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계흥(劉繼興)
역사상 용인술에 뛰어난 황제들은 적지 않다. 그러나 가장 용인술이 뛰어난 사람을 꼽으라면 유방일 것이다. "지인선임(知人善任)"이라는 성어는 바로 유방에 대한 칭찬에서 나왔다. 이 성어는 한나라때 반표(班彪)의 <왕명론(王命論)>에서 나왔다: "한고조(유방)이 나라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요 임금의 후예라는 것이고(帝堯之功裔), 둘째는 체격과 용모가 비범했다는 것이고(體貌多奇異), 셋째는 신령스러운 힘으로 사람들을 따르게 하고(神武有徵應), 넷째는 관후하고 인자하며 밝고 너그럽다(寬明而仁恕), 다섯째, 사람을 잘 알아서 일을 맡겨서 쓴다(知人善任使)"
모두 알다시피, 유방이 어렸을 때, 집안에서 일을 하지 않고 강호에서 어울려 다니다가 사수정장이라는 하급관직을 맡게 된다. '진나라가 사슴을 잃어 천하가 사슴을 쫓을 때" 그는 여러 군웅들을 물리치고, 천신만고끝에 결국 서한왕조를 개창한다. 그가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한가지이다. 장량, 소하, 한신등 인재들이 핵심역할을 했다. 한왕조가 건립되는 전체 과정을 보면, 장량은 유방을 도와 한왕조를 건립하는데 '참모장'의 역할을 했고, 서한왕조의 개국대공신이다. 소하는 장병들에게 군수물자를 보급하는 일을 담당하여 전선에서의 전투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으니, '군수사령관'의 역할을 했다. 한신은 병력을 귀신처럼 부리면서, 병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잘 썼으며 연이어 뛰어난 전공을 세운다. 해하에서 항우를 대파하여 천하의 패권을 결정짓는다. 그는 "총사령관"의 역할을 했다.
북(鼓)은 오음(五音)만 못하지만, 오음의 주인이다. 유방이 바로 이렇게 오음을 지휘하는 "북"이다. 그는 아주 성공한 지도자이다.
유방의 수하에 있는 문신무장은 대부분 여러 사회계층사람들이다. 조참은 패현의 하잘 것없는 하급관리였고, 번쾌는 개를 잡는 도부(屠夫)였으며, 하후영은 마차꾼이었고, 주발은 자리를 짜는 것을 직업으로 하면서 사람들의 경조사에 북을 치고 피리를 부는 일도 겸업했다. 관영은 시장의 장삿꾼이었고, 누경은 가마꾼이었으며, 역이기는 가난한 서생이었다. 팽월, 경포는 강도였고, 진평은 원래 위왕 구(咎)의 태복(太僕)이었는데, 나중에 항우를 따라 군대에 들어가서 도위가 된다. 그는 유방에 귀순한 후, 호군중위의 직을 맡았다. 그는 일찌기 반간계를 건의하여 항우가 모사 범증을 쓰지 않도록 했고, 작위를 가지고 한신을 회유하게 한다. 그도 한왕조 건립에 중대한 공로를 세운다. 나중에 혜제, 여후와 문제때의 승상을 지내고, 주발과 협력하여 여후를 분쇄하는 정변을 일으킨다. 만일 그 개인의 역사를 본다면, 집안이 가난했고, 하급관리로 있을 때는 뇌물수수와 부정부패를 저질렀고, 형수와도 애매한 관계였다. 그리하여 "도수수금(盜嫂收金)"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한신은 어떠한가? 그는 남창정장과 표모(漂母, 빨래하는 아주머니)의 집에서 기식할 때, 사람들의 모욕과 멸시를 받았다. "사출과하(使出胯下)"의 치욕까지 당한다. 겉으로 보기에 이처럼 출신이 좋지 않아 "계명구도"라 할만한 사람들이 '오욕의 이름을 지고, 비웃음이 치욕을 견뎠다. 그러나 모두 유방에게 쓰여서 왕업을 성취하고 명성을 천년에 남긴다. 그것은 그들의 장점을 쓰고 단점을 피했기 때문이다.
