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섭지추
유비는 자주 황친이라는 것을 내세웠다. 거의 사람을 만날 때마다 자신은 중산정왕 유승의 후손이고, 효경제의 현손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것은 유비가 가장 자랑하는 정치적 자본이고, 통행증이며, 자주 가슴앞에 내걸고 다녔다. 많은 사람들은 이 황친이라는 말에 돌연 숙연해지고 공경한다. 관우, 장비는 그의 부하가 기꺼이 된다. 장세평, 소쌍은 돈을 내놓기도 한다. 유언은 음험하였지만, 최소한 유비를 조카로 인정한다. 주준의 문하에 투신하였을 때 주준도 그를 후하게 대하였다. 안희현에서 도망간 후 대주 유회에게 투신했을 때 그는 한나라종실이라는 말을 듣자 그를 자주 집안으로 불렀다. 나중에 유회는 유비를 유주목 유우에게 천거한다. 유우는 유비의 신분을 알고는 기뻐하며 즉시 유비를 도위에 임명한다. 그러나 모든 일에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똑같이 황친이라는 것을 내세워도 무시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유명한 정주 중산부의 독우대인이다.
독우는 관직이다. 서한 중기에 설립되었고, 태수의 아래에 있는 관직이다. 관직은 높지 않지만 권력은 컸다. 상급의 명령을 전달하고, 아래 관리를 감찰하며, 형옥소송을 심사한다. 경찰,검찰,법원의 권한이 그의 한 몸에 집중되어 있는 셈이다. 삼국역사상 가장 유명한 독우는 바로 안희현의 그 사람이다. 그는 장비에게 채찍으로 심하게 맞는다. 이 장면이 나올 때면 독자들은 속이 시원하다고 생각한다. 나쁜 놈은 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 독우는 왜 맞았는가? 일반적으로 우리는 독우가 유비에게 뇌물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자세히 살펴보면 사실 숨은 내용이 있다.
독우가 안희현에 왔을 때, 유비가 나가서 맞이한다. 유비는 관료사회의 예절을 잘 아는 인물이다. 독우대인은 폼을 잡는 것을 좋아했고, 유비가 말에서 내리지 않고 예를 표하지 않자, 말 위에서 채찍으로 유비를 가리킨다. 관우, 장비는 당연히 대노하고, 이런 모습을 독우는 당연히 보았다. 유비도 이때 화는 났지만, 자신에게는 카드가 남아있으므로 얼굴에는 아무런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관역에 도착하자, 독우는 남쪽을 향하여 높은 곳에 앉는다. 유비는 계단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오래 흘렀지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마도 독우는 유비가 예를 표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모순은 침묵중에 드러난다. 독우는 목을 가다듬고는 말한다: "유현위는 어디 출신인가?" 우리는 현재 이력서에 출신이라는 말을 자주 본다. 우리같은 평범한 백성이면 일반적으로 '청백'이라고 써서 채운다. 이 단여는 시대적인 색채가 분명하다. 만일 지주, 부자, 반동파, 우파라면 '청백'이 아니다. 독우는 안희현을 관찰하러 왔고, 당연히 유비의 이력을 잘 알았을 것이다. 이렇게 묻는 것은 근본 목적이 유비를 억누르려는데 있다. 유비로 하여금 자신은 돗자리를 짜고 짚신을 짜던 출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유비는 가슴을 쭉 펴고, "나는 중산정왕의 후예이고 탁군에서 현재짜기 황건적을 소탕하기 위하여 크고 작은 서른여번의 전투를 치러 약간의 공이 있다. 그래서 이 직위에 오른 것이다."라고 말한다. 유비의 대답은 자신감과 자부심이 넘친다. 그러나 독우가 듣기에, 이는 자신의 고귀한 출신, 자신의 뛰어난 전적을 자랑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분명하게 자신의 관직은 전공을 통하여 얻은 것이라고 말한다. 꽌시를 동원하거나 집안배경을 통하여 얻은 것이 아니라.
독우는 그 말을 듣고 벌컥 화를 낸다: "너는 황친을 사칭하고 공적을 허위로 보고하였다. 현재 조정은 조서를 내려, 너와 같이 아무렇게나 관직을 얻은 자들을 정리하고 있다."
자세히 독우의 말을 음미해보면, 독우는 유비가 황친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황친사칭. 유비는 스스로 한황실의 종실이라고 말한다. 이게 증거가 있는가? 혹은 유비가 탁군의 잡안에 가보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안희현에서 내보일 수 있는가? 확실히 내보일 수 없다. 유비가 독우에게 대답한 말은 자부심을 담고 있고 독우를 무시하는 것이다. 독우는 여기에 불만이 컸다. 그러나 유비를 처벌하려면 먼저 유비의 황친신분을 부인해야 했다. 안그러면 상관에게 보내어 처리해야 하고, 재삼 고려하게 되면 유비에게 유리해질 수 있다.
둘째, 공적허위보고. 역대왕조에서 관리승진의 주요한 기준은 공적이다. 한나라말기에 황건적을 소탕하는 것은 자주 있었다. 이것을 가지고 유비를 처벌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은 모두 공적을 허위과장으로 보고했기 때문이다. 유비도 예외는 아니다. 탐관오리들은 모두 자신이 문제를 생각하는 기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평가한다. 그리고 유비의 공적을 부인한다는 것은 유비를 삭탈관직하고 조사하는 것이 당연하다.
