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계합(張繼合)
장택단(張擇端)의 걸작 <청명상하도>는 북송시대 시정리속(市井俚俗)의 활화석이라 할 만하다. 현재 고궁박물원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1급국보이다.
비록, 송휘종(宋徽宗) 조길(趙佶)이 황제로서는 별로였지만, 예술상으로는 극히 탁뤌한 서화가였다. 그의 창도로 한림원에는 "도화원(圖畵院)"이 설립된다. 그리하여, 산동 제성 사람인 장택단은 황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고, 자신의 회화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원래, 소위 "원체화(院體畵)"는 모두 풍화설월, 성색견마의 귀족 및 사대부 생활을 묘사한다. 유럽 르네상스시기이전의 부화(浮華) 상태와 꼭 닮았다. 장택단은 바로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는 심혈을 쏟아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여 마침내 <청명상하도>를 완성한다. 이 작품의 첫번째 감상자이자 수장가는 당연히 조길이다. 황제는 너무나 기뻐서 그 특유의 "수금체(瘦金體)"로 "청명상하도"라는 글자를 썼고, 쌍룡소인장을 날인한다.
송휘종,송흠종시기에 변량성은 이미 국제적 대도시의 모습을 갖추었다. 호구는 백만에 이르고, 상점이 줄지어 늘어섰으며, 도처에 구란(勾欄)등 오락장소가 있었다. 심지어 번화한 야시장까지 등장했다. <청명상하도>에서는 북송 도성의 수륙교통 및 일상생활을 재현했다.
제등겸(齊藤謙)이 쓴 <졸당문화.권8>의 통계에 따르면, <청명상하도>에는 각양각색의 인물 1,643명, 동물 208마리가 그려져 있다. 이는 삼국연의(1191명), 홍루몽(975명), 수호전(787명)에 나오는 인물들의 수보다 많다.
<청명상하도> 전체 그림은 3개의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전개하는 순서에 따라서 보면, 첫째는 변경 교외의 경치이다. 이어서 크 다리와 변하의 양안에 펼쳐진 번화한 모습이 나온다. 뒤에는 변량시의 길거리모습이다. 인물의 크기는 커도 3밀리미터가 되지 않는다. 작으면 콩알만하다. 비록 인물의 형체는 미소하지만, 개개인은 세세하게 그려져 있고, 아주 정취가 있다. 이런 수법은 모방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장대천(張大千)은 모조품을 만드는데 대가였는데, 그는 고의로 헛점을 하나씩 넘겼다고 한다. 이를 통해서 잘못 전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중 한 장에는 작은 새에 헛점을 남겼다. 비록 아주 은밀하지만, 눈이 밝은 사람을 속일 수는 없다. 작은 새의 몸은 기왓장 두 개보다 크다. 확실히 진실한 상황과 배치된다. 비율이 조화를 잃은 것이다. 이것은 장대천의 심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모든 명화는 남에게 말할 수없는 비밀을 숨기고 있다. 삼라만상을 다 포함한 것같은 <청명상하도>에는 시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두 가지 동물이 빠졌다. 그것은 말(馬)과 양(羊)이다. 말은 왕왕 당나귀나 황소로 대체된다. 이것은 왜 그랬을까? 원래 말과 양은 북송의 '군사기밀'이었다.
북송은 전형적인 민부국궁(民富國窮)의 국가였다.특히 개국황제 조광윤은 개국하자마자,중문경무의 기본국책을 확정한다. 북방에서 호시탐탐 노리는 유목민족은 "삼추계자, 십리하화(三秋桂子,十里荷花)"의 중원에 일찍부터 군침을 흘려왔다. 그래서, 송나라조정은 부득이 전쟁물자를 통제해야 했다. 말과 양은 그 리스트에 들어있는 것이다. 말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교통공구이다. 양가죽은 영장, 군복을 만드는 제료이다. 황인우는 <중국대역사>에서 이렇게 썼다: "<요사>에서 명확히 얘기한다: 송나라와 호시(互市)를 열 때 말과 양은 절대로 국외로 나갈 수 없다고. 같은 책에서는 요와 금의 결전시 전마의 공급처를 잃지 않은 것이 아주 의미가 컸다고 적는다.이것은 마필의 남하를 제한하는 금령이다. 이것은 장택단의 <청명상하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화폭에, 개봉의 큰 수레는 모두 황소, 물소가 끝다. 이를 보면 마필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필은 원래 중원에서도 번식가능하다. 그러나 현지 농업경제의 제한으로, 비용이 많이 들어 유지하기 어렵다. 그리고 정밀한 경작지구에서 자란 마필은 비교적 마르고 약하다.
생각지도 못하게, 장택단의 현실주의 화풍은 천년이후, 북송왕조의 군사기밀 하나를 누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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