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제환공은 제나라의 15번째 국군이다. 그는 재위기간동안 현명하고 능력있는 신하를 기용하고, 개혁개방하여 제나라를 신속히 천하강국으로 만들었다. 그는 "존왕양이(尊王攘夷)"의 기치를 내걸고, 북으로 산융(山戎)을 치고, 남으로 초국(楚國)을 정벌하여 주천자(周天子)의 상사(償賜)를 받는다. 그의 "구합제후(九合諸侯), 일광천하(一匡天下)"는 춘추시기에 첫번째 패주가 되도록 만들었다. "구합제후"의 행동에서 그는 항상 '광부정의(匡扶正義)'를 이유로 내걸어, 그는 아무런 이의없이 회맹이 맹주가 된다. 그는 '남벌초국'의 전쟁에서 초국의 왕호(王號)를 취소시키고, 주왕실에 진공을 회복하게 하였다. 즉 주왕실에 신복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실질적으로 제나라의 패주지위를 승인한 것이었다. 이를 통하여 천하의 안정과 일종의 질서를 유지한다. 그러나, 이번에 제, 노(魯), 송(宋), 진(陳), 위(衛), 정(鄭), 허(許), 조(曹)등 국가가 연합하여 대규모 군사행동을 한 원인은 제환공 자신의 한 여인을 위한 것이었다!
제환공 즉위 30년(기원전656년) 봄, 제후연합군이 채국(蔡國)을 격파한 후, 연이어 초국을 토벌한다. 초성왕(楚成王)은 군대를 데리고 나가서 맞이했다. 그리고 사자(使者)를 제후연합군으로 보내어, 묻는다: "제나라는 북방에 있고, 우리 초나라는 남방에 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두 국가는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왜 너희는 군대를 이끌고 우리 영토안으로 진입했는지 모르겠다." 제환공은 관중(管仲)에게 대답하라고 시킨다. 관중은 이렇게 대답한다: "과거에 소강공(召康公)이 우리나라의 선군 태공(太公)에게 명하여 말하기를: '오후(五侯)와 구백(九伯), 너희는 모두 토벌할 권한이 있고, 공동으로 주왕실을 보좌하라.' 우리 선군에게 토벌할 지역범위를 동으로 대해(大海), 서로는 황하(黃河), 남으로 목릉(穆陵), 북으로 무체(無棣)으로 하였다. 초국은 당연히 진공해야할 포모(包茅)를 바치지 않았다. 천자의 제사에 용품이 불완전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추궁하러 왔다. 소왕이 초국으로 남정하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이것때문에 문책하러 온 것이다." 초왕의 사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공물을 바치지 않았다. 확실히 그렇다. 그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그후에 감히 바치지 않지 못할 것이다. 소왕이 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것에 대하여는 우리 초나라 영토내가 아니다. 당신들은 한수(漢水) 변으로 가서 책임을 물어라." 제후군대는 다시 전진하여 경지(陘地)에 주둔했다.
양국군대는 여름까지 대치했다. 쌍방은 강화할 뜻이 있었고, 초성왕은 굴완(屈完)을 제나라 영지에 파견하였다. 제나라는 성의를 표시하기 위하여, 소릉까지 후퇴한다. 제환공은 제후의 군대를 배열시켜 진을 만들고, 그 후에 굴완과 한 대의 병거(兵車)를 타고 같이 보았다. 실제로 이것은 제환공이 초나라에 실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그는 자랑하듯이 굴완에게 말한다. 제후의 군대가 함께 병력을 일으킨 것이 설마 나 한 사람을 위한 것이겠는가? 선군의 우호관계는 당연히 유지해야 한다. 우리 양국은 옛 우호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굴완이 대답하여 말한다: 군주께서 폐국에 왕림하여 복지를 구하고 우리 군주를 안무(安撫)하니, 이것은 바로 우리 국군이 희망하는 것이다. 제환공이 이어서 말한다. 너도 우리의 군대를 보았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군대로 전투하는데 누가 감히 상대하겠는가? 이런 군대로 공격하는데 어떤 성인들 함락시키지 못할 것인가? 굴완이 말한다. 군주께서 만일 덕망과 의리로 제후를 안무한다면, 누가 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 만일 무력을 쓴다면, 초국은 방성산(方城山)을 담장으로 하고, 한수를 호성하로 하여 당신의 군대가 아무리 많더라도 쓸 곳이 없게 될 것입니다. 제환공은 행동목적을 이미 달성했다고 보고, 계속하면 필승의 자신도 없었다. 그리하여 굴완과 맹약을 체결한다. 병력을 돌려 초국을 떠난다.
