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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명)

주매신(朱買臣): 마음속이 바늘끝처럼 작은 사람

by 중은우시 2013. 5. 20.

글: 후홍빈(侯虹斌)

 

소인득지(小人得之)하면 어떻게 되는가? 필자의 생각으로 첫째, 그들은 은혜를 베푼자에게는 보답하고, 원한이 있는 자에게는 복수한다. 둘째, 그들은 금의환향(錦衣還鄕)한다. 절대로 금의야행(錦衣夜行)하지 않는다. 셋째, 그들의 자존심이 아주 강해지고, 조그만큼의 경만(輕慢)도 용납하지 않고, 항상 기회를 엿보아 반격을 한다.

 

기실, 이 문제의 앞에서 이런 말투로 얘기해서는 안된다.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것은 인지상정일 뿐이다. 만일 백안시 당한 후에 어느 날인가 성공을 하게 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상태를 평정하게 유지할 수 있겠는가? 주매신처럼 "아침에는 시골집에 있다가 저녁에는 천자의 황궁에 오른다"(朝爲田舍郞, 暮登天子堂)의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일대명신이고, 괜찮은 사부가(辭賦家)이지만, 그의 성격유전인자 속에 '속좁은 쩨쩨함"이 충만해 있다는 것은 감출 수 없다.

 

주매신은 집안이 가난했고, 농사를 짓지도 않았다. 그저 장작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다. 그의 처도 그와 함께 장작을 등에 짊어지고 다녔다. 그러나 그녀는 주매신이 길을 가는 도중에 큰 소리로 노래부르는 미친 듯한 행동을 참지 못했다. 그가 말리면 말릴수록, 주매신은 더욱 큰소리로 노래했다. 그의 처는 체면이 상한다고 생각하여, 이혼을 요구한다. 이를 보면 주씨부인은 주매신과 함께 일하고, 주매신이 가난한 것을 싫어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저 그가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고, 체면상하는 일을 하는 것을 싫어했다. 사십여세가 되어서도 여전히 체면상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처의 질책을 받고 주매신은 듣지 않았을 뿐아니라, 더욱 심하게 굴었다. 그리고 말한다. "나는 오십세가 되면 분명 성공할 것이다. 지금 이미 사십여세이다. 내가 부귀해지면 너에게도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고인의 평균수명은 아주 짧았다. 사십여세에 죽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도 미친 것처럼 자신이 곧 부귀해질 것이라고 말하다니,

 

이혼후, 주매신은 혼자서 장작을 짊어지고 시장에서 팔았다. 그의 처는 새남편과 함께 산소로 갈 때, 주매신이 춥고 배고파하는 것을 보고는 주매신에게 먹을 것을 주기도 했다. 나중에 주매신은 과연 은혜도 갚고 복수도 한다. 그가 성공한 후, 그는 처에게 보답한다. 그는 전처와 새남편이 그에게 먹을 것을 준 것에 대하여 그들에게 역시 먹을 것을 준다. 그러나 그는 보은만 하였을 뿐아니라, 복수도 한다. 주매신이 회계태수가 된 후, 백여승의 수레가 그를 태워준다. 오의 땅에 도착한 후 그는 전처와 새남편이 길가에서 영접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는 멈추라고 한 다음 부부를 뒷 수레에 타도록 한다. 태수의 집에 도착한 다음 그들을 집에 불러서 살게하며 먹을 것을 준다. 이것은 주매신이 후도(厚道)헤서가 아니다. 손과 발이 멀쩡하고 자급자족하며 잘 살고 있는 사람을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집으로 데려와서 연금시키다니, 이것은 고통을 주고 모욕을 주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하여, 결국 그의 전처는 모욕을 참지 못하고 자살하고 만다.

