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경제/중국의 경제

중국 스타벅스의 폭리에 관하여

중은우시 2013. 11. 10. 00:08

글: 유원거(劉遠擧) 

 

 

 

소비시대에 매체가 어떤 상품에 폭리가 있다고 비판하면 독자들로부터는 항상 환영받는다. 특히 현재의 중국에서는. 애플이후 미국의 커피체인점 스타벅스가 여론의 포위공격에 직면한 것같다. 전문적인 재경매체에서의 조사보도에서는 스타벅스는 중국내에서 폭리를 취하고 있으며, 1잔의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커피의 원가는 겨우 2.6위안인데, 판매가격은 25위안에 달한다고 하였다. 고가로 파는 것이외에 또 하나 지적받은 것은 미국 시애틀의 스타벅스커피점에서 인민폐로 환산하여 66.7위안에 판매하는 머그잔이 중국에서는 100위안에 팔고 있다는 것이다.

 

보도가 나간 이후 인민일보의 공식웨이보는 더욱 살기등등하다: "중국산 스타벅스 머그잔이 미국에서 중국보다 거의 절반이나 싸게 팔다니, 이는 적나라한 가격차별이고, 이는 일종의 '중국시장은 사람이 멍청하고 돈만 많다. 관리감독이 엄격하지 못하다'는 것을 조롱하는 것에 다름없다. 소비자들이 서양브랜드에 폭리를 착취당하고 있어, '눈을 가리고 돌면서 맷돌을 돌리는 당나귀'와  다를 바 없다', 공상부서는 직무태만의 혐의가 있다. 영토를 지키는 책임이 있다(守土有責). 그리고 갸격의 이중기준은 엄격히 단속해야 한다. 이것이 현재의 시급한 일이다" 이 모든 것은 몇달 전 애플을 포위공격하던 여론풍파를 연상케 한다.

 

스타벅스에게 위로가 될만한 일이라면 난형난제로 욕을 먹는 업종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안경업종도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이건 신기할 것도 없다. Levi's안경테의 공장도가격은 170위안인데, 도매가격은 550위안으로 뛰고, 소매가격은 천위안이상이 된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보호막을 팔고있는 노점상까지 질책을 받았다; 보호막 1장의 도매가격은 기껏해야 몇 위안이고, 싼 것은 몇 마오인데, 길가에서는 보호막 하나를 붙여주는데 몇 십위안을 받는다는 것이다.

 

매체의 질책이 이치에 맞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인의 상식을 벗어났다. 설마 길가의 노점상도 폭리를 누린단 말인가? 반격은 곧이어 나왔다: 그렇게 폭리를 취한다면 기자들은 왜 안경가게를 차리지 않는 것이냐? 안경가게를 차릴 수 없다면 길거리에서 보호막을 팔아도 되지 않겠는가?" 간단한 질문의 뒤에는 심도있는 경제학원리가 숨어 있다.

 

첫째, 설사 일반 백성이라 하더라도 알고 있다. 원가의 구성은 단순히 재료가격만이 아니라는 것을. 토지가격이 계속 오르는 오늘 날, 1급도시의 번화한 상업지구라면 임대료가 아주 높다. 왕왕 원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외에 인테리어, 인건비, 일상운영의 전기수도료, 제세공과금등이 모두 상인의 원가를 구성한다. 매체가 어찌 재료원가를 가지고 이윤율을 계산한단 말인가? 보호막을 파는 노점상은 여름의 땡볕도 견디고, 겨울의 한풍도 견딘다. 이것도 일종의 커다란 인건비 지출이다

 

실제로 원가가 어떤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서방 경제학의 기본이론은 시장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원가가 아니다. 희귀성이다. 이 점은 중국의 옛 말에도 잘 나타나 있다. "물이희위귀(物以稀爲貴)"(물건은 구하기 힘든 것이 비싸다). 실제로 경쟁시장에서, 단일 제조업체로 말하자면, 원가는 기실 부차적인 것이다. 제품이 좋으면 이윤이 아무리 많아도 잘 팔린다. 제품이 좋지 않으면, 가격이 원가보다 낮더라도 아무도 찾지 않는다. 소위 제품이 좋다는 것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여러 방면이다.

 

스타벅스는 미국에서 대중에 서비스하는 포지셔닝을 가지고 있으므로, 스타벅스는 중국에서의 영업환경이 그다지 좋지는 않다. 통상 사람은 많고, 붐비며, 시끄럽다. 하나의 탁자에 여러 명이 같이 앉아야 하는 경우도 있어, 사람들은 부득이 얘기하면서 프라이버시를 노출시킬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렇지만 '스타벅스에서 마시는' 것은 별다른 맛이 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가서 책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또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이것은 말해준다 사람들이 스타벅스에 가는 것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이거나, 편안하게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고, 일종의 신분을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오래되다보니 이런 행위는 어떤 소비집단의 특유한 집단 무의식과도 같은 소비행위로 되었다. 그 후에 이것은 더 나아가 '스타벅스를 마신다'는 신분구분, 신분상징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브랜드의 힘이다.

