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포강객(浦江客)
명왕조의 개국공신 유기(劉基, 劉伯溫)은 우언소품집 <욱리자(郁離子)>를 저술했는데, 글이 날카로웠다. 유머가 넘치는 가운데 폐해를 정곡으로 찌르고 있다. 견식과 공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역사학자들은 이 책을 "길흉화복에 밝고, 고금의 성패득실을 잘 살폈다"고 평가했다. <욱리자>에는 <진령공호구(晋靈公好狗)>라는 내용이 있는데, 그 내용은 춘처준국시기에 진령공이 '개를 좋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진령공은 개를 좋아해서, 곡옥(曲沃)에 구권(狗圈, 개우리)을 만들고, 개에게 비단으로 만든 개옷을 입혔다. 진령공의 총애를 받던 권신 도안가(屠岸賈)는 진령공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모두 했다. 자주 개의 좋은 점을 과장하여 말을 해서 진령공에게 잘 보였고, 진령공은 개를 더욱 좋아하게 된다.
어느 날 저녁, 여우 한 마리가 궁전으로 뛰어들어, 양부인(襄夫人)을 놀라게 하여, 양부인이 대노한다. 진령공은 개로 하여금 여우를 물게 하지만, 개가 여우를 이기지 못했다. 도안가는 산림을 지키는 사냥꾼으로 하여금 여우를 붙잡게 하여 진령공에게 바친다. 그리고 말한다. "개가 결국은 여우를 잡았습니다." 그리하여, 진령공은 아주 기뻐한다. 그래서 대부제사때 공물을 바치는 예기로 개를 먹인다. 그리고 전국에 통령을 내려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감히 나의 개를 해친다면, 나는 그의 다리를 잘라버릴 것이다." 그 이후, 전국의 백성들은 모두 개를 두려워한다. 개는 시장으로 뛰쳐나가서 양, 돼지를 먹고, 배가 부른 후에는 남은 것을 끌고 도안가의 집으로 갔다. 그리하여 도안가는 크게 이익을 얻는다.
무릇 진령공에게 국사를 보고하려는 대부는 도안가의 윤허를 얻어야 했다. 만일 그러지 않으면 도안가가 개들을 풀어서 물게 한다. 진나라의 중신 조순(趙盾)이 들어가서 진령공에게 간언하려고 하면, 사나운 개가 달려나와 조순을 문 밖에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하루는, 개가 어원으로 들어가서 위령공이 기르든 양을 먹었다. 도안가는 위령공을 속여서 말한다: "이것은 조순의 개가 몰래 먹은 것입니다." 진령공은 대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조순을 죽인다. 나라사람들이 조순을 도와주어, 조순은 진(秦)나라로 도밍칠 수 있었다. 조순의 당제인 조천(趙穿)은 사람들의 분노를 이용하여 근위군을 이끌고 도안가를 공격하여 그를 죽여버린다. 이어서 도원(桃園)에서 진령공을 죽인다. 진령공의 개는 사방으로 흩어지고, 나라사람들은 그들을 모조리 잡아서 삶아먹는다.
이렇게 하여, "군자가 말하기를: 너무 심하게 나쁘다. 도안가는 정말 소인이다. 그는 개를 칭찬하여 군주를 미혹시켜서 결국은 자신의 목숨도 잃고 군주의 목숨까지 잃게 했다. 총애라는 것은 의지할 것이 못된다." 유기는 이렇게 평한다: "사람들은 자주 이런 말을 한다. 나무에 사는 벌레가 나무를 다 먹고 나면 벌레도 죽는다. 이것은 바로 진령공의 개의 최후와 같다."
이 역사기록은 아주 유명하다. 역사에서는 "구교조순(狗咬趙盾)"이라고 부른다. <좌전.선공2년>에는 이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진령공은 군왕의 도를 행하지 않고, 황음무도했다. 대신 조순등이 여러번 간언했으나, 진령공은 시정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오히려 대신들을 싫어했다. 진령공은 서예(鉏麑)를 보내어 조순을 죽이고자 했다. 서예는 아침 일찍 조순의 집으로 간다. 침실의 문이 열려있고, 조순은 예복을 모두 입고 조회에 나갈 준비를 마쳤다. 다만 시간이 너무 일러서, 그는 옷을 입은 채로 앉아서 졸고 있었다. 서예는 물러나와 감탄하며 말한다: "이런 때에도 국군을 공경하는 것을 잊지 않는구나. 백성이 믿을만한 배경을 죽이는 것은 불충이다. 그리고 국군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실신(失信)이다. 이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하느니, 차라리 죽는 길을 택하자. 서예는 괴수(槐樹)에 머리를 박아 죽고 만다.
