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려평(劉黎平)
원순제(元順帝)가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수수께끼였다. 일찌기 1368년 칠월, 서달(徐達)의 북벌군은 하북 통주(通州)에 도착한다. 원왕조의 도성에 하루이틀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기괴하게도, 북벌군사통령 서달은 통주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꼬박 7일을 머문다.
7일의 시간은, 원순제가 도망치는데 있어서 충분한 시간이다. 원순제도 상대방의 뜻을 이해했는지, 과연 한밤중에 건덕문(健德門)을 열고 도망친다. 그후에, 서달의 대군이 뒤늦게 진입한다. 이것이 첫번째이다.
두번째는 얼마후 개평(開平)에서 벌어진다. 개평은 지금의 내몽골 정남기 섬전하 북안이다. 원나라때의 상도(上都)이다. 서달의 군대는 느릿느릿하게 왔다. 대명앙조의 군대가 성아래 도착한다. 완전히 우물안 개구리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러나 서달은 포위망에 일부러 한군데를 비워둔다. 원순제는 서달의 뜻을 알아차린 듯이, 다시 도망친다. 이것이 두번째이다.
개평왕 상우춘(常遇春)은 분노한다. 원황제를 생포하여 큰 공로를 세울 기회를 두눈 벌거니 뜨고 놓친 것이다. 서달은 그러나 조급해 하지 않고 천천히 이유를 설명한다: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는 비록 오랑캐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우리의 황상이었던 사람이다. 중원을 오랫동안 통치해왔다. 즉,그는 합법적인 통치자였다. 어찌 체면을 살려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정말 그를 붙잡는다면, 우리의 두목인 주원장이 어떻게 그를 처리해야할 것인가? 이 전임황제에게 땅을 하나 떼주어야 하는가? 아니면 죽여버려야 하는가? 내 생각에 둘 다 적절하지 못하다. 그를 풀어주는 것이 가장 좋다."
상우춘은 서달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군대를 이끌고 돌아온 후 주원장에게 이를 보고한다. 그러나 주원장은 서달을 책망하지 않았다.
이를 보면, 주원장과 서달은 원순제를 처리하는 문제에서 묵계가 있었던 것같다. 어떤 전문가는 이렇게 고증했다. 서달은 개평추격전에 참가하지 않았다고. 그러나, <명사>에는 군신 두 사람이 원순제의 거취문제를 놓고 의견교환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주원장이 변량에 있을 때, 서달은 비밀리에 주원장에게 보고하여 의견을 구한다. 원순제가 만일 도망치면, 승기를 틈타 추격해서 잡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주원장은 대답했다. 그를 새외(塞外)로 쫓아보내면 그만이다.
<원사>에도 증거가 있다. "원순제본기"에는 이렇게 말한다: 주원장은 원순제가 성을 버리고 도망치는 협력적인 태도를 보이자, 그가 "천명을 알고 따르며, 물러나 도망친다"고 여겼다. 억지로나며 원왕조와 명왕조의 평화로운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그에게 "순제(順帝)"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원나라에서는(북원) 원순제를 원혜종(元惠宗)이라고 불렀다.
명태조 주원장과 서달의 이러한 마음씀씀이는 당시의 역사조건하에서 정확한 것이었다. 봉건사회에서 군신관념은 아주 강하다. 비록 원왕조는 농민의거군이 무너뜨려야할 대상이었지만, 원순제 본인은 모두 그를 "군주"로 봐주었다.
예를 들어, 수양제는 폭군이고, 전복시켜야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가 양주에서 피살된 후, 반란을 일으킨 이연, 두건덕등은 모두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며 수양제를 위하여 피마대효(披麻戴孝)했다. 그리고 숭정제는 이자성이 전복시켜야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자성은 북경으로 들어온 후 자살한 숭정제를 후히 장사지내준다.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천하에 군신의 이념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원순제는 황제로 있을 때 괜찮은 편이었다. 과거제를 회복시키고, 부세를 감면해주고, 업적이 내놓을만 했다.
이런 큰 배경하에서 보자. 만일 원순제가 붙잡힌다면, 주원장과 전왕조의 황제는 어떻게 지내야 할까? 어떻게 지내더라도 난감한 일이다. 그래서 아예 만나지 않는게 나은 것이다. 이것은 봉건사회의 특유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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