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빈(惠斌)
매란방(梅蘭芳), 상소운(尙小雲), 정연추(程硯秋), 순혜생(荀慧生)의 4명의 명각(名角)은 경극의 "사대명단(四大名旦)"으로 불리운다. 그들은 모두 단각(旦角)을 연기했지만, 풍격은 전혀 달랐다: 매파는 단장화귀(端庄華貴)하고, 상파는 아나강건(婀娜剛健)하고, 정파는 함축심침(含蓄深沉)하며, 순파는 무미활발(嫵媚活潑)하다. 예술적으로, 그들은 서로 양보없는 호적수였다. 1920년대부터 그들이 극목(劇目)에서 벌인 경쟁이 바로 그 한 예이다. 이 시기에 그들은 경쟁적으로 신희(新戱)를 만들었고, 한때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홍(四紅)", "사검(四劍)", "사반곶(四反串)" 극목이 나타난다.
"사홍"은 "홍"자를 첫머리로 한 극목이다. 매란방이 연기한 <홍선도합(紅線盜盒)>, 상소운이 연기한 <홍초(紅綃)>, 정연추가 연기한 <홍불전(紅拂傳)>, 순혜생이 연기한 <홍낭(紅娘)>을 가리킨다. "사검"은 "검(劍)"자를 마지막 글자로 하는 극목이다. 매란방이 연기한 <일구검(一口劍)>, 상소운이 연기한 <아미검(峨嵋劍)>, 정연추가 연기한 <청상검(靑霜劍)>, 순혜생이 연기한 <원앙검(鴛鴦劍)>을 가리킨다. 예술적인 표현을 풍부히 하기 위하여, "사대명단"은 또한 단각이 소생을 '반곶(다른 배역을 대역하다)"하는 내용을 가진 극을 연기한다. 매란방은 <목란종군(木蘭從軍)>이 있고, 상소운은 <진주선(珍珠扇)>이 있고, 정연추는 <섭은낭(聶隱娘)>이 있고, 순혜생은 <순관낭(荀灌娘)>이 있다. 여기서 지적할만한 점이라면, 극목에서 유사한 것이 나타난 것은 우연도 아니고, 주취(湊趣)도 아니고, 이 4명의 예술가들의 예술 경합이다. 이를 통하여 "사대명단"의 예술풍격의 형성과 발전을 이루고, 희곡예술사업의 번영을 불러온다.
건국이후, "사대명단"은 여전히 이런 고귀한 예술경연을 유지한다. 국경10주년때, 정연추가 이미 고인이 된 외에, 매란방, 상소운, 순혜생은 나이가 환갑을 넘겼음에도 여전히 신희를 내놓고 경쟁을 벌이며, 명절의 분위기를 돋구었다. 매란방이 올린 <목계영괘수(穆桂英掛帥)>, 상소운이 올린 <쌍양공주(雙陽公主)>, 순혜생이 고쳐서 올린 <순관낭>이 있었다. 노예술가의 진취적인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일면이다.
희극계의 인사들이 가장 숭상하는 점이라면, "사대명단"이 무대에서는 서로 경쟁하였고, 양보를 몰랐지만, 무대아래에서는 서로를 잘 이해했고, 서로 양보하고 서로 존경하는 가까운 친구들이었다는 것이다. 정연추는 소년시기에 매란방을 스승으로 모신 바 있다. 나중에 명성을 얻은 후에도, 여전히 매란방에 대하여 공경을 다했고, 예의를 지켰다. 그러나 매란방은 스승의 배분으로 자처하지 않았다. 그는 정쳔추가 <금쇄기(金鎖記)>에서의 연기나 노래를 아주 흠모했고, 공개적으로 이 극은 자신이 그보다 못한다고 선언하고, 이 극은 포기한다. 항우와 우희를 표현하는 전통극 <초한쟁(楚漢爭)>은 원래 상소운의 자랑하는 걸작이었다. 그러나 매란방의 <패왕별희(覇王別姬)>가 상연된 후, 상소운은 스스로 그보다 못하다고 탄식하며, 제자들에게 기예를 전수할 때 직접적으로 말한다: "이 극은 매란방 선생을 배워라!" 순혜생은 문호에 따른 편견이 없었다. 매란방, 상소운, 정연추의 어느 제자이든 그에게 가르침을 청하면, 그는 자신의 기예를 모조리 전수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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