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우운국(虞雲國)
중국후궁역사는 중국궁정사, 중국부녀생활사, 내지 전체 중국사회생활사의 불가결한 구성내용이다. 그러나, 연구가 부족하고,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일반 민중에 아는 것은 한계가 있고 오해는 더더욱 많다. 다만 후궁의 생애, 궁중비사는 역대이래로 사람들을 자극시켰고, 사람들이 신비스럽게 여겼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내막을 알고 싶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각종 제동야어(齊東野語)식의 필기, 소설, 희극, 영화드라마가 계속 나타난 것이다. 이들 작품이 묘사는 왕왕 과장되고 사실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많은 정도로 사람들의 수기엽염(搜奇獵艶)의 엿보기심리에는 영합했다.
후궁역사에 대한 이런 오해는 주로 두 가지 방면으로 나타난다. 첫째, 후궁생활에 대하여 비판없이 원칙없이 미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대거 금의옥식과 주광보기의 궁중생활을 미화하여 부귀영화를 선망하는 저속한 심리를 만족시켰다. 겉으로 보기에는 장엄하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꽃과 비단으로 둘러싸인 배후에, 얼마나 많은 홍안여자들이 후궁제도의 순장품이 되었는지는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하여 후궁역사상 계속하여 일어났던 처량하고 참혹하고 피눈물이 흐르는 비극을 모조리 황제와 후궁의 애정을 구가하는 드라마나 궁정의 호사스러움을 드러내는 코미디로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둘째, 후궁의 권력투쟁에 대하여 책망도 없이 시비를 가리지 않고 보여주는 것이다. 심지어 이악제악(以惡制惡), 이흑투흑(以黑鬪黑)에 대하여도 합리적으로 변호한다. 후궁제도가 군주독재의 모체에 기생하는 괴물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후궁간에 황금빛이 찬란한 봉관(鳳冠)을 둘러싼 생사의 권력투쟁을 모조리 이해하고 동정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바로 무형중에 많은 시청자를 오도하고, 문예작품중 궁중투쟁과 권력투쟁을 성공의 비결로 여긴다. 화이트칼라들은 이를 직장에서 써먹고, 관리들은 이를 관료사회에서 써먹는다. 모조리 한 무리의 오골계들처럼 내가 너를 잡아먹지 않으면 네가 나를 잡아먹을 것이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본서의 저자는 궁중드라마붐을 따르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이런 오해와 오도가 만연하고 시류를 이루는 것을 보고, 사학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후궁을 주체로 하고,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가지고, 역사적 진실에 근거하여, 고대 후궁의 장막을 거두었으며, 궁중생활의 실제모습을 그렸다. 그렇게 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중국후궁사의 두가지 기본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하려 했다.
첫째, 어느 시대의 후궁제도이건, 하나같이 군주독재의 모체에 기행사는 기형적인 괴물이다. 모두 후궁이라는 특수한 부녀집단에 끝없는 물행과 침중한 재난을 가져다 주었다. 후궁생활에서, 사랑이건 원망이건, 영혼이건 육체이건, 삶이건 죽음이건, 눈물이건 피이건, 그녀들의 인생은 거의 모두 고통의 봄부림과 무력한 부침 속에서 살아갔다.
둘째, 군주독재하에, 하나의 특수한 여성집단으로서, 후궁들은 생활과 운명에 직면하여 어떻게 어렵게 인간성의 진선미를 보존으며, 독재군주체제는 또한 어떻게 그녀들의 인간성이 악한 방향으로 향하도록 만들었는가. 인간성의 진실과 허위, 미와 추, 선과 악, 혹은 경위분명(涇渭分明)하고 혹은 니사구하(泥沙俱下)한다. 혹은 단지 침사범기(沉渣泛起)한다. 이렇게 하여 한 곡의 후궁인생의 변주곡이 완성된다.