유방의 뛰어난 점은 사람을 쓰는데 기물을 쓰는 것처럼 장점을 활용하고 단점은 회피했다는 것이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의 장점을 모르고, 사람의 단점을 모르며, 사람의 장점중의 단점을 모르고, 사람의 단점중의 장점을 모르면, 그 사람을 쓸 수 없고, 그 사람을 가르킬 수 없다." 유방이 인재를 고르고, 인재를 쓰는 것에서 유방은 용인지도를 잘 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량은 한나라의 귀족이다. 고위층에서 생활하여 권모술수에 능하다; 소하는 패현이 관리이다. 하층백성들과의 업무경험이 풍부하다. 행정조직재능이 뛰어나다. 그래서 군량미운송을 맡긴 것이다; 한신은 '항량,항우가 거병할 때 검을 들고 따랐다' 그는 병사를 거느릴 용기가 있었다. 이 '삼걸'은 바로 유방이 장점을 활용하고 각각 그들의 역할을 하게 한 것이다. 그외에 번쾌는 어려서 개잡는 일을 했다. 유방이 풍에서 거사할 때부터 여러번 전공을 세운다. 홍문연에서는 항우를 질책하며 유방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했다. 육가는 겉으로 변사이지만 유방에 <신어>12편을 바쳤는데, 매 편을 아뢸 때바다 "고조가 칭찬하지 않은 바가 없었다" 그는 나중에 유명한 정론가가 된다.
이렇게 하여 유방의 휘하에는 모신들이 비처럼 많고, 맹사가 구름처럼 몰려드는 장관을 이루게 된다.
용인불의(用人不疑)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말고, 의심이 가면 쓰지를 말라. 이것은 유방의 뛰어난 점이다. 서한 '삼걸' 중에서 소하가 일찌기 패현에서 유방과 같이 일을 해본 적이 있어 '심복'이라 할 수 있는 외에, 장량은 집안대대로 한나라의 귀족이었고, 계속하여 한나라의 부흥을 부르짖엇다; 한신은 항우를 따라 거병했다. 장량, 한신이 충성으로 유방을 모시고 적극 도와주었던 것은, 유방이 용인불의하였기 때문이다. 한신이 유방에 의탁한 후, 만일 유방의 신임을 얻지 못했다면, 아마도 대장을 맡을 수 없었을 것이다. 더더구나 군대의 지휘권을 장악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유방이 신임했기 때문에, 한신은 신임으로 보답했다. 사실상, 유방의 문하에, 발탁되어 중용된 전왕조의 '구신'은 장량, 한신 두 사람뿐만이 아니다. 장창(張蒼)은 진왕조에서 문서자료를 관장하던 어사였고, 숙손통(叔孫通)은 진왕조의 황제고문인 박사였다; 진평은 항우의 도위였다. 이를 보면, 신임이 인재들이 사업을 추진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전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도자가 가장 피해야 할 것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사람을 의심하는 것이다. 오늘은 이 사람을 의심하고 내일은 저 사람을 의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사실 자신의 사업이 위험해질 뿐이다. 용인불의, 의인불용. 유방은 그런 박력이 있었다. 그는 일단 누구를 쓰기로 결정하면, 절대로 의심하지 않고, 안심하고 일을 맡겼다.
유방이 사람들에는 원래 항우의 아래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항우의 부대에는 더 이상 있을 수 없어서 유방에게 도망쳐 온 사람들이다. 유방은 문을 활짝 열어두고, 그들을 똑같이 대하며 환영했다. 네가 오겠다면 나는 환영한다. 예를 들어, 한신은 원래 항우의 부하이다. 항우의 부하로서는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자, 유방에게 투신한다. 또 진평은 더 복잡한 길을 걸었다. 원래는 위왕의 수하였다. 그러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자, 항우에게 간다. 그런데 거기서도 역할을 할 수 없자 유방에게 갔다. 진평이 항우의 군중에서 도망쳐 유방의 군영으로 왔을 때, 유방은 '크게 기뻐했다' 그는 진평에게 묻는다. 진선생은 항우의 군영에서 어떤 일을 맡았는가? 진평은 대답한다. 도위를 맡았습니다. 유방이 말한다. 좋다. 여기서 도위를 맡아라. 그리고 즉시 진평을 도위에 임명한다. 임명을 공표한 후, 한나라군영은 소란스러워진다. 유방의 옛부하들이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유방에게 가서 진평에 대하여 좋지 않은 말을 한다. 그러나 유방은 신경쓰지 않는다. 너희는 떠들고 싶은대로 떠들어라. 나는 내가 하고싶은대로 임명하겠따. 그리고 진평을 아주 신임한다. 그리고 진평에게 중임을 계속 맡긴다.