 

소위 일류기업은 표준을 팔고, 이류기업은 브랜드를 팔고, 삼류기업은 제품을 판다는 말이 있다. 스타벅스가 실제로 제공하는 것은 일종의 문화체험이다. 판매하는 것은 일종의 신분표준식별이다. 이것이 스타벅스의 희귀성을 결정한다. 나아가 그의 시장지위를 결정한다. 그리고 이 지위는 자연히 가격을 높에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 간단히 말해서, 이것이 브랜드의 힘이다. 그러나, 브랜드의 힘은 그저 빙산의 일각이다. 수면하에 있는 것이 더욱 대단하다. 본질적으로 말해서, 스타벅스가 파는 것은 일종의 문화에 관한 체험이다. 이런 체험은 더욱 강한 문화에서 발원한다. 강한 문화는 브랜드로 하여금 고급의 느낌을 주게 한다. 마치 맥도날드가 베이징에서 어떤 사람들에게 고급식당으로 여겨지듯이. 맥도날드에서 결혼식을 하듯이. 강한 문화 자체는 그저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  근원은 강한 제품과 기술에서 나온다. 우주선, 애플, 인텔, 윈도우즈가 전세계에 잘 팔리고 있으므로 그 커피브랜드도 자연히 남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각 지역의 가격이 같지 않은 것은 확실히 일종의 '가격차별'이다. 소위 가격차별은 간단히 말해서 업체가 똑같은 제품을 서로 다른 가격에 서로 다른 수요를 지닌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가격차이는 일상생활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이는 상인들의 정상적인 권리이다. 슈퍼마켓에서는 콜라 두 병을 묶어서 싸게 판다. 이것도 가격차별이다; 관광지에서는 현지관광객에게는 무료 또는 할인해준다. 이것도 가격차별이다; 다만 관련매체는 그저 글자 그대로 이해하여 '차별'이라는 말로만 그것이 부정적이라고 얘기했고, 그것이 무슨 죄라도 되는 듯이 뒤집어 씌웠다.

 

부인할 수 없는 점은 확실히 일부 외국브랜드가 헛점을 파고 들어, 비정상적인 고이윤을 얻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서, 하나의 업종이 개방되고, 정부권력이 진입문턱을 만들지 않는다면, 기본적으로 우리는 이 업종의 가격이 정상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어떤 때는 자연적인 독점이 나타나기도 하고, 일부 일시적인 독점가격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누구도 기솔독점의 꼭대기에 계속 서 있을 수는 없다. 마이크로소프트가 10년전에는 중천에 뜬 태양이었지만, 지금은 구글, 애플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있다는 것이 하나의 예이다.

 

이것은 원래 시장경쟁의 기본지식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일부 매체는 당당하게 폭리를 비판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업종협회의 책임자는 "1인당소득과 대비한다면 (스타벅스)의 중국내 판매가격은 10위안/잔가량이 되어야 한다"고 황당한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정말 그렇다면, BMW, 벤츠나 중국이 태국에 건설하는 고속철도 모두 현지수입을 기준으로 가격을 정해야 한단 말인가?

 

"폭리"에 대한 부적절한 지적은 일정한 정도로 비판자들의 시장경제상식에 대한 무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지식이 부족하면 보충하면 된다. 그래도 안되면 전문가에게 물어보면 된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영토를 지키는 책임이 있다"라든지, "'눈을 가리고 돌면서 맷돌을 돌리는 당나귀"와 같은 말은 마치 또 다른 단속을 암시하는 것같다.

 

현재 정부의 관련부서는 일종의 회색관리를 즐겨 한다. 이런 관리모델은 왕왕 불확정적이다. 혹은 지나치게 가혹한 법규로 단속한다. 최근 한동안 더욱 이런 현상이 심해졌다. 국수주의적인 여론에 기대어 도덕적으로 압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먼저 여론을 통하여 공격하고, 다시 정부가 민의를 대표하여 나타나서, 단속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소위 단속은 모두 먼저 드러나게 한 다음에 때린다. 여론이 애플의 나라마다 다른 애프터서비스정책을 공격하고 스타벅스의 높은 가격과 나라마다 다른 가격을 공격하고, 이런 방식은 점차 틀을 갖추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같다.

 

더욱 깊은 배경은 모종의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혀 있는 사회적인 이데올로기가 시장경제상식을 억누르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에서, 비록 시장경제가 사회운행의 기본모델이 되기는 하였지만, 이것은 사회운행의 도구가 되었을 뿐이고, 인민의 신념과 판단이 의존하는 지식이 되지는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소위 자본, 착취등의 개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국수주의적인 인식의 근원이 되고 있다. 이것은 아주 경계해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