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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민국 후기)

욱달부(郁達夫)와 왕영하(王映霞): 광세악연(曠世惡緣)

by 중은우시 2013. 11. 23.

글: 녕녕(寧寧) 

 

1896년 욱달부는 절강 부양(富陽)의 한 몰락한 지식인가정에서 태어난다. 3살때 부친이 병사하고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고 병이 많았다. 모친은 그를 매우 사랑하여 7살때까지 젖을 먹였다고 한다. 어려서의 이런 경력은 그로 하여금 극단적인 모친컴플렉스와 유약한 성격이 되게 만들었다.

 

1920년, 욱달부는 모친의 명을 받아 손전(孫荃)과 혼인한다. 남자는 뱃속에 학문과 경륜을 갖추고, 풍류적이며, 여자는 용모가 단정하고 재능이 출중했다. 천생배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욱달부의 마음에 들어가지 못한다. 불행한 혼인은 그를 더욱 방황하게 만들었고, 매번 밖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당하면 집으로 돌아와 처에게 화풀이를 했다. 바람을 피우기 위하여 부인이 그에게 준 다이아몬드반지를 팔기도 했고, 사후에는 머리를 감싸안고 통곡을 하며 자신의 여인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가 일본유학때 스트레스를 받고 슬픔에 빠져 있을 때, 기녀를 찾아서 성욕을 풀기도 한다. 매춘체험을 일종의 약국이 강국에 보복하는 애국적인 통쾌감으로 승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체험이 끝난 후에는 다시 깊은 치욕과 갈등에 삐잔다. 이것은 일종의 괴이한 심리상태라고밖에는 할 수가 없다.

 

욱달부의 우울함 고통은 산문 <일봉신(一封信, 한통의 서신)>에서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나는 하늘의 태양을 본 이래, 한번도 무엇이 연애인지를 안 적이 없다. 운명의 사자는 나를 모체에서 분리된 이후, 도로의 신에게 넘겨주었고, 나를 동으로 서로 떠돌게 만들었다. 오늘날까지 떠돌아다니고 있다. 그중에서 비록 몇몇 이성의 두 다리를 지닌 짐승을 만난 적이 있지만, 그녀들은 나의 사이는 원래 그저 금전적 계약이었고, 소위 '연(戀)'은 없었고, 소위 '애(愛)'도 없었다."

 

그의 구식혼인은 '칠년지양(七年之痒)"을 만들어 낸다.

 

1927년 1월 4일, 욱달부는 친구인 손백강(孫百剛)의 집에서 나이 겨우 19살인 항주미녀 왕영하(王映霞)를 만난다. 왕영하는 그에게 무엇이 아름다움인지 알게 했고, 어떻게 사랑에 바지는지를 알게 했고, 무엇이 사막의 오아시스인지 알게 해주었으며, 무엇이 하루가 삼년같은지를 알게 해주었고, 무엇이 사랑에 미치는 것인지를 알게 해주었다. 왕영하를 보기 위하여 그는 매일 손백강의 집을 드나들었다. 책 몇권을 들고서 혹은 술과 안주를 들고서. 아무런 핑계거리가 없을 때는 그저 당시 구절을 읊었다. "출문무지우(出門無知友), 동즉도군가(動卽到君家)"(집을 나서니 친구가 없어서, 걷다보니 그대의 집으로 왔다.)

 

마른 몸매에 작은 눈, 그리고 긴 머리카락, 거친 의복 '괴물'이라고 불리는 욱달부는 왕영하의 마음 속의 '백마왕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욱달부의 입만 열면 문장이 되고 시가 되는 명사기질은 그녀의 방심을 가볍게 흔들어 놓았다. 그를 대할 때면 부지불식간에 앙모의 정을 내비쳤다.

 

욱달부의 계속되는 애정편지, 애정시, 집요하며 광적인 그의 태도에 왕영하의 마음은 흔들린다. 학식으로나, 재능으로나 지위나 명망으로 봐서 욱달부는 좋은 남편감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처가 있었다. 그를 선택하게 되면 '첩'이라는 욕을 먹게 될 것이다. 이리저리 생각해보고 득실을 고려하며 그녀는 갈등했고 고통스러워했다.

