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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수양제)

수양제의 시부(弑父)에 관한 사서기록 분석

by 중은우시 2013. 4. 15.

글: 소가노대(蕭家老大)

 

수나라 인수4년(604년) 칠월, 일찌기 위진이래 3백년간 천하가 분열된 국면을 끝내고, 여정도치(勵精圖治)하여 '개황지치"를 연 수문제 양견은 인수궁 대보전에서 붕어한다. 향년 64세이다. 태자 양광이 황위를 승계하니, 그가 바로 수양제이다. 바로 이 수양제는 등극후, 황음무도하고, 사치포악한 것으로 이름을 날린다. 그의 등극마저도 아주 지저분했다. 비록 정사인 <수서.제기이>에는 수문제의 사인에 대하여 명확히 기록하지 않았지만, 같은 정사인 <수서.후비전>, <자치통감>은 의심스러운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하여 세상사람들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태자인 양광은 여러해동안 "겸공효제"를 위장하다가 그것이 드러나게 되어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또한 어쩔 수 없이 독수를 써서 자신의 부친을 살해한다. 그리고 정사에서 수문제의 사인에 대한 내용이 모호하여, 사서에서는 세상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남기게 되었다. 그리고 후인들은 계속하여 이 수수께끼를 풀기위해 애썼다.

 

<수서.제기이>, <북사.수본기>의 기록에 따르면; 인수 4년, 가을 칠월, "갑진, 상(양견)의 병이 심해진다. 인수궁에 누워서 백관들과 이별하고, 손을 잡는다. 정미, 대보전에서 붕어한다. 당시 나이 육십사였다." 양견은 깁진일에 백관들과 이별하고, 정미일에 붕어했다. 그 사이에 4일의 시간이 있다. 사인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수서.후비전>은 수문제의 총비 선화부인에 대한 기록에서, 은연중에 그중의 문제를 언급한다: "소(양소)는 그 일을 태자에게 알린다(황제가 태자 양용을 궁으로 부른 일을 양광에게 알렸다), 태자는 장형(張衡)을 침전으로 들여보내고 부인 및 후궁들중 병수발을 들던 자들은 별실로 쫓아냈다. 돌연 황상이 붕어했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발표하지 않았다. 부인과 여러 후궁들은 서로를 보며 말했다: '사건이 벌어졌다!' 그리고 모두 얼굴색이 변하고 다리를 떨었다." 사마광은 <자치통감.수기4>에서 그 중의 의혹을 기록했다: "....우서자 장형을 침전으로 들여보내 병시중을 들게 하고 후궁을 모조리 별실로 보내고, 돌연 붕어했다. 그래서 안팎으로 여러가지 말들이 있었다. 진부인과 후궁들은 이를 듣고 얼굴색이 변하고, 서로 바라보며 전율하고 아연실색했다." 이상의 두 가지 기술을 보면 비롤 분명하게 수문제가 모살되었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궁정시역의 분위기는 글자와 행간에서 충만하다. <십팔사략>, <통력>, <수당연의>등 패사, 연의에서는 수문제가 아들 양광에게 시해되었다고 단정한다. 양광의 시부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하여 사서에 근거하여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인수이년 팔월, 독고황후가 사망한 후, 수문제는 새로 후궁을 채운다. 그리고 선화부인 진씨 및 용화부인 채씨를 총애한다. 밤에는 두 비가 돌아가며 시중을 드는 외에 여러 미인들이 좌우에 둘러서 있었다. 낮에는 또한 조정업무를 처리했다. 육십여세의 양견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여러가지 병이 나타났다.

 

인수4년 맹춘, 수문제는 진씨,채씨 두 부인을 데리고 장안에서 이백여리 떨어진 인수궁으로 간다. 그것은 몸을 요양하려는 것이었다. 모든 국사는 태자에게 대신 처리하게 했다. 조정업무를 손에서 놓고 한번 떠나자 3개월을 계속 거기서 머문다. 우연히 감기에 걸려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못1하게 된다. 병이 들자 탄식을 한다: "황후가 만일 있었다면 어찌 이런 지경에 처했을 것인가?" 수문제가 병이 든 후, 상서좌복야 양소, 병부상서 유술, 황문시랑 원암이 모두 입각하여 병간호를 했다. 그리고 태자 양광을 인수궁 대보전으로 불렀다. 일찌기 하루빨리 등극하고 싶어하던 양광은 부황의 병이 위중한 것을 보자,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양소에게 서신을 써서, 어떻게 황위를 승계받고, 어떻게 반대파를 제거하며, 어떻게 조정을 장악할 것인지를 협의한다. 양소가 이에 회신을 보내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궁인이 잘못 보내어 수문제가 받아본다. 수문제는 이를 읽은 후 대노한다. 화가나서 손발을 부들부들 떨었다. 가슴이 막혀서 갑갑해 했다. 두 부인이 급히 다가와서 등을 두드리고 가슴을 쓸어주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새벽, 하룻밤동안 병시중을 든 선화부인은 황제가 깨어난 것을 보고, 밖으로 나와서 옷을 갈아입었다. 얼마후 놀라고 정신없는 모습으로 뛰어들어왔다. 수문제가 재삼 묻자, 선화부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한다: "태자가 무례한 짓을 했습니다."

