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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공통)

할거(割據)의 좋은 점

by 중은우시 2013. 9. 16.

글: 이개주(李開周)

 

여러해 전에 루쉰(魯迅)이 샨시(陝西)로 가서 강의를 한 바 있다. 부지불식간에 샨시성장 류전화(劉鎭華)를 들이받았고, 현지매체는 류성장이 진노했다고 보도했다. 그 결과 그 신문은 여러날동안 정간되었다.

이 일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민국시대에도 보도관제가 있었고, 언론환경이 자유롭지 못했다.

다만, 민국의 보도관제는 철저하지 못했다. 샨시에서는 보도할 수 없지만, 허난으로 가면 매체가 보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중국인거주지역에서는 출판할 수 없지만, 조계의 서국에서는 인쇄할 수 있다; 국민당 치하의 중원지구에서는 '장개석타도'를 외칠 수 없지만, 만주국통치하의 동북지구에서는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문제가 없다; 일본군에 점령된 후 북평(북경)에서는 '소일본타도"를 외칠 수 없지만, 아직 함락되지 않은 중경, 곤명과 장사에서는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된다. 심지어 반드시 소리쳐야 한다...

민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통일된 적이 없었다. 신해혁명때부터 해방까지, 중화대지는 사분오열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은 직접적으로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고, 백성들의 생활은 도탄에 빠졌다. 국력은 박약하고, 내분으로 인한 소모가 엄중했다. 나쁜 점이 아주 많았다. 그러나 좋은 점도 있었다. 할거자들은 각각 자신만 돌보다 보니, 대일통시대처럼 어떤 언론을 타격하거나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되다보니, 어떤 사상이든 모두 성장하는데 적합한 토양을 찾을 수 있었다. 민국시대에 왜 대가들이 많이 나타났는가? 전국시대에 왜 백가쟁명했는가? 이것이 바로 그 원인이다.

할거의 장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1930년대, 염석산은 산시(産西)에서 할거한다. 홍색정권은 샨베이(陝北)에 할거한다; 두 정권은 서로 이웃해 있었다. 이쪽에서 소리를 치면 저쪽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샨베이에서 토지개혁을 하여, 농민들의 환영을 받으면, 산시의 농민들이 홍색정권으로 넘어갔다. 염석산은 상황이 좋지 않자, 급히 토지개혁을 실시한다. 동시에 도시에서도 대거 임대료인하조치를 취한다. 타이위안(太原)시의 높던 임대료가 내려간다. 농촌문제와 도시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한 것이다.

남송이 막 건립되었을 때, 북방의 난민은 대량으로 남하한다. 남방의 토착민들은 이 기회에 임대료를 끌어올린다. 각 대도시의 임대료도 따라서 올라간다. 과반수가 넘는 이민들은 그저 빈민굴에 살 수밖에 없었다. 금나라의 간첩들은 이 기회에 소문을 퍼트린다. 북방의 집이 얼마나 싼지, 임대료는 얼마나 저렴한지. 이렇게 하여 송나라백성이 금나라로 넘어오도록 유도한 것이다. 송고종은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임대료제한령을 내린다. 그리고 싼값에 임대하는 주택을 많이 건설한다. 이렇게 백성들의 임대료부담을 줄여주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한다.

양'국'이 서로 싸우면, 사신을 죽이지 않는 것말고도, 어떤 때는 집임대료를 인하시킬 수 있었다. 민심을 쟁취하기 위하여 상대적으로 영명한 통치자는 백성들에게 유리한 조치를 취하게 된다.

대가를 많이 배출하고, 집값이 오르지 않고, 이것은 할거의 두 가지 좋은 점이다. 아쉽게도 전쟁이 계속되고 백성의 생활이 도탄에 빠지는 것과 비교하면, 할거의 좋은 점은 실로 너무나 작고 나쁜 점은 실로 너무나 크다. 그래서 나는 민국시대에 대가를 많이 배출한 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남송시대의 싼 집임대료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평화시대에 살면서, 동시에 사상도 개방되고, 집값도 내려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