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치/중국과 일본

"일본귀자(日本鬼子)" 용어의 유래

중은우시 2013. 4. 27. 00:32

글: 이자지(李子遲) 

 

"일본귀자"라는 말은 1930,40년대 중국인민들이 항일전쟁기간중에 일본침략자를 지칭한 말이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귀자"는 중국인들의 일본인에 대한 멸칭(蔑稱)이 되었다. 어떤 때는 "일본귀자"를 줄여서 "귀자(鬼子)"라고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영화 <귀자래료(鬼子來了)>와 가곡 <대도(大刀)가 귀자(鬼子)들의 머리위를 벤다>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일본귀자"라는 말은 서양참략자를 "양귀자(洋鬼子)"라고 부른데서 유래한다.

 

최초에는 <요재지이>에서 "귀자"는 도사들의 마귀에 대한 멸칭이었다; 백인종 침략자들이 중국에 상륙하자, 당시의 동방인들이 보기에, 서방인들은 확실히 얼굴이 이상하고, 모습도 괴이하여 마귀와 비슷하다고 여겨서 "귀자", "양귀자"라고 불렀던 것이 점차 퍼지고 유행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청일전쟁이후에는 일본침략자를 지칭하는 말로 바뀌게 된다. 그이전까지 중국의 일본인에 대한 멸칭은 "왜구(倭寇)"였다.

 

"일본귀자"라는 말은 일찌기 청나라말기부터 사람들에 의하여 불리워지기 시작한다. 필자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이런 전고(典故)가 있다.

청일전쟁전에, 청나라조정이 한 대신이 일본에 사신으로 간다. 담판이 끝난 후, 쌍방이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일본은 세상사람들 앞에서 무력을 과시하려고 했을 뿐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청국을 넘어섰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기자들이 모인 후, 일본은 돌연 아무런 상관없는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 일본에 상련(上聯)은 있으나, 하련(下聯)을 맞추지 못한 것이 있는데, 한학의 발원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다." 이건 새로운 일이었다.

금방 일본인이 하얀 비단에 상련을 써서 꺼내보였다: "기기마(騎奇馬), 장장궁(張長弓), 금슬비파(琴瑟琵琶), 팔대왕(八大王), 병견거두상(竝肩居頭上), 단과독전(單戈獨戰)" 이는 기(騎)자는 기마(奇馬)로 나뉘며, 장(張)은 장궁(長弓)으로 나뉘며, 금슬비파에는 모두 '왕(王)'자가 여덟개가 들어있는 등 글자모양과도 일치한다. 그래서 그 하련을 맞추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리고 내용상으로도 일본은 병력이 강하며 타는 말도 천리마이고, 활도 장궁이다. 글 내용도 만만치가 않다. 왕만 8명이다 모두 웅재대략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문덕, 무공을 모두 가지고 있으니 일본은 단독으로도 중국을 평정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청나라대신도 만만치 않았다. 먼저 일본측에 먹을 갈도록 요청한 다음에 다시 흰 비단을 펴고는 하련을 써내려 갔다: "왜위인(倭委人), 습용의(襲龍衣), 이매망량(魑魅魍魎), 사소귀(四小鬼), 굴슬궤신방(屈膝跪身傍), 합수금나(合手擒拿)." 여기서 '왜'는 당연히 '왜구'를 가리키고, 그들은 대청국의 용의를 훔쳐냈다는 것이다. '팔대왕'은 '사소귀'로 바뀌고, '금슬비파'는 '이매망량'으로 바뀌었다. '어깨 위에 앉아있는 것'에서 '곁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으로 바뀌고, '단독으로 싸우는' 것에서 '두 손을 내밀어 붙잡히는' 것으로 바뀌었다. 기자들은 이를 보고 가가대소한다. 그후 사람들은 더 이상 일본을 '왜구'라고 부르지 않고, '귀자'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일본귀자'라는 말은 청나라말기 청일전쟁때부터 이미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항일전쟁시기에 일본침략자들이 중국인민에 대하여 크나큰 죄행을 저질렀고, 그로 인하여 중국인민의 분노와 원한을 샀으므로, '일본귀자', '소일본귀자', '소일본', '귀자', '소귀자'등의 칭호가 널리 사용되게 된 것이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되었으며, 중화대지에 널리 퍼져서 지금에 이른 것이라는 것이다.

 

이 전고와 대련은 기본적으로 문제가 없다. 다만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그 시대에 '귀자'는 외국침략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일본인들이 중국을 침략할 때 '일본'과 '귀자'의 두 단어가 쉽게 한 단어로 결합되어 '일본귀자'가 되었다. 그래서 중국민간, 일반백성의 입에서는 19세기말 청나라말기에 이 단어가 이미 나타나게 된 것이다. 문자상의 기록을 보면 그래도 이 전고와 대련이 가장 앞선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