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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문화

한한(韓寒) vs 방주자(方舟子): 중국 인터넷사상최대의 논전

by 중은우시 2013. 2. 4.

글: 압사룡(押沙龍) 

 

대풍기어청평지말(大風起於靑萍之末). "한전(韓戰)"은 중국인터넷역사상 최대의 말싸움이다. 이 싸움은 인터넷의 <인조한한(人造韓寒)>이라는 글에서 비롯되었다. 이 글의 작자는 지명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인물로 인터넷상의 이름이 "맥전(麥田)"이다. 그는 인터넷글에서 중요한 내용을 고발한다: 한한(韓寒)이 블로그에 쓴 많은 글들은 그 본인이 쓴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팀에서 나온 것이다" 맥전은 이렇게 말했다. 한한은 자동차경주선수이다. 그런데 그의 블로그에 발표한 많은 글은 자동차경주전날에 발표되었다. 만일 한 사람이 자동차경주분야에서 전국챔피언이라는 전문적인 수준을 가졌다면, 그가 어찌 정력을 다른 일에 쏟아부을 수 있겠는가...."

 

이 글에는 대량의 공격적인 언어가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마각이 드러났다(露出馬脚)", "이중플레이(雙篁鬧劇)" "마치 30살도 되지 않은 골돌품가게주인이 상품을 팔 수 없자, 부친에게 팔아달라고 하는 것같다"등등. 중국현재의 인터넷환경하에서, 맥전이 쓴 것이 보통의 파이좐(拍塼, 게시판에 의견을 던지는 것) 글이라면 이들 언어는 통상적인 범위를 벗어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정식의 고발글로서 이런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확실히 적절하지 못했다.

 

이 글은 즉시 반격을 불러온다. 한한은 자동차경주시간이 아주 느긋하여 여유있어 맥전이 아무렇게나 억측한 것같지 않다고 지적한다. 맥전도 아마 의식했을 것이다. 그가 가진 소위 "철증(鐵證)"은 많은 점에서 근거가 박약하다는 것을. 제1 라운드가 끝나면서 맥전은 패전했다. 맥전은 부득이 사죄글을 올리고, 자신의 의문제기가 '전문적'이지 못했다고 인정하고 독자들을 오도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태는 이로서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방주자가 나타난다.

 

1

 

방주자의 개입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음모론적인 관점에서 추측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이 일은 어느 정도 우연이었던 것같다. 방주자는 <인조한한>을 보고 흥미를 느낀 듯하다. 그는 4건의 미니블로그 글을 통하여 한한을 공격한다. 한한이 블로그문장을 삭제한 것에서 부터 한한이 상을 받은 글인 <배중규인(杯中窺人)>까지. 한한은 방주자에게 분노하고, 바로 블로그에 글 <정상문장일편(正常文章一篇)>을 발표한다. 그리하여 국면은 더욱 겉잡을 수 없게 된다. <정상문장일편>의 언어는 아주 격렬했다. 자신을 변호하는 외에, 방주자와 맥전에 대하여 인신공격을 하고 방주자의 '대머리'까지 언급한다. 몇 시간후, 맥전은 사과서신을 발표한다. 그러나 한한이 승리의 기쁨에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방주자가 정식으로 전투의 릴레이봉을 넘겨받는다. "한전"이 정식으로 서막을 연 것이다.

 

<인조한한>에서의 맥전의 공격적 언어에서 <정상문장일편>에서 한한의 악독한 말까지, "한전"은 시작부터 언어폭력의 조짐을 드러냈다. 한한은 금방 교훈을 얻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깨닫는다. 그는 그후 말투를 조심했다.그러나 그때 형세는 이미 겉잡을 수 없게 되고, 한한은 점점 침묵하게 된다.

 

2

 

만일 그들 의문제기를 말하지 않고, 한한이 발표한 문자로만 보자면, 그의 글은 명확히 성장궤적을 그리고 있다. 한한은 초기에 모방과 모색의 단계가 있었고, 대체로 <장안란(長安亂)>을 완성한 이후, 한한은 자신의 독특한 문자풍격을 지니게 된다. 그후, 그의 글쓰는 솜씨는 천천히 그리고 안정적으로 제고된다. 그가 최근에 출판한 <1988>은 비록 탁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의 소설중 가장 성숙한 것이라는데는 의문이 없다. 이렇게 계속 성장하는 것은 한한이 큰 발전잠재력을 지녔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한은 확실히 과도하게 높이 평가된 점이 있다. 그는 아주 재능이 있고, 글에서 햇살이 빛나는 것과 같은 유머감이 있다. 그러나 그는 소위 '문학천재'는 아니다. 그의 소설은 제1류의 작품이 아니다. 한한의 글쓰는 태도는 그다지 진지하지 않고 많은 소설이 그저 붓이 가는대로 썼다. 구조에서 선천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다. 한한은 아마도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작가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영향력은 글쓰는 수준때문이 아니라, 그의 부호화된 이미지에 의존한 것이다. 이렇게 높이 평가되면 당연히 반발을 불러온다. 한한이 민주, 자유, 혁명를 논하는 3편 블로그를 썼는데, 이것이 반발의 신호탄이었다. 이 3편의 글은 본질적으로 반국수주의적이고 일정한 보수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한의 '변절'로 비쳐졌다. 맥전 자신도 인정한다. 그가 한한에 대하여 의심을 품게된 동인은 바로 "한삼편(韓三篇)"때문이라고.

