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하당월색(荷塘月色)
한고조 유방은 대한왕조의 개국황제이다. 동시에 역사상 영향력이 아주 큰 정치가 겸 군사지휘가이다. 그는 비록 미천한 출신이지만, 인간관계가 아주 좋았다. 떠도는 생애에서도 그의 '죽마고우' 노관은 그를 떠나지 않았고, 기꺼이 그의 곁을 지켜주었다. 한왕조의 건립에 뛰어난 공헌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그가 나이가 들어서는 유방을 배신한다. 이것은 또 어찌된 일인가?
노관은 풍읍(豊邑) 사람이다. 한고조와 같은 마을이다. 두 사람의 부친은 관계가 아주 좋았다. 그리고 더욱 교묘한 것은 유방과 노관이 같은 날 태어났다는 것이다. 당시로 말하자면, 이런 일은 마을이 들썩일 일이다. 고향사람들은 모두 선물을 가지고 두 집안을 찾아가서 축하했을 것이고, 모두 그들 둘은 연분이 있다고 여겼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두 사람은 점점 성장한다. 그들은 같이 놀고, 같이 공부했고, 서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 정은 수족과 같았다. 마을의 사람들은 모두 그들 두 집안을 부러워한다. 나중에, 유방이 사건으로 소송이 걸려 이리저리 숨어다니고 있었는데, 노관은 같이 연루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었을 뿐아니라, 자주 그와 함께 사방으로 같이 도망다녀주었다. 이 점으로 볼 때 두 사람의 관계는 쇠처럼 단단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중에 들어갈 때, 노관은 대장군의 직위를 맡았다. 말은 그렇지만 실제로 그는 한고조 유방의 호위무사였다. 초한전쟁때, 노관은 다시 신분이 바뀌어 유방의 생활비서를 맡는다. 그는 내정에서 마음대로 행동했다. 유방의 침실에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한고조도 그를 잘 대해주었고 자주 그에게 옷, 요와 이불, 식품등을 내려주었다. 그들 둘은 한 식구와 같이 친밀하기 그지없었다. 그리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의 선망과 질투의 눈빛을 받았다.
이들 처럼 군신간에 네것 내것을 구분하지 않는 뎨우는 노관 이외에 다른 사람은 받지 못했다. 고대에 이런 군신관계는 실로 등불을 켜고 찾아다녀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노관은 한동안 비서직을 지낸 후, 유방이 그를 함양시 시장에 발탁한다.
보라. 노관은 여러해동안 유방을 따라 전투에 참가했고, 상사의 중시를 받고 업무상 필요에 따라 다시 행정기관으로 옮겨서 자리를 받는다. 이 고대인의 능력은 괜찮았던 것같다. 문에도 무에도 모두 능했다. 만능의 인재였던 것이다.
한나라 5년 초, 항우가 패배한 후, 유방은 즉시 노관과 유가(劉賈)를 보내어 임강왕을 공격하게 한다. 그리고 임강왕을 패배시킨다. 칠월에 그는 계속하여 유방을 따라 연왕 장도(臧茶)를 공격한다. 한고조가 천하를 평정한 후, 노관은 연왕에 봉해진다. 모든 상층간부중에서 아무도 노관처럼 한고조의 중시를 받고 친근하지 않았다.
한11년 가을, 진희(陳豨)가 대(代)의 땅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한고조는 친히 병력을 이끌고 한단으로 가서 그를 공격한다. 연왕 노관은 한왕의 심복이다. 당연히 극력 도와야 했다. 그는 동북에서 진희를 공격한다. 진희는 상황이 좋지 않은 거을 보고는 왕황(王黃)을 흉노에 보내어 구원을 요청한다. 노관은 심시도세(審時度勢)하여 흉노의 출병을 방지하기 위하여 장승(張勝)을 흉노로 보낸다. 출발할 때, "진희의 군대는 이미 우리에게 격파당했다고 말하라. 그러면, 흉노는 감히 증원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일은 왕왕 이렇다.계획을 해놓아도 변화가 생긴다. 의외였던 점은, 장승이 흉노에 도착한 후, 흉노에 피난해 있던 전 연왕 장도의 아들을 보게 된다. 그가 장승에게 한 몇 마디 말로 국면은 질적으로 변화를 겪게 된다. 그는 말했다: "너는 연국에서 중시받고 있는데, 그것은 네가 흉노의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왕은 먼저 너희와 합작하여 반란군 진희에 대항하지만, 그를 소멸시키고 나면, 한왕은 머리를 돌려 너희 연나라를 수습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너는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을 것이다. 네가 총명하다면, 병력을 움직이지 말고, 암중으로 흉노와 연합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퇴로를 마련해두어야 한다. 그게 더 낫지 않겠느냐?"
이렇게 하여 장승은 그의 말이 옳다고 여기고 반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흉노에게 진희를 도와 자신이 거주하는 연나라를 치라고 부탁한다. 연왕 노관은 장승의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의심하여 한고조에게 그를 체포하도록 건의한다. 그러나 장승이 귀국한 후 자신이 반란을 일으키게 된 연유를 설명한다. 노관은 그의 말을 들은 후, 돌연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한고조의 면전에서 장승을 도와 몇 마디 거짓말을 해서, 다른 희생양을 내세워 죽이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짓는다.
그 후, 장승은 흉노의 간첩이 된다. 노관도 그의 일을 적극 도와준다. 진희가 해외에서 장기간 망명하도록 도와준다. 나중에 진희의 부장이 유방에게 투항하면서 노관등의 일을 모조리 털어놓는다. 노관은 겁을 단단히 먹는다. 그리하여 일가족을 데리고 흉노로 도망친다. 1년여후 그는 타향에서 객사한다.
노관과 고조는 집안대대로 교분이 있을 뿐아니라, 죽마고우이다. 피차간에 많은 고난과 환난을 같이 겪었다. 통상적인 이치로 말하자면, 그는 유방에 대한 감정이 매우 깊을 것이다. 쉽게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장승의 말을 들은 후 즉시 깨닫게 되었을까? 설마 그들의 수십년 교분이 장승의 한 마디 말보다 못하단 말인가? 노관, 유방 두 사람의 관계는 정말 그렇게 취약했는가?
아니다, 노관은 감정을 중시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고국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한고조에게서 권력욕보다 더욱 무서운 곳을 보았다. 그것은 이기심과 탐욕이다. "교토사(狡兎死), 양견팽(良犬烹); 고조진(高鳥盡), 양궁장(良弓藏), 적국파(敵國破), 모신망(謀臣亡)" 바로 그는 유방과 같이 지낸 시간이 길기 때문에, 그는 이 말의 깊은 의미를 잘 알았다. 더더구나 자신의 곁에 잠복한 위기를 잘 알았다. 노관은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그는 한신, 팽월이 당한 불행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보았다.
한고조는 왜 '죽마고우' 노관에게 배반을 당했을까? 그 이유는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노관은 유방의 곁에 있으면서 안전감을 느끼지 못했기 대문이다. 그는 그와 매일 전전긍긍하며 생활하는 것보다는 시원스럽게 도망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비록 그는 고향을 그리워하지만, 그가 떠나는 것은 자신의 가족을 지키는 길이다. 회음후 한신처럼 삼족이 멸족당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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