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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중행열(中行說): 한나라때의 철두철미한 매국노

by 중은우시 2013. 4. 2.

글: 기대화(紀大華)

 

대한간(大漢奸, 매국노) 중행열은 한문제시기에 나타났다. 당시는 흉노선우 노상계필(老上稽弼)이 막 즉위한 때였고, 한나라의 실력은 아직 아주 강하지는 못하여 '화친정책'을 쓰고 있었다. 한문제는 종실녀인 공주를 선우의 알지(閼氏, 부인)으로 보냈고, 환관 중행열을 공주와 함께 흉노로 보냈다. 그러나, "중행열은 가고 싶어하지 않았는데, 한나라에서는 강제로 보냈다." 중행열은 이때 이렇게 말한다. "반드시 나를 보낸다면 한나라에 우환이 될 것이다." 그 뜻은 억지로 나를 보내면 나는 결국 한나라의 심복대환(心腹大患)이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중행열은 자신의 말을 지켰다. 그는 흉노에 도착하자마자 흉노선우에 투항하고, 선우는 그를 아주 잘 대해주었다. 그는 한나라역사상 천고에 욕을 얻어먹는 철두철미한 대한간이 된다.

 

그의 죄행은 3가지이다.

 

첫째, 그는 한문화를 배반했다.

 

당시 한나라와 흉노는 화친을 했고, 서로 선물을 주고 받았다. 한나라가 흉노에 대하여 일부러 '한화'정책을 쓰지는 않았다. 다만, 한나라에 대한 극단적인 원한을 품은 중행열은 이런 사소한 것에까지 아주 민감해 했다. 그는 선우에게 말한다: "흉노가 강대할 수 있었던 것은 의식이 한나라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흉노는 한나라를 따라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선우께서 흉노의 풍속을 바꾸어 한나라의 물건을 좋아하는데, 이들 물건은 한나라물건의 십분의 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흉노가 한화된다면, 전체 흉노가 한나라에 귀속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받은 한나라의 옷감은 모조리 풀밭에 버려버리십시오, 한나라의 비단은 모조리 찢어버리십시오. 그렇게 하여 흉노의 옷만큼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한나라의 먹거리도 받으면 버려버리십시오 그렇게 하여 흉노의 마유가 맛있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중행열의 매국행위는 몇몇 한인을 팔아먹은 정도가 아니다. 한나라의 황제를 팔아먹은 수준이 아니다. 그는 전체 중화민족의 문화를 배신했다. 이것은 추악한 매국행위이다.

 

흉노는 낙후한 민족이다. 당시 아직까지 노예사회였다. 경작을 할 줄도 모르고, 야철도 할 줄 몰랐으며, 방직도 몰랐다. 더더구나 비단은 몰랐다. 한나라는 일찌감치 봉건사회에 접어들었고, 농업기술이건, 수공업기술이건 야철기술이건 모두 세계에서 선진적이었다. 한황제는 비단, 음식물등을 보냈다. 그러나, 이는 야만족들에게 선진적인 문화가 어떤 것인지 맛보게 하는 것이다. 그들이 눈을 뜨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중행열은 민감하게 한문화가 흉노에 끼칠 영향을 깨달았고, 그것이 흉노에게는 멸정지재(滅頂之災)가 될 줄을 안 것이다.

 

