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유방)

유방은 왜 용을 부친으로 삼았는가?

by 중은우시 2013. 1. 2.

글: 문재봉(文栽縫)

 

유방은 중국의 두번째 봉건왕조인 한왕조의 개국황제이고 역사에서 한고조(漢高祖)라 칭한다. 그는 중국역사상 대기만성형의 제왕이라고 할만하다(그는 약 50세가량때 황제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위대함에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개략 계산해보자, 그에게서는 다섯가지 '최고'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중국봉건황제중 가장 대단한 사람이라고 할만하다: 중국역사상 용인술이 가장 뛰어난 황제; 중국역사상 가장 흉금이 넓은 황제; 중국역사상 최장의 통일왕조를 개창한 인물. 그가 개창한 한왕조는 400여년간 존속했다; 그는 또한 가장 먼저 한족(漢族)이라는 족명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그러나, 이렇게 위대한 일대제왕이 잘 이해되지 않는 일을 하나 했다. 그것은 '용(龍)"을 부친으로 삼은 것이다. 그는 스스로 "적제지자(赤帝之子)"라고 칭했다. 그렇다면 유방은 정말 "적제지자"인가?

 

사료의 기록에 따르면, 유방은 오늘날의 장쑤성 펑현(豊縣)에서 태어났다. 부친인 유태공(劉太公)과 모친인 유온(劉媪)은 모두 토박이 농민이었다. 의지할 곳은 전혀 없었다. 유방이 그 집안의 셋째아들로 태어난다. 소년시기에 유방은 고향에서의 평판이 괜찮은 편잉ㅆ다. 그러나 십여세때부터 유방은 사람이 바뀐 것같았다. 글을 잘 읽지 않고, 하루종일 놀러다니면서, 동네에서 사건사고를 일으키고, 올바르게 일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백성들의 마음 속에 깡패무뢰한으로 인식되었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유방은 사십여세가 되어서까지 노총각으로 지낸 것도 이해가 된다. 생각해보라 시골의 어느 누가 이런 자에게 딸을 시집보내고 싶어하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사정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유방은 대기만성형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결혼도 늦게 하고, 사업은 더욱 늦었다. 고향이웃들이 보기에, 이런 사람은 인생이 이미 끝난 것이다. 기껏해야 억지로 사수정장과 같은 하급직위에서 버티다가 영광스럽게 은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유방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흉금이 넓고, 이번에 함양으로 가는 출장길에 진시황의 인마가 순행하는 것을 만난다. 멀리서 보니, 진시황은 정교하고 화려하게 장식된 가마에서 위풍당당했다. 그를 선망하여 무심코 말을 내뱉는다: "아. 대장부라면 마땅히 이렇게 살아야지."

 

과연 진나라말기, 유방은 기회를 잡는다. 진이세 원년(기원전209년), 유방은 정장의 신분으로 패군의 죄수들을 여산에서 노역을 시키기 위해 압송하고 있었다. 노역꾼들은 가는 도중에 많이 도망쳤다. 유방은 여산에 도착하면 다 도망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망탕산을 지날 때, 멈추어서서 술을 마시고, 야밤을 틈타 모든 죄수를 풀어준다. 그중 십여명의 젊고 건장한 사람을 뽑아서 계속 유방을 쫓아다니게 한다.

 

바로 이 때, 진나라말기의 농민의거가 일어난다. 진승, 오광은 의거군을 이끌고 진(陳, 지금의 하남성 회양)을 점령한 후, "장초(張楚)"정권을 건립하여 진나라와 공개적으로 대립한다. 이때, 패현의 현령도 계속하여 패현의 정권을 유지하고자 한다. 소하와 조참은 당시 현령수하의 주요관리였는데, 그들은 현령에게 현에서 도망친 인물들을 소집해불러들이라고 권한다.

 

소집된 사람들 중에는 유방의 일행이 있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유방은 "구점작소(鳩占鵲巢)"의 일막을 벌인다. 현령을 죽이고, 황권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사람들에 의해 "패공(沛公)"으로 추대된다. 그는 이렇게 반진진영의 지도자가 된다.

