고 있고, 조조도 시시때때로 쳐들어올 수 있다. 우리 자신의 병력으로는 안된다. 듣기로 당신의 친척 형님뻘인 유현덕은 인의로운 사람이라고 하니 그를 모셔오자." 유비는 사천중부에 일정한 우세를 점하게 되고, 민심을 얻게 되자, 핑계를 대어 유장에게 병력을 빌려달라고 한다. 그는 남의 지방에 가서 자신의 병력도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병력까지 빌린다. 유장은 그에게 잘못보이면 곤란하기 때문에 4천의 노약자들로 이루어진 병력을 그에게 보낸다. 유비는 이것을 핑계로 삼아, 유장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때, 유방은 유비를 막고 싶어도 막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관문이나 장애물을 유비가 모두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장에게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인장을 꺼내어 유비에게 바칠 수밖에는.

 

나관중은 "한을 정통으로 한다"는 원칙을 따랐다. 그래서 그는 유비를 칭송했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의 원모습을 복원하다보면 발견하게 된다. 천하를 얻으려는 사람들의 전술은 모두 다르다. 다만 전략은 모두 비슷하다. 만일 얼굴이 두껍지 않고, 마음이 시커멓지 않으면, 군벌쟁탈전에서 승기를 잡을 수 없다. 그래서 만일 유비가 정말 충후하고 착실하고 인덕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군랑사기(群狼四起)의 상황하에서 삼분천하를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