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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매파의 흥기는 중국의 복이다.

by 중은우시 2013. 11. 10.

글: 정아문(程亞文) 

 

설이(雪珥) 선생이 2013년 10월 15일 <환구시보>에 <중국매파는 진귀하면서 고독하다>는 글이 실렸다. 거기에서 중국에 진정한 매파 혹은 비둘기파는 얼마 되지 않으며, 널린 것은 기본적으로 닭파와 오리파로 그저 좌우다툼의 지면게임에 열중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정말 보기 드문 목소리이다. 실제로 유사한 주장은 일찌감치 있어왔다. 70여년전의 항전기간동안 "전국책"파의 영수인물인 뇌해종(雷海宗) 선쟁은 일찌기 진한이래, 중국의 지식계급 즉 사대부들은 춘추시대 사족계층의 문치무공을 한 몸에 모은 이상적인 인격을 상실했고, 대부분은 문약무치(文弱無恥)해졌으며 "계충지쟁(鷄蟲之爭)"으로 바빴으며, 대난이 올 때면 "놀라서 모두 작조수산(作鳥獸散)"했으니 전형적인 위군자(僞君子)의 면모를 나타냈다.

 

고대 사대부계층의 최대약점은 바로 혈성(血性)이 없고, 상무정신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감당해야할 때 감당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들의 또 다른 약점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대부들이 습관적으로 도덕을 가지고 세상을 논할 뿐, 경세치용에 대하여는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국가난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하여는 방법이 없었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일을 맡아서 처리해야할 때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사회의 중견계층의 특질이 국가의 성격을 규정한다. 그리고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 수천년이래 중국은 위군자들이 널렸다. 그 결과 국내에는 문약의 기풍이 만연하였다. 송, 명은 마지막에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하여 나라가 망해버린다. 국가가 위급할 때, 사대부계층은 큰 틀을 알지 못했을 뿐아니라, 당쟁에 빠져서 국가의 사활을 돌보지 않았다. 그리고 원칙과 입장을 잃고 몸을 팔아 기댈 곳을 찾았다. 뇌해종 선생은 사대부계층이 나라를 망친 방식을 세 가지로 결론내렸다: 첬째는 결당오국(結黨誤國)이다. 전형적인 것은 동한말의 당고의 화, 송나라때의 신구당쟁, 명나라말기의 동림당,엄당이다; 둘째는 청담(淸談)이다. 이는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다. 셋째는 매국노이다. 유예(劉豫), 장방창(張邦昌), 홍승주(洪承疇)는 모두 진사출신이다.

 

이십세기의 개량, 혁명, 내전, 외전을 거치면서, 중국의 지식계층은 탈태환골했는가? 과거 1세기 특히 그 전반기에 중국은 상무정신이 잠시 부흥한 바 있다. 국민당의 북벌, 공산당의 혁명은 모두 전통사대부계층의 공리공담을 즐기고 행동하지 않던 구습을 타파했고, 중국이 다시 한번 통일되고 부강한 길로 가는데, 강대한 정신동력을 제공했다. 이런 압박과정에서 나타난 혈성은 절대로 옛문인의 구국자각에서 나오지 않았다. 신지식계층이 육체와 정신에서 무장된 결과였다.

 

세도(世道)는 사람보다 강하다. 근 30여년간 상대적으로 평화로웠고, 중국은 국력을 축적했다. 그러나 태평성대를 노래하는 와중에 사람의 정신은 많이 녹슬었다. 육십여년전에 당대중국의 기반을 닦았던 그 사람들이 오늘날 이미 새로 출현한 뎌러가지 사회계층으로 희석되며, 이로 인하여 나타난 결과는 중국이 다시 구태로 되돌아간 것이다. 주류사회계층은 국가와 민족에 대하여 아무런 의식도 없고, 20세기에 겨우 오랫동안 연약했던 와중에 모아놓았던 강강(剛强)의 불이 다시 각종 '주의'의 다툼 속에 점점 꺼져가고 있다.

 

요 몇년동안 흥기한 웨이보는 중국지식계층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준다. 십여년전의 각종 '주의'는 새로 중국에 모습을 나타낼 때는 서로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간에 그래도 '이성적으로 대화'를 했다. 오늘날 웨이보에서는 그저 '욕'밖에 보이지 않는다.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하면 그것은 바로 견식에서 '무지'할 뿐만 아니라, 도덕과 인격으로도 '천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의'를 다투는 거리에서 차례로 등장하는 것은 사상의 욕쟁이아줌마들 뿐이다. 서로 침을 튀겨가면서 상대방을 땅바닥에 거꾸러뜨려 짓밟고 싶어할 뿐이다.

