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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경시제(更始帝) 유현(劉玄)

by 중은우시 2013. 4. 13.

글: 몽고창랑(蒙古蒼狼) 

 

유현(劉玄)은 원래 망명객이다. 유현의 동생이 다른 사람에게 피살당한다. 유현은 복수를 하고 싶었는데, 그 자신은 무공이 없었다. 그래서 협객을 사귄다. 그러나 사람을 잘못만나서, 그 협객은 그를 위해서 복수를 해주지 않았을 뿐아니라, 죄를 범하여 유현까지 연루시키고 만다. 유현은 외지로 도망치자, 관부의 사람들이 그의 부친 유자장(劉子張)을 붙잡아 간다. 유현은 죽은 것처럼 하여, 사람을 시켜 시신으로 돌아간 것처럼 한다. 이렇게 하여 관청에서는 부친 유자장을 풀어준다. 유현은 이제 망명객이 된 것이다.

 

유현은 나중이 녹립군(綠林軍)에 들어간다. 거기서 하급관리인 안집연(安集)이 된다. 나중에 녹림군이 더욱 커지면서, 통일적인 지도자가 없게 된다. 모두 협의하여 한 사람을 황제에 앉히기로 한다. 유현은 이렇게 하여 경시제가 된다. 당시 황실혈통인 유씨성의 후손은 적지 않다. 왜 하필 유현을 황제로 올렸을까? 녹립군은 유현이 유약하여 이런 지도자의 부하라면 살기 편하고 나쁜 짓을 하기 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중요한 한가지 점은 유현을 황제로 하는데 모든 사람의 동의를 받았다는 점이다. "여러 장수들이 공동으로 상의하여 경시를 황제로 삼았다." 이 결정은 아마 절대다수 사람들이 후회했을 것이다. 만일 세상에 후회약이 있다면, 아마 모두 다시는 경시제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유현은 많은 사람을 서천으로 보낸다. 유현이 죽인 사람은 신도건(申屠建), 진목(陳牧), 성단(成丹)등이 있다. 연약한 지도자의 수하로 지내는 것은 비록 지내기는 좋지만, 지도자가 중요한 순간에 멍하니 있는 것은 치명적이다. 즉 황제즉위하는 날, 경시제는 '부끄러워 땀을 흘리며 손을 들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를 보면 유현은 이전에 무슨 큰 행사같은 것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심리적인 자질도 좋지 않았다. 더더구나 군중의 앞에서 연설을 한 적도 없다. 모두 이런 사람을 황제로 뽑다니 정말 다른 속셈이 있었던 것이다. 유현은 마음이 좁다. 천하가 아직 어지러워서 급히 인재들을 써야할 때인데, 명성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던 유백승(劉伯升)을 죽여버린다. 태국관도 없고, 마음이 지나치게 좁았다. 다른 황제를 보라. 모두 일이 성공한 후에 공신문제를 해결했다. 예를 들어, 조광윤은 천하가 평정된 후에 배주석병권했다. 주원장은 모든 상대방을 죽여버린 후에 비로소 화소경공루(火燒慶功樓)했다. 그러나 유현은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도 않았다. 왕망을 죽인 후, 한번은 백관을 만났는데, 유현은 다시 부끄러워한다.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긁으며 쳐다보지 못했다." 거기서 물은 것은 유현이 무장들에데 돈을 얼마나 빼앗았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두 경악해 마지 않는다. 유현은 조맹(趙萌)의 딸인 한부인(韓夫人)을 취한 후, 모든 권력을 조맹에게 넘긴다. 자신은 매일 한부인과 술을 마셨다. 한 대신이 경시제를 찾아가서 보고를 했는데, 유현은 태감으로 하여금 대답하게 했다.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한부인도 좋은 여자는 아니었다. 누군가 와서 일을 아뢰면, 한부인이 찾아온 사람에게 욕을 했고, 화가나서 탁자를 치곤 했다. 좋은 마누라를 얻는 것은 남자의 경계를 한 단계 올려준다. 나쁜 마누라를 얻는 것은 남자의 생활품격을 한 단계 낮춘다. 유현은 비교적 한 여인만 사랑하는 남자였다. 그저 한부인만을 총애했다. 사료에 다른 여인이 있다는 기록은 없다. 조맹은 자신의 딸이 총애를 독차지하는 것을 이용하여, 위세를 부렸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자는 죽여버렸다. 