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후홍빈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사마천은 한무제에 원한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사기.효무본기>에는 한무제가 신선에 빠져서 하는 우스운 짓거리들을 모조리 적어놓았다. 당연히 반고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의 <효무본기>는 다른 식으로 썼다. 편년체로 아주 정상적이다.
한무제의 후반생은 신선이 되고자 하는 꿈속에서 보냈다. 그는 봉선대전을 열었고, 오악, 사독의 모든 신령에 제사지냈다. 방사들은 신선에 제사지내고, 해상으로 봉래선산을 찾으러 갔지만, 결국 아무런 결과도 얻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더욱 우스운 일은, 천자는 그들이 사기꾼이고 헛소리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회유하고, 그들과 관계를 끊어버리지 않았다. 언젠가 진짜 방술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기를 기대한 것이다.
처음 나타난 자는 이소군이다. 그는 도인신기와 장생불로의 술법을 가지고 황제를 만난다. 그는 항상 자신이 70살이라고 얘기했고, 귀신을 부릴 수 있으며 장생불로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두 가지 신기한 일을 얘기하는데, 하나는 무안후 전분과 함께 식사를 할 때, 자신이 구십여세된 노인의 조부와 함게 유람하며 활을 쏜 적이 있다고 말한다. 다른 하나는 황제가 가지고 있는 제환공10년의 동기를 구분해내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사람들은 모두 그가 수백살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량은 실제 너무나 저급한 것이다. 사마천도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는 "나이를 속이고" "항상 스스로 얘기하기를" "신이라 생각하고"등이라고 하였다. 다만 속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을 뿐이다.
이소군은 한무제에게 꿈을 보여준다. 그리고 단사를 황금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황금을 가지고 봉래산에 사는 신선을 만날 수 있으며, 신선을 만난 후 봉선대전을 거행하면 장생불로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일찌기 안기생을 만났으며 그때 먹었던 대추는 참외만큼 컸으며,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만 만난다고 하였다. 보라. 그는 자신을 위하여 퇴로까지 준비해 놓았다. 그러나 한무제는 믿었을 분아니라, 사람을 보내어 봉래산과 안기생을 찾는다. 그리고 사람을 시켜 연단을 준비하도록 시킨다. 이소군이 죽자, 그는 그가 신선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음 해, 제나라 사람인 소옹이 귀신과 통한다는 방술을 가지고 한무제를 만난다. 방술을 이용하여 밤에 한무제를 위하여 혼을 볼러온다. 금방 죽은 왕부인의 혼을 데려온다. 후세의 적지 않은 연구자들은 그것이 아마도 최초의 피영극(그림자연극)일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상, 가까이 다가갈 수 없게 하면서, 장막에서 한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라지게 하려면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무제는 아주 기뻐했고, 소옹을 문성장군에 봉하고, 수많은 하사품을 내린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듣고 수레를 만들고, 감천궁을 만들어 각종 방법으로 천신을 부른다. 천신은 그러나 오지 않았다. 소옹은 결국 백서를 위조하여 소의 뱃속에 넣었다가 발각되어 주살당한다. 비록 사기꾼은 죽었지만, 이 일은 숨겨지고 곧이어 세번째 방사가 찾아온다: 난대
신선을 불러올 수 있는 그를 회유하기 위하여 한무제는 댓가를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난대를 오리장군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그에게 천사장군, 지사장군, 대통장군, 천도장군의 4개의 금인을 내린다. 또한 그에게 2천호의 봉지를 하사하고, 낙통후에 봉한다. 그리고 그에게 최고급의 저책과 천명이 넘는 하인들을 하사하고, 무수한 금은보화를 내린다. 그리고 장공주를 그에게 시집보내고 황금 만근을 하사한다. 왕공귀족들도 다시 난대에게 여러 선물을 내렸는데, 부지기수였다. 이 오리장군이 이렇게 많은 물건을 뜯어냈으니, 그는 당연히 한무제에 보답해야 했다. 그러나 어디서 신선을 찾아온단 말인가? 그는 바다로 들어가서 신선을 찾아오는 것은 감히 하지를 못하고, 그저 태산으로 가서 제사를 지냈다. 한무제는 사람을 보내어 그의 뒤를 몰래 따르게 하였고 그의 행적을 감시한다. 그가 실제로는 아무 것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난대는 그의 스승을 만났다고 말한다. 기실 그의 방술은 이미 다 써먹었다. 한무제는 오리장군을 죽여버린다. 자신의 딸이 과부로 늙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이상의 이야기에서 딸을 시집보낸 것 이외에는 어디서 본 것같지 않은가? 한무제는 바로 진시황의 복제판이다. 진시황이 큰 돈을 들여서 신선을 찾았고, 사람을 바다로 보내어 선산을 찾았다. 그리고 장생불사의 약을 구한다. 그 결과 방사 노생등은 기한이 되도록 장생불사약을 내놓지 못했고, 돈을 모아서 도망친다. 진시황은 분노하여 수백명의 방사와 유생을 묻어버린다. 이것이 유명한 "갱유"이다. 확실히 일부 학자들이 평가하는 것처럼 말년의 한무제가 <윤대조>를 내려 참회하지 않았다면, 그는 중국의 황제들 중에서 아마도 가장 나쁜 황제의 하나로 되었을 것이다. 그가 범한 잘못은 '천고일제' 진시황과 어찌 그리도 유사한지.
그러나, 한무제가 방사들을 묻지 않았다는 것의 인자하기 때문일까? 아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가 진시황보다 더 철저히 속았기 때문일 것이다. 설사 이런 큰 사기꾼들을 만났지만, 그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난대가 이렇게 많은 하사품을 받고 귀하게 되자, 연나라 제나라의 방사들은 모두 흥분하여 자신이 신선과 통할 수 있다고 나선다. 얼마나 많은 방사가 나섰는지는 모른다. 그중에서 제대로 된 증거를 내놓을 수 있었던 자는 공손경이었다. 그는 선인의 족인을 찾아낸다. 한무제는 후씨성으로 가서 그 족인을 직접 조사해보기까지 한다.
한무제는 죽을 때까지 신선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같다. 공손경은 그에게 말한다. 황제가 일찌기 형산에서 정을 주조했고, 정을 주조하고 난 후에,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황제를 맞이해 간다. 황제는 용의 등을 타고, 여러 신하와 후궁비빈들이 따라서 올라갔는데 70여명이었다. 용은 날아가서 사라진다. 일부 하급신하들은 따라가지 못했고, 용의 수염을 잡아당겨 끊어지고, 황제의 활도 떨어뜨린다. 한무제는 그 말을 듣고 선망한다: "아. 내가 황제와 같았다면 나는 처자식을 신발짝처럼 버릴 수 있을 텐데" 그는 여전히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분석가들은 한상 말한다. 진시황과 한무제등이 신선에 빠진 것은 고대에 과학이 발달되지 않아서라고, 일보 현상을 해석할 수 없으면, 환상을 품게 된다고.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사마천은 왜 속지 않았을까? 그들 방사들이 과학의 헛점을 알 수 있겠는가? 유철이 어찌 학문이 모자란 사람이겠는가. 그저 강렬한 탐욕과 도처에 존재하는 환상때문이다. 극권통치의 불안감은 그들의 호르몬분비를 자극했고, 그들은 마약을 한 것처럼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 왜 인류는 과학이 충분히 발달한 오늘날에도, 아이큐도 낮지 않고, 능력도 출중한 부호, 고관들이 이일 도장을 믿고, 밀종을 미신하고, 일찌감치 지저분한 명성을 날린 기공대사들을 믿어 온갖 추태를 보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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