셋째, 조정의 조서. 즉, 독우가 이번에 온 것은 조정을 대표하여 각지방 관리를 감찰하기 위한 것이다. 관리들을 승진,퇴출시키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낭중 장균의 건의로 십상시는 공로가 있으나 뇌물을 주지 않은 공신들에게 관작과 상을 내리게 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후에 핑계를 잡아서 다시 박탈하고자 생각했다. 당연히 누구를 낙마시킬 것인가는 그의 태도에 달려있는 것이다.
즉, 독우가 이번에 온 것은 아마도 고위층의 지시를 받아서 뇌물을 받는 임무를 수행하러 온 것일 것이다. 독우는 아주 고명했다. 자신의 목적을 바로 얘기하지는 않았다. 그저 유비를 심하게 혼내기만 했고, 유비가 눈치를 차리고 돈을 바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독우는 스스로를 아주 높게 보고 성격은 불같은 장비를 만났다. 돈 한푼도 받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채찍에 맞고만 것이다.
이번의 만남에서 유비는 황친을 내세웠지만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한나라 종실의 신분은 정치적 영예이다. 개국공신의 후손이라든지, 열사의 가족이라든지 그런 것과 비슷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 정치적 영예도 금전에 대하여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독우가 보기에, 돈이 가장 실질적인 것이다. 장양등 십상시가 보기에 한나라종실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천하에 한나라종실이 한두명이겠는가?
황신의 신분도 금전앞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 이것은 고금에 걸쳐 자주 볼 수 있는 일이다. 수호전에서, 소선풍 시진이 자주 자신은 대주의 적계자손이라고 자랑했다. 집안에 단서철권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은천석, 고렴은 이를 눈에 두지 않는다.
유비에게 예의로 대했던 사람은 정말 한나라 종친의 신분을 중요하게 본 것일까? 우리는 그들을 둘로 나눠볼 수 있다. 한가지 유형은 신분이 유비와 비슷하거나 유비보다 못한 사람이다. 예를 들어, 관우, 장비, 장세평, 소쌍이다. 그들은 마음 속에서 이 황친이라는신분을 보았다. 그러나, 유언도 좋고, 주준도 좋고, 유회도 좋고, 유우도 좋고, 신분이 고귀한 이들은 정말로 유비를 중시하거나 유비의 신분을 중시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유비를 이용해서 사람을 죽이게 하려는 것뿐이다. 유비를 회유하고, 유비를 칭찬하려면 유비에게 뭔가 드러낼 점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한나라종실이라는 말을 항상 입에 달고 다녔던 것이다. 그러나 이용이 끝나면 그만이다. 예를 들면 유언의 경우와 같이.
이 독우는 역사상 진짜 존재했다. 독우는 확실히 얻어맞았다. 그러나 원인은 뇌물을 요구해서가 아니다. 때린 사람도 장비가 아니다.
<삼국지>의 기록에 따르면, 유비가 안희현위로 있을 때, 독우가 공무로 현에 온다. 유비는 일찌감치 조정에서 조서를 낼, 일부 전공을 세워 관직을 담당하고 있던 사람을 내보내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유비는 자신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불만이 컸다. 독우가 현에 왔을 때, 유비는 만나기를 청한다. 그러나, 독우는 병을 핑계로 유비와 접견하기를 거절한다. 유비는 마음 속으로 독우를 미워했다. 그래서 현위로 돌아와서, 자신의 심복을 이끌고 독우가 거처하는 곳으로 쳐들어간다. 자신이 태수대인의 명령을 받았다고 허위로 고하면서, 독우를 체포한다. 침상에 누워있던 독우를 붙잡는다. 유비는 독우를 묶은 다음 자신의 심복들을 데리고 현아를 떠난다. 현의 경계지점에 도착했을 때, 자신의 관인을 풀어, 독우의 목에 걸어준다. 그리고 독우를 나무에 묶고는 채찍으로 수백대 때린다. 독우는 애걸복걸하며 목숨을 구걸하고, 결국 그를 풀어준다.
이러한 기재내용을 보면, 독우가 와서 뇌물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유비가 일찌가치 자신의 파면을 예견했다. 그래서 고의로 핑계거리를 잡은 것이다. 독우는 상부의 명령을 받들어 유비의 관직을 박탈하러 왔다. 어찌 파면할 관원과 자리를 함께 하겠는가? 그래서 병이 들었다고 핑계를 댄 것도, 이미 유비의 체면을 봐준 것이다. 그런에 유비는 마음이 악독해서 독우가 유비의 잘못을 잡기도 전에 유비는 그를 묶어놓고 채찍 수백대(진수는 이백대로 명화히 적었다) 때리다. 그리고 장비는 버드나무가지로 독우의 다리를 때린다. 가지 수십개가 부러졌다. 유비는 "장"을 들고 때렸다. 장비보다도 악독했다.
이 독우대인은 다행이 목숨을 건진 후, 군으로 돌아가서, 있는 일 없는 일 합쳐서 유비를 욕했고, 유비는 이로 인하여 관청의 수배범이 된다. 한나라황실종친에서 도망범으로 전락한 것이다. 정주태수의 마음 속에 이 한나라종실이라는 신분은 아무런 무게도 없고, 의미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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