 

방주자의 영향력은 주로 '가짜적발(打假)"에 있었다: 쩐아오허솬(珍奧核酸), 류휘(劉輝), 멍뉴터룬쑤, 샤오젠궈(肖建國), 탕쥔(唐駿), 리이(李一), 리카이푸(李開復).....비록 시시때때로 그의 '가짜적발'방식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받기도 하지만, 그의 이런 적발은 왕왕 심리적인 배설에 그치고 공중의 시야에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2012년이전에 여론은 전체적으로 방주자에 대하여 호의적이었다. 모두 그는 싸움을 좋아하고, 따지기 좋아하며, 이치를 따지고 사람이 누구이든 신경쓰지 않으며, 건드리기 어려운 사람으로 비추어졌다. 한한도 그렇게 생각했다. 2010년에, 어떤 기자가 한한에게 방주자에 대한 인상을 물은 적이 있는데, 한한은 이렇게 말했다: "내 생각에 그는 아주 곧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공격한 가짜들 중에 대부분은 문제가 없다. 관점에서나 기타 방면에서 아마도 작은 부분에 대하여 편집적인 점이 있다...만일 그가 나를 찾아와 변론한다면 나는 직접 사과할 것이다. 그가 뭐라고 말하든지 간에."

 

그러나, 2012년에 한한은 그가 말한 것처럼 사과하지 않고 전투를 선택한다.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 방주자가 그와 '변론'하려는 것은 직접적으로 한한의 직업적인 명성을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한이건 방주자이건, 처음에는 모두 전투가 이렇게 오래 끄는 '한전'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한한은 비록 이름을 얻은지 오래되었고, 션하오보(沈浩波), 자오리화(趙麗華)등과 인터넷에서 논전을 벌인 바 있지만, 그는 이런 백병전을 경험한바 없다. 방주자는 여러번이 백병전을 거쳤지만, 그도 아마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백병전에 그렇게 많은 칼이 필요하게 될 줄은. 1월 18일에서 8월 7일까지, 방주자의 시나닷컴 미니블로그에는 한한과 관련된 미니블로그글이 800개가 넘는다. 그중 많은 것은 길게 쓴장편 미니블로그글이다.

 

이번 전투에 이렇게 많은 시간이 소요된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방주자의 이번 '가짜적발'에는 직접증거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탕쥔의 학력게이트와 같으면 방주자는 손에 직접증거를 쥐고 있었다. 한 문장이면 상대방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었다. 그는 반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계속하여 새로운 '철증'을 내놓아야할 이유가 없다. '한전'에서, 많은 증거는 싸우면서 찾은 것들이다. 이같이 먼저 방패를 세우고 다시 화살을 찾는 방식의 '타가'방식은 많은 방관자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겼다. 기록 증거는 기나긴 논쟁중에 하나하나 쌓여갔지만, 그렇다면 왜 당초에 방주자는 그렇게 확실하게 결론을 내리고 자신만만했던 것일까?

 

한한과 방주자에 있어서, 전투의 결과는 어느 정도 양패구상이다. 그들 둘은 모두 당금사회의 상징적인 인물들이다. 이런 상징적인 인물의 호소력은 그들의 전문능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이미지에 의존하는 것이다. 한한의 공중이미지는 상당히 크게 상처입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한한의 뒤에 대필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방주자의 손실은 아마도 더 클 것이다. 그의 '가짜적발'명성은 '한전'에서 전례없이 엄중한 도전을 받게 된다.

