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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진)

미천백홍(彌天白虹): 부소(扶蘇)의 이야기와 전설

by 중은우시 2013. 4. 27.

작자: 미상 

 

 

 

1. 묘장의 수수께끼

 

1970년대말 고고학자들은 섬서성 진시황병마용박물관 삼호갱의 서쪽 개략 100미터 지점에서 고묘를 하나 발견했다. 이 고묘의 규모는 이미 발견된 진시황릉의 모든 배장묘들보다 규모가 컸다. 묘주인은 확실히 진왕조에서 지위가 상당히 높은 인물이라 할 것이다. 그는 누구인가?

 

어떤 학자는 이 묘의 형제와 규모에 근거하여, 묘주인이 신분이 특수한 공자라고 추측했다. 만일 여기에 그것이 병마용지하군진사령부 삼호갱의 후방에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공자는 생전에 군사와 관련있는 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진시황은 십여명의 아들이 있는데, 군사와 관련있는 공자는 장남 부소 한 사람이다. 그래서 추측해보면, 병마용갱의 좌상방에 있는 이 큰 무덤은 아마도 부소의 묘라고 할 것이다.

 

당연히, 이것은 단지 한 사람의 의견일 뿐이다. 부소의 묘가 어디에 있는지는 지금도 논쟁이 있다. 이전의 기록과 전설을 보면, 많은 사람들은 부소의 묘가 섬서성 수덕현성 동쪽의 소속산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그 꼭대기에는 8미터 높이의 장방형 묘가 있다. 그리고 태자사(太子祠)와 "진장자부소묘(秦長子扶蘇墓)"라는 석비가 서 있다. 이 묘는 웅굴기위(雄崛奇偉)하다. 그 위에 서면, 방원 삼십리의 산천경물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외에, 수덕성안에는 부소항(扶蘇巷)과 부소묘(扶蘇廟)가 있다. 성의 북쪽에는 부소가 달을 구경한 적이 있다는 월궁사(月宮寺)가 있다.

 

또 하나의 주장이 있다. 부소묘는 섬서성 임동현 동대왕진의 남산파에 있다는 것이다. 지명은 용골퇴(龍骨堆)인데, 속칭 태자묘(太子墓)이다. 이곳은 진시황릉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다.

 

보기에 진나라 병마용 3호갱 좌후방의 대묘가 부소묘인지를 확정하려면 더욱 유력한 직접증거가 있어야 한다. 이 묘는 곧 발굴할 것이라고 하니, 진상이 드러날 것이다.

 

2. 범안조폄(犯顔遭貶)

 

말하자면 길다. 그것은 진시황이 육국을 통일한 후 9년째 되는 해이다. 즉 기원전212년이다. 어느 날, 진시황이 함양부근의 양산궁으로 갔다. 산위에서 멀리 이사의 가마와 수행인원이 많은 것을 보고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태감은 이 일을 승상에게 고한다. 승상은 바로 마차의 말과 수행인원을 줄였다. 진시황이 이를 알고는 양산궁의 사람중에 그의 말을 누설한 자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대노하여 심문하였으나 아무도 자백하지 않았다. 진시황은 명을 내려 당시 곁에 있던 사람을 모두 죽여 버렸다.

 

이 일은 황제를 위하여 장생불사의 약을 찾고 있던 후생(侯生), 노생(盧生)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함게 상의한다: "황상은 그의 권위를 수립하기 위하여 마구 사람을 죽인다. 이렇게 포악하고 잔인하니, 이런 사람을 위하여 우리가 장생불사약을 찾아주어야 하는가? 만일 찾지못하거나, 찾더라도 효험이 없으면, 죽임을 당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한 달도 없는 어두운 밤에 두 사람은 몰래 도망치고 만다.

