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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사회

흑호(黑戶): 1300여만개의 지뢰

by 중은우시 2013. 11. 10.

글: 언열산(鄢烈山) 

 

최근의 <남방주말>에는 <"천민"복제>라는 제목의 특별보도가 실렸고, 거기에는 난징(南京)에서 자신의 어린 두 딸을 굶겨죽인 모친 러얜(樂燕) 의 인생궤적이 소개되어 있다.

 

보도에 따르면, 상당히 긴 기간동안 러얜은 외부에서 무지하고, 타락하고 악독한 모친의 이미지로 비추어졌다. 9월 18일, 분노한 대중에게 최후의 진술을 하면서, 반은 진술하듯이 반은 질문하듯이 이렇게 말했다: "한번도 사랑이라는 것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러얜의 인생궤적을 살펴보자:

그녀의 모친은 난징 교외의 농촌에서 태어났고, 일하면서 그녀의 부친을 알게 된다. 부친은 말없는 기술학교 학생이었다. 그때, 러얜의 할아버지는 국영남경자동차공장에서 일했고, 계획경제가 양성한 노동계급의 우월감으로 그는 농촌의 며느리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결사적으로 아들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다.

 

1991년 12월, 러얜이 출생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모친은 호텔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시내버스에서 절도를 해서 2년간 노동교양을 받게 되고, 풀려난 후에는 멀리 타향으로 떠난다; 그녀의 부친은 절도죄로 영원히 부친의 직위를 물려받아 노동자가 될 기회를 잃어버리고, 마찬가지로 외지로 떠난다.

 

이때부터 러얜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생활한다. 노인이 집을 나갈 때, 자주 러얜을 집에 가두어 두었다. 이로 인하여 그녀는 조급하고 우울한 성격이 형성된다. 예를 들어, 창문밖으로 물건을 마구 집어던지거나, 방안에서 혼자 소리를 지르곤 하는 것이다.

 

가장 관건적은 것은 부모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로 그녀를 낳은 것이다. 러얜은 호구에 올릴 수 없게 된다. 그녀는 "흑호(黑戶)"였다.

 

아이에 있어서, "흑호"가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은 학교를 다닐 수 없다는 것이었다. 2001년에 그녀가 10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구(社區)에서 어레인지하여 부근의 소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때, 러얜의 인격은 이미 왜곡되었다. 선생은 그녀를 도와주고자 했지만,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녀는 항상 원망섞인 눈으로 우리를 보았다." 2004년, 러얜은 학교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때 그녀의 나이 13살이었다. 그 후, 어느 날, 그녀는 집을 떠나고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 이후, 그녀는 길거리를 유랑한다. 그리고 나쁜 짓에 물들고 마약에 빠지게 된다. 아이들(당연히 흑호)이 생겼지만, 자신의 불행한 동년시절을 그 아이들에게 그대로 행한다. 아이들은 집에서 "감옥에 갇힌 것처럼" 살았다. 그녀가 집을 나서서 마약을 찾으러 며칠간 돌아오지 않는 바람에, 두 아이는 굶어죽고 만다.

 

이 특별보도에서는 이렇게 토로했다: 중국에서, "흑호"의 수량은 이미 1300여만명에 달했다. 이는 전국인구의 거의 1%에 해당한다.

얼마나 대단한 수치인가!

 

우리는 우선 이런 아이들의 운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명나라때의 현령이며 화가인 정판교(鄭板橋)는 아이들에게 노비들에게 잘 대해주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들도 사람의 자식이다." 그들의 출신은 비록 비천하지만, 역시 부모가 낳고 길러준 것이다.

 

그들의 부모가 누구이든지 간에, 그들이 어떻게 이 인간세상에 태어났든지 간에, 현행 <헌법> 제33조에는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을 지닌 사람은 모두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이다." 그들은 공민의 권리를 누릴 권리가 있다. 중국의 <혼인법> 제25조에는 명확히 규정한다: "혼인외의 자녀들도 혼인내의 자녀들과 동등한 권리를 누린다. 누구도 위해를 가하거나 차별할 수 없다."

