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강(劉剛), 이동군(李冬君)
세상의 그 어느 군주도 죽음을 진시황처럼 대하지는 않았다. 그는 즉위한 다음 해부터 자신의 묘를 준비한다. 그 때 그는 겨우 14살이었다. 모든 일은 태후(太后)와 중부(仲父)가 처리하고 있을 때이다.
왕권은 사망의 그림자 속에 있다.
중부는 바로 여불위(呂不韋)이다. 그는 정치를 장사하듯이 했다. 자초(子楚)에 투자한 후, 잔장양왕의 원시주를 매입했고, 여불위는 "기화(奇貨)"와 더불어 가격이 급등한다. 중부가 되었을 뿐아니라, 하남 낙양 십만호를 식읍으로 받는다. 그러나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어린 왕에게 계속 투자하여 더 많은 판돈을 걸고자 했다.
아무도 이 어린 왕을 위하여 생각해주지 않았다. 아무도 그가 얼마나 우울한지 물어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런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조나라에 있을 때 부친은 인질이다. 그는 유년기부터 동년기까지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살았다. 모친과 함께 이리 숨고 저리 숨으며 살았다.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진나라로 온 후에 일가는 3년간 함께 생활한다. 그리고 부왕이 죽었다. 그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왕위에 등극한다. 그때는 모친인 조희가 그와 함께 할 수 있었다. 지금 태후인 모친은 그의 부친을 잊고, 또 다른 남자를 찾고 있었다.
고독한 아이의 마음이 어찌 아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14살부터 22살까지 9년의 시간동안, 하루하루 어떻게 보냈을까? 누구는 그를 위하여 묘를 만들고, 그는 매일 묘에 관심을 두었다.
예전에 그는 숨을 수 있었다. 지금은 그가 숨을 곳이 없다. 모든 것을 반드시 직면해야 했다.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왜냐하면 그는 왕이기 때문에, 숨으려면 그저 '죽음' 속으로 숨는 수밖에 없다.
모친은 구중궁궐에서 다시 두 아들을 낳는다. 그의 동생이면서 그의 적수이다. 모친은 그를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나 권력은 모친의 손에 쥐어져 있고, 그녀의 애인인 노애(嫪毐)가 대행했다.
그 애인은 원래 모친의 성노예였다, 그러나 그의 가부(假父)라 칭했다. 그러나, 진시황이 자라서 성인이 되자, 노애는 마음 속으로 두려움이 들었다. 진시황이 친정하는 날이 곧 올 것이고, 두 사람중 한 사람은 묘에 들어갈 것이다. 그는 겨우 22살이다. 그러나 그의 묘는 이미 만든지 8년이나 되었다. 모친은 왜 이렇게 하였는가? 그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의 중부, 가부가 그를 묻어버리고 싶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서둘러서 그의 묘를 만든 것이라고.
고아보다 더 고독한 아이는 늑대처럼 성장한다. 하물며 그는 왕이다. 그리고 호칭 '호랑이나라(虎狼之國)'라는 지나라의 왕이다. 그는 코만으로도 죽음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동년에 숨어다니던 기억, 소년시기의 분묘의 기억은 모두 사망의 신호이다.
죽음은 그에게 있어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무도 그에게 죽음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사람은 왜 죽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예를 들어, 살신성인(殺身成仁), 사생취의(舍生取義), 그리고 순기자연(順其自然)의 죽음. 이런 것들을 누가 얘기해 주었던가? 그는 그저 죽음은 무섭다는 것만 알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용기가 있었다. 동년시절, 그는 모친을 따라 한번 또 한번 죽음에서 도망쳤다. 소년시절 노승이 입정한 것처럼, 여러 해를 하루같이 죽음에 직면했다. 죽음에서 도망치든, 죽음을 직면하든 그는 모두 잘해냈다.
이렇게 많은 해동안 그는 계속 죽음과 싸워온 것이다! 그는 죽음에 대하여 특별히 느끼는 바가 있다. 손만 뻗으면 바로 죽음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생사의 각축을 벌일 때, 죽음을 알면, 이길 수 있다.
그는 죽음이 어디에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았다. 죽음은 귀신에게나 줘버려라! 그가 손을 쓰면 누구도 그가 어떻게 손을 썼는지 모른다. 사마천도 몰랐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아예 손을 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못믿겠거든 <진시황본기>를 읽어보라.
결론적으로 모친의 애인 노애는 결국 그의 사망의식에 끌려갔다. 이어서 중부도 그의 사망의식에서 사망의 도래를 알았다. 그는 여전히 손을 쓰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사망유희를 즐기고, 자라서는 사망과 공부하고 나중에 <한비자>를 읽는다. 거기서 짙은 사망의 냄새를 맡는다. "군도동체(君道同體)"는 생사를 초월할 수 있다.