 

진시황은 두 사람이 도망갔다는 소식을 듣고, 아주 분노한다. "내가 얼마전에 천하의 서적을 몰수하고, 시대에 맞지 않는 책은 불태워버렸는데, 그들 유생들이 분명히 마음에 원한을 품은 것이다. 이 후생, 노생을 내가 잘 대해주었는데, 감히 몰래 떠나버리다니 그리고 나를 비방하다니. 다른 유생들도 어떤 자들은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백성을 미혹시킨다." 그래서 어사에게 명하여 함양성내의 모든 유생을 붙잡아 심문하게 한다. 유생들은 고문을 당해내지 못하고, 속속 서로 고발하고 자신만 빠져나가려 한다. 진시황은 이들 유생중 460여명을 모조리 산채로 묻어서 죽인다.

 

진시황의 장남 부소는 '갱유'소식을 듣고 나아가서 진언한다: "천하가 이제 막 안정되었고, 먼 곳의 백성은 아직 귀순하지 않았습니다. 이들 유생들은 모두 공자의 책을 읽고 배웠는데, 지금 부황이 이렇게 엄격한 형법으로 그들을 처치하면, 저는 천하가 안정되지 못할까 우려됩니다. 부황께서는 자세히 살펴보시고,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대노한 진시황은 이런 간언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아니라, 이 아들이 고의로 자신에게 반항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부소는 좌천된다. 북방의 상군으로 가서 몽염의 수비군에서 감군으로 지내게 된다.

 

3. 사구음모

 

2년후, 즉 기원전210년 진시황은 동남방 일대로 순유를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진시황은 병이 든다. 그리고 갈수록 심해졌다. 그는 자신이 얼마 더 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자신에게 일찌기 간언한 바 있는 장자 부소를 떠올리고 부소에게 황위를 물려주려 한다. 그래서, 수행하던 중거부령 조고에게 유조를 초안하여 공바주소에게 보내도록 분부한다: "병권을 몽염에게 넘기고, 급히 돌아와 장례에 참가하라." 조서가 발송되기도 전에, 대오는 사구(지금의 하북성 거록현 동남쪽)에 도착한다. 진시황은 거기서 목숨을 거둔다.

 

진시황의 사후, 승상 이사는 국가에 주군이 없어지면 사망소식으로 진시황의 아들 및 천하인의 반란을 불러올지 모른다고 우려하여, 사망소식을 전하지 않는다. 이를 아는 자는 진시황을 수행하던 막내아들 호해, 조고 및 5,6명의 환관들이었다. 그들은 진시황의 시신을 통풍이 잘되고 은폐할 수 있는 온량거에 놔두고, 백관들은 평상시대로 일을 아뢰고, 음식을 넣게 했다. 이사, 조고등이 모두 결정해서 명을 내렸다.

 

수중에 황제의 인새와 유조를 장악한 조고는 이것이 얻기 힘든 찬탈기회로 여긴다. 그는 호해에게 말한다: "황상은 장남 부소에게만 유조를 남겼다. 그가 돌아오면 즉시 황제가 될 것이다. 너는 약간의 토지조차 분봉받지 못할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으냐." 호해는 말한다: "부황의 뜻은 아주 분명합니다. 형님이 돌아와서 즉위하게 하는 것이니 나는 형님을 죽이고 찬탈하는 불충불효, 불인불의한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조고가 말한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상탕, 주무왕도 그들의 군왕을 죽였지만, 천하는 모두 그들이 잘 죽였다고 합니다. 위출공은 그의 부친을 죽였지만 위나라사람들은 그를 옹립했습니다. 모든 일이 자잘한 것에 신경쓰면 안됩니다. 자잘한데 신경쓰다 큰 것을 놓칩니다. 망설이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반드시 화가 닥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호해도 동의한다.

