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송)

완안량(完顔亮): 남의 여인

by 중은우시 2014. 1. 14.

글: 우좌(于左) 

 

완안량에게는 하나의 병적인 기호가 있었다. 그것은 남의 여인을 차지하는 것이다.

 

완안량의 황음과 잔혹은 금수와 같았다. 야율찰팔(耶律察八)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원래는 소당고대(蘇堂古帶)에게 시집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나중에 완안량이 차지해서, 소원(昭媛)에 봉한다. 찰팔은 소당고대를 잊지 못했고, 볓 벌의 연금암순대(軟金鵪鶉袋)를 만들어, 자신의 시녀 습념(習捻)을 시켜 소당고대에게 보낸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완안량이 이 일을 알게 된다. 그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소당고대를 찾아서 그런 일이 있는지 여부를 묻는다. 소당고대는 사실대로 대답한다. 완안량은 그를 괴롭히지는 않고 풀어준다. 궁으로 돌아온 후, 시랑(豺狼)의 본성을 지닌 완안량은 채팔을 본보기로 여러 비빈들에게 경고한다. 그는 사람들을 데리고 보창성(寶昌城)의 누각위에 오른다. 패도를 꺼내어, 사람들의 앞에서 한칼 한칼 채팔을 찌른다. 마지막에는 채팔을 높은 누각에서 던져버려, 처참하게 죽는다. 채팔의 시녀 습념도 피살당한다.

 

궁중의 많은 여인은 모두 자신의 남편이 있었다. 평소에 궁녀들은 궁밖의 자신의 집에서 거주하고 돌아가며 입궁했다. 완안량은 그들이 궁에 들어와서 자신과 즐기는 것에 편리하게 하기 위하여, 그녀들의 남자들을 모조리 경성으로 불러서 관직을 내린다. 완안량의 애인중 많은 경우는 자신의 당자매(堂姉妹)였다. 그중 가장 총애를 받은 여인으로는 습연(習撚), 사리고진(莎里古眞)이 있다. 두 사람의 남편은 모두 궁내의 직위를 받았다. 처는 황제의 총애를 믿고 집안에서 패도적이었다.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채찍을 가져오게 하여 남편을 때리곤 했다. 남편들은 전혀 성격을 부리지 못하고, 화가 나도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

 

완안량은 자신과 그녀들의 사통을 숨기지 않았다. 사리고진의 남편인 철속(撤速)에게는 이런 말도 했다: "너의 처는 젊다. 네가 집을 나와서 일을 할 때, 그녀 혼자 집에 두지 말라. 그녀도 궁으로 데려와라."

 

애인이 궁으로 올 때면, 완안량이 친히 궁밖으로 나가서 맞이한다. 어떤 때는 복도에 서서 한참을 기다리곤 했다. 서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완안량의 두 다리가 시큰거릴 정도가 되어도 전각으로 돌아가서 쉬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애인에게 태만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그녀들이 화내지 않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어떤 때는 너무나 오래 서 있어서 다리가 아플 정도가 되면 그는 고사고(高師古)에게 쪼그리고 앉으라고 한 다음,그녀의 무릎에 앉아서 쉬곤 했다. 고사고는 아래에서 묻는다: "여자 하나를 위하여 황상이 어찌 이렇게 고생을 하십니까?"

 

완안량은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보기에 황제의 자리는 얻기 쉽다. 미묘한 만남은 얻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그 기회를 아끼는 것이다."

 

듣기에는 절대로 정치(情痴)의 말투이다. 완안량은 여자를 만날 때 완전히 연애고수와 같았다. 항상 만날 때마다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만일 추운 계절이면, 그는 따스한 작은 전각에서 만나고, 주위에 금슬을 배치한다. 혹은 침궁의 바닥에 양탄자를 깔아놓는다. 완안량은 애인 혹은 비빈과 알몽이 되어 서로 쫓으며 놀았다.

 