한비자도 사망유희를 잘 알았다. 그 <설난>에서 이렇게 저렇게 얘기하고, 상세하기가 머리카락같이 가늘지만, 말하는 것은 모두 "죽음"이다. 사마천조차도 이것을 안타까워 한다. 그래서 묻는다: "너는 그렇게 죽음을 잘 알면서, 왜 죽음에서 도망치지 못했는가?"
한비자는 그의 마음을 잘 알았다. 그의 밑바닥을 들여다 보았다. 죽을 수밖에 없다! 한비자에 대하여도 그는 여전히 손을 쓰지 않는다. 이사가 있지 않은가? 그 죽음의 조아(爪牙)가 죽는데, 여전히 그가 손을 쓰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그저 묘를 만들었다. 아주 커다란 묘를. 사망이 그와 함께 정복하도록. 사망은 육국을 향하여 간다. 그는 그 사망의 발걸음을 분명히 보았다. 육국은 속속 무너지고, 그의 사망의 발아래 쓰러진다. 육국은 유독(儒毒)에 중독되어 "삶을 알지 못하는데, 죽음을 어찌 알 것인가"라고 하다가 죽었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죽음을 알지 못하는데, 삶을 어찌 알 것인가?"라고 하여 왕이 되었다.
병법에 "사지에 몰어넣은 다음에 삶을 도모한다(置之死地而後生)"는 말이 있다. 그의 발아래는 사지이다. 그는 큰 묘위에 서 있다. 패하면 묘안으로 들어간다. 묘안에는 병마용도 있다. 진형을 잘 배치해 두었고, 동쪽을 향하도록 해놓았다.
병마용은 일찌기 갑옷을 차려 입고 있으며, 그가 명령만 내리면 바로 출발한다.
상승의 군대는 무서울 것이 없다. 사망이 군대가 무서운 법이다. 역사는 증명한다. 상승군대는 쉽게 쇠약해진다. 여러번 이긴 군대는 지기 쉽다. 승리는 다 거둘 수가 없고, 적은 다 죽일 수가 없다. 상승군은 분명 쇠퇴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는 상승군을 사지로 밀어넣어 사망군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멸영을 내린다: 적을 없애라!. 승부는 단지 1번 뿐이다. 패배는 곧 죽음이다. 이것이 바로 사망군의 구호이다. 이뿐아니라, 전쟁으로 전쟁을 없앨 수도 없고, 죽음으로 죽음을 없앨 수도 없다. 천하통일로 사망을 전쟁과 함께 없애버릴 수도 없다.
제왕풍수는 국가풍수로 바뀌다.
그가 사지를 떠나서 동방ㅇ로 갔다. 그곳에는 신선이 있고, 생사를 초월했다.
그는 자신을 방사(方士)에게 맡긴다. 이때부터 죽음을 보지 않았다. 죽음을 보지 않는 것은 죽음이 없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그를 놔두지 않았다. 그는 박랑사에서 매복을 당한다. 요행히 죽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신선이라고 자부한다.
그가 방사의 장난을 알아차린 후 방사는 표연히 떠나간다. 그는 방사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유생을 붙잡아 화를 푼다. 수백명의 유생을 묻어버린다. 개미를 밟아죽이듯이 그에게는 이런 것은 아무 일도 아니다.
그의 사자(使者)가 밤에 화음(華陰)을 지나가는데, 산은 높고 달을 차가웠으며 주위는 조용했다. 그런데 돌연 한 마디가 들려온다: 내년에 조룡이 죽는다(明年祖龍死)! 정말 놀라서 혼이 달아날 지경이었다. 돌아와서 즉시 황제에게 보고한다. 시황제가 점을 치니 점괘가 나온다: 동쪽으로 가라(往東去).
동으로 가기 전에, 하늘에서 운석(隕石)이 떨어진다. 운석 위에는"시황사이지분(始皇死而之分)"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조사하나, 찾아내질 못한다. 그래서 글을 쓸 줄아는 사람만 많이 죽여버린다. 이를 통해서 분을 푼 것이다. 그후에 그는 계속 동쪽으로 간다.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곳까지 간다. 그곳은 성산두(成山頭)였다. 바로 오늘날 산동 롱청(榮成)이다. 당시 그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바다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이렇게 탄식한다: "무진두(無盡頭)"
이사는 붓을 들어 그의 곁에서 여섯 글자를 쓴다: "무진두, 진동문(無盡頭, 秦東門)". 이 여섯글자는 참어(讖語)의 의미가 있다. 마치 운석에 나오는 그 여섯 글자의 주석과 같다.
과연, 그는 병으로 쓰러진다. 사망은 "무진두"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를 데려가려 한 것이다. 그러나그는 자신이 병들었다고 여기지 않는다.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는 더욱 생각지 않는다. 그는 이것이 선약(仙藥)을 먹은 후의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선약은 지금 보기에 마약이다. 마약을 먹은 느낌은 바로 신선이 되어 노는 것과 같다. 방사는 선약으로 그를 통제했고, 그를 마약중독으로 만들었다. 환상이 진짜같이 보이고 사지를 떠나 선경으로 들어간다.