 

손백강은 욱달부에게 사랑의 불꽃이 이는 것을 보고는 물어보았다: 나는 너의 앞날이 걱정된다. 너는 도대체 일시적인 감정적 충동이냐, 아니면 장기적인 생각이냐. 만일 일시적 충동이라면 즉시 상해를 떠나 북경으로 가라. 거기에는 너의 손전군과 문아(文兒), 아웅(阿熊)이 있지 않느냐?"

 

욱달부는 고개를 흔든다. "나는 이미 이성을 잃었다. 일시충동인지 영구감정인지 어떻게 구분하겠는가. 나는 그저 그녀가 나의 생명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 그녀를 잃으면 나의 생명을 잃은 것과 같다." 말을 마치고 눈물을 흘린다.

 

욱달부의 곁에 있던 친구와 동료는 모두 이 불륜의 연애에 찬성하지 않았다. 왕영하의 욱달부에 대한 마음을 끊기 위하여, 손백강은 그녀를 집안이 부유하고 인재이며 일본유학까지 한 장극표(章克標)를 소개시켜준다. 누가 자신의 여인을 빼앗아 가려하자 욱달부는 불쾌해져서 동경유학때 알고 지내던 장극표를 불러서 술을 마시면서 그에게 말한다. "나는 이미 왕영하에게 깊이 빠졌다. 마가 끼었고, 혼이 달아나고 넋이 나갔다....." 장극표는 원래 왕영하에게 마음이 없었다.욱달부가 이렇게 비통해하고 상처입은 것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자신은 빠지겠다고 한다.

 

그러나 친구들은 두 사람의 결합을 극구 말렸다. 한번은 왕영하의 이름으로 욱달부를 프랑스공원에 불러낸다. 가련한 그는 서신을 진짜로 믿고 급히 달려간다 찬 바람을 맞으며 반나절을 기다린다. 

 

"모두 욱달부의 사랑에 미친 추태를 조소하고 있을 때, 나도 같이 몇 마디 거든 적이 있다. 누군가 그를 한번 놀려주자고 했다. 왕영하의 이름을 빌려서 그에게 프랑스공원에 나와서 얘기를 나누자고 서신을 보낸다....어쟀든, 모두 욱달부의 이런 행위를 반대했고, 동정하지 않았다. 그를 징벌하려는 것은 사실이었다. 약간의 질투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장극표 <세기휘수>)

 

친구들이 전력으로 말려서, 왕영하의 열정은 점점 식어간다. 그리고 1월말에는 항주로 친척을 찾아간다. 욱달부는 그 소식을 듣고는 기차역으로 달려가서 왕영하를 기다린다. 만나지 못하자 항주로까지 간다. 그러나 주소가 없어서, 그저 추운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상해로 돌아온 후, 그는 다시 손백강이 왕영하에게 서약계(徐若溪)라는 항주남자를 소개시켜주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온갖 방법을 강구하여 왕영하의 주소를 찾아낸다. 그리고 매일 편지를 보낸다. 심지어 하루에 여러 통을 보내기도 했다. 십여일의 서신왕래에서, 왕영하는 마침내 욱달부의 진정에 감동한다.

 

아마도 연애에 빠진 사람들의 IQ는 낮아지는지 아니면 바보가 되는지, 비록 나이가 이미 중년이 되었으면서도 욱달부는 한시도 왕영하를 떠나지 않는다. 그녀가 있으면 기쁘고, 하늘도 높고 땅도 넓었다. 그녀를 떠나면 우울해하고 고통스러워했다. 이 쉽게 잡을 수 없었던 사랑을 위하여, 그는 공공연히 <일기구종>를 발표하여 왕영하와의 사랑을 공개한다. 심지어 하루에 몇번 키스를 하는지, 어느때 가장 길게 키스했는지...이것은 바로 그의 "문학작품이며 모두 작가의 자서전"이라고 주장한다.