 

유방의 전후변화는 실로 경탄할 만하다. 한 깡패에서, 일거에 민의의 대표자가 된다. 더더구나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군웅들이 일어난 진나라말기에, 그는 최후에 웃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궁금해할 것이다. 그는 도대체 무엇에 의지한 것일까? 이 문제를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민간에 이런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유방은 원래 적제의 아들인데 인간세상으로 내려왔고, 황제가 될 운명이었다. 그래서 그는 천명에 순응하여 백사를 참살하고, 수많은 전투를 거치면서, 마침내 천하를 평정했다. 그리고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일대 개국황제가 된다.

 

응? 유방이 정말 백사를 죽인 적이 있단 말인가? 그는 정말 용의 화신일까? 적제가 정말 그의 부친일까?

 

이 문제에 대답하기 위하여 유방이 마지막으로 진나라의 임무를 수행하던 때부터 얘기해보자. 사람들을 풀어준 후, 유방은 술기운을 빌어, 밤에 샛길로 늪지를 통과한다. 한 사람을 앞에 보내어 살피게 하였다. 얼마후 그는 놀라서 돌아와 보고한다. "앞에 큰 뱀이 길을 막고 있습니다. 우리는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유방은 취기가 돌아서 말한다: "대장부가 길을 가는데 무서울 것이 무엇이냐" 그리고 패검을 꺼내어 달려간다.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큰 뱀을 둘로 갈라버린다. 이 점에 관하여 <사기.고조본기>에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 "앞을 가던 자가 돌아와 보고하여 아뢰기를 '앞에 큰 뱀이 길을 막고 있으니, 돌아가는게 좋겠습니다'라고 하자 고조가 취하여 말하기를 '장사가 가는 길에 두려울게 무엇이냐'하고는 앞으로 나아가서 검을 뽑아 뱀을 벤다. 뱀은 둘로 갈라지고, 길을 열었다. 수리를 간 후 취하여 누워 잠을 잤다."

 

그후 사람들이 그 샛길을 보니 한 노파가 나타났다. 그녀는 나타나자마자 대성통곡을 하며 말한다: "내 아들은 백제의 아들이다. 그는 몰래 인간세상에 나와서 돌아다녀서는 안되었다. 그는 잠을 자는 중에 뱀으로 변신을 했는데, 어찌 알았으랴. 적제지자가 가는 길을 막을 줄은 그래서 죽임을 당할 줄을."

 

노파의 말을 듣고는 모두 그녀가 헛소리를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기괴한 것은 여러 사람들이 몇 걸음 걸어가다가 다시 뒤돌아보니, 그 노파가 보이지 않았다. 땅위에 둘로 갈라졌던 백사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른게 되고, 그 노파의 말이 사실이라고 믿게 된다. 얼마후 유방은 술이 깬다. 여러 사람들로부터 그 신기하고 괴이한 이야기를 들은 후, 자신은 확실히 '귀인'이라고 은연중에 확신하게 된다. 이때부터 '적제지자'로 자칭한다. 그는 현령을 죽이고 반진의 기치를 내걸 때, 더더구나 "적제지자"의 명의로 제사활동을 벌인다.

 

여기까지 썼으니, 얼마전에 아주 인기있었던 영화 <적인걸의 통천제국>을 떠올릴 것이다. 그 안에는 무측천이 여러 사람들을 겁줄 목적으로, 일부러 사슴으로 변신한 국사를 만들어낸다. 이를 통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그녀의 통치는 하늘의 윤허를 받은 것이고 천리를 따르는 것이라고.

 

기실 이와 유사한 경우가 고대에 한 둘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중국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육자, 사상가로 불리는 공자도 그러했다. 그는 "흑제(黑帝)"의 후대로 칭해졌고 그 자신도 이로 인하여, "현성(玄聖)"이 된다. "현"은 바로 검다는 뜻이다. 실제로 공자는 그저 출신이 미천한 사생아에 불과했다.

 

이런 사정의 공통점을 보면 이런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고대에 큰 일을 이룬 사람은 모두 자신의 행위에 신비한 광환을 덧입혔다. 당연히 어떤 것은 당사자 본인이 한 것이고, 어떤 것은 다른 사람이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한 것이다.

 

유방이 '적제지자'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정말 백사를 죽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고의로 이 기초위에서 백사가 백제의 아들이고, 유방이 적제의 아들이라는 것을 만들어낸다. 목적은 유방을 신격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하여 인심을 붙잡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죽어라 그가 강산을 얻도록 노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적제는 원래 신화이다.  그리고 그가 사람과 결합하여 자식을 두었다는 것도 더더욱 황당무계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