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진)

이옹중(李翁仲): 흉노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남월(南越) 사람

by 중은우시 2013. 8. 16.

글: 장부걸(張溥杰)

 

 

 

서주(西周)가 멸망한 후, 기원전770년, 주평왕(周平王)은 낙양으로 천도한다. 이때부터 동주시대가 시작된다. 주고왕(周考王) 원년(기원전440년)때, 동생 게(揭)를 하남(河南)에 봉하여, 주공(周公)의 관직을 이어가게 하니, 그가 서주환공(西周桓公)이다. 이는 주왕조 최후의 분봉(分封)이다. 주왕조가 토지의 분봉을 마친 후, 주나라 천자(天子)도 이곳으로 옮겨서 거주한다.

 

기원전367년, 서주환공은 어린 아들 반(班)을 공(鞏)에 왕으로 봉하니 그가 동주혜공(東周惠公)이다. 동주는 처음에 제후국중 하나로 건립되었다. 주난왕(周赧王)에 이르러, 동주, 서주는 각각 지벙하고 주난왕은 국도를 서주국으로 옮긴다.

 

이 동주의 개국군주의 신분, 동주국분열의 원인에 대하여는 서로 다른 견해가 있다. 한가지 견해는 동주혜공이 주위공의 어린아들 근(根)이고 서주공의 동생이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견해는 동주혜공은 주위공의 손자로 서주공의 아들이었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관점은 동주혜공은 주현왕(周顯王) 2년(기원전367년), 주위왕이 죽은 후, 공국의 옛땅에 분봉되었다고 한다. <사기.주본기>, <한비자.내저설하편>등 문헌에 따르면, 동주국은 바로 주위왕의 사후 형제간의 불화로 어린아들 근(根)이 조(趙), 한(韓)의 사주하에 독립해서 공백국(鞏伯國)의 옛땅에 건국한 것이라고 본다.

 

동주국의 수도는 개략 지금의 하남성 공의시 효의진 서쪽의 강북촌 일대라고 본다. <사기.진본기>의 기록에 따르면, 진장양왕 원년(기원전249년), "동주국의 군주는 제후들과 함께 진나라를 치고자 모의했다. 진나라는 상국 여불위로 하여금 토벌하게 하여 그 나라로 들어갔다." 이렇게 동주국은 멸망한다.

 

동주의 멸망이후, 진나라는 다른 여러 나라를 연이어 멸망시킨다. 기원전221년까지 진나라는 한, 위, 조, 초, 연, 제의 6국을 차례로 멸망시키고 스스로 천하통일했다고 자랑한다. 기원전194년까지, 서한연국(西漢燕國)의 위만(衞滿)은 평양일대에서 주나라의 마지막 제후국 조선(朝鮮)을 멸망시킨다. 이로써 주왕조는 완전히 멸망했다.

 

진앙조가 6국을 통일한 후, 통일국가를 건립한다. 당시 남월 자렴(慈廉)이라는 곳에는 이옹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키가 1장3척에 이르렀다. 진나라때의 1장은 10척이다. 1척은 개략 23.1센티미터이다. 그래서 이옹중의 키는 개략 3미터가량이라고 할 수 있다. 야오밍보다도 훨씬 컸다.

 

이옹중이 젊었을 때, 일찌기 고향에서 일을 한 적이 있는데, 당연히 육체노동이다. 그 덩치와 그 키에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낭비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는 십장으로부터 채찍으로 얻어맞았다. 그리하여 그는 화가 나서 외지로 도망친다. 도망쳐서 진나라로 온다. 속담에 "담장안에 꽃이 피면 담장밖에 향기가 나고, 밖에서 불러온 스님이 염불을 잘한다"는 말이 있다. 이옹중은 진나라로 가서는 관리가 된다. 관직은 사례교위(司隷校尉)에 이른다.

 

사례교위는 한무제때 부터 있었던 관직이다. 그러므로 이 기재는 아마도 사관이 그가 생활하던 시대의 관직으로 묘사한 것일 것이다. 즉 오늘날로 말한다면 감찰부장과 같은 직위이다.

 

진시황에 천하를 통일한 후, 그로 하여금 병력을 이끌고 임조(臨兆)를 지키게 한다. 이옹중이 죽은 후에는 진시황이 그의 모습을 동상으로 만들어 함양궁 사마문 바깥에 두게 한다. 동상의 안에는 수십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천천히 흔들면 움직일 정도였다. 동상을 만든 것은 논에 허수아비를 만들어 참새를 쫓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흉노인들이 함양에 올 때 멀리서 이옹중의 동상을 보고는 진짜 그인 것으로 생각해서 감히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나중에 사람들은 아예 그를 궁궐 묘당과 능묘 앞에 세우는 동인(銅人) 혹은 석인(石人)을 모두 '옹중(翁仲)'이라고 부르게 된다. 사마정의 <색은>에서는 "각중천석(各重千石), 좌고이장(坐高二丈)으로 옹중이라 불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