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섭지추(葉之秋)
조씨는 이미 멸문되었는데, 어떻게 다시 부흥할 수 있었을까?
그 첫번째 공로는 한궐에게 돌려야 한다. 한궐은 어떤 사람인가? 한궐은 원래 진(晋)나라 귀족인데, 진문공시기에 이미 몰락하여 어려서부터 조쇠(趙衰)가 부양했고, 조씨의 가신이 된다. 그는 조쇠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조순(趙盾)이 집권한 후, 나이 겨우 스물몇살의 한궐은 육경(六卿)의 바로 아래인 삼군사마(三軍司馬)가 되어, 전군의 사법업무를 관장한다. 전투중에, 총사령관 조순의 차부(車夫)가 마차를 몰고 군진을 가로질서, 군대질서를 교란시킨 적이 있는데, 한궐은 즉시 명을 내려 차부를 처결한다. 사람들은 모두 한궐을 걱정해주었다. 그러나 조순은 관대하게 대했다. 한궐에게 죄를 묻지 않았을 뿐아니라, 오히려 공개적으로 한궐을 칭찬한다. 한궐은 재능이 출중하고, 공정하고 아부하지 않으니, 앞으로 진나라의 정사를 책임질 것이라고 하였다.
몇년후 진경공시대에, 한궐은 전공이 혁혁하여, 새롭게 육경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는 진나라의 실권파의 새로운 선두주자가 된 것이다.
한궐은 조씨일문과 관계가 아주 깊었고, 그는 강직했다. 진실을 감히 말할 수 있었고, 진나라 내에서 지위와 권력이 있었다. 진경공 3년, 도안가가 조씨일문을 멸문시킬 때, 한궐은 아직 세력이 충분하지 못하였다. 여전히 삼군사마였다. 그러나 15년후, 한궐은 이미 진경공이 아주 신임하는 대신이 되었다. 그리고 진나라 군정에서 가장 실권이 있는 인물로 성장했다. 여러번의 정치적 풍우에서 한궐은 시종 육경(일찌기, 육경, 십이경, 팔경등의 변화는 있어왔다)에 들어 있었다. 진여공이후, 진도공이 즉위한다. 그는 한궐을 정경(正卿)에 임명했고, 이때부터 그는 국정을 장악한다. <좌전>에 보면 바로 진도공 시기에 조씨의 봉작이 회복된다.
그렇다면, 한궐은 왜 조씨일문을 회복시켜주었을까? 단지 옛날에 조씨가 그에게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보은을 한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정의감에 이렇게 큰 정치적 결정을 한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한궐은 조씨멸문의 초기에, 항의를 제기한 바 있었다. 당시에는 아마도 정의감에서 그랬거나 조씨일분의 은혜에 감사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15년후, 한궐은 이미 우수한 정치가가 되었다. 정치가가 고려하는 것은 이익이다. 대국이다. 개인의 호오가 아니다. 십오년후의 진나라의 조정은 선후로 극(郤)씨, 난(欒)씨, 중행(中行)씨, 순(荀)씨,한(韓)씨의 수중에 들어간다. 진여공시대에 일찌기 난씨등의 역량을 빌어, 가장 강대했던 극씨를 소멸시킨다. 세력이 커진후의 난씨, 중행씨는 진여공과의 갈등이 더욱 두드러졌고, 결국 진여공을 죽여버리고 진도공을 왕으로 세운다. 진도공은 역사상 아주 강인한 군왕이다. 즉위후 몇개월만에, 조정귀족의 우두머리인 난서(欒書)가 신비롭게 실종된다. 그 후에 진도공은 새롭게 조각을 한다고 선포한다. 한궐을 정경으로 삼아 국정을 장악하게 한다. 한궐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한궐이 집권한 초기에 한씨의 역량은 아직 미약했다. 정적에 더욱 타격을 가하기 위하여, 한궐과 진도공은 조씨봉작을 회복시키는 사건을 일으킨다. 이때의 조씨는 사람이 거의 없고, 그저 진도공과 한궐의 의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조씨는 국군 일파의 가장 굳건한 지지자가 된다.
그리하여, 조씨는 지위를 회복한다. 당연히 조무(趙武)의 개인적인 능력도 아주 중요한 원인이었다. 15세인 조무가 회복한 것은 조씨의 옛날 봉지와 작위뿐이었다. 옛날의 권세를 회복하려면, 조무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했다. 조무는 확실히 비범했다. <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39년이후, 즉 조무가 54세가 되던 해, 조무는 진국의 정경이 된다. 조씨의 영광을 철저히 회복한 것이다. 한씨와 조씨는 수십년간 계속하여 연맹관계였고, 서로 도와주었으며 최종적으로 한나라와 조나라를 건립한다.
정영(程嬰)과 공손저구(公孫杵臼)의 공로도 있다. 그러나 더 많은 것은 개인적인 은의이다. 조씨의 부흥에 대한 공로는 아주 적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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