 

주매신의 처가 스스로 이혼하고 떠난 것에 대하여, "가난한 것이 싫어서 부자를 찾아서 떠난 것"이라고 하는 것은 나중에 날조된 것이다. 예를 들어, 원나라때의 잡희 <주태수봉설어초기>, 명나라때의 전기소설 <난가산>에서 얘기하는 것은 모두 이 이야기이다. 그러나 핵심인 결론이 바뀌었다. 주매신이 태수가 된 후, 주매신의 전처는 주매신에게 다시 결합할 것을 청하고, 주매신은 아주 쿨하게 말앞에 물을 쏟아붓고는 한번 쏟아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覆水難收)고 말한다. 기실, "북수난수"의 성어는 주매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의 출처는 <후한서.하진전>이다. "국가의 일은 어찌 쉬운가. 한번 쏟아진 물은 다시 거둬담을 수 없으니, 깊이 생각해야 한다." 다만 현재는 사람들마다 그것이 주매신의 전처에 대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난가산>은 더욱 심했다. 주매신은 물을 쏟았을 뿐아니라, 이렇게 말한다: "수사의감(羞死宜甘), 강사의보(强辭宜補)". 그의 전처는그리하여 강에 몸을 던져 죽는다. 주매신은 그녀의 시신을 정만(亭灣)에 장례지내고, 이름을 수묘(羞墓)라고 이름지어 계속 모욕한다.

 

이렇게 고치는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한서>를 쓴 시대는 더욱 가깝고, 더욱 주매신을 이해하였으며, 여인이 개가하는 것이 별다른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원나라, 명나라때는 정조를 중시했고, 여인이 이혼을 요구하고 개가하는 것은 천주지멸(天誅地滅)할 일이었다. 육체적으로 소멸시킬 뿐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소멸시켜야하는 일이다.

 

주매신의 사람됨은 어떠한가? 그의 다른 행적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당초 주매신이 관직을 받지 못하고 있을 때, 그는 자주 회계군저(郡邸)의 수문인(守門人)의 집에서 밥을 먹곤 했다. 주매신이 태수가 된 후, 고의로 낡은 옷을 입고, 가슴 속에는 인수(印綬)를 품고, 길을 걸어서 군저(郡邸)로 같다. 당시 회계의 하급관리들이 모두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래서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주매신이 실내로 들어가서 수문인과 함게 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치고, 고의로 인수를 드러내보인다. 수문인은 기이하게 생각하여 살펴보니, 회계태수인이었다. 처음에는 모두 믿지 않았다. 일단 진짜라고 확인하자 얼마나 놀라고 당황했겠는지는 충분히 상상이 갈 것이다. 하급관리들과 수승(守丞)은 중정에 일렬로 줄을 서서 주매신을 배알한다. 주매신은 그제서야 느긋하게 문을 나서서 배알을 받는다. 한참이 지난 후, 장안의 마부가 마차를 끌고 와서 맞이한다. 주매신은 마차를 타고 떠난다. 멋진 뒷모습만을 남기고.

 

이 일은 필자로 하여금 사업에는 성공했지만 집안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한 남자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는 인터뷰때 이렇게 말했다. 그는 비행기를 탈 때 비행기티켓을 받은 후 비행기에 오르지 않으면서 공항내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며 찾는 것을 듣고는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는 극적인 효과로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고 싶은 것이다.

 

주매신의 죽음은 장탕(張湯)의 죽음때문이다. 장탕의 죽음은 주매신등 3명의 장사(長史)가 모함해서이다. 주매신의 모함은 장탕이 주매신을 충분히 존중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좌상상불위례(坐床上弗爲禮)" 한 것같은 일이 있다. 그의 마음 속은 바른끝처럼 좁았고, 끝까지 일관했다.

 

평상심으로 말하자면, 주매신은 무슨 거악, 대악의 인물은 아니다. 주양유, 심지어 장탕과 비교하자면 평범하기 그지없다. 그는 관료사회에서 아주 보통의 사람이다. 약간의 재능을 지니고 있고, 용속(庸俗)하기 그지없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