 

사랑의 늪에 빠진 사람은 항상 상대방의 결점을 보지 못한다. 왕영하는 작은 물고기와 같다. 욱달부는 진정, 낭만, 다정, 눈물과 상처로 사랑의 망을 짜서 그녀를 묶어두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한다: "오늘 이후 나는 너 하나만을 사랑하고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겠다."

 

왕영하는 진심을 모친을 감화시키고, 욱달부도 재주로 왕영하의 외조부(강남명사 王二南 선생)의 마음을 얻는다. 그들은 애정을 얻은 것이다.

 

1928년 음력 이월, 이 한 쌍은 요란하게 결혼식을 올린다. 그들은 생명, 영혼, 육체를 하나로 하였으며, "부춘강상신신려(富春江上神仙侶)"라고 불린다. 이때부터 상해에는 또 하나의 풍경이 나타난다. 의복이 화려하고 자태가 아름다우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젊은 여자와 남포의삼에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병색이 있는 중년남자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면서 귓속말을 한다. 곁에 있는 사람들은 "어느 공관의 도련님이 시녀를 데리고 길거리로 나왔나 보다." 이 말이 욱달부의 귀에 들어간다. 그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만족하는 표정이었다고 한다. 아주 자부심을 가지는 표정이었다.

 

인간세상에서 생활하게 되면 신선도 금방 잔혹한 현실에 부닥치게 된다.

 

왕영하는 선녀에서 인간세상으로 내려왔다. 그러면 야채도 사고, 요리도 하고, 차도 끓이고, 남자와 아이를 돌봐야 한다. 그러나 욱달부는 술을 목숨처럼 즐겼고, 술을 통쾌하게 마시기 위해서라면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았다. 술에 취하여 구치소에 닫히기도 하고, 밤에 눈 위에서 잠이 들기도 했다...가장 두려운 일은 욱달부가 조금만 기분이 좋지 않거나,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집을 떠나서 나가버린다는 것이다.

 

처음에, 왕영하의 한 마디 말이 욱달부를 기분나쁘게 한다. 그는 홑옷에 홑바지만 입고 집을 나가버린다. 왕영하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있을 때, 남편의 전문을 받는다. "돈과 시계를 도둑맞았다. 100원을 영파로 부쳐달라"

 

왕영하는 팔찌와 목걸이를 전당잡히고, 아이를 모친에게 맡겨놓고, 혼자서 배를 타고 영파로 간다. 여관의 방문을 열버보니, 욱달부는 몇몇 친구들과 술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그의 병적인 모습을 용서한다. 그의 건강하지 못한 신체를 안타까워한다; 그외에 그의 재능에 탄복한다. 그래서 그저 좋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왕영하자전>)

 

1931년 1월, 호야빈, 유석, 풍갱, 은부, 이구실 의 "좌련오열사(左聯五烈士)"가 해를 입는다. 상해문예전선은 백색공포에 바진다. 욱달부도 경고를 받았다. 게다가 심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말도 없이 집을 떠나버린다. 집에 남이있던 돈 500원도 가지고 가버린다.

 

욱달부가 부양의 고향으로 손전을 찾아갔다는 말을 듣고, 왕영하는 철저히 격노한다. 욱달부는 손전과 이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와 욱달부의 관계는 그저 동거였다. 그래서 그녀는 모친을 찾아 외조부에게 부탁하게 해서 외조부가 나선다. 욱달부가 '보증서'를 쓰도록 타협한다. 모든 저작출판권을 왕영하에게 양도한다는 것이다.

 

한바탕의 가정풍파는 가라앉았다. 그러나 왕영하는 욱달부의 마음 속에서 "여신"이 아니라 "속녀(俗女)"가 되어 버린다.

 

생활비용을 줄이고, 분규국면을 피하기 위하여, 1933년 4월, 그들 일가는 항주로 이사간다. 항주에서 욱달부는 원고료를 선급으로 지급받아 왕영하에게 "풍우모려(風雨茅廬)"를 지어준다. 그리고 왕영하와 함께 자주 각종 연회를 개최하거나 참석한다. 젊고 예쁘며 기질이 비범한 왕영하는 사교계에서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는 스타가 된다.

