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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송)

구양수의 또 다른 일면

by 중은우시 2013. 11. 26.

글: 안건회(晏建懷)

 

정치가로서 구양수는 한림학사, 추밀부사, 참지정사를 역임했고, 일찌기 북송의 "경력신정(慶歷新政)"의 개혁에 참여한 바 있고, 여러번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과 날카롭게 싸우고 이치를 들어 논쟁한 바 있다. 정치적으로 뇌려풍행(雷勵風行)했고, 설일불이(說一不二)했다. 이처럼 정파의 얼굴을 한 젊잖은 사람이 생활은 방탕하기 그지없었고, 마음가는대로 행동하여 아주 특이한 일면을 보였다.

 

가장 웃기는 일은, 착실하게 학문을 닦아 단단한 기반을 다진 사람의 거유가, 일찌기 과거시험때 동료를 도와서 '시험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송나라때 왕질(王銍)의 <묵기(默記)>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송인종 천성8년(1030년), 구양수는 향시 1등의 좋은 성적으로, 경성의 성시(省試)에 참가한다. 향시 1등은 해원(解元)이라 부른다. 자연히 경륜이 뱃속에 가득차고, 의지가 충만했다. 당시, 이씨성의 한 시험생이 그와 함께 성시에 참가했다. 교모하게도, 시험에 가까웠을 때, 이씨성이 시험생은 돌연 병을 앓게 된다. 온 몸에 힘이 없고, 머리도 어지럽고 혼미했다. 인생의 앞날과 운명이 걸린 과거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씨성의 시험생은 병든 몸을 끌고 억지로 버텼다. 그러나 시험을 치다가 병이 돌연 발작하여, 그는 책상에 쓰러져 인사불성이 된다. 정오가 지날 무렵, 혼절하여 잠을 자고 있던 이시성의 시험생은 돌연 옆구리로 누군가 그를 흔드는 것을 느낀다. 놀라서 일어나보니 옆 자리의 동료였다. 옆 자리의 동료는 그에게 왜 잠만 자고, 답안을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씨성의 시험생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은 병이 들어서 그렇다고 말한다. 옆자리의 시험생은 그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과거시험은 얻기 힘든 기회이다. 이미 시험장에까지 왔으니, 억지로라도 힘을 내서 답안을 써내라." 이씨성이 시험생은 생각해본다. 역시 문제를 보고 생각을 해서, 답안을 구상한다. 옆자리의 시험생은 그가 붓을 드는 것을 보고 아주 기뻐한다. 그래서 시험답안에서 써야하는 전고, 관점을 모조리 그에게 말해준다. 나중에 옆자리의 시험생은 자신의 답안지를 이씨성의 시험생의 자리에 펼쳐 보여주며 말한다: "나는 국학해원 구양수이다. 나의 답안지를 네가 가져가서 봐도 좋다." 이씨성의 시험생은 구양수의 글을 읽고는 깨닫는 바가 많았다. 금방 답안을 다 쓸 수 있었다. 이번 시험에서 구양수는 비록 옆자리의 시험생때문에 정신이 분산되었지만 역시 1등을 얻어내서 성원(省元)이 된다. 이씨성의 시험생도 구양수의 도움으로,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관료의 길로 들어서서 나중에는 조정의 낭중이 된다.

 

구양수는 아주 호색하는 일면도 있었다. 구양수는 서경 낙양에서 유수추관(留守推官)으로 있을 때, 모 관기와 가까이 지냈다. 다만 당시의 규정에 따르면, 관기는 관청에서의 접대와 연회때에만 불려갔고, 관리와 사적으로 어울려서는 안되었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호색하고 방탕한 구양수는 이를 신경쓰지 않았다. 한번은 낙양유수 전유연(錢惟演)이 후원에서 동료를 모아서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매요신(梅堯臣), 사강(謝絳), 윤수(尹洙)가 모두 도착한다. 그런데 구양수가 보이지 않았다. 다시 시간이 한참 흐르자 구양수는 비로소 관기와 함께 늦게 나타난다. 자리에 좌정한 후, 두 사람은 서로 눈짓을 주고 받으며, 애정행각을 벌였다. 전유연은 아주 관대한 상사였고, 그는 화가난 목소리를 내며 관기에게 왜 늦었는지 물어본다. 관기는 날씨가 너무 더워서 정자에서 잠이 들어버렸고 깨어보니 금비녀가 없어져서 늦었다고 말한다. 전유연은 그 말을 듣고는 그 아름다운 거짓말을 굳이 들춰내지 않고 오히려 가가대소하며 말한다: "만일 구양 추관이 너를 위해서 사를 하나 써줄 수 있으면, 내가 너에게 비녀 하나를 주겠다." 구양수는 그 말을 듣고는 바로 그 자리에서 <임강선(臨江仙)>을 한 수 썼다:

 

유외경뢰지상우(柳外輕雷池上雨),

우성적쇄하성(雨聲滴碎荷聲).

소루서각단홍명(小樓西角斷虹明),

난간의처(欄杆倚處),

대득월화생(待得月華生).

 

연자비래규화동(燕子飛來窺畵棟),

옥구수하렴정(玉鉤垂下簾旌),

양파부동점문평(凉波不動簟紋平)

수정쌍침(水晶雙枕),

방유타채횡(傍有墮釵橫)

 

 

연못 위로 비가 내리네

비가 연잎에 부딛쳐 흩어지는 소리.

돌연 비가 그치니 작은 누각의 서쪽에는 무지개가 뜬다.

난간에 기대어

달이 뜨기를 기다린다.

 

제비가 날아와서 그림이 그려진 기둥을 엿보고,

옥으로 만든 고리는 주렴을 내려뜨리고 있다.

서늘한 날씨에 연못의 물결이 고요하여 댓자리를 편 것같고

수정으로 만든 두 베개

그 곁에는 옆으로 떨어져있는 비녀.

 

구양수는 독수공방하며, 낭군을 기다리는 여인의 이미지를 교묘하게 그려냈다. 천고의 명작이 탄생한 것이다.

 

송나라대 형거실의 <부장록>을 보면, 구양수가 한번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시를 짓다가, 모둔 사람에게 시 두 구절씩을 짓게 하였고, 시의 뜻은 반드시 유기징역이상을 맏을 죄행을 포함해야 한다고 하였다. 한 사람이: "지도홍과부(持刀哄寡婦), 하해겁인선(下海劫人船)"(칼을 들고 과부를 겁주고, 바다로 나가서 배를 약탈한다)라고 쓰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월흑살인야(月黑殺人夜), 풍고방화천(風高放火天)"(달이 어두어니 살인하기 좋은 밤이고, 바람이 세니 불지르기 좋은 때이다)라고 하였다. 구양수의 순서가 되니, 그는 이렇게 말한다: "주점삼수중(酒黏衫袖重), 화압모점편(花壓帽檐偏)"(술이 묻어서 소매가 무거워지고, 꽃(여인)이 눌러서 모자가 비뚤어졌다). 사람들은 그게 무슨 유기징역이상의 벌에 처할 죄이냐고 묻자, 구양수는 웃으면서 술을 마셔서 이 정도가 되면, 유기징역이상의 나쁜 짓을 못할 게 뭐냐고 하였다. 이를 보면 그는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었던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