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제 양광의 딸들

작자: 미상 

 

양광에게 몇 명의 딸이 있었을까? 아무도 확실히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찌기 양광과 형 양용이 태자의 지위를 놓고 다툴 때, 첩을 두는 것을 아주 싫어하던 모친 독고황후에게 잘보이기 위하여, 첩실이 낳은 자식은 모조리 기르지 않았다; 양광이 등극한 후, 장안에 잘 거주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남은 딸들도 두 부분으로 나뉜다: 일부는 장안에서 잃어버려 어떻게 되었는지 소리소문도 없고 일부는 곁에 데리고 다녔다. 그중 일부분은 심지어 양광의 사후 적모인 소후(蕭后)를 따라 돌궐로 갔다. 그러나, <수서>에는 공주전이 없다. 양광의 절대다수의 딸들은 구체적인 봉호, 성명, 평생등에 대한 기록이 없다. 사람수는 자연히 정확하게 계산할 수 없다.

 

먼저 열녀 남양공주(南陽公主)를 보자. 남양공주는 양광의 딸 중에서 유일하게 상세한 기록이 남은 공주이다. 그녀가 이렇게 특수한 대우를 받은 것은 그녀가 자신의 절개로 열녀전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역사에 묻힌 자매들과는 다른 것이다. 남양공주는 양광이 가장 사랑한 딸이다. 그녀가 출가할 때, 양광은 특별히 궁안에서 미모로 유명한 마상궁(馬尙宮)을 귀한 딸에게 딸려서 보낸다. 출가후 양광은 여전히 남양에 자주 갔다. 강남으로 갈 때건 아니면 고구려를 정벌하러 갈 때건 항상 그녀가 곁에 있었다. 그러나 남양공주는 부친의 자신에 대한 사랑을 믿고 기고만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병이 든 시아버지인 우문술(宇文述)을 전심전력으로 보살피고, 남편 우문사급(宇文士及)과도 서로 사랑했으며, 결혼후 얼마 지나지 않아 통통한 아들을 낳는다. 이름은 선사(禪師)라고 부른다.

 

그러나, 속담에 하늘에는 풍운을 예측할 수 없고, 사람에게는 아침저녁의 화복을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양광은 황음무도하여, 백성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깃발을 들고 일어섰다. 양광은 계속 강도에 숨어서 취생몽사하고 있었다. 이때 우문화급(宇文化及)이 친히 시군의 칼을 치켜들고 양광을 죽인다. 이 우문화급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남양공주의 남편인 우문사급의 친형이다.

 

양광은 이 딸을 그냥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사랑해주던 부친이 남편의 형에게 죽임을 당하자, 남양공주는 비분강개하여 의연히 우문사급과의 관계를 끊는다. 눈물을 닦고 모친 소후와 함께 부친의 시신을 서둘러 유주당(流珠堂)에 안장했다. 비록 우문사급과의 관계를 단절했지만, 남양공주와 우문가의 인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두건장(竇建章)이 우문화급을 죽인 후, 참초제근을 위하여 우문가의 나머지 사람들을 제거하기 시작한다. 그중에는 남양공주와 우문사급간에 태어난 독자 우문선사도 포함된다. 비록 아들을 버리기 어려웠지만, 우문가와 양가의 혈해심구(血海深仇)를 생각하면, 일찌기 가장 친밀했던 남편은 이제 반목하여 불공대천의 원수가 되었다. 남양공주는 대의늠름하게 우문선사를 내놓는다.

 

나중에 당나라에서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우문사급과 남양공주는 낙양성에서 우연히 만났다. 우문사급은 전처와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싶어했다. 그러나 남양공주는 단연코 거절한다. 그래도 우문사급은 잊지 못하고 떠나지 않으려 했다. 남양공주는 아주 분노하여 소리친다: "죽고 싶으면 들어와라!" 우문사급은 부득이 기운이 빠져서 떠나야 했다.

 

남양공주는 비록 망국지군의 딸이었고, 부친 양광이 그다지 좋은 명성을 남기지도 못하여, 사후에도 자녀들에게 여러가지 치욕을 겪게 했다. 다만 남양공주는 여자의 몸으로 남자에 뒤지지 않는 기개를 지니고 있었다. 이 기개는 난세에 빛을 발하였고, 위징마저도 아주 찬탄한다. 사서에 남양공주의 생전사적을 기록으로 남겼던 것이다.

 

그러나, 정면이 있으면 반면도 있다. 남양공주의 열녀같은 절개와 선명하게 대비되는 것은 양광의 탕부같은 음탕한 딸들이다. 이들 공주는 비록 구체적인 봉호는 남기지 않았고, 구체적인 평생사적을 남기지도 않았지만, 완벽하게 부친 양광의 황음무도한 특질을 물려받았다. 그리하여 남양공주는 마치 유전자가 바뀐 것처럼 다른 공주들과 달랐던 것이다. 이런 황당한 공주들이 후세에 알려지게 된 것은 완전히 하나의 후궁음란사건 때문이다.

