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노위병(路衛兵)
유방이 자신의 진심을 철저하게 털어놓은 것은 패현(沛縣) 고향을 방문했을 때이다.
한나라 11년(기원전196년) 칠월 , 경포(黥布)가 반란을 일으킨다. 유방은 친히 경포를 토벌하러 나선다. 유방의 친정은 기실 그저 폼만 잡는 것이고, 병사들에게 사기를 올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다음 해 십월, 유방은 승리를 거두고, 다른 장수로 하여금 계속 추격하게 시킨 후, 자신은 궁으로 되돌아간다. 돌아오는 도중에 유방은 패현 고향을 지나게 되고, 잠시 머무른다.
한나라초기에는 진(秦)나라의 역법을 그대로 썼기 때문에, 매년 십월이 새해가 시작되는 때였다. 그래서 이 때는 마침 새해를 맞이하는 때였다. 그래서 유방은 주연을 베풀고, 고향의 아는 사람들을 모조리 불러서 술을 대접한다. 흥을 돋구기 위하여, 유방은 사람을 시켜 현지의 아동 120명을 불러, 그들에게 노래를 가르친다. 이렇게 분위기를 살려 명절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유방은 원래 배중지물(杯中之物)을 좋아한다. 그리고 금의환향했다. 그래서 술이 어느 정도 오르자, 자신이 축(筑)을 두드리며 자작시를 부르기 시작한다: "대풍기혜운비양(大風起兮雲飛揚), 위가해내혜귀고향(威加海內兮歸故鄕), 안득맹사혜수사방(安得猛士兮守四方)" 그후에 그 120명의 아동들에게 함께 노래를 부르게 시켰다. 그 장면은 장대했고, 기세도 대단했다. 일시에 땅과 하늘을 울렸다.
항우가 해하에서 갇혔을 때 사면초가를 듣고, 우희와 함께 술을 마시며 노래한 바 있다. 다만 항우의 시에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은 처량과 비정이었다. 운명이 좋지 않아서, 내심으로 고독할 때 그에게 마음의 안위를 준 것은 그저 그가 사랑하던 여인이었다.그러나 유방의 시에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은 흉금과 포부이다. 그는 '대풍기혜'의 웅장이 있을 뿐아니라, "위가해내"의 고원(高遠)도 있다. 항우의 금의환향의 숙원, 호령천하의 장지는 유방에게서 그대로 보여진다. 이것은 확실히 재미있는 일이다.
유방은 목이 찢어져라 노래를 부른 후, 다시 일어나서 손과 발을 움직여 춤을 춘다. 우리의 유방 선생을 자세히 보자. 그는 이미 "강개상회(慷慨傷懷), 읍수행하(泣數行下)"(감격과 흥분에 겨워 그리고 가슴아팠던 일이 떠올라서 눈물을 몇 줄기 흘리다)한다. 그는 얼굴에 온통 눈물로 얼룩진 사람이 되었다. 여러 해동안 돌아와보지 못했던 고향에 다시 찾아온 것이니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은 그의 출생지이고, 그가 일찌기 일하고 공부했던 곳이다. 이 조그마한 현성에 있을 때, 그는 언젠가 천하를 주재하는 황제가 될 줄 몰랐을 것이다. 지금 다시 고향의 낯익은 풀하나 나무하나를 볼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유방은 고향사람들에게 깊은 정을 가지고 고별인사를 한다:
"고향을 떠난 사람은 고향을 그리워한다. 나는 비록 관중에 있지만, 죽은 후에 나의 혼은 여전히 패를 그리워할 것이다. 짐은 패공으로서 포악한 역도를 주살하고, 천하를 얻었다. 패는 짐의 탕목읍(湯沐邑)이다. 그 백성들은 대대로 내는 것이 없을 것이다."
이 말은 그의 진심을 토로한 것이고 진지한 감정이 묻어난다. 마치 현재의 지도자들이 하는 말과 같다. 3가지로 결론내릴 수 있는데, 첫째, 누구든지 자기 고향은 좋다고 한다. 나는 현재 관중에서 일하지만, 한 순간도 고향을 잊지 않았다. 나중에 죽으면 혼은 고향에 돌아와서 그대들과 함께 할 것이다. 둘째, 나는 패현에서 거사했고, 성공했다. 이곳은 나의 탕목읍이나 이 곳은 이후 내가 책임진다. 셋째, 이후 이곳은 세금을 모조리 면제해주겠다.
마지막 부분은 실질적인 혜택이라 할 수 있다. 패현의 백성들은 흥분했을 것이다. 속속 절을 하며 감사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유방에 대한 호감은 대폭 증가한다. 그래서 이어지는 것은 패현이 곳곳이 축제분위기가 되는 것이다. 유방은 기쁜 나머지 패현의 각 길거리, 구석구석을 돌아본다. 패현의 옛날 아는 사람들과 악수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마시며 봄날같은 따스함이 넘쳤다.
