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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유비)

주인을 10번이나 바꾼 유비를 왜 대영웅이라 불리는가?

by 중은우시 2013. 5. 18.

글: 유계흥(劉繼興), 유병광(劉秉光) 

 

영웅은 출신은 묻지 않는 법이다. 역사상 많은 영웅호걸은 처음 시작할 때는 왕왕 모 군사집단 혹은 정치세력에 붙어있고, 대다수의 영웅들은 모두 주인을 바꾼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대영웅 중에서 주인을 가장 많이 바꾼 사람은 누구일까?

 

챔피언은 당연히 삼국시기에 10번이나 주인을 바꾼 유비이다. 그는 날개를 달지 못했을 대 도광양회하고, 일단 시기가 성숙하자 일비충천(一飛沖天)의 절세고수가 된다. 현재 상계에 성행하는 무든 "차계생단(借鷄生蛋)", "차선출해(借船出海)"등 방식은 모두 유비가 남긴 것이다.

 

이중텐(易中天)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유비가 "다섯번이나 주인을 바꾸었다"고 기실 이는 기인리하(寄人離下)를 잘하며 자신을 천하영웅으로 발전시킨 그를 너무 약하게 본 것이다. 이중텐은 그가 주인을 바꾼 기록을 절반으로 줄였다. 아마도 이중텐이 사서를 정독하지 않아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삼국지>에서 유비가 적벽지전 이전에 10번이나 주인을 바꾼 구체적일 기록을 보자:

 

1. 최초에 교위 추정(鄒靖)을 따라 황건적을 토벌한다(<삼국지.선주전>)

 

2. 평원사람 유자평(劉子平)의 추천으로, 역사에 이름이 남아있지 않은 사람을 따라 청주(靑州)에서 일했다. (<삼국지.선주전>의 배주(裴注)에서 인용한 <전략(典略)>)

 

3. 대장군 하진(何進)의 도위 관구의(毌丘毅)에게 의탁하다. (<삼국지.선주전>)

 

4. 유주의 공손찬(公孫贊)에게 의탁하다. (<삼국지.선주전>)

 

5. 공손찬의 청주자사 전해(田楷)와 제나라(지금의 산동성 임치시)에 주둔하여, 전해의 지휘를 받다.(<삼국지.선주전>)

 

6. 제나라를 떠나 서주목 도겸(陶謙)에게 귀순하다. (삼국지.선주전>)

 

7. 도겸이 죽은 후 유비는 서주목이 되고, 이어 여포에게 패배하고, 여포에 투항하여, 소패(小沛)(지금의 강소성 패현 동쪽)에 주둔한다. (삼국지.선주전>)

 

8. 여포에 패배하고, 조조에 귀순한다. (<삼국지.선주전>)

 

9. 서주에서 조조에 패배하고, 원소에 귀순한다(<삼국지.선주전>)

 

10. 원소를 떠나 유포에 귀순한다.(<삼국지.선주전>)

 

"성두변환대왕기(城頭變幻大王旗)". 이처럼 빈번하게 주인을 바꾼 사람은 고금에 유래가 없을 정도이다. 거의 반복무상(反復無常)한 정도이다. 선량한 독서인들은 물을 것이다: 이같이 카멜레온같은 유비도 대영웅이라 할 수 있을까?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춘추무의전(春秋無義戰) 삼국무군자(三國無君子). 춘추시대에 의로운 전쟁은 없고, 삼국시대에 군자는 없다. 그 군웅축록의 군벌혼전시대에, 누가 이기고 누가 영웅인지. 그 수단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다. 광명정대한지 아니면 음험교활한지는 모두 천하를 쟁탈하겠다는 최종목표를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다.

 

유비는 영웅인가? 역사의 기록은 명확하고 긍정적으로 이 문제에 답한다.

 

유비(161-223), 자는 현덕(玄德), 즉 촉한 소열제이다. 삼국시대 촉한의 개국황제이다. 221-223년까지 재위했다. 삼국시대의 정치가이며 한족이고 탁군 탁현(지금의 하북성 탁주) 사람이다. 한나라 중산정왕 유승의 후손이고, 삼국시대 촉군의 군왕이다. 동한 영제말기, 관우, 장비와 함께 황건적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우고, 안희채 현위가 된다. 조조를 주살하려다 실패하여 도망친다. 삼고초려로 제갈량의 보좌를 얻는다. 나중에 손권을 도와 조조를 적벽에서 대승을 거두게 하고, 익주와 남중을 탈취하고 서촉군왕에 오른다. 221년, 성도에서 즉위하여 한황제라 칭한다. 연호는 장무(章武)이다. 동오를 정벌하려다 실패하여 손실이 심각했고, 백제성으로 돌아와 병으로 사망한다. 향년 63세이고, 시호는 소열제이며 역사상 유선주(劉先主)라 한다.

 

유비는 어려서부터 황제꿈을 꾼다. 그의 집의 동남쪽에는 큰 뽕나무가 있었는데 ,높이가 오장여이고, 멀리서 보면 나무가 작은 수레덮개같이 보였다. 유비가 어려서 같은 마을의 아이들과 나무 아래서 놀 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반드시 이런 우보개거에 앉을 것이다.(수레덮개를 새깃털로 만든 수레. 이런 수레는 황제만이 앉을 수 있다). 그의 숙부는 급히 제지하며 말한다. "헛소리 하지 말라. 이것은 멸문지화를 당할 일이다." (<삼국지.선주전>)

 

조조의 모사 동소(董昭)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유비는 용이지대(勇而志大, 용기있고 뜻이 크다)"

 