 

혼인외의 자녀를 어떻게 호구에 올리느냐의 문제에서 대부분의 지역의 공안국 파출소는 영아의 출생증을 가지고 한다. 어떤 지구에서는 친자감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것은 차별이 아니다. 아동유괴와 불법입양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이다. 그리고 일부 아이들이 호구에 올릴 수 없는데, 이는 부모가 가족계획(계획생육)을 위반하고, '사회부양비'를 납부하려 하지 않아서이다. 혹은 아예 생부생모가 '부모'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여 납부할 돈 자체가 없어서이다. (규정에 따르면, 러얜이 둘째 아이를 낳으면 '사회부양비'를 납부해야 한다. 그녀 모녀는 먹고 입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는데, 납부할 돈이 어디 있겠는가)

 

구체적인 상황은 천차만별이다. 호구에 올리지 않은 이유도 천가지 만가지이다. 다만 결국은 하나로 귀결된다: 아이는 무고하다. 위에서 얘기한 <혼인법>은 "누구도 위해를 가하거나 차별할 수 없다" 이 "누구도"에는 여하한 이유로든 혼인외의 자를 호구에 올려주지 않은 사람이 포팜된다.

 

권리를 얘기하고 법률을 얘기하는 것만으로는 중국인에게 부족하다. 이해관계도 애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공민의 개인권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고, 법률은 그들이 보기에 신성불가침이 아니고, "사람이 만든 것"이므로 이런 저런 변명을 대거나, 각양각색의 이유를 들어서 집행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인은 습관적으로 이해관계를 따진다. 사회와 국가에 대한 이해관계를. 그러므로, <전국책>은 우리에게 유세전략을 말해준다. 상대방의 사고방식을 따라서 말해야 한다. 그들에게 어떤 이로움과 어떤 해로움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1300여만명의 "흑호"는 바로 우리 곁에 매장되어 있는 1300만개의 "지뢰"와 같다. 만일 그들이 러얜과 마찬가지로 어려서부터 사회에 대하여 사람에 대하여 원망을 품고 있다면, 그것은 이 나라, 우리 개개인의 생활을 너무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흑호" 아이는 자연히 모두 반사회분자로 되지는 않는다. 다만 1/10만이라고 하더라도, 130여만명의 반사회분자를 만드는 것이다. 두렵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혁명양판희(樣板戱) <홍등기>에 17살된 여자아이 이철매(李鐵梅)는 이렇게 모래한다: "원한이 마음에 뿌리박혀 싹을 틔운다(仇恨入心要發芽)"; <홍색낭자군>의 여주인공인 오청화(吳淸華)는 이렇게 노래한다: "십삼년간 한결같이 쓰린 마음을 가슴 속에 품어왔다....복수할 좋은 기회를 찾지 못했다." 이런 말은 러얜의 말과 같은 논리이다: "한번도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겠는가"

 

<혼인법>을 배우고 실행하자. 이들 '흑호"('천민")의 아이들을 잘 대해주자. 양심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는 반사회분자가 나타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하여.

 

음악가 승성해(冼星海)는 1905년 6월 13일 마카오의 해변에 있는 한 단호(疍戶. 베위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배 위에서 태어났다. "단민"은 원래 천민의 일종이다. 청나라때 영원히 육지에 올라와 살 수 없는 집단이었다. 운이 좋게도 시대가 바뀌고, 승성해는 다른 사람과 평등하게 각종 권리를 얻는다. 육지에 올라올 수 있었고,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중국인민지원군의 영웅인 황계광(黃繼光)은 일찌기 "마크로소프식의 영웅"으로 칭해졌다. 소련의 소설과영화 <보통병사>에서 묘사된 국가보위의 영웅이 전쟁터에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적군의 기관총을 막은 영웅이다. 필자는 그 소설의 첫머리를 기억한다. 마크로소프는 바로 유랑아(중국의 '흑호'와 유사함)였다. 국가는 그들에게 사랑과 기회를 주었고, 그들은 생명으로 조국에 보답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사회의 '지뢰'가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