그는 최근 들어 항상 두려워했고, 선약이 끊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방사가 도망쳤기 때문이다. 선약이 없으면, 어떻게 신선이 되어 놀겠는가? 신선이 되어 놀지 않으면, 어떻게 신선이 되겠는가? 신선이 되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 만일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사지로 돌아가자.
방사가 도망치고나서 그는 계속하여 바다를 메우는 공사를 벌인다, 그리고 '산릉(山陵)'을 확장공사한다. 무엇이 '산릉'인가? <삼진기>에 이렇게 스여 있다. 천자의 무덤을 진나라때는 '장산(長山)'이라고 부른다. 한나라때는 '릉(陵)'이라고 부른다. 이 두 가지를 합쳐서 '산릉'이라고 한다.
그의 '장산'은 산을 따라 지어진다. 황성이 아래에 있다. 황성은 황제를 중심으로 내,외성으로 나뉘고, 궁전, 성지(城池)가 있다. 그리고 지시(地市)도 만든다.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거래를 하는 것이다. 공평하고 속이지 않으면서. 지하의 성에는 무수한 누각, 정자가 있다. 그리고 강, 바다, 호수를 만든다. 해, 달, 별도 만든다. 당연히, 그는 꿈에도 그리던 영주(瀛州), 봉래(蓬萊), 방장(方丈)도 잊지 않았다....
<삼진기>의 기재에 따르면, 그는 함양의 침궁 난지궁(蘭池宮)에 위수(渭水)를 끌어들여 돌아가게 만들고, 흙으로 산을 쌓았다. 물을 동해라 하고, 산을 봉래라 했다. 그리고 돌로 고래(鯨魚)를 만드니 길이가 이백장이었다.
그가 능을 만들며, 봉래선경을 모방한다. 여산의 동북쪽은 원래 강이 있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위수에 들어갔다. 그는 여산의 아래에 깊이 못을 파고 흙을 쌓아서 제방을 만들어 강물의 흐름을 차단한다. 그리고 흙으로 '장산'을 만든다. 강물의 흐름을 바꾼다. 동북에서 서북으로 꺽어져 흐르게 하며,능을 돌아서 가게 했다. <수경주>에서는 "어지수(魚池水)"라고 불렀다.
"장산'의 동쪽에는 온천물이 있다. 여산신녀에서 오는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여산에서 신녀와 만난다. 신녀의 미색에 혹해서, 그녀를 희롱했다. 그러자 신녀가 침을 뱉었고, 그의 몸이 썩게 된다. 부득이 신녀에게 이를 해독해달라고 부탁한다. 신녀는 말하기를 "온천으로 목욕을 해보라"고 한다.과연 온천물로 씻자, 몸이 상쾌헤지고 원래대로 되었다.
두 줄기 물이 있다. 하나는 어지수이고 하나는 온천수이다. 하나는 동북에서 서북으로 흐르고, 하나는 서남에서 동남으로 흐른다. 도도하게 끊이지 않으면서 '장산'을 둘러싸고 좌우로 나뉘어 흐르고 각자 순환한다.
여산은 진령의 지맥이다. 임동일대에 산맥이 대칭되어 있다. 위하의 북안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병풍이 능의 뒤에 서 있는 것같다. 릉에 올라서 남으로 바라보면, 산맥이 호(弧)를 이루어 능을 둘러싸고 산과 능이 혼연일체가 된 것같다.
왜 황릉을 이곳으로 선정했을까? 의산대수(依山帶水)는 말할 것도 없고, "기음생금(其陰生金), 기양다미옥(其陽多美玉)"(산의 북쪽에는 금이 나오고, 산의 남쪽에는 옥이 나온다)이라는 말이 있다. 일설에 따르면, 최근 들어서 위성으로 찍은 사진을 보면, 여산에서 화산까지의 선이 마치 용과 같다는 것이다. 능이 있는 위치는 바로 용의 눈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능을 이곳에 만든 것은 '점정(點睛)'의 신필이라는 것이다.
'풍수'라는 두 글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 육국통일부터 얘기하자면, 그곳을 풍수길지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이세때 망한 것을 보면 '길지'라는 말은 맞지 않는 것같다. 이것은 무슨 연유에서인가?
대지에 자연히 흐르는 강물을 그의 명령 하나에 능을 지키는 '어지(魚池)'로 만들어버리고, 이 물이 원래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른 것은 지세가 그렇게 만든 것인데 굳이 강물의 흐름을 바꾸어 버렸다.
억지로 딴 참외는 달지 않다. 그럼 억지로 만든 풍수는? 아마도 화수(禍水)로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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