 

두 사람은 승상 이사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를 논의한다. 조고는 이사에게 말한다: "장남 부소는 덕과 재능을 모두 갖추었고, 인심을 얻고 있다. 몽염은 국가에 큰 공을 세웠고, 지혜와 용기를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교분이 깊으니, 만일 부소가 돌아와서 황제가 되면, 분명 몽염을 승상으로 삼을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당신의 관운도 끝날 것입니다. 나는 입궁한지 이십여년이 되었지만, 진황에게 파면된 승상중에 결말이 좋은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말은 이사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사는 원래 동의하지 않다가, 나중에는 찬탈음모의 참여자가 된다.

 

그래서, 이사는 거짓으로 시황제의 유조를 받드는 것처럼 하여 호해를 태자로 앉게 한다. 그후에 다시 유조를 하나 위조하여 장남 부소에게 보낸다; "나는 천하를 순행하면서, 각지 명산의 신명에 제사를 지냈다. 수명연장과 복을 내려주기를 기도했다. 현재 부소와 장군 몽염은 수십만 대병을 거느리고 변방에 주둔하고 있은지 이미 여러해가 되었다. 국가의 영토를 늘이지 모사였고, 사병이 사상은 심각하다. 공로는 조금도 없고 오히려 여러번 글을 올려 나의 행동에 대하여 비난하엿다. 부소는 사람의 자식으로, 효순을 모른다. 감군의 직무를 해제하고 조정으로 불러 태자에 앉히지 않는다고 하루종일 불평불만에 빠져 있으니, 이제 검을 너에게 내리니, 그 검으로 자결하라. 장군 몽염은 부소를 따라 외지로 갔으나, 부소의 잘못을 시정하지 못하고, 충성으로 국가에 보답하지 못했다. 이제 너에게도 자살을 명하니, 군대를 부장군 왕리에게 넘겨라" 이사와 조고는 조서를 봉하는 곳에 황제의 인새를 찍는다. 그후에 호해의 수하심복에게 위조된 유조를 가지고 상군으로 가게 한다.

 

4. 창연음검(愴然飮劍)

 

부소는 사신의 손에서 조서를 받아 열어보니, 비분강개를 금치 못한다. 조서에서 여러번 그의 죄상을 얘기했지만, 그것은 모두 존재하지도 않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부황의 명령이다. 명에 항거하는 것은 군신부자의 도리에 어긋난다. 명을 받들려니 가슴이 아프다 그는 검을 받아, 집으로 들어가서 자살을 준비한다.

 

몽염은 그 말을 듣고 달려왔다. "지금 황상은 외지를 순유하고 있는데 아직 태자를 책봉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삼십만대군을 이끌고 변방을 지키는게 공자를 이 곳으로 오게해서 감군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천하안위에 관련되는 중대한 임무입니다. 사신 한명이 왔다고 바로 자살한다면, 그 안에 간사한 음모가 없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바라건데 회신을 한 다음 확실히 황상의 뜻이라면 그 때 죽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부소는 곡을 하며 말한다: "부친이 아들에게 자살하라고 말하는데, 뭘 또 다시 물어보겠습니까." 이때 따라온 소신이 곁에서 계속 재촉한다.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마십시오 공자께서는 이제 떠나실 때가 되었습니다." 부소는 눈물을 닦고, 검날을 목에 대고 긋는다. 선혈이 차가운 북방의 토지 위에 떨어진다.

 

몽염은 이를 보고, 가슴아파하였다. 그는 부소처럼 자결하지 않고, 조정에 다시 글을 올린다. 그러나 나중에 역시 조고와 호해에게 죽임을 당한다.