유비가 형주에 있을 때, 유표의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간다. 돌아올 때 눈물을 흘린다. 유표는 괴이하게 생각하여 묻자, 그는 대답한다: "과거에는 항상 몸이 말안장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종아리 안쪽의 살이 말랐었는데, 세월은 달리는 말과 같이 빨라서,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늙어버렸고, 이루어놓은 것은 없다. 그래서 슬프다." (<삼국지.선주전> 배주에서 인용한 <구주춘추>)

 

삼고초려때, 유비는 제갈량에게 말한다. "한나라왕실이 무너지려 하고, 간신이 황권을 절취했다. 주상은 눈이 가려져 있다. 고는 덕망과 힘을 헤아리지 않고, 대의를 천하에 펼치려고 했다. 그러나 지혜와 기술이 짧고 얕아서, 나는 좌절을 맛보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러나 뜻은 아직 이루지 못했다..."(<삼국지.제갈량전>). '대의를 천하에 펼치고 싶었다'와 '뜻을 아직 이루지 못했다'는 말은 힘이 있다. 충분히 유비의 '비지중물(非池中物)"의 능운장지를 보여준다.

 

<삼국지>에서는 이렇게 유비를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선주의 홍의관후, 지인대사는 모두 한고조(유방)의 풍모가 있고, 영웅의 그릇이다. 그는 온 나라와 자식을 제갈량에게 맡겼고, 심신(心神) 다르지 않았으니, 군신간에 지공(至公)을 다하여, 고금의 성궤(盛軌)이다. 기권간략은 위무(조조)에 못지않다."

 

조조는 말했다: "오늘날 천하의 영웅은 그대와 나 조조뿐이다.")(삼국지.선주전>). 불가일세의 조조의 눈에 자신을 제외하고, 단지 유비만이 영웅이라 칭할만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유비는 나와 같은 유형이다.(吾儔也)"(<삼국지.무제기> 배주가 인용한 <산양공재기>) '주'는 같은 류, 혹은 고하를 가리기 힘들다는 의미이다.

 

정욱(程昱)은 이렇게 말했다: "유비는 웅재를 지니고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의 아래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삼국지.무제기>)

 

정욱은 또한 이렇게 말했다: "유비는 영명이 있다"(<삼국지.정욱전>)

 

유엽(劉曄)은 이렇게 말했다: "유비는 인걸이다."(<삼국지.유엽전>)

 

노숙은 이렇게 말한다: "유비는 천하효웅이다." (<삼국지.노숙전>)

 

주유는 이렇게 말했다: "유비는 효웅의 모습으로..."(<삼국지.주유전>)

 

유비는 다른 사람에게 잘 대해주었고, 자객마저도 차마 그에게 손을 쓰지 못했다. <삼국지>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군민 유평은 평소에 선주를 가볍게 여겼고, 그의 아래에 있는 것을 부끄러워 했다. 자객을 시켜 그를 찌르게 하였다. 자객이 차마 찌르지 못하고 말을 하고 가버렸다. 이를 보면 유비가 인심을 얼마나 얻었는지 알 수 있다.

 

<위서>에도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유평은 자객과 결탁하여 유비를 찌르려 하였다. 유비는 알지 못하고 그 자객을 잘 대해주었다. 자객은 그 이야기를 해주고 떠난다.

 

이것은 단지 유비가 아랫사람을 예의로 잘 대해주었다는 것만이 아니라, 유비의 인간적인 수양과 뛰어난 인격적 매력을 지녔다는 점을 보여준다.

 

<삼국지>에는 유비의 영웅적인 뜻을 당시 사람들이 고도로 평가한 외에 당시의 사람들이 행동으로 유비를 따랐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중산의 대상인 장세평과 소쌍은 금전으로 유비를 도와준다 그리하여 그는 무리를 모아서 무장할 수 있는 밑천을 대어준다. 유비, 장비, 관우의 세 사람이 결의한 후, 군수물자를 수습하고자 하나 탈 말이 없었다. 고민하고 있는 동안이 사람들은 두 손님이 왔다고 전한다. 바로 장세평과 소쌍이다 그들은 매년 북으로 가서 말을 파는데 당시 도적이 일어나 돌아왔다. 유비는 두 사람을 집으로 모시고 술을 꺼내서 접대한다. 그리고 도적을 토벌하고 백성을 안정시킬 뜻을 이야기한다. 두 사람은 아주 기뻐하며 좋은 말 오십필을 보내준다. 그리고 금은 오백냥, 빈철 일천근도 주어 무기를 만들게 한다. 조조가 서주를 도륙할 때, 서주의 관리 미축등은 도겸이 죽을 때의 유언에 따라, 서주를 유비에게 넘긴다. <삼국지.선주전>의 고릭에 따르면, "도겸의 병이 위독해졌을 때 별가 미축을 불러 말하기를 '유비가 아니면 이 땅을 안정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 도겸이 죽자 미축은 사람을 이끌고 선주를 맞이한다. 유비가 여포에게 격패당한 위기의 순간에, 서주의 부상 미축(선조는 대대로 토지를 개간하고 동복을 키워 식객이 근 만명에 이르렀고, 자산이 아주 많았다)은 집안재산을 내놓고, 이천명의 하인과 대량의 금은화폐를 내놓는다. 그리고 동생(나중의 미부인)을 유비에 시집보낸다. 유비의 힘은 이로써 아주 커진다. 나중에 조조는 미축을 영군태수로 봉하려 하였다. 그러나 미축과 동생 미방은 모두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유비를 따르겠다고 결심한다. 익주를 평정한 후, 미축은 안동장군이 되어, 지위가 제갈량보다 높았다. 이 모든 것은 유비가 선후로 10번이나 주인을 바꾸었지만, 역사가 긍정한 대영웅이라는 것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