 

원래, 양광은 양소의 회신이 부황의 수중에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 마음 속으로 좋지 않다고 여겼다. 새벽에 궁에 들어가서 소식을 알아보고자 한다. 측전의 회랑에서 마침 옷을 갈아입으러 나오는 선화부인을 만난다. 양광은 일찌감치 예쁘기 그지없는 선화부인에 침을 흘리고 있었다. 지금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만나니 손을 떱어 부인의 옷을 만진다. 선화부인은 다급하고 놀라서 소리친다: "태자는 자중하십시오 저쪽에서 사람이 옵니다." 양광은 급히 손을 거두고, 부인은 위기를 벗어난다.

 

선화부인의 말을 들은 후, 수문제는 돌연 깨달았다. 여러해동안 양광의 거짓모습에 속았다는 것을. 화가나서 침상을 치며 소리친다: "짐승같은 놈에게 어찌 대사를 맡길 것인가. 독고가 나를 망쳤구나." 그리고 급히 유술, 원암을 들어오게 한다. 그리고 '속히 내 아들을 불러라." 유술등이 태자 양광을 부르려 하자, 문제는 말한다:"양용을 불러라." 유술, 원암은 각을 나와 폐태자 양용에게 입궁하라는 칙서를 초안한다. 양소가 이를 듣고, 급히 양광에게 알린다. 양광은 마침 선화부인을 희롱한 일이 잘못되어 당황한 상태였다. 두 사람은 상의한 후, 태자좌위 우문술로 하여금 거짓 조서를 들고, 병간호중 모반을 꾀하고, 동궁을 해하려 했다는 이유로 유술, 원암을 하옥시킨다. 그리고 동궁위사로 하여금 급히 입궁하게 하여 황궁을 포위한다. 그리고 출입을 통제한다. 이는 모두 심복인 우문술, 곽연이 감독했다. 다시 심복인 우서자 장형을 수문제의 침궁으로 들여보낸다. 그리고 선화 ,용화부인 및 후궁들중 병수발을 들던 자들을 모조리 침궁에서 내보내고 별실에서 명을 기다리게 한다. 한참후, 장형이 나와서 양광에게 보고한다. 황제가 붕어하였다고. 가련한 일세영웅은 이십사년간 황제로 있다가, 육십사세때 자신의 아들 양광의 음모에 죽은 것이다. 당시 양광은 바로 장례를 치르지 않고, 하룻 밤낮을 그냥 보낸다. 양소가 유조를 초안하고, 모든 조치를 취한 후에 비로서 전국에 사망소식을 알린다. 곧이어 양광은 다시 양약(楊約)을 보내어 수문제의 유조를 위조하여 양용을 사사하도록 0한다. 그리고 양용이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손을 써서 그를 교살시킨다. 604년, 양광은 이렇게 부친과 형을 죽이고, 지극히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황상의 보좌에 등극한다.

 

위의 문자로서 수문제가 양광의 모살에 죽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외에, 정사 <수서. 장형전<에서도 더욱 유력한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책에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수양제 양광이 요동을 정벌하러 갔다가 돌아온 후, 장형의 첩이 장형이 조정을 비방했다고 고발한다. 그후, 양광은 장형에게 집안에서 자결하도록 명한다. 죽기 전에 장형은 크게 소리친다: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이렇게 큰 살인멸구의 일을 했는데, 어찌 세상에 더 오래 살기를 바라겠는가!" 이것은 장형이 죽기 전에 자신의 시군죄행을 자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형을 집행하던 자는 "그 말을 듣고 귀를 막았으며 더 이상 듣지를 못하고 급히 사람을 시켜 그를 죽여버린다."

 

이를 보면, 양광이 부친을 시해하였따는 것을 확실하고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