가을인 구월, 진령공은 조순에게 술을 마시자고 청한다. 사전에 무사를 매복해두고, 조순을 죽일 준비를 한다. 조순의 거우(車右)인 제미명(提彌明)은 이 음모를 발견하고, 빠른 걸음으로 전당으로 걸어나가 말한다: '신하가 군왕을 모시고 연회에서 마시면서, 술이 세번이나 돌았는데도 물러가지 않으면, 예의에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조순을 부축하여 전당을 내려간다. 진령공이 맹견을 불러 조순을 물게 했다. 제미명은 맨손으로 나아가 격투를 벌여 맹견을 죽인다. 조순이 말한다: "사람을 쓰지 않고 개를 쓰다니, 비록 흉맹하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들 두 사람은 매복한 무사들과 싸우면서 물러난다. 그 결과 제미명은 조순을 위하여 전사한다. 조순이 도망간 후, 구월 이십육일, 조천은 도원에서 진령공을 죽인다.
진령공이 신하에게 시해당한 사건은 역사상 아주 유명하다. 공자는 일찌기 이렇게 평가한 바 있다. 그렇다면, 진령공의 시해는 진령공의 '호구(개를 좋아하는 것)' 및 '구교조순'때문인가? 개를 좋아하는 것이 진령공시해의 도화선이 된 것은 맞다. 다만 진령공이 '군주답지 못한 점(不君)'으로 인한 국내계급모순이 격화된 것과 통치집단내부의 충돌이 악화된 것이야말로 주요한 원인이다.
진령공의 시해는 국내계급모순격화와 통치집단내부충돌의 결과이다. 춘추전국시대는 중국고대사회에서 처음으로 격렬하게 변혁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즉 노예제에서 봉건제로 넘어간 시기이다. 주나라왕실이 쇠퇴하고, 제후들이 흥기하고 대국들이 쟁패했다. 경대부는 실력을 발전시켜 권력을 장악하고, 사유제가 발전한다. 통치계급은 한편으로 전통적인 폭정의 약탈방식을 유지하면서, 구귀족이건 신귀족이건 탐욕을 마음껏 채운다; 한편으로 '정이회성(政以賄成, 정치는 뇌물로 이루어진다)'이고, 각국의 통치집단과 다른 나라 및 국내에서 뇌물을 정치거래로 삼는 것이 다반사였다. 진령공은 "후렴이조장(厚斂而雕墻)"했다. 오랫동안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여 자신의 사치욕을 만족시킨다. 그리하여 백성들의 원망이 극도에 달하였고 결국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진령공의 시해는 그의 황음함과 포악함, 충언을 듣지 않고 충신을 해치려 한 것으로 인하여 조순이 다른 나라로 도망쳐서 살신지화를 피한 것과 관련이 있다. 대신 조순과 사계(士季)는 여러번 진령공에게 간언했고 이러 인하여 지금까지도 빛나는 정치지혜가 담긴 명언이 나온다; "사람은 성현이 아니다. 누구든 잘못이 없겠는가?(人非聖賢, 孰能無過)". 그러나, 혼용무도(昏庸無道)한 진령공은 절대로 충신의 간언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수치로 분노했고, 충신을 해하려 했다. 당연히 이것은 조순의 특수한 지위와도 관련이 있다. 조순은 당시 각국에서 명망이 비교적 높았던 정치가이다. 조씨가족은 진나라에서 세력이 있는 관료집안이었다. 조순을 박해한 것은 통치집단의 충돌을 격화시키는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역사상 진령공은 어려서부터 욕망대로 행동했고, 행위가 사벽(邪僻)했으며, 생활은 문란했고, 인애(仁愛)의 마음은 전혀 없었다. 정권을 장악한 후, 더욱 황음포악했으며, 사치스럽고 욕구를 채웠다. 특히 도안가가 마음대로 횡행하게 놔두었고, 그의 말은 다 들어주었다. 국가는 더더욱 해를 볼 수 없는 암흑과 같은 시절을 보낸다. <좌전. 선공2년>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진령공은 군주답지 못하다(晋靈公不君)". <좌전.선공2년>에는 진령공이 저지른 두 건의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짓을 기록한다.