 

3

 

한한은 확실히 논쟁대상이 될만한 점이 있다. 그는 어려서 이름을 얻었고 어떤 때는 말이 경박했다. 논전초기에 그의 반응은 어느 정도 부적절했다. 그러나 방주자가 폭로한 문제는 '부적절'한 것보다는 훨씬 심각했다.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하에서, 방주자는 대량의 간접증거에 의존했다. 이 방법은 원래 많이 쓰이는 것이므로 문제는 없다.그러나 간접증거를 사용하는데는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방주자는 이런 조심성이 부족했다. 예를 들어, 한한의 <구의(求醫)>라는 그레서 의사를 소고낭(小姑娘)이라고 불렀는데, 방주자는 지적했다: "17살짜리 사람이 어찌 자신보다 6살이나 많은 사람을 '소고낭'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한런쥔(韓仁均, 한한의 부친)과 같은 중년인만이 그렇게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어째서 이것이 불가능한가. 이런 판단의 근거는 무엇인가? 방주자도 해석을 내놓지 않았다. 그리고 예를 들어 한한이 <삼중문(三重門)>의 원고를 내놓을 때, 방주자는 많은 착별자(錯別字)를 찾아냈다. 그는 이들 착별자는 '정상적으로 글쓰는데서 오는 착오가 아니다'라고 보았다. 분명히 한한이 다른 사람의 원고를 베껴쓰면서 생긴 잘못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의문을 나타낸 바 있다: 왜 한한의 "준남자(准南子, 淮南子의 오타)"는 정상잘못이 아닌가? 그리고 다른 사람의 "회자인구(燴炙人口)"는 정상잘못인가? 정상과 비정상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방주자는 이에 대하여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불가능" "모두 아니다"는 것과 같은 글자는 방주자의 글에 자주 나타난다. 이런 식으로 마음대로 논증하는 것은 그의 증거들의 증거력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방주자의 논거는 니사구하(泥沙俱下)로 수량이 방대하다. 일반독자는 어느 것이 합리적인 논증이고 어느 것이 무단의 추론인지 구분할 시간과 정력이 없다. 더욱 엉망인 것은 이런 '가짜적발'은 쌍방이 대등하게 교류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실상 공격측은 모든 의문을 제기하고, 방어측은 하나하나 해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량발천편(四兩撥千片, 片은 斤의 잘못)"이라든지, 한한이 인터뷰과정에서 "문인상경(文人相輕)"을 "문인상친(文人相親)"이라고 했다든지...(어떤 네티즌은 이것이 한한의 소설 <광영일>에 나오는 부분인데, 인터뷰하는 기자가 <광영일>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여 난감한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해석은 반드시 모두 합리적일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방주자는 상대방의 해명이 합리적인지 아닌지에 대하여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 일부러 그것을 막았다. 방주자는 모든 정력을 계속 새로운 의문을 제기하는데 집중했다. 이런 대등한 교류를 단절시키는 것은 '한한"이 갈수록 변론전이 아니라 갈수록 선전전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방주자의 의문제기에 대하여, 한한 본인이 대응하기는 확실히 어렵다. 노신은 방주자가 아주 추앙하는 작가이다. 노신은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한 사람이 일단 자신의 변호해야하는 대가 되면, 그의 지위는 이미 아주 굴욕적이 된다." 그러나 방주자의 이런 거고임하(居高臨下)식의 '가짜적발'에 대하여 한한이 만일 하나하나의 의문에 진지하게 변명한다면 더욱 굴욕적이 될 것이다. 그의 대중이미지는 더욱 파괴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한한에게 공중매체의 감독하게 제대로된 글을 써서 자신의 무고함을 밝히자고 한 바 있다. 펑샤오윈은 방주자를 지지하는 작가이다. 그녀는 심지어 한한에 대하여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하자고 제안한 바도 있다. 이들 요구는 너무나 무섭다. 이미 '가짜적발'과 연결될 수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의 직업적 명성에 의문을 제기할 때, 의문제기자에 대한 요구는 의문을 제기당한 사람에 대한 것보다 엄격해야 한다. 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사람들은 왕왕 잊어버린다.

 

방주자는 호승심이 아주 강한 사람이다. 그는 치명적인 증거로 '한전'을 끝내기 얼벼게 되자, 그저 '한전'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한전'을 계속하려면, 계속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야 했다. 한한의 매번 대응은 모두 그가 이슈를 만들어내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러므로 한한의 가장 전략적인 대응방식은 침묵이었다. 그도 확실히 그렇게 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한한이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수량의 지지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누구도 그의 지위에 있으면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말할 수 없거나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말은 그의 지지자들이 그를 대신하여 말한다. 만일 방주자가 상대한 것이 한한이 아니라면, 그는 심지어 침묵할 밑천조차 없었을 것이다.