유방은 패현에 모두 10일간 머물렀다. 나중에는 아쉬워하면서 고향사람들과 작별한다. 고향사람들은 그를 붙잡았다. 유방의 손을 끌고, 감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유방은 아주 따뜻하게 말해준다: "나를 따라온 사람들이 너무 많다. 가마꾼, 비서, 보안, 시녀, 의장대, 호위대등등. 사람과 말은 먹어야 하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이곳은 그다지 넉넉한 곳이 아니고, 우리 나라도 지금은 아직 부유하지 않다. 그대들이 더 이상 골치아프게 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떠나야 한다. 그의 말을 아주 성의있고 진지했다. 고향사람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고향에서 좋은 황제가 나왔다고 축제분위기였다.
유방이 패현을 떠나려 하자 전체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환송한다. 패현은 일시에 빈 도시가 되어 버린다. 사람들의 물결이 몇 리가 이어지니 아주 장관이었다. 고향사람들은 유방을 풍읍까지 배웅했고, 그 후에 소와 양을 잡아서 주연을 베풀어 준다. 풍읍에서 다시 3일간을 지낸다. 마지막으로 패읍의 백설들의 요청하에, 유방은 다시 풍읍의 세금도 면제해준다. 그리고 나서 장안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하여 고향길이 끝난다.
유방이 고향을 방문한 것은 수확이 아주 많았다. 이것은 아주 성대한 이벤트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에 만일 매체기자가 있었다면, 그리고 전국 TV가 있었다면, 그 영향은 더욱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현대화된 미디어 수단이 없었다. 모든 것은 말로 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유방이 장안으로 돌아와서 성유를 고시하면 끝이었다. 그러나 이 구두로 전해지는 가장 순박하고 가장 실질적인 선전방식은 효과가 있었다. 금으로 만든 비석, 은으로 만든 비석도 백성의 구비(口碑)만 못하다. 입으로 전해지는 것은 비록 원시적이지만, 놀라운 영향력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은 가장 깊다. 현재처럼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고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유방의 이번 고향방문은 세 가지 측면에서 좋은 점이 있었다:
첫째, 근본을 잊지 않은 것이다. 유방은 황제가 되고나서 신분이 바뀌었다. 그는 패현의 자랑이다. 고향사람들은 현지에서 진명천자가 나온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 이웃사람들, 친척친구들,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도 모두 자랑스러워했다. 이후 기나긴 세월 가운데 심지어 자신의 자손후대들 앞에서 모두 크게 떠벌일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유방은 성공하고서도 근본을 잊지 않았다. 고향의 세금을 면제시켜주었고, 고향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둘째, 이미지를 수립했다. 어떤 때는 나쁜 일도 좋은 일로 바뀔 수 있다. 유방이 당시 패현에서 아무리 무뢰배였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제대로된일은 하지도 않았다고 하더라도, 지금 완전히 새롭게 해석하게 되었다. 학교다닐 때 공부는 별로였던 친구가 나중에 대기업사장이 되거나 고위관료가 되면, 사람들은 그가 공부를 못했다는 말을 할 것인가? 자연히 다르게 해석할 것이다: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은 그는 교과서 지식에 매달리지 않았고, 그는 두뇌가 민활하다느니, 혹은 당시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몇 가지 사례를 가지고 거기서 어떤 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감탄하여 말할 것이다. 유방이 황제의 권위를 벗어던지고, 군중들 속으로 들어가서, 백성들과 함께 노래하고,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했다.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었을 뿐아니라, 졸지에 고대(高大)한 이미지로 바뀌고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셋째는 위풍을 드러낸 것이다. 항우는 당초 관중을 수도로 정하지 않고 굳이 팽성으로 돌아갔다. 이것도 금의환양 광종요조(光宗耀祖)를 위한 것이다. 고향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때에 자신을 위풍을 자랑하고 싶을까? 분명히 자신이 아는 사람, 고향사람, 동창, 전우들 앞에서일 것이다. 그들만이 당신의 허영심을 만족시켜줄 수 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아무런 효과가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유방이 이번 고향방문은 정말 헛되지 않았다. 고향사람들의 호감을 얻었을 뿐아니라, 천하인의 호감도 얻어냈다. 이것이 바로 유방의 뛰어난 점이다. 그는 비록 한 곳에 점을 찍었지만, 이곳을 중심으로 원을 그렸고, 전국을 커버하는 큰 원을 그렸다. 마지막에는 천하인의 마음을 얻는다는 목적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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