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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제갈량)

제갈량 삼기주유(三氣周瑜)의 역사진상

by 중은우시 2013. 12. 1.

글: 불감왕언(不敢枉言)

 

삼기주유는 <삼국연의>의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중 하나이다. 나이가 젊고 혈기방장한 주유는 노모심산의 제갈량이 화를 돋구는 바람에 피를 토했다. 마지막으로 "기생유하생량(旣生瑜何生亮)"의 장탄식을 하면서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그리하여 후인들에게 무수한 탄식을 남긴다. 소설이 성공하자 제갈량은 지혜의 화신이 되었다. 다만 "웅자영발(雄姿英發). 우선윤건(羽扇綸巾), 담소간(談笑間), 장로회비연멸(檣櫓灰飛煙滅)"의 주유를 외쇄(猥瑣)한 인물로 폄하했다. 그러나 역사는 왜곡을 용납하지 않고 결국은 진상이 드러난다.

 

<삼국연의>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적벽대전에서 승리한 후, 주유는 유비와 약속한다. 만일 자신이 남군을 취득할 수 없으면, 유비에게 마음대로 취하게 하였다. 그 결과 제갈공명의 계책에 걸려들어, 유비는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승리의 과실을 탈취했다. 주유는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시 "미인계'를 쓴다. 그러나 농교성졸(弄巧成拙)로 "부인도 잃고 병력도 잃다"는 결과를 맞이한다. 회가 난 주유는 화살에 맞은 상처가 덧난다. 동오가 형주를 내놓으라고 했다가 성공하지 못하자, 유비가 서천을 정벌한다는 명목으로 형주를 취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이 계책은 공명에게 들킨다. 주유는 포위를 당해 회가나서 큰 소리를 친다. 화살에 맞은 상처는 다시 덧나고  말아래로 떨어진다. 마지막으로 연속 몇 마디를 지르고 죽는다. 죽는 것이 아주 비장했다. 그러나, 진상이 과연 그러한가?

 

<삼국지>에 따르면, 적벽지전에서 조조가 패배하고, 손유연합군이 승기를 잡아 추격한다. 당시 주유와 정보(程普)는 군대를 이끌고 남군으로 진격한다. 조인(曹仁)과는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했다. 유비는 조인의 병력이 정예이고 양식도 충분하여 주유의 승산이 크기 않다고 보아서, 장비를 보내어 병력을 이끌고 주유를 따르도록 하고, 유비는 병력을 이끌고 조인의 후로를 차단했다. 양군이 수륙에서 병진한 결과 조인을 대파하고 남군을 수복한다. 주유는 남군태수가 된다. 적벽,남군에서 유비가 모두 전공을 세웠으므로, 손유연맹을 공고히 하여 조조에 대항하기 위하여, 주유는 남안을 유비에게 나누어주어 주둔하게 한다.

 

유비는 공안에 주둔하고, 지역이 작다는 것을 이유로 여러번 손권에게 땅을 빌려달라고 요구하여, 형주를 빌리는데 성공한다. 유비는 다시 무릉, 장사, 계양, 영릉의 4개군을 남정한다. 유기(劉琦)는 병사하고, 유비는 좌장군(左將軍)의 신분으로 형주목(荊州牧)을 겸임한다. 손권은 두려운 동시에 손류연맹을 강화하기 위하여, 여동생을 유비에게 시집보낸다. 손권의 호의에 대하여 유비는 태도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유비와 손권은 한번 만나는 인연을 갖게 된다. 손ㅇ류는 동오의 경성에서 만난다. 이 때의 주유는 아직 남군에 있었다. 상소를 올려 말하기를, 유비는 효웅이다. 관우, 장비는 웅호지장(熊虎之將)이다. 아 세 사람은 절대로 지중지물(池中之物)이 아니다. 지금의 계책은 유비에게 호화로운 건물을 더 많이 지어주고, 미녀를 더 많이 주어서 놀게 하여 그의 이목이 놀이를 즐기게 하여, 유비로 하여금 "완물상지(玩物喪志)" "낙불사촉(樂不思蜀)"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그후에 관우 장비와 갈라놓으면 대사는 결정된 셈이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주유가 미인계를 쓴 시간은 유비와 손부인이 결혼한 이후이고, 미인게의 주인공은 손부인이 아니다. 그리고 주유가 말한 소위 '미인계'는 손권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국연의>에서 주유가 형주를 공격하는 길에 죽는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주유가 동오의 경성에서 강릉으로 돌아가는 길에 죽었다. <삼국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촉의 땅 익주를 공격하여 취할 계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주유는 경성으로 가서 손권과 상의한다. 주유의 계책은: 먼저 군대를 진격시켜 촉을 취하고, 촉을 취한 후 장로를 합병하며, 그 후에 마초와 연맹을 매즌다는 것이다. 군대가 양양에 주둔하여 조조에 저항하며 서서히 북방을 도모한다. 주유의 이 계책은 제갈량의 "융중대"와 미리 짠 것처럼 들어맞는다. 그리고 손권의 허가를 들은 후, 주유는 경성에서 강릉으로 옮겨간다. 돌아가서 익주를 공격하여 취할 계산을 준비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중도에 병이 악화되어 파구(巴丘)에서 병을 치료하지 못해서 사망한다.

 

소설의 일기, 이기, 삼기 최종적으로 촉이 승리하고 오가 패배한다. 제갈량은 신격화되고, 주유는 말그대로 화가나서 죽는 결말을 맞이한다. 설사 주유가 요절하지 않았다면, 소설에서 어떻게 이를 원만하게 마무리지을지 정말 궁금하다.

 

기실 "삼기주유"의 이 시기에, 주유와 공명은 근본적으로 서로 교류한 바 없다. 그때의 공명은 유비에 의해 영릉, 계양, 장사의 3군에 파견나가서, "그곳의 세금을 조정하고, 군사물자를 충실하게 했다" 실제로는 후방에서 군수조달업무를 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진실한 주유는 감히 풍류재자라 할 수 있다. 그는 통이 크고 문도무략이 세상을 덮을 정도일 뿐아니라, 동오의 유일무이한 충신이자 대들보이다. 다만 소설은 예술적인 허구를 위하여, 강남재자 주유의 재지 및 '웅자영발 우선윤건"의 이미지를 제갈량에게 넘겨버렸다. 이렇게 하여 소설은 재미있어졌고, 제갈량은 신격화되었다. 다만 후세인들에게는 무한한 안타까움을 남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