 

5. 천명오열(泉名嗚咽)

 

수덕현성 동남 3리에 마을이 있는데 오열천촌이라고 한다. 그 이름은 부소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장남 부소는 정궁낭낭 소생이고, 진이세 호해는 서궁낭낭 소생이라고 한다. 정궁낭낭은 아들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그는 몰래 궁에서 빠져나가 산과 물을 건나 상군으로 가서 아들을 조문한다. 그녀는 길을 묻고 물어 왔다. 마침내 부소가 상군성 남쪽 노가만촌의 입구에 있는 대석벽 아래에서 자살했다는 말을 듣는다. 이 정궁낭낭은 그 석벽아래로 가서 석벽을 향헤 곡을 한다. 3일밤낮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눈물이 마른 후에는 피를 흘린다. 그녀의 곡성은 천지를 감동시켰고, 부소의 하늘에 있는 영혼도 감동시킨다. 대석벽에는 눈물흔적같은 샘물이 솟아났다. 샘물은 석벽아래로 떨어지는데, 마치 울면서 호소하는 것같다. 부소와 모친이 마주하고 곡을 하는 것하며 곡성이 오열하여 사람의 마음을 찢는 것같다.

나중에 사람들은 석병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을 오열천이라고 부른다. 노가만촌은 오열천촌으로 불리게 된다.

 

오열천에 관하여, 또 하나의 전설이 있다. 부소가 가짜 조서를 받은 후, 비통해 하였다. 그는 황급히 말 등에 올라사터 말이 가는대로 무정하 강물을 따라 동남쪽으로 간다. 말이 1시진을 달린 후, 돌연 더 이상 달리지 않았다. 원래 대석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부소는 말 등에서 매려와 대석벽을 마주하고는 대성통곡했다. 그는 삼일밤낮을 통곡하다가 눈물이 마르고 피눈물을 흘리고, 목소리가 오열했다.

부소의 곡성은 상군의 온 마을을 진동한다. 백성은 모두 이 석벽의 앞으로 몰려 들어온다. 호해의 사신은 향민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우려하여, 시종과 병졸들에게 강제로 부소를 말에 태워 성으로 돌아간다. 바로 이 때, 대석벽에 무수한 눈물같은 샘물이 솟아났고 줄줄 흘렀다. 그리고 오열의 소리가 난다. 이 샘 이 소리를 듣고 둘러싼 마을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린다.

부소는 시종과 병졸들에게 강제로 말에 태워졌다. 그는 허리에 보검을 꺼내서, "하늘이시여(蒼天啊)"라고 소리치고, 자신의 목을 벤다. 선혈이 흐르고 오열샘물을 붉게 물들인다.

이 때부터 이 샘물은 "오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6. 미천백홍

 

부소가 죽은 후, 사람들은 그의 생전의 현덕을 감사한다. 그의 시신을 고상군성보안의 소속산 꼭대기에 묻고는, 사시사철, 제사를 지낸다. 기괴한 것은, 부소의 묘 위에 자주 흰색의 무지개가 뜬다는 것이다. 미천관일(彌天貫日)하고 오랫동안 흩어지지 않는다. 처음에 현지의 백성들은 부소의 원혼이 흩어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여겼다. 나중에 소속산산꼭대기에만 흰 무지개가 뜨면 이 일대는 안정되지 못하고, 무슨 재난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한다.

 

명나라 가정연간에 이르러, 운유하는 노도사가 온다. 지방관은 미천백홍의 일을 노도사에게 들려준다. 그리고 노도사를 모시고 소속산의 꼭대기에 오른다. 노도사는 부소묘를 왼쪽으로 세번, 오른쪽으로 세번 돌고는 탄식한다: "백홍은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원한의 기운이다. 그러나 이 원기는 부소공자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지방관은 놀라서 원인을 묻는다. 노도사는 말한다: "당초, 잔혹한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부소는 직언하여 황상에 항거하여 이 곳으로 좌천되었다. 나중에 다시 해를 입어 억울하게 죽었다. 천지간의 신령이 감응하여, 억울하게 죽은 유생들이 유일하게 그들을 위해 말해준 부소공자를 따라왔다. 그래서 많은 원혼이 함께 있다보니 그 원기가 하늘에 가득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들 유생들의 원기를 풀어줄 수 있을 것인가? 노도사는 사묘를 지을 것을 건의한다.

그리하여, 소속산 꼭대기에는 태자사가 있다. 고주성내의 부소항안에는 신령묘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