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손중산)

쑨원(孫文)의 영문이름 Sun Yat-sen(쑨얏센)은 어디서 왔는가?

중은우시 2013. 8. 5. 02:06

글: 진명원(陳明遠) 

 

중문-영여 번역업무를 하는 사람이면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손중산(孫中山)의 로마번역명칭은 Sun Yat-sen으로 쓴다는 것을. 한어의 병음인 Sun Zhongshan이 아니라. 예를 들어, 광저우의 중산대학(中山大學)의 정식 영문명칭은 "Sun Yat-sen University"이다. "Zhongshan University"가 아니라. 

 

다만, 이 Sun Yat-sen에 대하여 과거에는 통상적으로 중문의 "손일선(孫逸仙)"에서 왔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말이 아니다.

 

실제로, 손중산은 일생동안 각 시기마다 서로 다른 이름을 썼다: 그의 유년기에 족보에 오른 이름은 "덕명(德明)"이다. 이것은 손씨의 족보상 배분에 따라 지은 이름이다. 그의 형인 손미(孫眉)의 족보이름은 "덕창(德彰)"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이 이름을 쓰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서명할 때는 "손문(孫文, 쑨원)"이라고 썼다.

 

1897년 손중산이 일본으로 망명한 후, 가명으로 쓴 것은 일본이름 "나카야마 쇼우(中山樵)"였다. 왜 나카아먀 쇼우라고 이름을 붙였는가? 일설에 의하면, "중국의 산초(山樵, 나뭇꾼)"이라는 것이고, 또 다른 일설에 따르면, 당시 손중산선생이 일본에 망명할 때, 친구가 그에게 일본의 귀족성씨인 "나카야마씨(中山氏)"를 쓰도록 권했다는 것이다. 나카야마가족에서는 유명인들이 많이 나왔고, 메이지천황의 모친도 나카야마씨이다. 나중에 장태염(章太炎)이 중국성인 "손"과 일본성인 "중산"을 합하여 "손중산선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신해혁명후, "손중산"의 칭호가 국내에서 널리 유행하고, 지금에까지 이른다.(한편, '중산'현(縣)을 이름으로 썼다고 하는 설도 있는데, 정확하지 않다. 그의 고향은 광동성 향산현이었으며, 손중산이 사망한 후에 그를 기념하여 비로소 중산현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그러나 세계각국에서는 그의 성명을 "Sun Yat-sen"으로 부르는데, 이것은 또 어떻게 된 것인가? 아래에서는 그 연유를 설명하기로 한다.

 

1883년 11월, 손문이 17살때, 고향인 광동성 향산현을 떠나, 홍콩의 "발췌서원(拔萃書院)"으로 가서 영어를 배운다(반년후 홍콩중앙서원으로 옮긴다), 시간이 있을 때 홍콩도제회당장 구봉지(區鳳墀)에게서 중문을 배운다. 이때 그는 기독교에 가입하는데, 홍콩에서 정식으로 미국인 목사 Charters Robert Hager에게 세례를 받을 때, 자신이 사용한 중문이름이 바로 "손일신(孫日新)"이었다.

 

이 "일신(日新)"은 전고(典故)가 있다. 유가경전인 사서중 <대학>에 나오는 것으로, "구일신(苟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상나라의 개국군주인 성탕(成湯)이 청동기에 새긴 잠언이라고 한다. 즉 저명한 "반명(盤銘)"이다.

 

손문은 기독교의 교의가 혁명과 상통한다고 여겼고, 그는 기독교를 믿으면서 정신을 중시했고, 규칙을 그대로 따르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중문이름 "일신"을 택한 것이다; 당시에 이미 로마화된 알파벳이름 Sun Yat-sen을 썼다. 이것은 홍콩에서 사용하던 '손일신"의 광동말 발음을 그대로 쓴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일신"의 관화(당시에는 보통화라고 부르지 않았다) 알파벳은 Rixin이었다. 광동말의 "얏센"과 차이가 컸다. 그래서 Sun Yat-sen을 비교적 관화에 가까운 "일선(逸仙)"으로 바꾼다. 광동말로는 "얏신"이 되어 비슷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선"이라는 두 글자는 <대학>의 잠언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의 깊은 의미는 품지 못하게 된다.

 

"일(日)", "일(逸)" 두 글자는 광동어에서 발음이 같다. 모두 "얏"으로 발음이 난다. 보통화의 발음니 Ri와 Yi로 발음하지 않는다.

 

"손일신(孫日新)"은 광동화로 발음하는 것을 영문으로 적으면 Sun Yat-sen이 된다. 이것을 다시 한자로 적으면 "손일선(孫逸仙)"이 된다. 그러나, 이것을 보통화 발음대로 Sun Rixin 혹은 Sun Yixian으로 읽지 않았다. 이것은 역사상의 "약정속성(約定俗成)"의 결과인데, 지금까지 그래도 썼고, 공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