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당현종)

당현종의 보마 "조야백(照夜白)"은 왜 꼬리가 없을까?

중은우시 2013. 11. 10. 01:47

글: 지백수흑(知白守黑) 

 

 

 

천보3년, 중앙아시아 페르가나분지의 영원국왕(寧遠國王)은 당현종에게 두 필의 '한혈보마'를 바친다. 당현종은 각각 "옥화총(玉花驄)"과 "조야백(照夜白)"이다. 그중 "조야백"은 당현종이 특히 좋아했던 보마이다. 당나라때의 <역대명화기>, <명황잡기> 및 두보의 시에는 모두 '조야백'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렇게 보면 '조야백'은 당현종이 가장 좋아했던 말이라는 것이 역사의 진실일 것이다.

 

"조야백"은 당현종의 24필 어마중 지명도가 가장 높은 명마이다. 이 말을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당나라때의 저명한 궁정화가 한간(韓幹)이 그린 <조야백도>가 지금까지 전해진다. 이는 후세인들로 하여금 이 말의 웅자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안타까운 점은 한간의 이 <조야백도>는 1930년대에 고궁에서 흘러나가, 부심여(溥心)의 집에 보관한다. 영국의 소장가인 데이비드가 이를 알고는 1만은원의 가격으로 매입한다. 나중에 이 그림은 영국인의 수중에서 일본인의 수중으로 넘어가고 다시 미국인의 수중으로 넘어간다. 지금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해외에 흘러나간 이 그림은 전세지보라 할 만하다. 그 예술가치는 금전으로 형량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 그림이 후세인들에게 남긴 가장 큰 의문과 유감은 당당한 황제의 어마가 그림에서 꼬리가 없다는 점이다. 전문가의 고증에 따르면, 말의 머리, 목, 전신은 진적이고, 후반신은 후인이 보필(補筆)한 것이라고 한다. 진적도 좋고 보필(補筆)한 것이라도 좋다. 말에게 꼬리가 없으면 용에게 눈이 없는 것과 같다. 꼬리는 말의 가장 전신(傳神)의 부분이다. 말의 분노, 쾌락, 우수를 나타내는 마음의 창이다. 화가가 말을 그릴 때, 어찌 꼬리라는 이 중요한 부위를 빠트리게 되었을까?

 

조야백에게 왜 꼬리가 없는가? 역사적으로 어떤 사람이 이에 대한 답안을 내놓은 바 있다. 하나는 소장하던 중에 닳아서 없어진 것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그림의 인장(印章), 제문(題文)에 가려졌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답안은 모두 납득하기 어렵다. 만일 닳아서 없어진 것이라면 이 말의 엉덩이부분의 선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데, 어찌 말의 꼬리만 닳아서 없어진단 말인가? 같은 부위인데 서로 다른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설명으로 충분하지 못하다. 만일 가려졌다면 인장의 아래에 육안으로 말꼬리가 어떤지 전혀 알아볼 수가 없다. 이것도 의문이 든다. 설사 양보하여, 말의 꼬리의 뒤에 있는 담담한 묵적(墨迹)이 말꼬리라고 하더라도, 엉덩이부분은 분명한데, 꼬리는 모호하다는 것은 어떤 역사의 비밀을 감추고 있는 것일까?

 

말에게 머리는 있지만 꼬리는 없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위대한 영수 모택동의 당현종에 대한 평가를 떠올리게 한다. 당현종은 전반기에 황제로서 잘 했다. 후반기에는 황제로서 엉망이었다. 이 평가는 당현종에게 공정한 것이다. 당현종은 개원연간에 명상 요숭, 송경을 재상으로 임명하여 이치(吏治)를 정돈하고, 생산을 발전시키며, 개원성세를 이룩한다. 통치후반에 그는 여색에 빠져, 언로를 막고, 간신을 중용하며, 충신,양신을 해친다. 그리하여 대당은 쇠락의 길을 걷는다. 당현종의 일생동안의 성취를 보면 세상에 전해지는 <조야백도>와 아주 유사하다. "유두무미(有頭無尾, 용두사미와 유사한 뜻임)"로 묘사한다면 더 적절한 말이 없을 정도이다.