 

욱달부는 사교를 좋아하지 않고, 자주 산수와 작품에 치중했다. 그와 왕영하의 관계는 점점 더 소원해진다.

 

1936년 2월, 욱달부는 진의(陳儀)의 요청을 받아 복주정부로 가서 일하게 된다. 이번에 남하하면서 왕영하를 데려가지 않는다. 그는 왕영하에게 너무 오랫동안 갇혀 있어서 자유와 환창(歡暢)을 갈망하게 된 것이다. 혼자서 복주로 간 것은 그가 일생동안 후회하는 결정이 된다.

 

복주에 도착한 후, 그는 왕영하를 그리워한다: 저녁에 혼자 앉아서 무료하면 왕영하에게 서신을 썼고,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처음 연애하던 시기와 같았다. 왕영하가 복주로 가겠다고 하자, 그는 당황하며 극력 저지하고, 심지어 오겠다고 하면 사직하겠다고까지 말한다.

 

항전발발후, 왕영하는 여수(麗水)로 피난을 가서 절강성 교육청장 허소체(許紹棣)와 한 집에 살게 된다. 두 사람은 빈번히 교류하였고, 금방 욱달부는 허소체와 왕영하에 관한 소문을 듣게 된다. 그러나 그는 별 일이 아니라고 여긴다. 항일로 그는 전선을 뛰어다니느라 집안 일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고, 그는 왕영하를 믿었다.1938년, 욱달부는 무한으로 가서 군사위원회 정치부 제3청 설계위원으로 부임하기 전에 집으로 갔지만 왕영하를 만나지 못한다. 그리고 허소체(절강성 교육청장)가 왕영하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들을 여러 통 보게 된다. 사랑과 원한이 교차하면서 한구(漢口)의 <대공보>에 이런 <심인계사(尋人啓事)>를 싣는다.

 

"왕영하 여사 앞:

 

난세에 남녀의 이합은 원래 정상이다. 당신과 모 군의 관계, 그리고 가지고 간 보석 악사세라 현금, 계약서류등은 모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신의 모친과 아이가 많이 그리워하고 있으니 사는 곳을 알려달라.

 

욱달부 근계"

 

이것만으로는 욱달부의 한이 풀어지지 않았다. 그는 허소체가 왕영하에게 보낸 서신을 발행하여 사람들이 볼 수 있게하고자 생각한다. 친구인 곽말약(郭沫若)은 극력 제지한다. 다른 사람도 집안의 추한 일은 바깥에 떠드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는 스스로 자신의 집안의 추한 일을 천하에 알려버린다. 이것은 병태인지 아니면 그의 독특한 기호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욱달부는 무한에서 왕영하를 찾아낸다. 그제서야 그녀가 허소체와 도피행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허소체는 절강에 있었다). 부인을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그는 다시 한번 사죄광고를 낸다:

 

"달부는 신경실상(神經失常), 어언불합(語言不合)으로 왕영하 여사를 떠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사람을 찾기 위하여 그녀와 모군의 관계 및 보석을 가지고 갔다는 등의 일을 모함했다. 사후에 생각해보고, 친구의 설명을 듣고 비로소 모조리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에 신문에 성명을 실어 깊은 사죄의 뜻을 전한다.

 

욱달부 계"

 

이 두 번의 광고로 욱달부와 왕영하는 무한삼진에서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른다.

 

친구들이 권하여, 그들은 다시 함께 살기로 협의를 체결한다. 큰 바람과 파도가 지나간 후, 그들은 평정하고 행복한 시절을 보낸다.

