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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공통)

황제의 옥새(玉璽)

by 중은우시 2014. 2. 4.

글: 문재봉(文裁縫)

 

 

 

옥새는 바로 황제 전용의 인장이다. 인장은 주(周)나라때부터 나타난다. 신용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진(秦)나라에 들어서서는 제왕과 신민(臣民)을 구분하기 위하여 황제의 인장을 '옥새'라고 부른 것이다. 그 이유는 황제의 인장은 옥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보통관리들이 쓰는 인장은 그저 인(印)이라고 부를 뿐이다. 그렇다면 황제는 모두 몇 개의 인장을 가지고 있었을까? 단지 1개를 가졌을까? 그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황제는 모두 7개의 옥새를 가진다. 이것은 한(漢)나라때의 사서에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 그중의 6개의 옥새는 각각 황제행새(皇帝行璽), 황제지새(皇帝之璽), 황제신새(皇帝信璽), 천자행새(天子行璽),천자지새(天子之璽)와 천자신새(天子信璽)이다. 이것은 모두 부절영승(符節令丞)이 관장한다. 용도에서, 이 6개의 옥새는 각각 달리 쓰인다.

 

우리는 금방 말했다. 황제는 모두 7개의 옥새를 가지고 있다고. 그렇다면 위의 6개 옥새 이외에 또 하나의 옥새는 무슨 용도일까? 이 옥새는 정말 보통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에는 아주 엄청난 이름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즉 "전국옥새(傳國玉璽)"이다. 전국옥새는 전국새(傳國璽)라고도 불리며, 진시황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진시황이후, 역대군왕에게 손에서 손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옥새는 일반적으로 옥으로 만든다. 전국옥새의 제작재료는 더욱 진귀할까? 당연하다. 전국옥새는 가치연성(價値連城)의 보물 '화씨벽(和氏璧)'으로 만든 것이다. 전해지는 바로는 화씨벽이 전해지고 전해져서 진시황의 손에 들어가고, 진시황은 이 벽을 가지고 전국옥새를 만든다. 전국옥새는 방원4촌이고, 손잡이(上紐)에는 5룡이 교차하고, 정면에는 "수명어천(受命於天), 기수영창(旣壽永昌)"의 여덟 글자가 전자(篆字)로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이 8글자는 이사(李斯)가 쓴 것이다. 이 전국옥새를 지니면, 바로 '황권신수, 정통합법'을 싱장히는 신물을 가진 것이 된다. 진시황의 사후, 역대제왕은 모두 전국옥새를 국가의 중기(重器)로 보았고 그것을 기진(奇珍)으로 받들었다.

 

전국옥새가 가진 중대한 의미에 비추어보면, 나중에 역대왕조의 황제가 등극할 때 모두 전국옥새를 얻는 것이 중화정통을 얻은 것으로 여겼다. 그것은 '수명어천'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잃는 것은 "기수이진(氣數已盡, 운수가 다했다)"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았다.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이 옥새를 가지지 못하면, 그는 '진명천자(眞命天子)'가 아닌 것으로 여겨졌다.

 

황위를 노리는 자는 반드시 전국옥새를 얻어야 자신의 야심을 실현할 수 있다. 이런 연유로, 전국옥새는 서로 빼앗으로 혔고, 그리하여 이 보물은 주인이 여러번 바뀐다. 송나라때가 되어 전국옥새는 이미 행방이 묘연해진다. 오늘날까지도 어디에 있는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전국옥새가 실종된 후, 황제는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시켜 전국옥새를 보망하여 모방품을 만든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왕조교체때, 신임 황제는 모두 전대의 옥새를 찾았다. 그것은 전왕조의 '기수이진'을 의미하고, 신왕조가 흥기하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