 

화가 한간은 장안(일설에는 섬서 남전) 사람이다. 어려서 빈한했고, 처음에 왕유(王維)의 자금지원을 받아서 그림을 배운다. 천보초기, 궁에 들어가고, 당현종은 그에게 진굉(陳閎)에게 말을 그리는 것을 배우게 명한다. 그는 말한다: "신에게는 원래 스승이 있습니다. 폐하의 마굿간에 있는 말들이 모두 신의 스승입니다." 이렇게 말을 스승으로 삼은 한간은 관직이 태부시승, 수왕주부에 이른다. 당나라때 성취가 가장 큰 화가중 한 명이다. 그가 생활하고 경험했던 시대는 바로 당나라가 흥성에서 쇠락으로 넘어가던 시대이다. 전설상의 개원성세가 눈앞에서 점차 쇠락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화가의 마음 속에서는 분명 강렬하게 대비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화가의 신경을 깊이 자극했을 것이다.

 

당현종 후기의 혼용에 대하여, 당시의 이백, 두보, 장호, 이상은등 많은 문인들이 붓을 들어 시를 무기로 하여, 대당의 쇠락국면을 풍자한 바 있다. 이것은 당시 문단의 사조이고 유행이었다. 이들 많은 싯구들을 한간도 읽었을 것이고, 느낌이 있었을 것이며 생각하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일개 화가로서, 풍조를 따르고, 그림으로 이를 나타내고, 역사를 풍자하는 것은 시국에 대한 불만과 태평성대에 대한 그리움을 발설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해할 만하다. 특수한 수법으로 꼬리가 없는 말을 그리는 것은 당현종 집정이 '유두무미'하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다. 이것은 분명 한간이 <조야백도>를 그린 원래의 뜻일 것이다.

 

보기에 한간이 그린 꼬리없는 말은 당초에는 꼬리가 없었던 것이 아닌 것같다. 그가 취한 특수한 수법은 안료에서 손을 쓴 것이다. 이것은 바로 화가가 시인보다 고명한 점이다.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한간이 말을 그릴 때 전반신은 풍화가 잘 되지 않는 안료로 그리고, 후반신은 쉽게 휘발되는 안료로 그렸다. 몇 년 후 사람들이 보는 것은 꼬리가 없는 한 밀의 말이 된다. 그는 더욱 은밀한 수법으로 시국에 대한 견해를 나타냈다. 이는 리스크를 피할 수 있었을 뿐아니라, 불의의 화를 피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 그림에 더욱 깊은 의미를 나타낼 수 있었다. 이 점을 보면 이 그림은 묘필지작(妙筆之作)이라고 할 만하다.

 

만일 정말 전문가의 말대로 이 말의 후반신은 진적이 아니라면, 오대시의 화가가 보완해서 그린 것이라면, 이것은 바로 오대시의 화가가 원래의 그림을 복원시킬 때, 한간의 창작 원뜻을 깊이 이해했다는 것이다. 이미 잃어버린 말꼬리를 고의로 그리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이 그림에 숨겨진 창작의 비밀을 계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림을 원래대로 회복하는 원뜻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당현종의 보마 <조야백도>의 말꼬리는 닳아 없어진 것도 아니고, 가려진 것도 아니다. 이 그림의 창작의도가 기실 당현종 집정기간동안의 "유두무미"를 암시한다. 이 그림은 바로 시국풍자화이다. 창작수법이 미묘할 뿐아니라, 창작의도도 세상에 보기 드문 것이다. 최소한 당나라에서 이 그림은 유일한 시국풍자화일 것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양이 많은 풍자시와 비교하여 더욱 진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