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도몽청(陶夢淸)
역대제왕들 중에서 건륭은 차를 아주 좋아했다. 차를 끓일 때 쓰는 물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는 강소성 진강(鎭江)의 "중냉천(中冷泉)"이 가장 좋다고 여겨서, "천하제일천(天下第一泉)"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일찌기 시를 두 편이나 지어서 '중냉천'을 칭송한 바 있다.
"중냉천"은 장강안에 있다. 샘이 강 속에서 솟으므로, 생물은 강물로부터 솟아오른다. 남냉(南冷), 중랭(中冷), 북냉(北冷)으로 나뉜다. "중냉천"은 그중 수질이 가장 좋은 샘물이다. 기록에 따르면, "중냉천"의 물은 "푸르기가 비취와 같고, 진하기가 경장(瓊漿)과 같다"고 한다. 마시면 감열순후(甘洌醇厚)하고 특히 차를 끓이는데 적합하다. 후당(後唐)의 명사인 유백추(劉伯芻)는 천하의 명천(名泉)을 고찰하고 수질과 차를 끓인 후의 맛을 근거로 그들을 7등급으로 나눈다. 그중 '중냉천'이 1위로 꼽혀 '천하제일천'이라고 부른다. '중냉천'의 물로 차를 끓이면, 향이 맑고 달다고 한다. 그리고 아주 신기하게 잔에 찻물이 차도 넘치지 않는다고 한다. 샘물을 찻잔에 부으면 물이 찻잔보다 높아져도 흘러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면에 동전을 올려놓아도 동전이 가라앉지 않는다고 한다.
"중냉천"의 샘물은 강바닥에서 나오므로, 샘물은 감물에서 솟아나며 소용돌이를 이룬다. 빠른 속도로 흐르는 강물 속에서 샘물을 뜨려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소용돌이의 위치를 찾은 후, 샘물의 수량이 가장 많은 정오를 정해서, 두껑이 있는 구리병을 소용돌이에 던져 넣는다. 구리병이 강물의 표층을 지나 샘물로 가라앉을 때, 신속히 병마개를 열어야 진정한 '중냉천' 물을 얻을 수 있다.
'중냉천'은 아주 얻기 힘들기 때문에, 더욱 진귀했다. 건륭제가 남순때 진강을 지나면서, '중냉천'을 맛본다. 그가 북경으로 돌아간 후, 여전히 그 맛을 잊지 못하여 붓을 들어, "청화시문관(靑花詩文罐)"에 "중냉천'을 찬송하는 두 편의 시를 쓴다.
이 두편의 시는 광주중의학대학 박물관이 수장한 청화시문관에서 볼 수 있다. 이 관은 청나라 광서연간에 만들어졌고, 청나라 궁정의 어용존수관(御用存水罐)이다. 시문관의 입구는 좁고, 목이 짧고, 배는 부르고 체형은 크다. 관의 입구에는 편평한 마개가 있고, 매가의 위에는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도안이 있다. 전체 조형은 원융정치(圓融精致), 고박고아(古朴高雅)하다.
청화시문관의 어깨부위에는 전서로 "천하제일천"이라는 큰 글자가 쓰여 있다. 글자의 아래에는 '수(壽)'자 도형과 금지화문이 있다. 화문의 아래에는 해서로 건륭황제의 두 편의 시문이 있다. 1편의 이름은 <어제시중냉천작>이고, 다른 한 편은 <임오중춘월중간시중냉천작>이다. 시문은 건륭제가 '중냉천'을 극도로 찬미하는 말들이다. 개략적인 내용은 오늘 나는 '중냉천'물을 맛보았다. 정말 천하제일천이라 할 만하다. 샘물은 달면서도 순후하다. 입으로 들어갈 때는 경장옥유를 마신 것처럼 마음과 속을 편안하게 해준다. 사람이 신선이 되어 날아가는 느낌이다. 나는 이번 생애에 다행히 남순하여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데, 아름다운 음식을 맛보지도 않고, 사람들과 고담준론을 벌이지도 않더라도, 그저 '중냉천'의 물을 한 입만 마실 수 있다면 만족할 것이다.
건륭은 차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차를 끓일 때 쓰는 물도 아주 따졌다. 그는 "중냉천"이 비록 좋기는 하지만, 남방은 운수가 불편하여, 북경 부근에서 '중냉천'에 비견할 수 있는 샘물을 찾기로 한다.
샘물의 우열에 대하여, 건륭은 자신의 독창적인 감별방법이 있었다. 그는 좋은 물은 청량하고 감첨(甘甛)하며, 결정(潔淨)하여야 할 뿐아니라, 물의 무게가 가벼울수록 좋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건륭제는 특별히 내무부에 명을 내려 전국각지의 샘물의 무게를 재도록 한다. 측량을 거쳐 건륭제는 발견했다: 제남의 진주천(珍珠泉)은 1냥2리; 진강의 "중냉천"은 1냥 3리; 항주의 호포천(虎跑泉)은 1냥 4리; 단지 북경의 옥천산물(玉泉山水)만이 수질이 가장 가벼워 무게가 겨우 1냥이었다.
