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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제갈량)

삼국시대 제갈가족의 비애

by 중은우시 2013. 4. 13.

글: 추일운(鄒逸雲) 

 

삼국시대 낭야(琅邪) 제갈가족의 형세 3명은 각각 다른 주인을 모셨다.

제갈근(諸葛瑾)은 오(吳)나라의 대장군으로 선성후(宣城侯)에 봉해졌고; 제갈량(諸葛亮)은 촉(蜀)에서 승상(丞相)을 지냈으며; 제갈탄(諸葛誕)은 위(魏)에서 정동대장군(征東大將軍)을 지냈고 고평후(高平侯)에 봉해진다. 형제 3명은 각각 삼국에 나뉘어 지내면서 모두 조정의 중신이 되니, 천하의 영광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니 천고의 유감이다.

 

제갈근은 세 사람중 첫째이고, 어려서부터 효자로 이름을 떨쳤다. 나중에 난을 피해 강동으로 가고, 장사, 중사마, 남군태수, 좌장군, 대장군 등의 직을 받고, 선성후가 된다. 사람됨이 홍아(弘雅)하여 손권의 신임을 많이 받아 큰 일에 자문을 많이 한다. 241년에 병사하니 나이 68세때이다. 제갈근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제갈각(諸葛恪)과 제갈융(諸葛融)이다. 제갈각은 어려서부터 천재로 이름을 떨치고, 손권도 그를 아주 중시여긴다. 전후로 단양태수, 위북장군, 대장군의 직위를 받고, 도향후(都鄕侯)에 봉해진다. 손권의 병세가 위독할 때, 다시 태자태부가 된다. 손권이 죽자 태부(太傅)가 된다. 252년 위군을 동흥에서 격파하고 봉양도후(鳳陽都侯)가 되고, 형양주목(荊楊州牧)이 되여, 독중외제군사가 된다. 253년, 제갈각은 20만의 군사를 일으켜, 위나라의 신성을 공격하나, 몇달동안 함락시키지 못하고, 사상자가 심하여 병력을 물려 퇴각한다. 그리고 무위장군 손준(孫峻)에 죽임을 당한다. 제갈각은 세 아들을 두었는데, 큰 아들을 죄를 지어 제갈각에 의하여 독살된다. 둘째아들 제갈송(諸葛竦), 셋째아들 제갈건(諸葛建)은 피살된다. 제갈융이 부친의 작위를 승계하고 당시 분위장군을 맡고 있었다. 진수공안으로 있었는데 독약을 먹고 자결한다. 세 아들도 피살된다. 삼족이 멸해지니 제갈근 일계는 모조리 없어진다.

 

제갈량은 유비를 도와 군사중랑장, 군사장군, 승상이 된다. 유비가 죽은 후 권력이 일국을 뒤흔든다. 촉의 국정을 12년간 좌지우지한다. 다섯번 기산으로 출동하고, 위나라를 공격한다. 235년, 54세의 나이로 군중에서 병사한다. 아들 제갈첨(諸葛瞻)은 기도위, 우림중랑장사성교위, 시중, 상서복야, 군사장군, 행도호, 위장군, 평상서사등의 직위를 맡는다. 264년 위나라가 촉을 공격하고, 제갈첨은 등애(鄧艾)와 면죽(綿竹)에서 전투를 벌이나 패배하여 사망한다. 제갈첨의 큰아들 제갈상(諸葛尙)도 함께 전사한다. 어린아들 제갈경(諸葛京)은 진(晋)나라때 강주자사를 지낸다. 양자 제갈교(諸葛喬)는 원래 제갈근의 아들인데, 제갈량에게 아들이 없을 때 제갈량의 양자로 왔으나 25살때 죽는다. 제갈교의 아들 제갈반(諸葛攀)은 촉에서 행호군, 익무장군등의 직위를 맡으나 요절한다. 제갈량의 일계도 단지 제갈경이라는 독묘(獨苗)만을 남긴다.

 

제갈탄은 위나라에서 어사중승, 상서, 양주자사, 소무장군, 진남장군, 진동장군, 양주도독, 정동대장군등의 직을 맡고, 고평후에 봉해진다. 사마의가 위나라 정권을 찬탈한 후, 주살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257년 양주에서 반란을 일으키나, 성이 함락당하고 피살되며 삼족이 멸해진다. 제갈탄의 일계도 모조리 죽임을 당하는 결과를 맞이한다.

 

삼국시대때 제갈가족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면 정말 운명이 이러할 줄 몰랐다. 조화농인(造化弄人)이다. 제갈근의 돈후(敦厚), 제갈량의 근신(謹愼), 제갈탄의 성명(盛名)은 한때 부귀영화의 극치를 누린다. 누가 알았으랴 235년 제갈량의 병사에서 264년 제갈첨의 전사까지 삼십년간 두 집안이 멸문을 당하고, 자손이 모조리 대가 끊길줄은 세 형제가 오직 독묘만을 남기게 될 줄은. 흥성하는 것도 빨랐지만, 쇠망하는 것도 역시 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