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잡기어(卡奇魚)
진시황36년(기원전211년), 연속하여 3개의 사건이 일어나 진시황을 아주 우울하게 만든다.
첫번째 사건은 "형혹수심(熒惑守沈)"이다. <사기.진시황본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삼십육년형혹수심" 진시황은 이 소식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무엇이 "형혹수심"인가? 고대에 "화성"을 "형혹"이라고 불렀다. 이십팔수(二十八宿)중 "심수(心宿)"을 간칭하여 "심"이라 한다. "심수"는 현대 천문학의 전갈자리이다. 주로 3개의 별로 구성되어 있는데, 화성이 운행하여 전갈자리의 세 개의 별 부근으로 가고 그 곳에 한동안 머무르는 것을 중국고대인들이 '형혹수심"이라고 불러ㅅ다. 이 하늘의 현상은 황권에 대하여 이렇게 해석한다. 전갈자리의 3개 별 중에서 가장 빛나는 별인 안타레스는 황제를 대표하고, 양쪽의 두 개는 하나가 태자를 표시하고 다른 하나가 서자를 표시한다.
이런 천문현상을 왜 불길하다고 보았는가?
중국고대의 천문학은 성점학(星占學)이라고 불렀다. 성점학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황권에 봉사하는 것이다. 황제는 점성관을 두고, 이 관직은 오로지 황제를 위하여 봉사했다. "형혹수심"의 출현은 고인들이 보기에 가벼우면 천자가 자리를 잃고, 심하면 황제가 사망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두번째 사건은 운석(隕石)사건이다. 진시황36년, 한 유성이 동군(東郡)에 떨어진다. 동군은 진시황의 즉위초기 여불위가 정사를 주재할 때 공격해서 얻은 땅이다. 당시에 이 군은 제,진의 두 나라의 접경지역이었다. 현재는 이미 대진제국의 동방대군이 되었다. 운석이 떨어진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다. 두려운 것은 운석위에 "시황제사이지분(始皇帝死而地分)"이라고 쓰여 있었다는 점이다. 이 일곱글자는 보통이 아니다. 그것은 하늘의 뜻을 대표하는 것이다. 진시황이 곧 죽을 것이라는 것과 대진제국이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 예시했다.
이런 사정이 출현한 것에 대하여 지방관리가 태만히 할 수 없다. 소식은 날개가 달린 것처럼 신속히 진시황의 귀에까지 들어온다. 진시황은 당연히 깜짝 놀란다. 즉시 어사를 파견하여 운석이 떨어진 곳으로 보낸다. 집집마다 조사하여 글을 새긴 사람을 찾는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다. 분노한 진시황은 명을 내린다: 이 운석이 떨어진 주변의 모든 사람을 죽여라. 긜고 즉시 이 글자가 새겨진 운석을 불태워 없앤다. 살마도 죽고, 돌도 불탔다. 그러나, 진시황의 마음 속의 그림자는 없어지지 않았다.
세번째 사건은 침벽(沈璧)사건이다. 이해 가을에 다시 불가사의한 사건이 벌어진다. 밤길을 걷고 있던 사자다 동쪽에서 화음을 지나 오는데 돌연 한 사람이 손에 옥벽을 들고 길을 막았다. 그는 사자에게 말한다. 나를 대신해서 이 옥벽을 호지군(滈池君)에게 전달해달라고 한다. 그리고 사자에게 말한다: "금년에 조룡이 죽는다.(今年祖龍死)". 사자는 무슨 뜻인지 몰라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본다. 다만 이 기괴한 사람은 옥벽을 남겨두고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금방 밤길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무슨 일인지는 잘몰랐지만, 뭔가 조짐이 좋지 않다고 느낀 사자는 옥벽을 가지고 함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즉시 진시황에게 보고한다. 진시황은 그 말을 듣고 첫반응은 이 말 속의 "조룡"이 자신을 가리킨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비로소 말한다. 산귀(山鬼)는 기껏해야 1년의 일을 알 뿐이다. 퇴조한 후, 진시황은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 "조룡"이 가리키는 것은 사람의 조상이다. 듣기에 아주 강경해 보이지만, 기실 이미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을 준다. 그후, 그는 사람을 보내어 몰래 옥벽을 어부로 보내어 감정시킨다. 감정결과는 이 옥벽은 진시황28년(기원전219년) 그가 순유하며 도강할 때, 수신에 제사지내고 강물 속에 던져넣었던 것이었다. 10년전에 수신에게 제사지낸 옥벽이 다시 신분이 불명확한 사람에 의하여 되돌아온 것이다.
화불단행이다. 1년동안 연속하여 발생한 3건의 괴사는 진시황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는 이 일을 가지고 점을 친다. 얻은 결과는 출순과 백성이주를 해야만 화를 피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진시황은 삼만호를 북하, 유중지구로 이주시키고, 이주하는 가구에는 작위를 하나씩 승진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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