이러한 측량결과를 보고받고, 건륭은 아주 기뻐하며 옥천산물을 "천하제일천"으로 정한다. 그리고 친필로 "천하제일천"비를 써서 준다. 비문에는 이렇게 썼다: 물의 맛은 단 것이 귀하며, 물의 품질은 가벼운 것이 귀하다. 옥천은 1두당 1냥의 무게로, 다른 곳의 이름난 샘물 중에서 이처럼 가벼운 것이 없다." 그후, 건륭은 옥천산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았다. 북경을 떠나 순행할 때도 옥천산물을 가지고 다니면서 마셨다.
옥천산은 북경서부교외에 위치하고 있으며,원래는 역사가 유구한 황실원림이다. 산에는 나무가 가득하여 하늘의 해를 가릴 정도이다. 산에는 곳곳에 샘물이 있는데, 샘물이 옥처럼 맑았다. 그리하여 '옥천'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명나라때 시인인 왕영(王英)은 일찌기 시를 지어 이렇게 형용했다: 산하천류사옥홍(山河泉流似玉虹), 청냉불여중천동(淸冷不與衆泉同). 기록에 따르면, 옥천산물은 명,청 양대의 황궁음용수였다. 건륭제의 극력 추천을 거쳐, 옥천산물은 '천하제일천'이라는 명성이 더욱 커져갔고, 점점 진강의 '중냉천'과 명성을 나란히 했다.
건륭제의 측량비교를 통하여, 옥천산물은 달면서도 '잡질'이 가장 적어 장기적으로 마시면 병을 몰아내고 목숨을 연장할 수 있었다. 양생보건의 작용을 한다. 청나라때의 서태후는 양생을 아주 중시했고, 물을 아주 따졌다. 그녀도 건륭제를 쫓아서, 옥천산물만 마셨다. 옥천산물은 양생보건의 성수라고 여겼다.
연구를 거쳐 중국의 고인들은 발견한다. 옥천산물이 양생에 도움이 될 뿐아니라, 온천수도 보건과 병치료에 도움이 된다. 고대의 의학서적에 따르면, 온천수로 목욕하면 근골련축(筋骨攣縮), 수각불수(手脚不遂), 눈썹두발탈락등의 증세를 고칠 수 있다.
온천수를 제외하고, 고대인들이 "백비탕(百沸湯)"이라고 부르는 물이 있다. 이것은 상풍, 상식등의 증세를 치료한다. 금나라때 의학자인 장종정의 연구에 따르면, 병세초기에 약을 먹지 않고 한두잔의 '백비탕'을 마신 후 배를 문지르고, 문지른 후 다시 마신다. 그렇게 계속하여 마실 수 없을 때까지 한다. 그리고 방법을 써서 토해낸다. 그리고 땀을 흘리고 나면 된다. 고증에 따르면, 소위 "백비탕"은 기실 여러번 끓인 맹물이다.
고대인들이 양생보건에 쓰는 물 중에서, 기괴한 "감란수(甘瀾水)"가 있다. 소위 "감란수"는 강물 2두를 가지고 바가지로 떠서는 높이 들고 이렇게 여러번 반복한다. 수면에 포말이 수천개에 이를 때까지 한다. 고인들이 보기에, 강물을 계속 들어올렸다가 떨어뜨리는 과정에서, 물에 어떤 온화한 특성이 살아나게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같다. 이렇게 하여 인체에 보건작용을 한다고 한다. 여기에 다시 감초, 반하등의 약을 넣고 천천히 끓이면, 음허양성, 불면증등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
일부 고전명저 가운데, 재미있는 물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유기>에는 손오공이 주자국의 국왕의 병을 치료할 때, "무근지수(無根之水)"를 쓴다. 국왕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걱정할 때, 손오공이 이렇게 해명한다.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땅에 닿지 않은 것을 먹는 것이다. 그래서 무근수라고 한다." 또한 <홍루몽> 제7회에는 설보채가 기침을 하자 '냉향환'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물이, "노수(露水)", "상수(霜水)", "설수(雪水)"이다. 그중의 설수는 보통의 눈녹은 물이 아니다. '소설(小雪)'때 의 눈녹은 물이다. 고서의 기록에 따르면, 설수로 눈을 씻으면, 홍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청열해독, 강화지갈할 수 있고, 시기온역, 중서, 음주과도등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샘물을 뜨는 시간도 중국 고인들이 아주 중시했다. 그들은 샘물은 천지자연의 정화를 흡수한 것으로 보고, 태양이 떠오르기 전에 떠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야 가장 좋은 물을 마실 수 있고, 양생보건작용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중국청나라때, 매일 새벽에 태양이 떠오르기 전에, 황용깃발을 꽂은 어용운수차(御用運水車)가 궁문에서 출발하여, 옥천산으로 물을 뜨러 떠났다. 뜬 물은 청화시문관과 같은 존수관 속에 담겨졌다.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 > 역사인물 (건륭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륭(乾隆)은 향비(香妃)를 어떻게 금옥장교(金屋藏嬌)했는가? (0) | 2013.12.04 |
---|---|
건륭제때 탐관오리와 석장(石匠) 유군필(兪君弼)의 사망 (0) | 2013.11.09 |
건륭연간의 염세(鹽稅)사건 (0) | 2013.05.18 |
건륭제의 모친은 누구인가? (0) | 2013.05.05 |
건륭제(乾隆帝)의 후계자선정: 아들을 보지 않고 모친을 보다 (0) | 2013.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