하루는, 진령공과 도안가가 어원인 도원의 높은 대에서 놀고 있었다. 진령공은 탄궁으로 새를 쏘았다. 도안가가 말한다: "새를 쏘는 것보다는 사람을 쏘는 것이 더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진령공은 탄궁으로 사람ㅇ르 쏜다. 대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맞아서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며, 낭패하여 도망친다. 진령공은 기뻐서 가가대소하며 연신 "통쾌하다"고 외친다.
한번은, 진령공과 도안가가 술을 마시면서 놀고 있었다. 요리사에게 웅장(곰발바닥)요리를 빨리 내오라고 재촉한다. 요리가 나온 후, 진령공은 도안가에게 먼저 맛보라고 한다. 도안가는 요리사가 요리를 너무 늦게 가지고 왔다고 원망하여 고의로 이렇게 말한다: "충분히 익히지 않았습니다!" 진령공은 노하여 그 자리에서 요리사를 죽여버린다. 그리고 시신을 들것에 담아 시녀로 하여금 매고 가서 버리게 한다. 시녀가 요리사의 시신을 매고 조당을 지나갈 때, 대신 조순과 사계는 죽은 사람의 팔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그 원인을 물어보고, 심히 우려한다. 조순이 가서 간언하려고 하자, 사계가 말한다: "당신은 집정대신이니, 만일 간언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다시 간언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먼저 갈테니, 군주가 만일 듣지 않으면 당신이 다시 간언하십시오." 사계는 3번을 갔지만, 진령공은 그를 한번 쳐다보고는 귀찮은 듯이 말한다: "과인은 잘못한 줄 안다. 시정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사계는 그 말을 듣고 급히 고개를 숙여 절을 한 다음 이어서 말한다: "누구든지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잘못을 알고 고치면 바로 성인입니다." <시경>에 이런 말이 있다. "미불유초(靡不有初), 선극유종(鮮克有終)"(시작할 때는 사람이 많지만, 끝날 때까지 하는 사람은 얼마되지 않는다). 만일 군왕이 잘못을 시정하고, 시종여일한다면 그것은 신민을 기쁘게 하는 일일 것이다.
당연히, 진령공이 '개를 좋아하는 것'은 무도한 혼군이 시해되는 도화전이었다. '개를 좋아하는 것'은 개인의 취미이고,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군왕으로서 개인취미는 단지 개인의 작은 일이 아니다. 만일 지나치게 되면, 심지어 국사에까지 영향을 준다. 아마도 국가와 백성에 해를 끼치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 고서 <상서>에 기록된 "오자지가(五子之歌)"중 두번째 수(首)는 이렇다: "훈유지(訓有之): 내작색황(內作色荒), 외작금황(外作禽荒), 감주기흠(甘酒嗜音), 준우조장(峻宇雕墻), 유일어차(有一於此), 미혹불망(未或弗亡)"(우왕의 가르침에서 말하기를; 안으로 여색을 탐하고, 밖으로 사냥을 좋아하며;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듣는 것을 즐기며, 호화로운 건축을 짓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 일 중 하나라도 벌이게 되면 망하지 않을 수 없다.) 선현들은 망국의 '이황'중 하나로 '금황'을 꼽았다. 금황은 금수에 미련을 두는 것. 사냥을 말한다. 고대군왕이 기호총물(嗜好寵物), 완물상지(玩物喪志)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진령공이 개기르는 것을 좋아하여 정치를 돌보지 않음으로서 조정의 기강이 혼란해지고 백성이 재앙을 입게 되며, 간신이 권력을 잡아 충신과 양신을 모함하는 가장 전형적인 사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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