 

1938년말, 욱달부는 처자식을 데리고 상심지를 떠나 싱가포르 남양제도로 가서 항전의 선전업무를 계속한다. 비록 상심지에서 멀어졌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원망이 남아 있었다. 싱가포르에는 말리는 친구도 없었다. 그는 더더욱 미치광이가 되어간다. 처를 꼬셔내고, 친구의 홍안지기를 빼앗아간(당시 왕영하는 친구인 손다자(孫多慈)를 허소체에게 소개시켜주었다) 허소체를 생각하면 고통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자신과 친구의 한을 풀어주기 위하여 그는 집안을 밍치는 댓가를 치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 1939년 3월 5일 홍콩의 <대풍> 순간잡지에 19수의 구체시 <훼가시기(毁家詩記)>를 싣는다. 거기의 주석에서 이렇게 적는다:

 

"허군은 어쨌든 나의 친구이다. 그는 나의 처와 간음했다. 자연히 적구(敵寇)가 간음한 것보다 훨씬 심하다. 그리고 대난을 앞두고 이런 개인의 사소한 문제는 그저 잠시 미뤄놓을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민족을 위한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

 

불가사의한 점은 싱가포르는 원래 홍콩의 <대풍>을 보기 쉽지 않다. 그러나 욱달부는 고의로 1부를 집안에 남겨둔다.

 

이런 미친 남자를 앞에 두고, 왕영하도 미쳐버린다. 계속하여 <대풍>에 공개서신을 보내어 서로 공격한다. <대풍>은 일시에 낙양의 종이값이 비싼 국면을 맞이하고(洛陽紙貴), 해외에서 풍미한다. 비록 왕영하가 전력을 다하여 반격했지만, 사람들은 욱달부가 바람난 처를 질책하는 것에 뭐라고 하지 않았다. 바람났다는 점에 대하여 왕영하는 자서전에서 부인한다. 자신은 그저 허소체와 손다자를 연결시켜주었을 뿐 중간에 애매한 관계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복량(陳福亮)은 <욱달부대전>에서 그 중에 숨은 비밀을 정교하게 드러낸다:

 

"아마도 그는 죽을 때까지 몰랐을 것이다. 그 자신은 몸에 병이 있어서 이런 대미인을 감당할 수가 있었겠는가? .... 그리고 그 관료는 심기가 깊었다. 그리고 난세에, 청순한 여인으로 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왕정지(汪靜之)는 <왕영하의 비밀>에서 이렇게 썼다: "무한에서, 그는 일찌기 왕영햐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몰래 낙태를 한 바 있다. 왕영하가 대립(戴笠)의 애인이었다고 말했다!" 아마도 욱달부가 억울하게 죽었으므로, 왕정지가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따. 어쨌든 이것은 왕정지 혼자의 말이고 믿기는 어렵다.

 

사정이 이에 이르니 이제는 이미 쏟아진 물이다. 거둬 담을 수가 없게 되었다. 파경이 온 것이다. 12년간 함께 살았던 부부는 양패구상이 되어 노연분비(勞燕分飛)한다.

 

왕영하가 귀국하던 날, 욱달부는 사무실의 창문앞에 서 있었다. 손에는 왕영하가 그에게 보낸 마지막 서신을 쥐고 있었다. 먼 곳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왕영하가 탄 배는 부두에 정박해 있었다. "웅...웅...."하는 기적소리가 들려왔다. 짙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배가 천천히 떠나는 것을 보면서 그의 눈물은 계속하여 흘러내렸다

 

대제양류기의의(大堤楊柳記依依)

차거이다회자희(此去離多會自稀)

추풍무릉인독숙(秋風茂陵人獨宿)

개풍극야치쌍비(凱風棘夜雉雙飛)

종무칠자위애사(縱無七子爲哀社)

유유삼춘각연휘(猶有三春各戀暉)

수청등전아배설(愁聽燈前兒輩說)

아낭진개기시귀(阿娘眞個幾時歸)

 

그는 모자의 정을 이용하여 왕영하의 마음을 움직여보고자 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이미 멀어졌다. 정도 없어졌고, 사랑도 남아있지 않았다.

한때는 사랑이 깊었는데, 이제는 마음이 서로 달라졌다. 그녀가 세상의 부화(浮華)에 마음이 빠져서 원래의 사랑을 잊어버린 것인가, 아니면 그가 천성적으로 다정하여 사랑을 희롱한 것인가.

 

시비대착전두공(是非對錯轉頭空)

일체환작연우몽(一體幻作煙雨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