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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한국/한중관계

북한의 예술단체

by 중은우시 2013. 11. 17.

글: 도단방(陶短房)

 

조선의 예술단체는 모두 국영성격이다. "노단(老團)","신단(新團)"으로 나눌 수 있다.

외부에서는 북한에 가장 유명한 "삼대단(三大團)"이 있다고 말한다: 피바다가극단, 만수대예술단 및 국립민족예술단.

 

피바다가극단은 중국대륙에서도 큰 명성을 갖고 있다. 이 가극단이 유명하게 된 것은 김일성을 찬양하는 가극 <피바다>이다. 이 가극단의 전신은 바로 <피바다>를 공연하기 위하여 소집된 북한의 우수한 가극배우들이다. 1971년 7월 17일, 이들 배우는 명을 받아 가극단을 조직하고, "피바다"로 명명한다. 이 가극단과 만수대가극단이 공동으로 공연한 가극 <꽃파는 처녀>는 나중에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문혁때 중국으로 전해진다. 당시 문화생활이 부족하고, 국산영화에 예쁜 여주인공이 심각하게 부족했던 중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는다. 그리하여 표를 하나 구하는 것이 아주 어려울 정도였다. 주제곡 <꽃파는 처녀>도 한때 중국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불렀다. 부를 줄 모르는 사람도 흥얼거릴 수 있었다. 이 가극단은 북한에서의 운명이 기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79년 소련 십월혁명기념공연에 참가하기 위하여, 이 가극단은 북한고려항공에서 도입한 소련제 TU-154여객기를 타고 간다. 소련 노보쿠츠네크부근에서 추락하여 전체 배우와 승무원 152명이 전원 사망한다. 이번 사고는 북한 고위층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때부터 고위층의 해외방문시 모두 기차를 타고 가게 된다.

 

만수대예술단은 "조선제일가극단"이라고 불린다. 1946년에 성립되었고, 당시에는 "평양가무단"이라 불렀다. 1969년 9월 2일, 만수대예술극장을 만들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친다. 노래, 춤, 희극과 관현악을 하나로 합치고 여러 분야을 종합한 대형종합예술단이다. '김일성어용단'이라는 별칭이 있다. 김일성이 생전에 가장 아끼던 조선예술단체이다. 만수대예술단은 자신의 '공연장'을 가지고 있고, 평양시중심에 있으며, 1976년에 완공한 예술극장이다. 이것은 북한의 예술단체중에서 보기 드문 경우이다.

 

북한국립민족예술단은 1947년에 성립되었다. 북한 전통음악,무도와 희극작품을 발굴, 회복하는 것을 특색으로 하는 예술단체이다. 다만 일찌기 김일성, 김정일의 지시하에, 김씨부자의 찬가와 찬미희극을 공연한 바 있다. 이 예술단은 북한에서 해외공연을 가장 많이 한 예술단체이다. 그리고 해외공연하는 곡목은 대부분 국제적인 인지도가 높은 민족전통프로그램이다. 혹은 민족전통프로그램의 개량품이다. 국제인지도가 비교적 높다. 일찌기 많은 상을 받았다. 2010년 9월 상하이엑스포에서 북한이 유일하게 파견한 예술단체이기도 하다. 이 예술단에서 엘리트를 뽑아서 임시조 조직해서 보냈다. 이 예술단의 인구에 회자되는 대표작은 전통가극 <춘향전>이다. 이 가극은 마찬가지로 중국에 전래되어 열렬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따. 그리고 중국예술가가 월극의 여러 극으로 개편했다.

 

상술한 "삼대단"은 자주 해외공연을 하여 명성을 외국에 떨쳤다. 기실 북한 국내에서는 일부 "노단"의 명성과 지위가 이 "삼대단"에 못하지 않다. 예를 들어, 1946년 8월 8일 성립되고, 처음에는 "조선중앙교향악단"이었던 조선국립교향악단이 있다. 이는 북한에서 수준이 가장 높고, 공연기회가 가장 많은 교향악단이다. 이 단은 처음에 혁명가곡과 김일성송가를 연주하면서 성공했다(첫번째로 유명해진 곳은 '김일성장군의 노래'이다.) 그리고 북한영화의 영화음악도 담당했다. 1970년 이 단은 서양악기와 조선전통악기를 같이 연주하는 "주체교향악"을 처음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를 특색으로 삼는다. 이 단의 저명한 "남성단"이다. 성립이후 지금까지, 여자 단원을 받아들인 적이 없다. 만수대예술단과 마찬가지로, 이 단은 자신의 '공연장'이 있다. 평양모란봉극장.