 

이 후궁음란사건의 남자주인공은 우문효(宇文皛)인데, 그도 대단한 인물이다. 당연히 이것을 완전히 우문효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쨌든 황제가 깨끗하게 지냈다면, 신하도 감히 그렇게 터무니없는 짓을 하지 못했을 테니까. 양광이 황제에 오른 후, 여색에 빠져있으며 매일 향락을 즐기고 조회를 마친 후이나 아니면 바깥을 순유할 때나, 자주 임원산정(林苑山亭)에서 대형 연회를 베풀고는 했다. 곁에는 후궁비빈들이 있었다. 심지어 부친 수문제가 사후에 남긴 원래는 출가하여 비구니나 여도사가 되었어야 할 비빈들까지도 데리고 나와서 먹고 놀았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황제거 이렇게 하자, 취향이 비슷한 총신들도 자연히 양광의 행동을 배운다. 우문효도 그 중의 한 명이다. 양광의 총애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궁중을 출입하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그래서 우문효는 후궁에서 양광의 비빈들과 음란한 행동을 한다. 심지어 그 틈을 타서 적지 않은 공주들도 꾀어낸다. 이렇게 함부로 굴자 그 소문이 소후의 귀에 들어간다. 소후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양광에게 말한다. 그 결과 양광은 그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우문효를 전혀 처벌하지 않는다.

 

이런 양광의 묵인으로, 우문효와 대담하게 간통을 즐기던 공주들을 아무 일도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한 것이 좋은 점도 있었다. 나중에 소후를 따라 돌궐로 간 후에 이들 공주들은 돌궐에서 유행하는 형종제급의 풍속에 가장 빨리 적응한다.

 

양광이 죽고 나라가 망하면서, 일찌기 하고싶은대로 하고 지내던 공주들은 하루아침에 망국녀로 전락한다. 그저 적모 소후를 따라 우문화급, 두건장등의 손을 차례로 거치게 되고 나중에는 돌궐로 잡혀 가다. 대당 정관4년, 이정(李靖)이 돌궐을 대파하고, 소후는 적손 양정도(楊政道)를 데리고 장안으로 돌아온다. 돌궐에 갈 때 소후는 손자와 딸들을 데리고 갔다. 그런데 돌아올 때는 손자만 있고 딸들은 없었다. 이것은 북송이 멸망했을 때를 연상케 한다. 일군의 비빈과 공주들이 금나라에 포로로 잡혀가서 여러 종실, 장수들에게 유린당한 후 대부분은 그후 소식이 끊겼었다.

 

그러나, 양광의 곁을 따라다니던 이들 공주들은 풍행이 그다지 방정하지 못했고, 행동거지도 방탕했다. 다만 양광이 장안에 남겨두었던 그들 딸들과 비교하자면 이들 공주들은 그래도 행복했었다.

 

잠중면(岑仲勉) 선생이 통계를 낸 바 있다. 양광이 등극한 후 14년간, 장안에 있었던 기간은 1년이 되지 않는다. 적장자 양소(楊昭)를 태자로 책봉할 때도 장안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사신을 보내어 조서를 보냈을 뿐이다. 그러나, 다행히 양소는 태자여서 부친이 그를 찾아오지 않더라도 그가 낙양으로 부친을 찾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장안에 버려진 공주들은 처량했다. 생모가 총애를 받지 못하고, 자신도 재주가 없어 부친의 곁에 가지를 못했다. 적모 소후는 양광의 앞에서 첫째는 말을 할 수 없었고, 둘째는 남편의 일에 개입할 수가 없었다. 노는데 정신이 팔린 양광이 이런 딸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연이 장안에서 황제를 칭한 후, 이들 장안에 버려진 수나라공주들을 모조리 전리품으로 획득한다. 수나라가 진나라를 멸했을 때, 수문제는 진왕조의 공주들을 나눠주었던 것을 본받아, 몇몇 공신들에게 첩으로 보내고, 몇몇은 자신의 아들을 모시게 하고, 다시 몇 명은 남겨서 자신을 모시게 한다. 이연도 이들 전왕조의 공주를 이렇게 처리했던 것이다.

 

이들 공주들은 망국노로 전락했다. 일찌기 어쨌뜬 황궁의 주인이었는데, 지금은 그저 황궁의 새로운 주인에게 삼궤구고를 행하여야 하고, 그저 고개를 숙이고 시키는대로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정처도 되지 못하고 소첩이 되었다. 예를 들어, 이세민의 진왕부에는 이런 수양제의 딸인 소첩이 있었다. 이 공주의 전반생은 비록 부친의 총애를 받지 못했지만, 어쨌든 금지옥엽출신이다. 원래는 어찌하더라도 조정의 대신자제의 정처로 갈 것이었다. 그러나 수양제가 죽으면서, 망국녀의 신분으로 몸을 낮추어 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궁전은 그 궁전이지만, 신분은 하룻밤만에 천지가 뒤집히는 변화가 일어났다. 양비의 내심이 어떠했는지. 고통을 겪었는지, 불공정한 운명을 원망했는지는 우리가 이미 알 수 없다. 어쨌던 이전에는 황궁의 주인이었는데 지금은 그저 새로운 여주인에게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해야 하니, 마음 속으로 불평불만이 생기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다만 잔혹한 현실앞에서, 양비는 그저 현실을 인정하고 첩으로 지냈다. 이때부터 아들을 낳은 것을 제외하고, 더 이상 기록을 남기지 못하게 된다. 당연히, 이 일을 가지고 양비가 남양공주처럼 절개가 없었다고 가혹하게 책망할 수는 없다. 양비가 왜 남양공주처럼 대의늠름하게 천고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느냐고 질책할 수도 없다. 어쨌든 양비는 당시의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한 선택을 한 것이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이들 작은 인물들은 구차하게 살아가기 위하여 그저 물결이 흐르는대로 몸을 맡겨야 했다.

 

이들 역사의 먼지와도 같은 공주들은 일생중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맛을 느끼지 못했다. 이것만 해도 비극이다. 마지막에는 아들의 전기 속에 몇 글자만을 남겼다. 생각해보라 얼마나 가슴아픈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