초국칭왕은 이미 초무왕(楚武王), 초문왕(楚文王)의 양대에 걸쳤다. 이때의 초성왕은 이미 3대에 걸쳐 주나라 천자에게 진공하지 않았다. 제환공은 칭패한지 이미 이십여년 되었다. 왜 이전에는 초국을 토벌하지 않다가, 굳이 이 시기에 초국을 토벌한 것일까? 실제로, 제환공이 처음 토벌한 것은 채국이었다. 군대는 제나라 하나였다. 원인은 단지 자신의 한 여인때문이었다. 연합국이 초나라를 토벌하기 1년전에 제환공과 부인 채희(蔡姬)는 배를 타고 놀았다. 채희는 물을 잘 알았고, 배를 흔들어 환공이 몸을 가누지 못하게 만들었다. 환공은 두려워 그녀에게 그만두라고 했다. 채희는 듣지 않는다. 제환공은 아주 화가나서, 배에서 내린 후 채희를 친정으로 돌여보내버린다. 그러나 혼인관계를 단절하지는 않았다. 채후(蔡侯)도 매우 화가 났다. 그래서 채희를 다시 시집보낸다. 제환공은 그 말을 듣고 더욱 화가 났다. 그래서 병력을 일으켜 채국을 공격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환공이 병력을 일으킨 원인이다.
한 여인을 위하여 한 나라를 토벌하는 것은 패주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시시때때호 주왕을 존중한다고 표방하는 사람이, 광부정의를 얘기하는 국군이 천하인들에게 말하기 곤란한 내용이다. 설사 채국이 형편없이 약하다고 하더라도,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한 나라의 군대를 일으키는 것은 천하제후로부터의 명망을 잃는 것이 될 수 있다. 일시의 화를 풀기 위하여 천하의 인심을 잃을 수 있다. 제환공은 왜 이렇게 손해보는 장사를 한 것일까? 그러나, 군왕의 분노는 뇌정지진(雷霆之震)이다. 군왕의 말은 아무리 어려워도 바꿀 수 없다. 이번 군사행동은 이미 활시위가 당겨졌다. 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 나라가 패주가 되려면 반드시 엘리트집단이 나라를 관리해야 한다. 군주 한 사람만이 아니다. 관중은 바로 이 관리집단중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이다. 그는 적시에 제환공의 군사행동을 수정한다. 제나라의 단독행동을 제후의 공동행동으로 바꾼다. 단순한 채나라 토벌을 채나라를 토벌하는 것을 통하여 초나라를 토벌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초나라를 토벌하는 것을 통하여 이미 혼란해진 춘추의 질서를 보보하고, 나아가 제나라의 패주지위를 공고히 하고자 했다.
그리고 하나의 문제가 있다. 제환공이 초나라를 토벌하는데 참가한 것은 팔개국가의 연합군이다. 다른 7개국가는 왜 이번 행동에 참가한 것일까? 설마 단순히 제나라가 패주가 되도록 해주기 위해서일까? 실제로 초나라가 칭왕한 것은 단지 하나의 칭호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 진실한 목적은 중원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문정중원(問鼎中原)"이라는 말은 바로 초장왕에게서 나온 말이다. 초나라가 북으로 발전할 때 이 7개국가는 모두 그 칼끝이 향하는 대상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런 연합군사행동에 반드시 참가하려고 할 것이다. 천하질서를 유지한다는 것은 바로 그들 국가와 가족의 이익을 보류하는 것이다.
관중이 이렇게 바꾸면서 제나라의 무리한 거동은 정의의 행동이 되어 버린다. 당시의 사람이건 후세의 사람이건 모두 더 이상 제환공의 그 아무런 도리도 없는 원래의 의도는 보지 않게 되었따. 이것이 바로 관중이 고명한 점이다. 후인들이 제왕의 보좌로서 매번 관중과 비교하는 것은 확실히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제환공에게 관중이 있다는 것은 강력한 팔이 있는 것일 뿐아니라, 제나라에 강태공 이후에 새로운 사상과 영혼이 있따는 것이다. 관중이 있으므로 제환공의 춘추대업이 있을 수 있었다.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 > 역사인물 (선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춘추시대 제나라의 전씨가족의 흥기 (0) | 2013.12.21 |
---|---|
진령공(晋靈公) 시해(弑害): 모두 개때문에 일어난 일인가? (0) | 2013.11.27 |
춘추시대 며느리를 처로 삼은 황당한 국군들 (0) | 2013.11.09 |
무신(巫臣): 춘추시대 오(吳)나라를 급발전시킨 배후인물 (0) | 2013.06.10 |
신릉군(信陵君)은 왜 평생 실권을 잡지 못했는가? (0) | 2013.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