 

방주자가 막 <삼중문>이 대필한 작품이라고 공격하기 시작할 때, 한한은 <삼중문>의 원고를 땅바닥에 깔고 위에 앉아서 사진을 찍는다. 이 사진에서 한한은 웃는 얼굴이다. 그의 지지자들은 웃는 얼굴 속에서 순진한 자의 자신감을 보았고, 그의 반대자들은 웃는 얼굴 속에서 사기꾼의 교활함을 보았다.

 

4

 

"한전'의 결말은 그저 류전윈의 소설에 나오는 이름과 같다: 일지계모(一地鷄毛).

 

몇달 후, '한전'은 한한의 키와 방주자 부인의 학력으로까지 번진다. 이슈가 점차 고갈되는 징조를 드러낸다. 바로 이때 인터넷유명인사인 목자미(木子美)가 돌연 방주자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 <유정서(遺情書)>로 이름을 덜친 목자미는 굳건한 한한반대파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한에 대하여 냉소적이었다. 그러나 8월, 방주자가 또 다른 소년성명(少年成名)의 장방주(蔣方舟)도 대필이 있다고 주장하자, 목자미는 이에 반대한다. 이것은 원래 서로간의 의견불일치이다. 그러나 지금 여하한 의견불일치도 악독한 저주와 욕으로 변질될 수 있었다. 방주자와 목자미는 서로 인신공격을 행한다. 중국의 인터넷은 이미 언어폭력에 익숙하다.그러나 목자미는 심지어 인터넷에서 묵인된 선을 넘어섰다. 그녀는 시나닷컴의 미니블로그에서 방주자이 성년딸을 공격했다. 방주자는 시나닷컴에 목자미를 처벌할 것을 요구했고, 만족할만한 답변을 받지 못하자, 방주자는 시나낫컴 미니블로그를 떠나고, 진지를 소호로 옮긴다. 시나미니블로그는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터넷상호교류플랫폼이다. 방주자가 한한을 공격한 대본영이기도 하다. 그가 떠나자 사태는 신속히 진정된다. 인터넷에서 비록 개별적인 전투가 있기는 해도,'한전'은 점점 끝나가고 있었다.

 

'한전'은 분노에서 시작하여 원한으로 끝난다.

 

이것은 한차례의 의문제기가 아니라 한차례의 전쟁이었다. 비록 인터넷상의 전쟁이었지만. 만일 한한에 대한 모든 공격이 진실이라면 한한은 마르크스가 쓴 글에서의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모든 모공에 피와 더러운 물건이 묻어있다" 그의 블로그는 팀이 쓴 것이고, 그의 <삼중문>은 부친이 쓴 것이며, 그가 나중에 쓴 소설은 루진보(路金波)등이 쓴 것이다. 그는 작문대회에서 속임수를 썼고, 그의 키도 조작했다. 그는 하나도 좋은 점이 없다. 그의 모든 생활은 거짓말투성이이다. 이 이미지는 지나치게 과장되었다. 그리고 모든 한한반대파가 이런 말을 모두 믿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그중의 어떤 지적에 대하여 반대하고 나선 이는 없다. 거꾸로 한한지지파를 봐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은 분명히 방주자의 부인에 대한 여러가지 주장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인터넷에 포워딩하고 전파했다. 그들은 이것이 '깡패의 수단으로 깡패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배후의 논리는 하나의 사실이 맞다는 것은 그 자체가 맞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적에게 불리하다는 것이다. 나는 한한이 사기꾼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에 대한 모든 공격은 내 생각에 거짓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침묵한다; 나는 방주자가 무뢰한이라고 빋는다.그래서 그의 부인에 대한 어떤 공격도 나는 그것이 유언비어라는 것을 알지만 침묵을 지킨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목적이 선량하다고 빋는다. 목적이 선량하면 수단의 악을 씻어준다고 믿는다. 이것은 규칙이 없는 전쟁이다.

 

규칙이 없는 전쟁은 무섭다. 그것은 참여자의 태도를 극단으로 몰고 간다. 분노와 원한이 서로를 자극하고, 상승한다. 참여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영에 포함된다. 굳건한 입장이 서서히 자유로운 판단을 대체한다. 이는 방주자가 이전에 한 말을 상기시킨다: "잔혹한 투장, 무정한 타격을 진행해야 한다. 상대를 무너뜨리는데 마음이 약해지거나 수단을 가려서는 안된다."

 

"한전" 그자체는 명확한 결과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 만일 이런 논쟁이 이렇게 많은 분노와 원한을 발생시켰고, 우리로 하여금 피차간에 정상적인 교류를 할 수 없을 정도의 진영으로 분열하게 만들었는데, 그렇다면 이보다 더욱 중요한 논쟁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만일 어느 날인가, 모두 국가와 사회의 앞날을 가지고 논쟁을 벌이고,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논쟁을 벌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