이 자는 노예제사회를 크게 찬양하고, 봉건문화를 극력 폄하한다. 한나라사신이 말했다: "흉노의 풍속은 노인을 천하게 여기는 것이다." 중행열은 이렇게 강변한다: "흉노는 전투에서 공을 세우는 것을 국가의 대사로 여긴다. 노약자는 전쟁터에 나갈 수 없다. 그래서 맛있고 좋은 음식은 건장한 사람에게 주어서 먹여야 한다. 그래야만 스스로를 지킬 수 있고, 이렇게 하여야 부자간에 각각 오랫동안 서로를 보호할 수 있다. 이를 가지고 어찌 흉노가 노인을 멸시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한나라사신이 말한다. "흉노가 부자는 같은 천막에 누워서 자고, 부친이 죽으면 아들이 그 계모를 처로 삼는다. 형제가 죽으면 죽은 자의 처는 나머지 형제에게 시집간다. 관대지식(冠帶之飾)ㄷ 없고 궐정지례(闕庭之禮)도 없다." 중행열은 말한다: "흉노이 습속은 사람이 짐승의 고기를 먹는 것이다. 그 젖을 먹고, 그 가죽을 입는다; 가축을 낳으면 풀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며, 계속 옮겨다닌다. 그래서 만일 긴급한 전투가 있으면, 사람들마다 말타고 활쏘는 것을 연습한다. 할 일이 없으면 사람들이 서로 논다. 흉노의 예는 구속을 적게 받고, 실행하기 쉽다. 군신간에 번잡한 예절이 없고, 한 나라의 정치는 마치 한 몸과 같다. 부자형제가 죽으면, 죽은 자의 처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그 종성(種性)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흉노는 비록 어지럽지만 종종(宗種)은 어지러워지지 않는다. 지금 중국은 예의가 비록 번잡하고, 부형의 처를 취하지 않으나, 친척관계가 멀어지고, 서로 미워하고 죽인다. 그래서 성을 바꾼다. 그리고 예의의 폐해로 상하가 서로 원망하고, 집을 많이 꾸미므로 생기가 없게 된다. 농사와 잠업에 신경써서 입을 것과 먹을 것을 구하고, 성곽을 쌓아서 스스로를 방비한다. 그러나 형세가 긴장하면 싸울 줄을 모른다. 아무 할 일이 없으면 농사를 짓다보니 사람들은 피곤해진다.

 

농경문명에서 자란 중행열은 농경문명에 좋은 점이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유목민족을 찬양하고 이로운 점만 있고 해로운 점이 없다고 말한다. 난륜도 좋은 일이라고 말하고, 전쟁을 숭상하고 국토를 침입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이는 인의도덕을 거꾸로 뒤집은 것이다. 평화를 사랑하고 경작을 하는 것이 모두 나쁜 일이 되어 버렸다.

 

선진문화가 낙후문화로 흘러가는 것은 일종의 역사현상이다. 중행열은 역사를 거슬러 움직였고, 역사의 흐름응 억지로 막으려 했다. 그러나 역사의 조류는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낙후지역이 선진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한무제시기에 이르러 장건이 서역과 통하면서 비단길을 연다. 한문화는 마침내 서역대지에서 크게 꽃을 피운다. 낙후민족들이 하나하나 정복된다. 여기에는 불가일세의 흉노도 포함된다.

 

둘째, 한나라에 대한 전쟁을 책동한다.

 

한나라사신과 변론을 하면서 중행열은 항상 말했다: "한나라사신은 말을 많이 하지 말라. 한나라가 흉노에 보내온 옷감,쌀들을 반드시 아름답기 그지없어야 한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만일 준비하지 아니하면 힘들어질 것이다. 가을에 곡식이 익으면 말발굼을 달리며 가서 너희의 농작물을 유린할 것이다." 그는 밤낮으로 선우에게 중원의 중요한 곳으로 진격하기를 건의했다.

 

이 자는 흉노에게 언제 공격할지, 어떤 방식으로 진격할지, 어디로 진격할지, 어떻게 하면 중원의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을 최대한 파괴할지를 가르쳐 주었다. 그는 한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한나라를 잘 이해했다 그의 계모는 적군보다 10배는 흉악했다.

 

그의 가르침하에 흉노는 마침내 공격을 감행한다.

 

한효문황제 14년, 흉노선우는 14만 기병을 이끌고 조방, 소관으로 침입하여, 많은 사람을 죽이고 인민과 가축을 약탈한다. 팽양까지 밀고 들어온다. 일부 병력을 보내여 중궁을 불태우고, 옹주, 감천까지 보낸다. 이에, 한문제는 중위 주사, 낭중령 장무를 장군으로 삼아 천승의 가마와 10만의 기병을 모아서 장안의 곁에 주둔시켜 흉노를 방비한다. 그리고 배창후 노경을 상군장군으로 하고, 녕후 위칙을 북지장군으로 삼고, 융여후 주조를 농서장군으로 삼고, 동양후 장상여를 대장군으로 삼고, 성후 동적을 전장군으로 삼아 흉노를 공격하게 한다.