유현이 부탁을 해도 조맹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조맹이 이렇게 독재를 한 것은 유현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처음에 누군가 조맹이 너무 방종하다고 했을 때 유현은 그 자를 죽여버렸었다. 나중에 유현이 임명한 관리의 대다수는 그의 곁에 있는 주방장, 재봉사, 도부(屠夫) 같은 류의 학식도 없고 관리능력도 없는 자들이었다. 유현은 완전히 기분내키는대로 일처리했다. 누구든지 관계가 좋으면 그에게 관직을 내렸다. 그 사람의 재능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유현에게는 지도자로서의 능력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형세가 나빠진다. 적미군(赤眉軍)이 우세를 점하고, 녹림군을 격파한다. 많은 장수들은 도망쳐서 토비가 될 것을 생각한다. 녹림군은 원래 강도로 먹고 살던 사람들이다. 이 생각은 여러 장수들의 동의를 받았다. 이 방안은 당연히 좋은 방안이 아니다. 토비가 되어 살면 오래 갈 수가 없다. 천하가 평정되면 황제는 당연히 토비를 토벌할 것이다. 그러나 이 방안은 장안에 앉아서 죽이러 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를 유현은 받아들이지 않고 아주 화를 크게 냈다. 나중에 장모, 요담, 호은, 신도건등이 외오와 공모하여, 유현을 납치하려 한다. 이 계획을 유능경(劉能卿)이 유현에게 누설한다. 유현은 이들을 죽이려고 계획한다. 유현이 정말 이들을 죽이려면 무슨 계책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장수들과 사병은 갈수록 적어지고, 무엇으로 공격을 막아낼 것인가? 당시 외오를 제외하고, 사람들이 모두 왔다. 유현은 의심을 하여 적시에 행동을 취하지 못한다. 장모 요담, 호은의 세사람이 다시 도망친다. 유현은 일처리가 과감하지 못하여, 사정이 바뀌었다. 그리고 적시에 조치를 취하지도 못했다. 예를 들어 먼저 도착한 이들을 가두었다면 혹은 먼저 이 몇 사람을 죽였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신도건은 멍청하게 거기서 기다리고 있다가 피살당한다. 외오는 아주 약았다. 그는 아예 가지를 않앗다. 바로 외오가 장모, 요담, 호은등에게 도망칠 시간을 벌어준 것이다. 이 일은 유현으로 하여금 모든 것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왕광, 진목, 성단등을 의심하여 이 몇 사람을 황궁에 들어오게 한다. 이번에는 유현이 교훈을 얻어서, 먼저간 진목, 성단을 죽여버린다. 왕광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도망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철저히 자신의 전선을 와해시켰다. 왕광은 장모와 반란을 일으켰다가, 유현, 조맹에게 패배한 후, 녹림군에 투항한다. 유현은 패배한 후에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말을 타고 도망쳤다. 한부인도 돌볼 틈이 없었다. 

 

다행인 점은 유현에게는 충성스러운 신하인 유공(劉恭)이 있었다. 이 유공은 바로 유분자(劉盆子)의 친형이다. 유현이 적미군에 투항한 후, 적미군은 유현을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며 유현을 죽이고자 한다. 다행히 유공이 목숨을 내놓고 막아서 그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유공은 당시에 "신은 실로 있는 힘을 다 했습니다. 제가 먼저 죽겠습니다." 그리고 검을 뽑아 목에 대었다. 적미군의 대장 번숭은 깜짝 놀란다. 적미군이 세운 황제 유분자의 친형이 아닌가. 그에게 죄를 지을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유현은 목숨을 구한다. 유공은 유현을 위하여 장사왕(長沙王)의 작위를 받게 해준다. 나중에 유현은 그가 신임하던 사록(謝綠)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때도 유공이 저녁에 몰래 시신을 스습한다. 나중에 유공은 사록을 죽여서 유현의 복수를 한다. 유공은 사록을 죽인 후 부극청죄(負棘請罪)한다. 그는 광무제 유수의 용서를 받아 처벌을 면한다.