 

"노단"중 몇 개의 저명한 군대예술단체도 있다. 예를 들면, 1947년 2월 22일에 성립된 조선인민군협주단이다. 공연곡목은 군가, 저명한 북한영화드라마와 가극주제곡을 위주로 한다; '조선공훈국가합창단'은 1947년 "김일성장군의 노래'의 공연을 위하여 특별히 조직하였고, 1992년 인민군공훈합창단으로 개칭한다. 당시에는 인민협주단의 한 갈래였는데, 1998년 9월 독립운영을 한다. 2004년 4월에 '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으로 개칭ㅇ된다. 2007년 7월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공훈국가합창단'으로 개칭된다. 전해진 바로는 김정일이 가장 좋아하는 단체라고 한다.

 

"신단'은 김정일 혹은 김정은의 지시로 만든 것이다. 최신유행프로그램을 공연하는 예술단체이다. 왕재산경음악단, 윤이상실내관현악단, 보천보전자악단, 모란봉악단, 은하수관현악단, 삼지연악단등이 있다.

 

왕재산경음악단은 "신단"중 역사가 유구하고, 명성이 비교적 큰 것이다. 1983년 7월 22일에 성립되었고, 김정일이 '군중이 듣기를 좋아하고 보기를 즐기는 현대민족음악을 발전시켜라'는 지시에 따라 성립된 북한 최초의 순경음악단이다. 가볍고 유행하는 현대교향악작품을 위주로 하여, 조선중앙TV와 평양라디오방송국이 일상적으로 방송하는 악곡은 이 단이 연주한 것이 가장 많다고 한다. 이 단의 부설가무단은 가벼운 풍격의 가무프로그램을 공연한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현송월음란동영상'이라고 사칭한 동영상의 장면은 기실 앙재산경음악단이 2011년경 공연한 사진이다. 이 단은 김정일의 어용 '신단'이었다. <정일봉의 우뢰소리>등 김정일을 찬양하는 가곡은 이 악단이 먼저 내놓았다.

 

윤이상실내관현악단은 1990년에 성립된 북한 유일의 실내교향악단이다. 소형실내교향악을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년에 1번씩 북한이 개최하는 "윤이상예술제"는 이 악단이 주로 등장하는 경우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 악단은 실제로 조선국립교항악단에서 일부 정선된 구성원으로 만들어진 '독립악단'이라고 한다. 이 악단의 평상시 편제는 여전히 국립교향악단이고, 실내교양악의 명의로 출현할 때는 비로소 '독립명칭'을 쓴다고 한다.

 

보천보전자악단은 김정일의 또 다른 '어용악단'이다. 1985년에 성립되었고, '왕재산'이 전통서양교향악기로 곡목을 연주하는 것과는 달리, '보천보'의 특색은 전자악기등 최신악기를 써서 북한 전통의 민요와 혁명가곡을 연주한다는 것이다.

 

모란봉악단은 김정은의 '어용단'이다. 2012년초에 성립되었다. '신단'중에서도 비교적 새로운 악단이다. 특징은 대량의 최신악기를 도입하고, 연출프로그램도 새로운 프로그램을 위주로 한다는 것이다. 미키 마우스와 곰돌이 푸가 등장한 것도 김정은이 친히 관람한 공연이었다. 바로 이 악단이 처음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때였다.

 

은하수관현악단은 2009년 5월에 성립되었다. 국립교향악단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한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곡목의 연주와 국제음악교류를 사명으로 하는 예술단체이다. 그리고 부설 가무단이 있고, 교향악풍격의 예술가곡을 공연하는 것을 위주로 한다.

 

삼지연악단은 2009년 1월에 성립되었고, 전신은 만수대예술단 공훈여기악중주조이다. 주로 가볍고 생활에 가까운 교향악음악소품을 연주한다. 이 악단의 가장 큰 특색은 최신유행의복, 신선한 무대매너이다. 이 악단에는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다. 그리고 많은 미녀들이 있어 '미녀단'이라는 애칭도 있다.

 

"현송월등이 총살되었다"는 보도에 따르면, 왕재산경음악단과 은하수교향악단이 이 사건으로 이미 해산되었다고한다. 다만 이를 입증하는 증거는 아직 없어 이 소문이 진실인지 여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