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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문학일반

중국문인의 "눈(雪)"에 대한 별칭

by 중은우시 2013. 4. 28.

글: 신당인

 

눈은 대자연의 걸작이다. 중국은 시의 국가이고, 많은 시들 가운데 문인묵객들은 눈 혹은 눈꽃에 대하여 적지 않은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육출(六出)

 

눈은 육각형 모습이어서 "육화(六花)", "육출"이라고 불렀다. 당나라때 원진(元稹)은 <부득춘설영조매>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일지방점수(一枝方漸水), 육출이동개(六出已同開)". 당나라때 고병(高騈)의 시 <대설>이라는 시에는 이렇게 썼다: "육출비화입호시(六出飛花入戶時), 좌간청죽변경지(坐看靑竹變瓊枝)". 송나라때 누음(樓陰)은 이렇게 썼다: "황혼문외육화비(黃昏門外六花飛), 곤의호상취부지(困倚胡床醉不知)." 원나라때의 백박(白朴)은 이렇게 읊었다: "문전육출화비(門前六出花飛), 준전만사휴제(樽前萬事休提)"

 

옥룡(玉龍)

 

당나라때의 여암(呂巖)의 <검화차시어양양설중>에는 이렇게 썼다: "현산일야옥룡한(峴山一夜玉龍寒), 봉림천수이화로(鳳林千樹梨花老)." 송나라때의 장원(張元)은 시<설>에서 이렇게 썼다: "전패옥룡삼백만(戰敗玉龍三百萬), 패린풍권만천비(敗鱗風捲滿天飛)." 온 하늘에 날리는 눈은 마치 하늘의 군대에 패배한 무수한 하얀 용의 몸에서 떨어지는 비늘과 같다. 공중에서 날리며 떨어지고, 신화보다 낭만적인 색채가 풍부하다.

 

경화(瓊花)

 

눈은 흰색이어서 경화(瓊花)와 비슷하다 그래서 "경영(瓊英)"이나 "경화"라고 명명했다. 예를 들어, 당나라때의 배이직(裴夷直)은 시 <화주시낙성설>에서 이렇게 읊었다: "천가비비답경영(天街飛轡踏瓊英), 사고전응재옥영(四顧全凝在玉英)". 당나라때의 위장(韋莊)은 시 <동일장안감언>엣 이렇게 읊었다: "한초호객짐향의(閒招好客斟香蟻), 민대경화영산염(悶對瓊花詠散鹽)". 송나라때의 양만리(楊萬里)는 시 <관설>에서 이렇게 읊었다: "낙진경화천불석(落盡瓊花天不惜), 봉타매예옥무향(封他梅蕊玉無香)." 원나라의 시인 오징(吳澄)은 시<입춘일우북방부설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부지천상수횡적(不知天上誰橫笛), 취락경화만세간(吹落瓊花萬世間)."

 

이화(梨花)

 

당나라때 잠참(岑參)은 시 <백설가송무판관귀경>에서 눈을 이화에 비유했다: "북풍권지백초절(北風捲地白草折), 호천팔월즉비설(胡天八月卽飛雪). 홀여일야춘풍래(忽如一夜春風來), 천수만수이화개(千樹萬樹梨花開)." 송나라때의 시인 한원길(韓元吉)도 눈꽃을 이화에 비유했다: "막장대우이화인(莫將帶雨梨花認), 차작임풍유서간(且作臨風柳絮看)."

 

유서(柳絮)

 

 진(晋)나라때의 사안(謝安)은 눈이 오는 날 "대설분분하소이(大雪紛紛何所以, 큰 눈이 내리는 것은 무엇과 비슷한가)"라는 상련을 내고 조카들을 모아서 하련을 읊게 했다. 조카 사랑(謝朗)은 이렇게 읊었다: "살염공중차가의(撒鹽空中差可擬, 소금을 공중에 뿌리면 비슷할 것이다.)" 질녀인 사도온(謝道韞)은 이렇게 읊었다: "미약유서인풍기(未若柳絮因風起, 버들솜이 바람에 날리는 것만 같지 못하다)" 그리하여 후세인들은 눈을 '유서'에 비유했다. 송나라때의 매요신(梅堯臣)은 시 <십오일설>에서 이렇게 읊었다: "옹주경어서(擁柱輕於絮), 취서정약사(吹墀靜若沙)." 송나라때의 소식(蘇軾)은 <사인견화설야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어사구호진감화(漁蓑句好眞堪畵), 유서재고부도염(柳絮才高不道鹽)" 청나라초의 전겸익(錢謙益)은 시 <춘설>에서 이렇게 읊었다: "요수앵추응파어(繞樹鶯雛應罷語), 만천유서감쟁비(漫天柳絮敢爭飛)."

 

그외에 고시에서 눈에 대한 별칭은 아주 많다.

 

어떤 경우는 눈을 "옥비(玉妃)"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당나라 한유(韓愈)의 시 <신묘년설>에서는 이렇게 읊었다; "백예선계도(白霓先啓途), 종이만옥비(從以萬玉妃)".

어떤 경우는 눈을 "옥화(玉花)"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송나라때 소동파(蘇東坡)의 시 <화국박희설>에서는 이렇게 을었다: "옥화비반야(玉花飛半夜), 취랑무명년(翠浪舞明年)."

어떤 경우는 눈을 "옥서(玉絮)"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송나라때의 사마광의 시 <설계등보현각>에서는 이렇게 읊었다: "개문지조산(開門枝鳥散), 옥서타분분(玉絮墮紛紛)."

어떤 경우는 눈을 "건우(乾雨)"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송나라때 홍귀보(洪龜父)이 시 <희설>에서는 이렇게 읊었다: "만천건우분분암(滿天乾雨紛紛暗), 도지공화편편명(到地空花片片明)."

어떤 경우는 눈을 "응우(凝雨)"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남조의 심약(沈約)은 시 <설찬>에서 이렇게 읊었다. "독유응우자(獨有凝雨姿), 정원이무순(貞畹以無)"

어떤 경우는 눈을 "소진(素塵)"이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당나라때 이상은(李商隱)의 시 <잔설>에서는 이릏게 읊었다: "욱일개청색(旭日開晴色), 한공실소진(寒空失素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