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효군(兪曉群)
언제부터인가 "야합(野合)"이라는 단어가 민감한 단어가 되어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두 역사위인의 신세는 모두 이 단어와 관련이 있다. 한 명은 우리가 '천추인의의 스승이고, 만세인륜의 표"라는 공자이다. <사기.공자세가>의 기록에 따르면, "숙량흘과 안씨여자가 야합하여 공자를 낳았다." 즉 공자의 아버지 공흘과 안씨성의 여자가 야합하여 공자를 낳았다는 말이다.
또 한명은 한고조 유방이다. <사기.고조본기>를 보면, "그의 모친인 유온은 대택의 언덕에서 쉬고 있었는데, 꿈에 신을 만난다. 그대 번개와 천둥이 치고 하늘이 어두워진다. 태공이 보니, 사룡이 그 위에 있었다. 그리고 임신을 하여 낳으니 고조이다." 이 이야기를 분석해보면, 신비로운 색체를 제거했을 때, 쉽게 알 수 있다. 여전히 야합인 것이다. 혹은 "의사야합(疑似野合)"이다.
사마천은 유방의 신세내력에 관한 신화를 날조했다. 이는 그가 생활하던 한무제시대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전에 사마천은 이릉을 위하여 몇마디 옳은 소리를 하다가, 한무제에 의하여 거세를 당한다. 이를 보면 당시 형벌이 상당히 중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사기>를 쓰면서 어찌 바른 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왕조의 개국황제를 "야종(野種)"이라고 쓸 수는 없는 것이다.
유방의 집안이 빈한하고 한미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의 조상이 누구인지도 알 도리가 없다. 이것은 그가 황제에 오른 후 "조상"찾기에 풍부한 상상의 여지를 남겨놓았다. 대한제국 사백년의 기업동안, 유씨는 조상을 찾는데 이백여년이 걸렸다. 이것은 헛소리가 아니다.
첫번째는 진왕조를 멸망시킨 후, 유방은 서초패왕을 이기고 황제에 오른다. 그러자 사람들이 묻는다: 유씨는 도대체 누구의 후손인가? 이전에 진시황은 스스로 흑제(黑帝)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어느 해인가 진문공이 흑룡을 한 마리 잡았기 때문이다. 전국말기의 일부 술사들의 추산에 따르면, 진나라이전의 주왕조는 적제(赤帝)의 후손이다. 그래서 홍색을 숭상했다. 이는 '불(火)"에 대응한다. 흑색은 "물(水)"에 대응한다. 오행상승(五行相勝)의 원리에 따라, 수승화(水勝火), 그래서 진나라는 확실히 흑제의 후예이고, 주나라를 대신하여 선다.
유방의 집안은 왕후의 배경이 없었다. 그저 망탕산에서 돌아다닐 때, "취참백사(醉斬白蛇)"의 이야기를 만들었을 뿐이다: 고조가 취하여 밤에 택중을 걸어가는데 앞에 사람이 가도록 시켰다. 앞에 가던 사람이 돌아와 보고하는데, "앞에 큰 뱀이 길을 막고 있으니 돌아가십시오"라고 말한다. 고조는 취해서 말한다: "장사가 가는데 뭐가 두려우랴." 그리고 나아가서, 검을 뽑아 뱀을 베었다. 배는 둘로 갈라진다. 그리하여 길을 열었다. 수리를 가다가 취해서 잠을 잔다. 뒤에 오는 사람이 뱀을 벤 곳에 오니 한 노파가 밤에 곡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왜 곡을 하는지 물으니, 노파는 말한다: "누군가 내 아들을 죽였다. 그래서 곡을 한다" 그 사람이 묻는다. "노인의 아들은 왜 죽었습니까?" 노파가 말한다: "내 아들은 백제의 아들이다. 뱀이 되었고 길을 막았다. 오늘 적제의 아들이 그를 베었다. 그래서 곡을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유씨의 조상은 적제이다. 그러나 당시에 유행한 견해로는 주나라가 적제의 후손이다. 한나라가 어찌 다시 적제가 될 수 있겠는가. 승상 장창은 이렇게 말한다. '적제의 아들'이라는 것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합리적인 견해는 진나라는 근본적으로 흑제의 후예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혹은 진나라는 황제가 아니고, 단지 왕이라는 것입니다. 진나라는 자칭 주나라를 이어 황제가 되었다고 했는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정권을 잡은 후 짧은 기간내에 멸망한 것입니다. 유씨가 진정한 흑제의 후인입니다. 분명히 왕조의 계통에서 진왕조는 없애야 합니다. 한왕조가 직접 주왕조를 계승한 것입니다. 유방은 장창의 이론을 받아들인다. 혹제가 유씨의 조상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그리하여 "흑제사"를 건립한다.
두번째는 한문제 때이다. 공손신이라는 사람이 말한다. 진왕조는 흑제의 후예임이 분명하다. 한왕조는 당연히 황제(黃帝)의 후예이다. 대응하는 것은 "흙(土)"이다. 그는 천상에 황룡이 출현할 것이라고 예측하기까지 했다. 얼마후 신원평이라는 사람이 말한다. 하늘에서 오채옥환(五彩玉環)이 내려오는 등 길조가 있을 것이며 이는 한왕조가 '황제의 아들'임을 말해준다고. 다음 해에 확실히 누군가가 옥배를 바친다. 그래서 한문제는 개제할 생각을 한다. 얼마후 누군가 고발한다. 신원평은 천상과 옥배를 위조했다고 그래서 한문제는 난감하기 그지없어진다. 그는 신원평의 삼족을 멸하고, 더이상 개제의 문제는 꺼내지 않는다.
한무제때, 사마천이 다시 제기한다. 진나라는 확실히 흑제의 아들이다. "물"에 속한다; 한나라는 확실히 황제의 아들이고 "흙"에 속한다. "수래토엄(水來土掩)". 오행상승의 원리에 부합한다. 한무제는 이 견해를 받아들인다. 유가의 조상은 황제라고 인정한다.
세번째는 서한 말기이다. 한나라유생은 전국말기의 "오행상승"의 제왕학을 "오행상생(五行相生)"으로 고친다. 예를 들어,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등이다. 전왕조가 다음왕조의 탄생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들은 진나라는 역시 왕이고, 황제가 아니라고 본다. 그들은 주나라는 '불'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木)'에 속한다는 것이다. 목생화. 그래서 한왕조는 "불(火)"에 속한다는 것이다. 유씨의 조상은 적제이다. 이제 유방이 처음 시작할 때 망탕산에서 "참취백사"한 이야기와 맞아떨어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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