유방의 이런 신임이 있었기 때문에, 진평은 유방을 위하여 힘을 다한다. 당시 유방과 진평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유방이 묻는다. 네가 보기에 내가 현재 항우와 교착상태에 빠졌고, 누구도 누구를 이길 수 없다. 선생이 보기에 무슨 방법을 써야 이겨서 이 전쟁을 하루빨리 끝낼 수 있겠는가? 진평이 말한다. 항우는 의심이 많습니다. 우리가 반간계를 써서, 항우가 부하를 믿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 그의 오른팔 왼팔을 제거해 버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유방이 말한다. 그 아이디어가 좋다. 우리가 반간계를 써보자. 그렇다면 진선생이 추진해라. 비용은 문제되지 않는다. 바로 지급하겠다. 황금 4만근. 여기서 주의할 점은 여기의 금은 실제는 구리라는 것이다. 그때 황금이라고 하면 지금의 황동이다. 유방은 황공 4만근을 진평에게 건네준다. 이 돈을 너에게 줄테니 마음대로 쓰라는 것이다. 사용내역도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영수증도 필요없고 감사도 하지 않을테니 마음대로 쓰라는 것이다. 항우만 무너뜨린다면 절약해서 남는 것은 네가 가지라는 것이다. 이것은 특수한 상황에서의 특수한 조치이다. 또한 유방의 진평에 대한 신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탄성상대(坦誠相待)
탄성상대는 한 사람의 자질문제일 뿐아니라, 사람의 처세의 원칙이기도 하다. 성의를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지 여부에 따라, 상대방도 성의를 가지고 당신을 대할 것이다. 인재들에 있어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마땅히 받아야할 보수뿐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은 존중과 신뢰이다. 이들 인재를 존중하는 유일한 방법은 성의로 대하는 것이다. 솔직히 대하는 것이다. 유방은 그런 장점이 있었다. 장량, 한신, 진평과 같은 사람들은 문제만 있으면 유방을 찾아와서 얘기했고, 문제를 제기했다. 유방은 모조리 사실대로 대답한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대답하는 것이 체면깍이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절대 거짓말을 말하지 않았다. 이들이 유방을 도와서 자신의 계책을 많이 내놓을 수 있었던 것도 유방에게 한 가지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대로 말한다. 절대로 속이지 않는다. 이렇게 상대방을 신뢰해야, 상대방을 존중해야, 상대방의 똑같은 보답을 받는다. 마찬가지의 신뢰와 존중을 받는다. 전심전력으로 도와서 계책을 내놓는 것이다. 이것은 지도자가 되는 사람들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경험이다.
소하의 사례는 더욱 문제를 잘 설명해준다. 유방이 시골의 보잘 것없는 사수정장으로 있을 때, 소하는 이미 패현성에서 실권을 장악한 관리였다. 그는 일처리가 공평하고, 법집행이 공정하여 현지 상관의 존중을 받았다.
이때 유방은 형편없었다. 술과 여색에 빠져있고, 자주 사람들을 못살게 굴었다. 사람들이 멸시하는 그런 유형이다. 지위가 비교적 높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소하는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멸시하는 유방을 아주 존중해주었다. 유방이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상사인 소하는 자신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하여 해결해주곤 했다.
유방이 진나라에 대항하여 거병할 때, 소하와 유방의 지위는 뒤바뀐다. 소하는 상사에서 신하가 된다. 유방은 백성에서 군주가 된다. 소하는 더더욱 충성심을 가지고 유방을 보좌한다. 지위에서 유방을 넘어설 생각은 하지 않았다.
유방은 어떤 매력이 있길래 소하가 이처럼 그를 따랐을까? 그 근원은 소하가 유방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유방이 친구를 성의로대하고, 약속을 중시하며, 의리를 중시하는 대인관계의 원칙을 일찌감치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나중에 유방의 곁을 떠나지 않는 오른팔이 된다.
유방이 성의로 대하였기 때문에 많은 인재들이 그에게로 왔다. 소하와 마찬가지의 하급관리들을 포함해서. 예를 들어, 조참은 당시에 현내의 하급관리였다. 나중에 유방이 거병할 때 주요참여자이다. 유방을 도와서 많은 전투를 치르고, 개국공신이 된다. 그리고 소하의 다음으로 한나라의 제2대 재상이 된다. 하후영은 당시 '패현의 마굿간을 담당하는 관리'였다. 하후영은 대장부이다. 유방이 사람을 때려서 죄를 짓게 되었을 때 그가 나서서 유방을 대신하여 벌을 받는다. 1년동안 감옥에 같여 있었고, 나중에 유방의 신뢰하는 장수가 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성의를 가지고 사람을 대하고, 친구를 사귀는 장점이 없었더라면, 유방이 나중에 대사를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논공행상(論功行償)
인재를 쓰려면, 먼저 그를 신임하고, 그를 존중하고, 동시에 상을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상은 한 사람의 공헌에 대한 실질적인 인정이기 때문이다. 그저 말로만 이 사람이 괜찮다, 이 사람은 얻기 힘든 인재이다. 이 사람은 골간이다라고 하면서 한푼의 상도 주지 않으면 그건 안된다. 공헌이 있으면 상을 주어야 한다. 상도 적합해야 한다. 확실히 일을 잘아고, 공헌이 크면 상을 많이 주고, 일반적이면 일반적인 상을 주고, 잘 못하면 상을 주지 않고, 심지어 벌을 주어야 한다. 상벌이 분명해야한다. 유방이 천하를 얻은 이후, 개인의 서로 다른 공적에 따라, 공신들에게 논공행상을 한다. 소하, 장량, 한신, 팽월등에게 상을 내렸을 뿐아니라, 그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인 옹치(雍齒)에게도 상을 내린다. 옹치가 상을 받고 작위를 받자, 모든 공신이 안심한다. 유방은 진정 공로에 따라 상을 내리고, 친소관계에 따라 상을 내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릇의 물이 편평해진 후에 비로소 '공생명(公生明)'의 효과가 나타난다(공생명은 偏生暗의 상대말로 공정하면 밝아지고 치우치면 어두워진다는 순자의 말임).
