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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문학일반

김성탄(金聖歎) 임종시의 여유와 유머

by 중은우시 2013. 4. 26.

글: 노선성(魯先聖) 

 

 

 

 

중국문학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명말청초의 문학비평가 김성탄을 피해갈 수 없다.  김성탄은 명말청초의 난세에 살았으며 유년시절은 집안이 유복했으나 부모가 사망한 후 가세가 기울었다.그는 사람됨이 광방불기(狂放不羈)하였으며 문장과 시에 능했다. 세시(歲試)때 쓴 글이 괴이하여 출혁(黜革)당한다. 나중에 과거에 응시하며 이름을 김인서(金仁瑞)로 바꾸어 1등했으나, 벼슬길은 포기하고, 저서저술평론을 낙으로 삼았다. 그는 문학사상 보기드문 광세기재이다. 그의 문학비평은 사상내용의 천발(闡發)을 중시했고, 왕왕 정사를 의론했다. 그의 사회관과 인생관을 충분히 엿볼 수 있을 정도이다. 그는 비교적 계통적인 소설희곡창작이론을 창립했고, 그의 문학이론 및 비평은 중국문학이론비평발전사에 특수한 공헌을 한다. 그는 <수호전>의 후50회는 나관중이 "횡첨구미(橫添狗尾)"했다고 판정하고, <서상기>제5본은 절대 왕실보(王實甫)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악찰(惡札)"이라고 단언했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강렬하고 선명하다.

 

특히 그의 임종때 보여준 태도는 그의 문학거장으로서의 불요불굴의 품격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의 탁월하고 거칠 것없는 재지를 보여준다.

 

원래 순치17년, 순치제는 김성탄의 작품을 보고는 "이것은 고문의 고수이다. 시문으로 그를 보아서는 안된다."고 칭찬한다. 그는 이 말을 들은 후,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북쪽을 향하여 절을 했다." 이를 보면, 문학가로서 황제의 칭찬을 받을 수 있다니, 실로 의기풍발(意氣風發)할 일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는 큰 어려움이 닥친다. 소주부 오현에 새로온 현령인 임유초(任維初)는 세금미납자에 대하여 중형을 쓸 뿐아니라 공량(公糧)을 고가에 백성들에게 판매하여 원성이 자자했다. 민중들은 순치제가 붕어한 것을 계기로, 반부패시위를 벌이고, 나중에 백여명의 수재가 3일째 되는 날 공묘에서 곡을 하여 불만을 표출했다. 나중에 다시 순무 주국치(朱國治)에게 글을 올려 현령을 고발한다. 누가 알았으랴. 주국치와 임유초는 이미 서로 결탁하고 있었다. 18명의 핵심인물을 체포하여 조정에는 수재들이 세금납부에 반항하고, 무리를 모아 난을 일으키려 하여 선제의 영혼을 놀라게 했으니 엄벌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이 문인들은 "참입결(斬立決)"의 판결을 받는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위대한 문학가 김성탄이다.

 

아무도 그가 억울하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그는 그저 이들 보통문인들과 함께 죽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바로 이 임종때 김성탄은 역사와 후세의 문인들에게 생사에 초연한 늠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성탄은 사람됨이 유머가 있었다. 그가 참수될 때, 그는 옥졸에게 "중요한 일을 말해주겠다"고 말한다. 옥졸은 그가 전해져내려오는 보물의 비밀이라든지 무슨 경천동지할 큰 일을 얘기해줄 것으로 생각하여, 필묵을 가져와서 기다렸다. 그러나 김성탄의 '임종시 중요한 일"이란 것은 바로 김성탄이 옥졸이 준 음식을 가리키며 "땅콩과 두부(豆干)를 함께 씹으면 호도의 맛이 난다. 이 기술을 전할 수 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김성탄이 남긴 마지막 말로 기록된다. 땅콩과 두부를 같이 먹는데 어떻게 호도의 맛이 날까? 이것은 김성탄이 세상에 남긴 유머일 뿐이다.

 

행형때가 되자, 처랑하고 숙연해진다. 그다지 넓지 않은 공터에 사방은 도광검영이 번쩍였다. 가슴에 뛰어난 재주를 품고, 붓을 용과 뱀처럼 휘두르며, 조정을 멸시하던 일대의 문학비평가 김성탄은 목에 칼을 차고 수거(囚車)에 서 있었다. 행형시각이 다가오자, 김성탄의 두 아들 리아(梨兒)와 연아(蓮兒)가 곧 영결할 부친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샘처럼 솟고, 비통해 마지 않았다. 김성탄은 비록 마음 속으로 견디기 힘들었지만, 여유를 보였다. 아들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그는 태연자약하게 말한다. "울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리 와라. 내가 대련(對聯)을 말할테니 네가 하련을 맞춰봐라." 그리고 말한다. "연자심중고(蓮子心中苦)". 아들은 바닥에 꿇어앉아 통곡을 하며 간장이 끊어질 듯했다. 무슨 대련을 할 여유가 있단 말인가.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한다: "일어나라. 울지 말고. 내가 네 대신 하련을 얘기하마." 그리고 이어서 하련을 애기한다. "리아복내산(梨兒腹內酸)". 곁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색이 모두 변한다. 상련의 "연(蓮)"은 "련(憐)"과 발음이 같다. 그 뜻은 그가 아들이 우는 모습을 보니 아들이 가련하다는 말이다. 하련의 "리(梨)"는 "리(離)"와 발음이 같다. 그 뜻은 곧 아들과 이별하려 하니 마음이 아프다는 말이다. 이 생사결별대(生死訣別對)는 글자 하나하나가 주옥과 같다. 가히 출신입화(出神入化), 감인심백(憾人心魄)의 경지라 할 만하다.

 

다만, 김성탄의 절제재화는 아직 다 보여준 것이 아니다. 이 천지를 놀라게 하고 귀신을 울게 만들 천고의 절창이 끝난뒤, 망나니는 칼을 들어 목을 내려친다. 김성탄의 귀에서 두개의 종이조가리가 떨어졌다. 망나니는 이상하게 생각되어 뎔어보니, 하나는 "호(好)"자이고 다른 하나는"동(疼)"자였다.(호동은 아주 아프다는 뜻). 일대의 재화가 넘치던 문단거성은 이렇게 죽었다. 그가 후세에 남긴 위대한 문학유산은 더더욱 끝없는 감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