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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유비)

젊은 유비는 깡패두목이었나?

by 중은우시 2012. 10. 20.

글: 육기(陸棄) 

 

진수(陳壽)는 <삼국지>에서 아주 완곡하게 적었다. 그는 유비가 호협(豪俠)들과 사귀는 것을 즐겼다고 적었다. 그러나 실제상황은 그런 것이 아니다. <삼국지>에 쓰여진 "호협"은 실제로는 존칭이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유비는 깡패, 토비(土匪), 범죄인과 같은 사람들과 사귀는 것을 즐겼다.

 

유비의 가정출신으로 보면, 그는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일찌감치 돌아가시고, 대자리, 짚신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다. 이런 가정환경하에서 유비는 그의 신분에 맞지 않는 일을 계속 저질렀다. 먼저, 집안에 재산이라고는 없는 유비의 모친은 유비가 공부를 하도록 해주었고, 전임 지방관리인 노식의 문하에 들어가게 했다. 당시 태수의 사위인 공손찬과 동문이 된다. 공손찬은 태수의 딸과 결혼하여 비로소 노식이 문하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비와 같은 보잘것 없는 집안의 자제가 이러한 거유의 문하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니 이는 생각해볼 문제이다.

 

위의 이슈를 얘기하지 않더라도 유비가 공부할 때의 여러가지 잡비는 어떻게 조달했을까? 원래 집안의 친척인 유원기(劉元起)가 전력으로 그를 도와주었다. <삼국지. 선주전>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덕연의 부친인 원기는 항상 선주에게 돈을 지원해주었다. 덕연과 같이 주었다."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필자의 생각에는 유원기가 유비를 아들처럼 대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주 유비를 도와주었다. 그리하여 유비는 순조롭게 노식의 문하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비가 소년때 생활하면서 그가 사치방종했다고 하더라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유비는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오히려 말을 타고 개를 쫓아다니고, 좋은 옷과 악세사리를 경쟁하기도 하였다. 이런 돈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잠정적으로 유원기가 그에게 주었다고 생각하자. 이렇게 하여 유비는 '호협'과 사귀는 생활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과 사귀었을까?

 

사서에 기록된 대표적인 인물 3명이 있다. 그들은 각각 간옹(簡雍), 관우(關羽), 장비(張飛)이다. 간옹은 유비집단의 고굉지신이다. 어려서 유비를 알았다. 사서에 그에 대하여 쓴 내용은 많지 않다. 주로 그가 예법과 법도를 무시하고, 개인 이미지를 중시하지 않았다고 쓰여있다. 관우는 원래 하동 해량 사람이다. 살인월화(殺人越貨)로 탁군으로 도망쳐 온다. 유비가 그 곳에서는 명망이 있었으므로 그에게 의탁한 것이다. 장비는 유비의 고향사람이다. 관우와 함께 유비에 의탁한다. 간옹, 관우, 장비의 상황을 보면 우리는 알 수 있다. 유비가 사귄 '호협'은 모조리 예법과 법도를 지키지 않는 '망명지도(亡命之徒)'들인 것이다.

 

유비의 아래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중산의 말상인인 장세평(張世平), 소쌍(蘇雙)은 그가 기재라고 여기고 그에게 돈을 준다. 유비는 정식으로 자신의 무장세력을 만들게 된다. 그러나, 단순히 이렇다는데 대하여는 의심이 든다. <삼국지>에는 장세펑, 소쌍의 두 사람이 유비에게 돈을 가져다 줄 때 먼저 그들이 많은 돈을 가지고 탁군을 지나갈 때 유비에게 상당한 돈을 주었다고 한다. 이치대로라면, 유비는 망명지도들과 사귀고 있어서 장세평, 소쌍이라면 피해야 할 것인데, 왜 적극적으로 돈을 가져다 주었을까?

 

한가지 해석은 유비가 망명지도를 긁어모은 다음에 거상 장세평, 소쌍을 협박하여 이들 돈을 갈취했다다고 보는 것이다. 유비가 어렸을 때의 경력을 보면, 그가 경망하게 하는 소리에 다른 사람들이 주의를 했을 리가 없다. 그가 장세평,소쌍 두 사람이 '보내준' 돈을 받았을 때, 이미 많은 '호협'들이 그에게 의탁했다. 그가 말을 타고 개를 쫓아다니며, 옷과 악세사리를 다른 사람과 비겨서 경쟁할 수 있는 생활을 보낸 것은 아마도 이들 '호협'들이 강탈해온 재물과 관련있을 것이다.

 

만일, 유비가 사람들을 공경하고 겸손하여 명성을 얻었다는 것은 맞지가 않다. 우리는 현지에서 첫 무장세력을 모을 때, 유씨종족 중에는 친척 한명도 그에게 의탁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보통사람이 아니다'라고 칭찬해 마지 않는 유원기마저 아들 유덕연이 유비를 따르게 하지 않았다. 이는 유비의 명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일이다. 유원기가 진심으로 유비를 '보통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면, 왜 유비가 무장세력을 만들 때 아들을 그에게 가서 의탁하도록 하여, 이후 발전을 도모하지 않았을까?

 

유비의 부친인 유홍(劉弘)은 실제로 형제가 있었다. <삼국지>에는 유비의 숙부인 유자경(劉子敬)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친척은 가난한 유비의 집안에 조그만치의 도움도 주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우리 집안을 멸문시키려 한다'고 생각했다. 설마 유비가 어렸을 때 경망한 말을 하였기 때문에 숙부가 이렇게 생각한 것일까? 아이 시절에 많은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삼국지>에 이 일을 특별히 쓴 것은 유명부실한 혐의가 없지 않다.

 

실제로, 우리는 이렇게 상상할 수 있다. 유비는 난세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이미 황제가 될 야심을 드러냈다. 그에게 의탁하여 따르는 소년들은 아마도 일군의 망명지도들일 것이다. 그러므로 친척들 중에는 그를 모두 피했다.그와 이들 망명지도가 중산대상 장세평, 소쌍의 돈을 갈취한 후에, 우리는 유비가 소년시대에 이미 '호협'이 되었고,게다가 '호협'의 우두머리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호협'의 우두머리, 토비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므로 자연히 부유한 생활을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조정이 황건적을 소탕하기 위하여 지방에서 스스로 무장세력을 조직하라고 하자, 이들 망명지도는 바로 토비를 소탕하는 '의군'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