당연히, 이 책은 완전하고 엄격한 중국후궁사는 아니다. 이 방면에 흥미가 있는 독자라면, 학계에 이미 나와 있는 전문서적을 보도록 권한다. 이 책이 스스로 획정한 시야는 후궁의 인강성과 군주독재간의 여러가지 끊어질 수 없고, 정리되기 어려운 관계이다. 이러한 여러가지 내용은 모두 궁중생활장면을 통하여 전개된다. 글은 비록 후궁생활을 서사대상으로 하지만, 주로 인간성과 관련있는 내용을 모았다. 주제와 관계가 크게 없는 내용은 배제했다.
이전의 궁정사에 관한 읽을 거리는 대부분 왕조순서에 따라 전기의 형식으로 차례차례 써내려갔다. 사람들에게 금전출납부를 보는 것처럼 비슷하다는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이 수필이 집중하고 있는 몇 가지 주제는 몇 개의 편으로 나누어, 각 편들 간에는 내재적인 연계가 있지만, 장절체의 학술서적과는 다르다. 저자는 궁중생활의 각종 횡단면을 그렸다. 그리고 점과 면을 결합시켜, 각종 에피소드와 이야기를 엮어서 커버리지가 넓어지게 하였고, 읽는데 재미를 느끼게 했다.
역사이므로 대중을 대상으로 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붓을 마음대로 돌려서 상상력을 발휘해서는 안된다. 이 책은 연극 소설같은 스타일을 거절하고, 글이나 주장에는 반드시 증거가 있어야 했다. 다만 역수필도 학술의 얼굴로 나타날 수는 없다. 그리하여 후궁사에 관심을 가진 많은 독자들을 몰아낼 필요는 없다. 그래서 이야기를 해나가면서 가급적 생동감있게 쓰고, 옛 사료의 원문을 가급적 적게 사용했다. 반드시 인용해야 할 때는 일반적으로 인용출처를 언급하지 않아, 그저 아속공상(雅俗共賞)할 수 있으면 되고 독자들이 책을 집어들고 재미있게 읽으면 된다.
어릴 때 읽은 <당시삼백수>에 원진(元稹)의 <행궁(行宮)>은 인상이 깊다. 그 시는 이렇다:
요락고행궁(寥落古行宮)
궁화적막홍(宮花寂莫紅)
백두궁녀재(白頭宮女在)
한좌설현종(閑坐說玄宗)
그 뜻을 당시에는 잘 몰랐다. 다만 처량하고 아름다운 싯구만이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어 잊히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 <당송시거요>를 읽었는데, 고보영(高步瀛)이 이렇게 말했다: "백락천의 <신악부>에 <상양백발인>이 있다. 이 시의 흰머리의 궁녀가 바로 상양궁녀이다. 상양궁은 낙양의 이궁이어서 행궁이라고 불렀다." 다시 백거이의 <상양백발인>을 찾아보니, 주제는 '민원광야(愍怨曠也)'이다. 이들 궁녀들은 "현종말기에 입궁하여 입궁할 때 16살이었는데, 지금 60살이 되었다". 그녀들은 "군왕의 얼굴을 한번도 본 적도 없다." "일생동안 빈 방에서 지냈다." 그렇다면 이들 백발의 궁녀들은 황제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행궁으로 보내어져서, 거기서 늙어 죽은 것이다. 그저 옛날 이야기나 하면서 늙어가는 것이다. 입궁할 당시를 생각하면 그녀들은 모두 꽃처럼 예뻤다. 지금은 이미 늙은이가 되어 버렸다. 그제서야 확실히 알았다. 이 짧은 스무글자의 시가 후궁여성의 얼마나 많은 갈망과 비애를 그리고 있는지. 후궁제도를 비판하는 천고의 절창이라 아니할 수 없다. 후인들이 후궁사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점을 시정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본서는 이 시의 한 구절을 따서 제목으로 삼았다. 그것도 사람들에게 깊이 생각할만한 거리를 줄 것이다.
(본문은 <궁화적막홍>의 서문으로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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