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초월(楚月)
사도실세(仕道失勢)
만력10년 육월, 명나라에서 가장 권세있고 가장 공적이 있는 재상 장거정(張居正)이 죽었다. 그의 죽음은 금방 일련의 정치적이 대숙청을 불러왔다. 척계광이 남정북전을 거치면서 계속 전공을 세운 것은 장거정이 그를 발탁하고 인정해준 것과 큰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들간의 지나치게 친밀한 개인관계는 척계광이 장거정과 연루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온나라의 상하에서 장거정을 청산하는 운동이 벌어지자, 척계광은 휘황한 장년에서 처량한 말년으로 들어가게 된다.
장거정의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척계광은 계진총병에서 광동총병으로 옮겨간다. 표면적으로는 관직이 같지만, 실제로는 이미 수도를 지키는 중요한 지위를 빼앗긴 것이다. 이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은 북경으로 가서 청원했고, 만력제에게 척계광을 남기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만력제는 윤허하지 않았다. 척계광이 떠나기 전에, 시민들은 시장을 철시하고, 백성들이 길을 막았으며, 여러 부하장수들은 가슴아파했다.
만력12년, 장거정청산운동이 최고조에 달한다. 척계꽝은 퇴직을 신청하고, 이렇게 체면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군인의 명예를 보전하고자 했다. 그러나, 만력제는 그런 체면조차 봐주지 않았다. 척계광을 장거정의 일당으로 선포하고, 파직한다. 나라를 위하여 수십년간 분전했던 노군인은 굴욕과 비애를 맛보면서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통실수족(痛失手足)
만력12년 9월, 척계광이 아직 봉래의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에, 동생 척계미(戚繼美)가 병사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척계미는 척계광보다 6살이 어렸다. 그리고 당시의 명장이었다. 일찌기 척계광을 따라 왜구를 소탕했고, 나중에 몽골철기와 싸운다. 거의 모든 전투에 다 참여했고, 최종 관직은 운귀총독이었다. 만력11년 척계미의 처자가 불행히 병사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도 파직당해 집으로 돌아간다. 그후 아들도 급병으로 사망했다. 만력12년 십월, 척계광이 봉래 고향으로 급히 돌아갈 때, 동생이 영구를 보고, 비통함에 대성통곡을 한다.
부부실화(夫婦失和)
막 동생을 잃고, 척계광의 결발처자(結髮妻子) 왕씨도 그를 버린다. 재물을 가지고 떠나버린다.
왕씨는 원래 현숙하고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그리고 통정달리(通情達理)하였다. 일찌기, 생활이 곤란하여 그녀는 자신의 악세사리르 판매하여 술과 요리를 만들어 손님을 접대하기도 했다; 물고기 한 마리를 사오면, 자신은 머리와 꼬리를 먹고, 가운데는 남편에게 남겨두었다. 척계광이 절강에서 왜적을 물리칠 때, 왕씨와 척가군의 친척은 신하성에서 거주했는데, 수비군이 아주 적었는데, 돌연 왜군이 나타난다. 상황이 긴급했는데, 왕씨는 수비관병을 설득하여, 성안의 부녀자와 어린아이들까지 동원하여 척가군의 복장을 입고 성위로 올라가서 공성계로 적을 물리친다.
두 사람이 최종적으로 실화한 원인은 왕씨가 아들을 낳지 못해서이다. 척계광은 왕씨를 배신하고, 3명의 첩을 두어 5명의 아들을 낳았다. 왕씨가 이 일을 알고 난 후, 화를 억누르지 못하였다. 공처가였던 척계광은 그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왕씨는 어쨌든 여인이었고, 비록 척계광과 화해를 하기는 했지만, 두 사람은 척계광의 소첩이 낳은 아들을 왕씨의 양자로 주어 기르게 하기로 한다.
그러나, 아들이 요절을 한다. 얼마후, 남편이 다시 관직을 잃고, 고향으로 낙향한다. 왕씨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이들고 병많은 척계광을 버리고 떠나버린다.
고독이세(孤獨離世)
척계광은 말년에 폐병을 얻는다. 오랫동안 병이 치료되지 않은데다 빈곤이 겹친다. 마지막에는 의사를 불러 약을 지을 돈 조차 없었다. 이때, 계진에서는 전쟁의 봉화가 일어난다. 몽골병이 계속 침범했다. 그리고, 계속하여 순종했던 장앙(長昻)부락도 도발을 한다. 척계광이 죽기 3개월전에, 하남도어사 부광택은 일찌기, 상소를 올려 다시 척계광을 재기용할 것을 건의한다. 그러나 만력제는 채택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오히려 부광택에게 두달간 봉급을 몰수하는 처분을 내린다.
만력15년 십이월의 어느 날, 일대명장 척계광은 고독한 가운데 세상을 떠난다. 30년후, 만주철기가 살이호에서 명나라군대를 대패시킨다. 중원에 진입할 서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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