논공행상때 유방은 정한다: 제일은 소하이다. 이 점에서 유방의 노련함을 엿볼 수 있다. 왜 소하를 제1공신으로 하였는가? 첫째, 소하는 혁명원로이다. 건국공신이다. 유방과 함께 거병했고, 공헌이 탁월하다. 둘째, 소하는 중요한 공헌을 했는데, 적시에 대향의 문서서류를 확보했다. 당시 유방이 관중으로 들어갔을 때 군대가 함양성내로 치고 들어간 후 장군들은 무엇을 하였는가? 재물을 빼앗고 금은보화를 빼앗았다. 혹은 여인을 강간하느라 바빴다. 그저 소하만이 진왕조의 국가자료관으로 뛰어들어가서, 진나라의 지도, 장부, 각종문서자료를 모조리 확보한다. 나중에 유방이 천하통일하는데 전체국가의 형세, 예를 들어 어느 지방이 가난하고 어느 지방이 부유한지, 어느 지방에 어떤 물산이 나는지, 어떤 상황인지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알 수 있었다. 소하가 이런 자료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보자면, 소하는 확실히 치국의 인재이다. 총리가 될만한 사람이다. 그는 이들 자료의 중요성을 알았다. 우리가 현재 말하는 정보의 중요성이다.
유방은 영도예술을 아는 전형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바로 그가 인재를 신임하고 인재를 사용하고 충분히 그들의 적극성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그리고 암중으로 대비하고 통제했기 때문에, 당시 천하의 인재들이 모조리 그의 주위로 집결한 것이다. 그리하여 최적조합을 이룬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그가 천하를 차지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유방이 뛰어난 점은 모든 공을 자신의 것으로 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장막에서 말판을 써서 천리 바깥의 승리를 결정짓는 일은 내가 자방(장량)만 못하다; 국가를 다스리고 백성을 위로하며 양식을 공급하고 끊이지 않게 하는 일은 내가 소하만 못하다; 백만지군이라도 싸우면 이기고 공격하면 함락시키는데는 내가 한신만 못하다" 이 '삼불여(三不如)'는 정권건립의 공을 모조리 자신에게 귀속시키지 않고 '삼걸'의 중요한 역할을 충분히 인정해준 것이다. 이를 보면 그의 훙금이 관활(寬闊)하고, 기도가 헌앙하며, 식견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자의 도덕경에 이런 말이 있다: "남을 아는 것은 지(智)이고, 자신을 아는 것은 명(明)이다. 남을 이기는 자는 힘이 있고, 자신을 이기는 자는 강하다" 세계는 무한하다. 한 사람의 지식과 능력은 유한하다. 창해일속과 같다. 아무리 총명한 사람이라도 전지전능일 수는 없다. 사회엘리트와 걸출한 인물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현실사회, 정치생활에서 어떤 사람은 이렇지 않다. 그들은 "병이 꽉차면 소리를 내지 않으나, 반쯤 차면 시끄럽다" 자신의 재능을 믿고 오만하고,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한다. 병이 들어도 의사를 찾지 않고 잘못했다는 말을 들으면 화를 낸다. 심지어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치지를 않는다. 고집이 굳어져서 자신의 뜻대로 한다. 어떤 지도자나 간부들이 이렇게 할 뿐아니라, 일부 전문가나 학자 내지 유명인사들도 이렇다. "호랑이의 엉덩이는 만질 수 없다" 그들은 그러나 고인들의 "사람을 논하는데 요령이 있다: 교만한 사람중에 큰 인물은 없다." "교만한 사람은 자잘한 사람의 무리에 속한다."
유방은 '삼불여'의 스스로를 아는 총명함이 있고, 인재를 알아보는 재능이 있었으며, 다른 사람을 용납하는 도량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재능을 마음껏 쓰게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가 '삼척의 검을 들고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그의 생활지혜와 관리예술은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본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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