 

도덕무대에서 앞다투어 '정의'의 자세를 보이는 것이 국가사회의 복은 아니다. 송,명의 당쟁은 나중에 의기용사(意氣用事)로 발전하고, 집단의 사리만 도모했지 국가안위는 돌보지 않았다. 뇌해종 선생은 이에 대하여 마찬가지로 잘 알았다: "오늘날 세상에 도리가 없어졌다고 얘기하는 소품유머글이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서양 각국의 여러가지 주의를 베껴와서 맹목적으로 선전하는 것이나, 두 가지 서로 다른 이십세기식 청담이라고 볼 수 있다."

 

당대중국의 지식계층의 전체적인 품격과 경향은 최근 들어 송,명의 수준으로 더욱 가속화된다. 그저 부정할 뿐, 건설은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가치만 얘기할 뿐, 경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신앙만 애기할 뿐, 시비는 묻지 않는다. 당쟁의 기세가 이미 형성되었다. 대로의 양쪽에는 보루를 분명하게 쌓아놓고 생사의 격전을 벌이며 날로 수화불상용의 상태가 되어간다. 한편에서는 죽어라 구시대로 돌아가고자 하며, 민주복지는 새로 '무산계급혁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보편가치론'을 높이 내세우고, 매일 시미유염(柴米油鹽)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일반대중들에게 매일 공중포격을 가하고 있다. 왕조시대의 사대부들은 도덕교조를 죽어라 끌어안고 '의정사엄(義正辭嚴)'했다면, 오늘의 중국지식계층은 자유민주의 '주의', '보편가치'를 자신의 '의정사엄'의 호신부로 여기는 듯하다.

 

'주의'다툼의 한 가지 결과는 일부 지식인집단 속에 몸을 의탁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양개 '무릇(凡是)'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무릇 미국이 하는 것은 모두 맞다, 무릇 미국이 말하는 것은 모두 진리이다. 아프간전쟁, 이라그전쟁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성명을 발표하여, 미국의 병사들이 이들 '우매하고 낙후된'땅에 자유민주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성원했다. 그리고 전쟁에서 죽어간 수천수만의 생명은 그저 자유민주를 실현하기 위한 제물이다. 그들은 중국에서 소리높여 외치는 인권이 미국 '아빠'가 있는 곳에서는 그저 재에 불과하다.

 

미국의 국가이익이 바로 중국의 국가이익이다. 이것은 몽골군대의 이익이 바로 송나라의 국가이익, 만청군대의 이익이 바로 명나라의 국가이익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조어도는 싸우지 않을 수 있고, 남해도 버릴 수 있다. 그저 '세계공민'이라는 구호만 외치는 것만 필요하다. 그래서 앞장서서 부패하고 몰락한 송, 명을 치도록 길안내도 해줄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의 일부 지식집단들은 도덕적으로, 영국자유주의자 홉하우스를 생각나게 한다. 그의 이 말은 듣기 아주 거북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가장 원시적인 무리"는 하나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하나의 관점이 진실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근거가 이 관점이 사람들에게 즐거운 느낌을 주느냐여부이다." 오늘날 중국지식계층이 추구하는 것은 바로 도덕적으로 '즐거운 느낌'이다. 이런 아편흡입식의 쾌감이 신체에 해로운지 아닌지, 국리민복에 이로운지 아닌지는 고려대상이 아닌 것이다.

 

현재 그리고 상당한 미래의 기간동안 중국은 내부모순이 특히 많을 것이다. 이익차이가 극히 명백할 것이다. 또한 외부의 분쟁도 아주 두드러질 것이며, 외부의 압력도 아주 커질 것이다. 여러가지 내우외환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것은 방법과 경로이다. 정서와 질책이 아니다. 욕을 하고 저주하는 것은 쉽다. 이성적으로 건설적인 의견을 낸호기는 어렵다. 중국이 현재 급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조류를 이끌 수 있는 새로운 집단이다. 중국을 이끌고 꿈을 만들고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집단이다. 이들 무리는 사상적은 예민해야 하고, 의지가 굳건해야 하며, 용감하게 일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고, 중국의 국가이익이 어디에 있는지를 깊이 통찰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이 국제적인 책임을 부담해야한다는 것도 통찰해야 한다. 매파이든 비둘기파이든 모두 국제평화를 옹호하는 동시에 중국의 국가이익을 촉진시켜야 한다.

 

이런 계층이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은 이런 계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