완안량은 점유욕이 아주 강했다. 사리고진은 외부에 자신의 애인이 또 있었다. 완안량은 그 말을 들은 후 아주 화를 낸다. 사리고진을 찾아서, 면전에서 묻는다: "너는 왜 다른 사람을 찾느냐? 만일 네가 부귀를 탐한다면, 세상이 누가 나 황제보다 더 부귀한가? 만일 네가 상대방이 인재라서 탐한다면, 나는 문무를 겸비했다. 세상에 그 어느 사람이 나보다 나을 것인가? 만일 네가 취미향락을 추구한다면 세상에 나보다 더 잘 놀고, 재미있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완안량은 한꺼번에 이 말을 내뱉으면서 숨도 쉬지 않아서 숨이 막혀서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보기에 정말 사리고진에게 화가 났던 것같다. 그가 마침내 숨을 다 고르고 나자 태도도 완화되었다. 태도를 바꾸어 사리고진을 안심시킨다: "내가 너의 비밀을 알았다고 하여 너는 부끄러워 다른 사람을 보지도 못하거나 하지 말라. 연회때 너는 평소와 같이 자연스럽게 행동해라. 다른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추측하고 다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완안량의 누나인 적발(迪鉢)은 요국장공주(遼國長公主)에 봉해지고, 포찰아호질(蒲察阿虎迭)에게 시집간다. 딸을 하나 낳으니 이름을 차찰(叉察)이라 한다. 나중에 요국장공주는 젊은 나이로 죽는다. 포찰아호질은 예부, 공부상서가 되고, 무정군절도사가 되며, 갈왕(葛王)에 봉해진다. 그도 28살의 나이로 죽는다. 완안량은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차찰은 나이가 든 후에 병덕(秉德)의 동생 특리(特里)에게 시집간다. 병덕을 원래 승상을 지냈고, 완란향이 정변을 일으켜 금희종(金熙宗)을 죽일 때, 병덕은 주모자중 한 명이다. 완안량이 등극한 후, 그는 여전히 좌승상으로 있었고, 좌부원수를 겸하고, 관행대상서성사(管行臺尙書省事)로 있었다. 나중에 완안량은 병덕이 모방했다고 하면서 그를 처형한다.

 

법률에 따르면, 차찰은 연좌되어야 한다. 황태후는 외손녀를 위하여 부탁을 하고, 완안량은 이를 은준(恩準)한다. 그후에 후안무치하게도 황태후에게 차찰을 후궁에 들이겠다고 말한다. 황태후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아이는 막 태어났을 때 네 부친이 그녀를 안고 와서 길렀다. 너는 그의 외삼촌이지만, 기실 부친과 같다."

 

차찰은 그 후에 다시 한 황족자제에게 시집간다. 완안량은 그를 핍박하여 강제로 그녀와 이혼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녀를 궁으로 불러들인다.차찰은 원차지 않았고, 암중으로 애인 완안수성(完顔守誠)을 만난다. 완안량이 그 사실을 안 후에, 질투심이 일어나서, 완안수성을 죽여버린다. 황태후가 부탁해서, 차찰을 풀어준다. 차찰의 애인은 연이어 죽임을 당한다. 마음 속으로는 분명 금수만도 못한 완안량을 죽도록 미워했을 것이고, 뒤로는 욕을 했다. 누군가 이를 고발한다. 완안량도 이번에는 그녀를 용서하지 않고 그녀를 죽여버린다.

 

금나라가 나라를 세운 초기에, 그럴 듯한 후궁제도는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황후는 일반적으로 귀족의 집안에서 데려왔다. 황후 아래의 비빈은 서열이나 명호가 없었다. 금희종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귀비, 현비, 덕비등의 명호가 생긴다. 완안량 시대에는 추가로 12명으로 증가시킨다. 원비(元妃), 주비(姝妃), 혜비(惠妃), 귀비(貴妃), 현비(賢妃), 신비(宸妃), 여비(麗妃), 숙비(淑妃), 덕비(德妃), 소비(昭妃), 온비(溫妃), 유비(柔妃).

 

자신의 후궁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완안량은 엄격한 계율을 만든다. 이를 통하여 비빈, 궁녀의 행위를 구속했다. 특히 궁중에서 일하는 남자를 제한한다. 예를 들어, 비빈들이 어느 장소에 나타날 경우, 남자인 시종들은 모두 고개를 숙여야 한다. 비빈을 쳐다보아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눈을 뽑아버린다. 남성 시종은 단독으로 혼자서 후궁을 출입할 수 없다. 만일 화장실에 가려면 반드시 4명이 함께 가야 했다. 그리고 칼을 찬 위사가 따라다니며 감시한다. 누구든지 후궁을 함부로 뛰어다니면 즉시 죽여버린다.

 

날이 어두워진 후에 시위는 문밖의 계단을 내려갈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죽인다. 보고한 사람에게는 2백만의 상금을 내린다. 후궁의 남녀는 조금만 잘못하여 신체접촉이 일어날 때 두 사람이 동시에 보고하면 책임을 추궁하지 않지만, 만일 그 중의 한 사람이 먼저 보고하면 삼품관을 내리고, 다른 사람은 죽인다.

 

완안량이 음행을 즐길 때, 교방의 악인들이 장막 밖에서 음악을 연주한다. 만일 후비가 자리에 있으면 완안량은 아무 물건이나 바닥에 던진 후, 근시들에게 그 물건을 보게 명령한다. 만일 감히 고개를 들어 함부로 보면 즉시 죽여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