 

한나라는 중행열이 말한 것처럼 "예의가 번잡하고 상하가 서로 원망하고, 집을 많이 꾸미므로 생기가 없게 된다. 농사와 잠업에 신경써서 입을 것과 먹을 것을 구하고, 성곽을 쌓아서 스스로를 방비한다. 그래서 형세가 긴장하면 싸울 줄을 모른다. 아무 할 일이 없으면 농사를 짓다보니 피곤해했다고 볼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선우는 한나라군대를 두려워하여 새내에 1개월여를 머물다가 되돌아간다. 한나라장수는 새외로 쫓아갔다가 되돌아온다. 전투는 발생하지 않는다.

 

셋째, 극력 화친을 파괴한다.

 

흉노는 갈수록 교만해지고, 인민과 가축을 약탈하는 일이 만아진다. 운중, 요동이 가장 심했다. 대군(代郡)에도 만여명이 있다. 한나라의 변방안전에 우환이 있자, 사신을 보내어 황제의 서신을 보낸다. 선우는 사신에게 다시 화친의 일을 꺼낸다.

 

한나라와 흉노의 관계가 회복되었다. 선우는 이미 화친을 약속했고, 어사에게 조서를 내려 말한다. "흉노 대선우가 한황제에게 글을 보내어, 화친을 이야기했다. 흉노가 새내로 들어오지 않고, 한인은 새외로 나가지 않으며, 이를 어기는 자는 죽일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장기간 화친이 가능하고 이후에도 바뀔 수 없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한나라황제가 허락했고 이를 천하에 알리니 모두 이 일을 알게 하라."

 

노상계필 선우가 죽고, 아들 군신(軍臣)이 선우로 된다. 그가 선우가 되자 효문황제는 다시 흉노와 화친을 한다. 다만 중행열은 시기가 되었다고 보고 다시 한나라와 흉노의 관게를 이간질한다.

 

군신선우가 즉위한지 4년째 되는 해, 흉노는 다시 화친을 단절하고, 3만의 기병을 이끌고 상군, 운중으로 쳐들어와 인민을 해치고, 대량의 재물을 약탈해 간다. 그래서 한나라는 3장군을 파병하여 북지,. 대둔구주, 조둔비호구에 주둔시킨다. 각자 흉노를 방비하게 한다. 다시 삼장군을 설치하여 장안 서세류, 위북 극문, 패상에 두어 흉노를 방비한다. 흉노기병이 대군구주로 칭입하자, 봉화로 가천, 장안에 알린다. 몇달만에 한나라병사들이 변방에 도착하자 흉노는 떠난다. 한나라병사들은 더 이상 추격하지 않는다.

 

중행열이라는 이 한나라의 환관은 흉노에 투항하여 한문화를 배반하고, 한나라와의 전쟁을 책동하고, 다시 화친을 극력 파괴한다. 중국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일막을 남긴다. 한문화를 배반한 것은 이 대한간의 간사한 기초이다. 중화민족의 유구한 역사상, 하, 상, 주, 진, 한 등 서로 다른 시기에 모두 대단한 업적을 남긴다. 하나라의 역법, 상나라의 청동기, 춘추전국시대이 제자백가, 철기, 진나라의 장성, 한나라의 비단, 이들 물질세계의 휘황한 성취, 정신세계의 사상의 불꽃은 모두 뛰어나다. 다만 중행열이라는 이 한간에 있어서, 이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재부를 창조하지 않고, 다른 나라를 침입하는 것만이 숭배할만한 것이다. 아쉽게도 그는 태어날 곳을 잘못 골랐다.

 

중국은 찬란한 문화를 낳은 국가이다. 또한 영웅호걸을 많이 낳은 국가이다. 동시에 한간(매국노)도 많이 배출한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